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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화 〉겨울에는 집에서 꽁냥꽁냥 (2) (129/140)



〈 129화 〉겨울에는 집에서 꽁냥꽁냥 (2)

겨울에는 집에서 꽁냥꽁냥 (2)

난데없는 여성용 시계 질문에, 직원은 잠시 말을 더듬거렸다.

“아...  모델은 이제 막 론칭된 신상이라 아직 여성용 라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객님이 착용해도 참 예쁠  같은데, 시착 한 번 해보시겠어요?”

직원은 민재의 손목에 있던 시계를 아이의 손목에 채워줘 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남성용으로 제작된 시계인이지라 얇은 아이의 손목에는 너무 커보이기만 했다.

“흠... 울트라씬이라 얇긴 하지만 크기 자체는 아이 손목에 안 맞는  같은데...?”

“우웅~ 그러게요... 게다가 스트랩을 끝까지 다 채워도 너무 헐거울 정도로 제 손목에는 너무 커요.”

직원의 이마에 식은 땀이 흘렀다.

“하하, 아무래도 스트랩이 일반 남성용 스트랩이라 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트랩만 여성용으로 교체하시면 잘 맞으실 것 같은데요...?”

잘 맞기는, 누가 봐도 아이 손목에 요괴워치 하나 차고 있는거 마냥 무진장  보이는데.

민재가 아이의 손목에서 시계를 풀러주며 물었다.

“아이, 나랑 커플 시계 하고 싶어요?”

“네! 반지는 맞췄으니까 커플 시계도 있었으면 좋을 거 같아서요!”

민재가 직원에게 시계를 건네주며 말했다.

“혹시 브랜드 카달로그 있나요? 커플로 매칭할 만한 시계가 있을지 보고 싶은데요?”

그 말에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달로그는 없고, 제가 밑에 가서 태블릿 가져올 테니, 저희 홈페이지 같이 보시면서 마음에 드는 모델이 있는지 함께 찾아보실까요? 아, 그리고 여기 계시면 계속 다른 고객들이 드나들어서 불편하실 수도 있으니 옆에 VIP룸으로 모시겠습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직원은 연신 허리를 굽신 거리며  사람을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 * *

행사장의 VIP룸은 이태원 H카드 라이브러리 공간을 대여해 꾸며 놓은거라 청담 명품샵들의 VIP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작고 간소했다.

그래도 감각적인 디자인의 푹신한 붉은색 소파와 유리로 된 테이블, 전신 거울 등 VIP룸에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것들은 잘 갖추어놓은 상태였다.

민재와 아이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있는 가운데 검은색 정장을 입은 모델 같이 잘생긴 서버들을 샴페인과 카나페 등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오고,

두 사람은 샴페인을 즐기며 직원이 가지고 온 태블릿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었다.

“지금보시는 페트리머니 컬렉션 셀프와인딩(기계식 시계가 아닌 오토메틱 시계를 말한다.) 모델이라면 남성용, 여성용이 모두 있어서 컬러와 스트랩만 맞추면 커플 시계로 딱일거 같은데, 어떠세요?”

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예쁘기는 한데... 오빠가 좋아하시는... 시계 안에 무언가 엄청 많이 들어있는 디자인은 아닌  같은데요...?”

직원이 보여준 셀프와인딩 모델은깨끗하고 포멀한 디자인의 순수한 시계였다. 시침과 분침 초침과 시간을 나타내는 황금빛 선과 점, 그리고 날짜를 표시하는 기능 외에는 아무런 장식도, 특별한 기계 장치도 없는 담백하고 깔끔한 모델이었다.

방금까지 민재가 눈여겨보던 퍼페츄얼 캘린더 기능에 문페이즈까지 더해진 화려한 시계와는 확실히 거리가 멀어보였다.

“이런 디자인도 좋아해요. 이런 디자인은 어느 옷에나 잘 매치시킬 수 있으니까. 그런데...나 이거 화이트골드 모델 이미 가지고 있어요.”

“아, 맞다! 그러고보니 드레싱 룸에서 본 거 같기도 해요!”

민재가 손가락으로 옆이마를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할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게 화이트골드에 검정색 악어가죽이니까, 아이도 같은 디자인에 여성용으로 둘레에 보석 박힌 모델로 하나 맞춰줄까요? 아니면 스트랩컬러는 검정색 말고 다른 색으로 해도 되구요.”

“오빠랑 똑같은 디자인의 시계로 커플 시계 하고 싶은 거니까, 보석 없이 오빠랑 똑같은 모델로, 내가 찰 수 있는 여성용 시계면   같아요! 스트랩만 핑크색이나 붉은색 계통이면 좋을 거 같구요!”

민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직원의 얼굴을 바로보았다.

“지금 숙녀분이 말한 여성용 모델, 어느 매장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명품 브랜드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지만. 각 매장마다 해당 브랜드의 모든 모델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하이엔드 브랜드일수록 수량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심지어 어떤 모델은 국내에 잘 들어오지 않아 본사에 예약을 걸고 몇달을 기다령 받아볼 수 있는 물건도 허다하다.

직원은 민재가 다른 매장으로 달려가 시계를 살까봐 덜컥 겁이 났는지 새빨게진 얼굴로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고객님! 저희가 국내에 제품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확인되는대로 바로 여기서 받아보실 수 있도록 조치해 드릴 테니, 부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민재가 아이에게 사주려는 페트리머니 셀프와인딩 모델의 가격은  5천만원 정도.

이런 스톡 하나 팔면 직원에게 떨어지는 인센티브도 인센티브지만 일단 성과에 따른 직원 평가부터 달라진다.

즉, 회사에서 진급과 연봉 인상에도 상당히 유리하게 적용된다는 것.

이러니 민재가 다른 매장에 아이에게 사줄 시계 있나, 하고 묻는 말에도 대경실색할 수 밖에.

직원은 다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저 압구정 매니저인데요, 4100U-B181 (보통 직원들은 모델의 이름 대신 제품번호로 말한다.) 지금 V렉스(현금, 귀중품 등 특수 물류를 전문적으로 운송하는 보안업체)에 맡겨서 이태원으로 보내주시겠어요? ... V렉스 부르려면 얼마나 걸려요? ...1시간 반? 그보다 더 빨리는 안되요...? 퀵으로 보내면 안되나...? 아... 중간에 분실되거나 파손되면 제가  물어내야 한다구요...? 네, 알겠습니다...ㅠㅠ”

직원이 열심히 통화를 하는 사이, 아이와 민재는 서로 손을 잡은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 저 시계 사주시는 것도 좋지만... 오늘은 드디어 오빠가 마음에 들어 하는 시계를 찾으셨잖아요? 제 꺼는 안 사주셔도 되지만, 오빠 시계는 사셨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오빠를 위한 물건을 사기로  날이잖아요?”

“괜찮아요, 오늘 본 시계는 어차피 예약걸고 두달은 지나야 받아볼 수 있으니까. 오늘은 그냥 선금만 주고 예약하고 갈 거고, 아이 시계는 오는 대로 바로 구입해서 갑시다.”

“아아... 이렇게  오빠한테 받아버리게 되네요... 저, 그럼  시계, 우리 평생 커플 시계 해요.결혼해도 한국 사람들 하는 것처럼 예물 시계 같은 거 안 맞춰줘도 되요. 저 이거 제 인생템으로 삼을 거예요.”

5천만원짜리 바00콘스탄틴 페트리머니 컬렉션 라인이라면, 인생템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지.

어지간한 자동차보다 더 비싼건데.

민재는 아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나중에 이런 자리  있으면 같이 커플 시계 하고 나와도 좋을 거 같아요.”

“맞아요. 이번에 산 시계는 정장에도 잘 어울리고 일반 옷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럼 우리 시계 올 때까지 바깥 구경이나 하고 올까요?”

“네, 오빠!”

두 사람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갔다.

마침 행사장 안으로 유명 영화배우 셀럽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 기자들도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따라오고 있었고,

영화배우들은 직원들이 채워준 시계를 손목에 차고 기자들 앞에서 여러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민재와 아이는 계단 위 VIP룸 앞에서이들을 구경하며 즐겁게 샴페인을 마셨다.


* * *

민재가 주문한 시계는 1시간도 안되어 이태원에 도착했다.

아이는 레드와인빛 스트랩이 달린 여성용 셀프와인딩 시계를 착용해보고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보석이나 별다른 장신구가 없어도 그녀의 손목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빛이  보일 정도였다.

민재는 그녀의 시계를 바로 결제하고 (5천만원을 일시불로 계산한 것!)

본인 마음에 들어 한 울트라씬 퍼페츄얼 캘린더 모델의 예약 선금으로 10% (...라고 하지만 1천만원에 가까운 돈이다!)  금액도 함께 결제를 마쳤다.

특별 게스트로  가수들의 공연까지 관람한 두 사람,

행사가 끝나자 함께 손을 잡고 인근 경리단길을 걷기로 했다.

 다 샴페인을마셨기 때문에 바로 운전할 수는 없었고,

차가페라리라(페라리 F8 트리뷰토는 2인승이다...) 대리운전을 부르면 한 사람 밖에  수 없기에 일단 술기운부터 날리고 가기로 한 것이다.

겨울 밤 공기가 제법 쌀쌀했지만 귀가 시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아이는 드레스 위에 코트를 입고 민재의 팔짱을 꼭 낀채 그의 어깨에 기대어 그와 함께 발걸음을 맞추어 함께 걸었다.

“오빠, 여기 경리단길 와 본  있으세요?”

“그럼요. 이태원에 건물 매입하려고 알아볼 때 근 두 달 가까이 이 근처에 매일 오곤 했어요.”

“그래요? 그럼 여기 맛집도 많이 아시겠어요?”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데는 몇군데 있죠. 진짜 맛있는 치즈 피자랑 과일향 진한 맥주 파는 곳이  근처 어디였던 거 같은데... 아, 갑자기 피맥이 땡기네요.  깨러 나와서 술 마시면 안 되는데, 하하.”

게다가 아이의 다이어트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처음보다 일반식이나 밀가루 음식 먹는 날을 조금 늘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샐러드와 닭가슴살을 주식처럼 먹으며 일주일에 5일 이상 두 사람만의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금요일 저녁인데도, 이상하리 만큼 길거리에 행인들이 많이보이지 않있다.

장사를 하는 곳도 많지 않아보였고, 이태원 어딜가나 있던 여러 군것질거리를 팔던 노점상들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겨울이 되고 날이 추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살짝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아이가 민재의 팔을 꼬옥 붙들며 말했다.

“여기가 원래 이러지는 않았죠?”

“네, 경리단길도 확실히 많이 변했네요.”

“역시, 세계적 전염병 때문에 여기도 영향을 받은 거겠죠?”

“경리단길이 침체된  전염병 탓도 있겠지만... 사실 전염병이 돌기 전부터 그곳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또 다른 병이 더 원인이었어요.”

“더 큰 병이요?”

“욕심, 이란 병이죠.”

민재는 아직도 ‘임대 중’이라 써진 노랑색 플랭카드가 붙은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경리단길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자 그곳건물주들이 담합해서 임대료를 올리기 시작했죠. 장사가 잘되는 만큼 임대료를 더 내라면서요. 결국 많은 자영업자분들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경리단길을 떠나기 시작했고, 거기에 전염병 여파까지 번지면서 이곳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던 분들마저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죠.”

“장사가 잘되니까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더 많이 내라고 한 거군요?”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임대료를 올리면 건물의 가치도 함께 올라가니까, 비싼 가격에 건물을 팔아버리려는 속셈이었던 건물주도 있었을 거예요. 경리단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이곳에 건물을 사려는 사람이 제법 많아졌을 때였으니까요. 자신의 건물에 있던 임차인들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자신만 돈 벌어서 털고 나오면 된다는 심보...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덕에 지금 경리단길이 이렇게 변하게 된 거죠.”

민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직도 임대인과 입차인의 관계를 갑과 을의 관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동업자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건물에서 장사하시는 분이 매달 임대료를 충분히 감당하실 수 있어야 장사에 전념하실 수 있고, 그렇게 장사에 전념해야 장사도 잘되고 매상도 오를 것이고, 그래야 나도 매달 꼬박꼬박임대료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건물의 가치는 물론 주변의 상권 가치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되는 거지요. 단순히 임대료만 올리는 것이 건물주로서 이득을 얻을  있는 방법이 아닌데, 이 곳 경리단길에 있었던 건물주들 중에는 너무 근시안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았던 거지요.”

“건물주 입장에서는 큰돈을  수 있는 기회니까, 그렇게 했던 게 아닐까요?”

“그렇죠, 돈 때문에, 그 놈의  욕심 때문에 그렇게 했던 거겠죠. 하지만 그놈의  때문에 팔아버린  건물  아니라, 그 건물에서 장사하시던 분들의 꿈들도 같이 팔아버리는 거였어요. 남의 꿈을 짓밟고 벌어들인 돈으로 얼마나 잘 사는지... 그건 정말 두고 봐야 할 일일 거예요.”

민재가 살짝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이쿠, 샴페인 한  밖에  마셨는데 내가 취했나, 별 얘기를  하고 있네요.”

“헤헤, 괜찮아요. 오빠 얘기 듣는 거 재미있어요.”

그가 그녀의 허리를 살짝 안으며 물었다.

“아이, 춥지 않아요?”

“발목이랑 종아리만 조금 추운정도? 그래도 오빠랑 같이 있으니까 춥지 않아요.”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있는데로 갑시다. 술기운도 없어지는  같으니 집에 들어가야죠.”

“네, 그래요. 계속 이 거리 걷다가는 무언가 먹고 싶어질 거 같아요! 길가에 있는 식당들이 전부 다 맛있어 보여서 당장 뛰어들어가고 싶을 정도니까요?”

“아이, 다이어트 하느라 많이 힘들었죠? 지금까지 제일 먹고 싶었던 음식이 뭐예요?”

“음... 치킨이요~!!!”

역시, 치느님은 못참지~!

“우리 그럼... 이번 주말 치팅데이 때, 진짜 오랜만에 치킨 한 번 뜯을까요?”

“네, 좋아요! 치팅데이니까 1인 1닭으로! 저 진짜  한마리만 먹을 거예요~!”

역시 다이어트의 효과가 있었는지, 평소 혼자서 두세마리는 너끈히 해치우는 치킨을 딱  마리만 먹겠다 한다.

민재는 아이의 이런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나머지,

경리단길 위에서 그녀의 볼을 쓰다듬으며 입을 맞추었다.

추운 날씨에 손가락에 전해지는 그녀의 볼을 살짝 시원한 느낌이었지만,

키스를 나누는 그녀의 입술만은 너무나도 뜨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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