〈 127화 〉근육이 득근득근 (6)
근육이 득근득근 (6)
몇 주간 식후 디저트나 야식, 술도 딱 끊고 샐러드와 과일, 야채, 닭가슴살, 연어, 지방 없는 소고기 등을 꾸준히챙겨 먹으며 열심히 운동하다 보니 확실히 몸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민재야 원래 근육남이었으니 말할 것도 없지만,
아이의 몸매는 정말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었다.
기본 골격이 있어서 슬림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이전과 같은 통통하다는 느낌은 많이 사라졌고, 훨씬 날씬하며서도 건강한 몸의 라인이 잡히기 시작했다.
거기에 바스트(bust, 상반신, 가슴둘레) 크기는 그대로이면서 힙의 크기는 더 탱탱해지면서도 업된 느낌!
매주 한 번씩 인바디를 측정할 때마다 기초대사량은 늘고, 체지방은 줄어드는 것도 그래프를 통해 명확히 나타나고 있었는데,
다만, 체중에는 큰 폭의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운동 후 인바디를 측정한 아이는 어플을 통해 결과를 보고는 상심한 표정을 지었다.
“히잉~ㅠㅠ 열심히 운동했는데도 몸무게가 1kg 밖에 줄지 않았어요~ㅠㅠ 제가 운동을 너무 조금해서 그런걸까요? 아니면 먹는 걸 더 줄어야 하는 걸까요? ㅠㅠ”
민재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원래 운동을 시작하면 일반적인 살들이 근육으로 변하면서 체중에 큰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더 증가하는 일이 있어요. 지금 아이의 몸이 근육으로 변하면서 체중 변화가 더디게 나타나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러면서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꼬옥 껴안아 보았다.
“봐요! 허리 사이즈는 전보다 훨씬 날씬해졌잖아요! 다이어트를 할 때에는 체중을 보지 말고 몸의 변화를 보는 게 더 중요해요.”
그의 말대로 아이의 허리는 최소 1~2인치는 줄어들어 있었다.
앉거나 허리를 굽힐 때면 귀엽게 살짝 살이 접히는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복근의 선도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가 입은 레깅스도 살짝 타이트한 느낌이 덜해진, 심지어 헐렁해진 느낌도 드는 게, 허리와 다리살이 빠진 게 확연히 드러날 정도였다.
“이따가 스포츠 용품 매장가서 새 레깅스 사야겠는데요? 허리가 이렇게 헐렁해졌으면... 운동하다가 슥, 벗겨지는 거 아니에요?”
민재가 장난스럽게 레깅스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엉덩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어머, 정말...! 체중은 그대로여도 몸매는 확실히 변화가 생기는 거 같아요! 그럼 운동 마치고 집에 가면서 새 레깅스 사러 가요! 그리고... 며칠 후에, 전에 백화점에서 본 예쁜 옷 한 번 입으러 가봐야겠어요!”
아이는 마냥 들뜬 표정으로 민재의 품에 안겨왔다.
* * *
이렇게 아이의 다이어트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정작 민재는 죽을 맛이었다.
아이는 예쁜 옷을 입겠다는 목표와 동기라도 있지,
민재는 그런 거 1도 없어 아이를 위해 함께 다이어트 식단을 먹으며 버티려니 몇 주 만에 한계가 와버린 것이다.
차라리 시합에라도 출전한다는 동기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런 거 하나 없이 계속 샐러드와 닭가슴살만 먹으려니...
아이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것도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며칠 후,
마침 아이가 자신의 어학당 친구들을 대치동 건물 두 사람만의 헬스장으로 데리고 와 함께 놀기로 한 날이었다.
그녀가 데리고 오는 친구들을 모두 외국 여학생들로, 여자들끼리 운동복 입고 함께 운동도 하고 다이어트 음식들도 나눠먹고 하면서 놀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민재도 이 날 덕환과 만나기로 했다.
1년간 민재가 투자해 준 금액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또 유튜브 채널에서 나온 수익이 어느 정도이며 수익금은 어떻게 분배될 것인지에 대한 보고도 듣고, 간단한 송별회도 가질 예정이었던 것이다.
무언가 그럴듯 해봤자 덕환과 민재 둘이 압구정에 있는 그의 건물 5층, 덕환의 스튜디오에서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게 전부이긴 하지만.
그렇게 1시간 가량 덕환의 유튜브 채널 운영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12시,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야, 배고프지 않냐? 먹고 할까?”
“그래, 점심이나 먹자. 어디로 갈까?”
오랜만에 다이어트 식단이 아닌 일반식을 먹을 생각을 하니 민재도 잔뜩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기가 막힌 거 알아냈는데, 거기로 갈까?”
“어디, 가까운데야?”
“응, 지갑만 챙겨들고 따라와.”
덕환은 민재를 데리고 먹자골목에 있는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찌개와 백반을 파는 함바집과 비슷하게 생긴 식당이었다.
덕환은 바로 김치찌개 2인분을 주문했다.
“뭐, 김치찌개 먹게?”
“김치찌개는 김치찌개인데... 자, 이리 와서 계란 후라이 만들어야 해.”
“뭐? 계란 후라이?”
“응, 여기 계란 후라이는 셀프야.”
민재는일단 덕환이 하라는 대로 작은 버너 위에 후라이팬을 올리고 계란 후라이를 하나 만들었다.
곧 그들 테이블에 양은 냄비에 담긴 보글보글 끓은 김치찌개가 나왔다.
찌개가 나오며 밥과 밑반찬도 같이 나왔는데, 특이하게도 밥은 일반적인 공기밥이 아니라 커다란 대접에 담겨져 나왔다.
“자, 내가 하는 대로 따라서 만들면 돼.”
덕환은 대접에 김치찌채에 든 김치와 돼지고기, 국물을 듬뿍 올리고는 그 위에 직접 만든 반숙으로 잘 구워진 노른자가 황금빛으로 살아 있는 계란 후라이를 올렸다.
거기에 미리 준비된 김가루와 참기름을 뿌리고 슥슥 비비기 시작하는데...
민재가 그 먹음직스러운 모습에 금방 따라서 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에 넣어보는데,
“와... 대박~!”
이 소리가 저도 모르게 나올 정도로 완벽한 맛의 하모니!
“와~ 김치찌개를 계란이랑 해서 밥에 비벼먹는 게 이렇게 맛있을 줄은 처음알았다! 너 이 집 어떻게 알았냐?“
“얼마 전에 다른 유튜버가 찍어 올린 거 보고 찾아 왔지! 원래 충청도 지역이 김치찌개를 이렇게 밥에 비벼먹을 수 있게 파는 곳이 제법 있다고 하는데, 서울에서는 여기하고 몇 군데 없다고 하더라.”
민재는 김치찌개 비빔밥이 정말 맛있었던 듯, 금세 한 그릇 뚝딱하고 밥 한 그릇을 더 리필했다. 기분좋게도 밥은 무료로 계속 리필이 된단다.
간만에 먹는 일반식이라 그런지 평범한 음식인데도 마치 천상계의 음식 마냥 맛있게 느껴졌다.
원래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평상시 먹었던 음식과 멀어지는 게 아니라 더 생각나고 간절하게 먹고 싶어지는법이다.
게다가 평소에 먹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한 맛과 식감, 향까지도 모두 코와 혀에 너무나 생동감 있게 전달되는데...
몇 주 만에 먹어보는 김치와 고춧가루의 칼칼함과 돼지고기의 쫄깃쫄깃 고소한 풍미가 입안을 마치 마약으로 마취시키기라도 한 거 마냥 황홀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대접에 거의 코를 박고 열심히 밥을 퍼먹는 걸 보고, 덕환이 또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야, 너 지난번에 나랑 제육볶음 먹을 때도 그렇고... 너 요새 진짜 못 먹고 사니...?”
“아니, 그건 아니구~ 요새 아이가 다이어트 하는데 나만 마음껏 먹기 뭐해서 같이 다이어트 식단 먹고 있었거든. 오랜만에 김치찌개랑 밥 먹으니까... 진짜 맛있고 좋다, 허허허~”
“아이짱 요새 다이어트해? 아,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유튜브 영상 올린거 보니까 전보다 확실히 날씬해진 거 같긴 하던데... 근데 아이짱 때문에 너도 다이어트 하고 있는 거야?”
“아이가 다이어트 하느라 샐러드, 닭가슴살 이런 거만 먹어야 하는데, 내가 옆에서 밥 먹고 그러면 다이어트에 방해될 거 아냐. 그래서 집에서는 똑같이 다이어트 식단으로 밥 먹고 있어.”
“야... 네 덩치에... 그거 먹고 버틸 수 있냐? 너 그러다 쓰러지는 거 아냐?”
“그 정도는 아니고 1주일에 한 번씩 주말에 일반식으로 식사하기는 해. 그래도 이렇게 제대로 된 음식만 보면... 진짜 미칠 것 같더라. 근데 여기 진짜 맛있다. 나중에 여기 또 와도 되겠는데?”
그러면서 입안에 와구와구 김치찌개 비빔밥을 푹푹 퍼 넣었다.
* * *
민재는 집에 돌아가기 전 덕환의 스튜디오에서 양치부터 했다.
거기에 껌도 씹고 커피도 마시고...
지난번에 몰래 제육볶음 먹고 왔다가 아이와의 키스 한번에 홀랑 다 들켰던 기억 때문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직 아이는 없었다.
톡을 날려보니 역시나, 아직 친구들과 함께 두 사람만의 헬스장에서 놀고 있다고 한다.
‘오호, 그렇단 말이지...?’
민재는 쪼르르 주방으로 달려가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냉장고 안에는 각종 식자재들이 차곡차곡 잘 정리되어 있었다.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용기들에는 각각 안에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지, 언제 넣었는지,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도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게 아이의 솜씨였다.
그런데 막상 냉장고를 뒤져보니 바로 먹을 만한 게 없었다.
예전부터 민재가 즐겨 먹었던 빵이나 각종 즉석식품 같은 건 아이에 의해 이 집에서 퇴출된 지 이미 오래.
하다못해 아이가 먹다 남긴 디저트 같은 것도 없었다.
‘한 번 먹기 시작하니 계속 먹고 싶어지네... 하아... 이래서 다이어트가 어려운거야...’
민재는 뭐라도 시켜 먹을까 하고 배달 어플을 켜보았다.
‘가만, 집에서 먹다가 흔적이라도 남으면, 아니, 먹다가 아이가 돌아오기라도 하면 상황 참 이상해질 거 아냐? 그냥 잠깐 편의점이라도 다녀오자.’
민재는 후드 점퍼에 패딩 하나를 덧입고 아파트 정문 쪽에 있는 편의점으로 걸어 나갔다.
* * *
민재는 편의점으로 달려가 불고기가 가득 든 도시락 하나에 작은 컵라면, 콜라 하나를 사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와... 이렇게 편의점에 서서 밥 먹는 거, 대학 졸업하고 나서 처음인 거 같아. 그런데 도시락도 그렇고 컵라면도 그렇고... 왜 이렇게 맛있는거냐... ㅠㅠ’
민재가 뜨끈 얼큰한 라면 국물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그의 등 뒤로 편의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민재는 개의치 않고 어서 먹고 집에 돌아가 양치까지 하고 ‘완전 범죄’를 완성하기 위해 서둘러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적립이요.”
방금 들어온 손님이 벌써 물건을 골라 계산하는가 보다.
그런데 목소리가 되게 낯익은 여자 목소리인데...?
계산을 마친 손님이 구입한 물건을 먹고 가려는 듯, 민재가 있는 스텐딩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라면을 흡입하던 민재가 곁눈질로 쳐다보니 민재와 마찬가지로 후드를 쓰고 있는 손님의 손에는 빵과 케이크, 초코 우유 등이 들려있었다.
그런데 이 손님이 입고 있는 레깅스와 패딩이 엄청 낯이 익은데...
“아라? 오빠?!?!”
“어? 아이...?!?!”
너무 놀란 나머지 입에 물고 있던 라면 가락이 주르륵 컵 안으로 도로 흘러내리고 말았다.
아이도 깜짝 놀랐는지 손에 들고 있던 크림빵을 바닥에 뚝 떨어뜨리고 말았다.
* * *
두 사람은 편의점에서 산 것들을 맛있게 먹으면서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빠, 저번처럼 또 매운 음식 드시고 싶으셨던 거예요?”
“꼭 매운 음식은 아니고, 오늘 덕환이랑 점심에 김치찌개에 밥을 비벼 먹는 집에 다녀왔었는데 너무 맛있어서...그래서 뭔가 좀 더 먹고 싶어지더라구요.”
“헤에~? 김치찌개에 밥을 비벼먹어요? 그 한국 낫토... 아, 청국장! 청국장에 밥 비며먹는 건 들어봤어도 김치찌개에 밥 비벼먹는다는 건 처음 들어었어요.”
“충청도에서 해먹는 방식이래요. 아무튼... 치팅데이도 아닌데 몰래 이렇게 먹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오빠. 저도 오늘 친구들이랑 운동도 하고 각자 먹는 다이어트 음식 같은 것들도 구경하고 그랬더니 배가 너무 고파져서... 친구들 보내자마자 편의점으로 달려오고 말았어요.”
“친구들은 어떤 다이어트 식품 먹는데요?”
“주로 물이나 음료에 타먹는 쉐이크 같은 거 먹는 애들이 제일 많았구요. 원푸드 다이어트라고 한 가지만 먹는 애도 있었고, 뻥튀기 과자 먹는 애도 있었어요. 그런데 걔들이 가지고 온 거 다 맛이 너무 없어서... 갑자기 맛있는 거 먹고 싶어져서 편의점으로 달려오고 말았어요.”
그러면서 아이가 살짝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민재의 팔짱을 꼭 끼며 말했다.
“그래도 이거 사면서 죄책감이 들어서... 샌드위치나 치즈 소세지 같은 거 사려다가 포기했어요. 잘 했죠, 나?”
민재도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살짝 키스해 주었다.
“지금까지 식단도 잘 지키고 운동도 잘 했는데 이 정도는 봐드려야죠. 그리고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너무 괴로운 다이어트는 하지 맙시다, 우리. 몸을 위한다고 마음을 괴롭게 하면 그것도 웰빙(Well-being)은 아닐 테니까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되, 무리하게 많이 먹지 말고 지금처럼 운동도 열심히 하고, 그러면서 건강하게 다이어트 해요, 우리.”
“네, 오빠!”
아이는 손에 든 케이크를 한 입 크게 베어 물면서 민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