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겨울에는 집에서 꽁냥꽁냥 (3)
겨울에는 집에서 꽁냥꽁냥 (3)
민재의 드레싱룸 가운데에 있는 시계 컬렉션에 신상이 추가되었다.
민재가 가지고 있던 화이트골드에 검은색악어가죽 스트랩이 달린 바00콘스탄틴페트리머니 셀프와인딩(오토메틱 시계) 모델의 옆자리에 커플로 나란히 놓인 아이의 레드와인빛 스트랩이 달린 여성용 셀프와인딩 시계.
이렇게 두 시계를 함께 놓고 보니 굳이 손목에 차지 않고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가 좋았다.
민재는 시계 컬렉션을 정리하며 두 달 뒤 도착할 새 시계 (울트라씬 퍼페츄얼 캘린더 모델)를 위한 새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고보니 지금 그의 컬렉션에 있는 약 30여개 시계들의 가격만 놓고 보면 10억원은 너끈히 호가할 수준의 것들이었다.
바00콘스탄틴은 물론 파0필립, 브0게, 아랑00트죄네, 오00피게, 예00쿨트르, 리00밀, 로저0뷔 등 하이엔드 수준의 시계들이 그의 컬렉션 맨 앞자리들을 장식하고 있었고,
브라00링, 테00이어 등 럭셔리 등급의시계는 물론 G-Sh00k, 스마트 워치 등 일상생활이나 운동할 때 차는 시계들도 여러개 있었다.
참고로 민재는 가장 인지도가 높은 롤0스 시계는 가지고 있지 않다. 디자인이 개인 취향과 맞지 않기 때문.
몇 년 전 민재가 차고 다니는 하이엔드 시계들을 질투하던 대학시절 친구 녀석이.
“야, 너 돈 많다는 거 다 뻥이지? 어떻게 차고 다니는 시계 중에 롤0스는 하나도 없냐?”
라고 해서 민재를 벙찌게 만든 적이 있었다.
뭐, 시계 매니아나 진짜 하이엔드 브랜드가 어떤 건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저 롤0스가 세계에서 제일 비싼 시계인줄 알겠지.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봐도 나오는 얘기지만, 롤0스는 좋은 시계이긴 하지만 하이엔드, Tier 1. 안에 들지 못한다.
가장 최고급 시계로는 위에서 언급한 파0필립, 바00콘스탄틴, 브0게, 아랑00트죄네, 오00피게를 현존하는 최고의 시계 브랜드, Big 5로 꼽고,
그 다음으로 예00쿨트르, 리00밀, 로저0뷔, 블0팡 정도까지를 하이엔드 등급의 시계로 분류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최고로 비싼 시계라고 잘 못알고 있는 롤0스’는 브라00링, 오0가, 파00이 등과 함게 3단계 럭셔리 등급으로 보는데,
쉽게 말해 그 친구는 하이엔드 브랜드 시계는 물론 하이엔드 시계의 끝판왕 중의 끝판왕, Big 5 브랜드의 시계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민재더러 왜 3등급 시계는 없냐고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잘난 척하면서 놀려댄 것이다. (롤0스 보고 3류라고 깔보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롤0스도 상당히 비싸고 좋은 시계임에 틀림없다. 다만 위에 언급한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들에 비해 기술력, 예술성, 소장가치 등이 조금 떨어질 뿐이다.)
아무튼 민재는 이처럼 차보다 (어차피 어지간한 차보다 비싼 물건들이지만) 시계를 더 좋아했다.
핸드폰으로도 언제든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시대지만, 민재는 아직도 시계의 가치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도 있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시간이 곧 자원이다’ 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덕에 늘 시간을 체크하고 어떻게 배분해서 쓸 것인가 고민하는 습관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물론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자 계획을 엄수하기 위해서라도 시계는 늘 필수.
그래서 다른 어떤 물건들보다 시간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시계, 그 중에서도 장인의 손길이 한 땀 한 땀 배어 있는 기계식 시계를 무척 애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계식 시계는 유지 보수가 힘들고 시간의 정확성에서조차 디지털 시계나 스마트폰 시계에 미치지 못한다.
비싸기는 오지게 비싼데 실용성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유려하게 흐르는 시계 바늘과 내부에서 정교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 기계장치들 예술적인 움직임을 볼 때의 즐거움이란...
가격은 몇 천만원을 넘는 주제에 재깍재깍 태엽을 감아 주지 않으면 시계가 멈추는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이 맛에 기계식 시계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씻을 때와 잠 잘 때를 제외하고는 민재의손목에는 늘 시계가 채워져 있다.
군대 있을 때에는 방수가 되고 튼튼한 G-Sh00k 시계를차고 있어서 24시간 시계를 풀지 않을 때도 많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여름 햇살에 얼굴이며 팔뚝이며 새까맣게 그을렸어도 시계를 차고 있는 손목만 하얗게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로.
그만큼 민재의 시계와 시간에 대한 애착은 대단했다.
그 덕분인지 그는 시간 약속 하나는 칼이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거나 무언가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타인과, 혹은 자기 자신과 한 시간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다.
하지만 다른 이가 시간을 어기는 일에는 제법 관대한 법이다.
원래부터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 때문일까, 아니면 가지고 있는 부에서 나오는 여유 때문일까?
타인이 시간 약속에 늦는 것 때문에 화를 내거나 절대 밖으로 내색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는 오늘도 이런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는데,
아이가 주방에서 점심 식사로 뽀토푀(Pot-au-feu) 라는 맑은 스튜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
뽀토푀는 소고기와 닭고기, 소세지는 물론 당근, 양파, 샐러리 등 야채를 듬뿍 넣고 크림 소스와 함께 오래 푹 삶아 끓이는 프랑스식 요리로 그 곳 사람들이 겨울에 많이 먹는 요리인데,
아이가 처음 만들어보는 요리다보니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원래 12시에서 1시 사이 점심을 먹지만 요리가 늦어지면서 2시가 다 되도록 아직 밥을 먹지 못한 상태,
“오빠, 미안해요~ ㅠ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이가 초조한 표정으로 스튜가 든 커다란 냄비를 국자로 휘휘 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뇨, 난 괜찮으니 천천히해도 되요~!”
“오빠 배고프실텐데... 죄송해요... ㅠㅠ”
“아니에요, 별로 배 안 고파요.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되요~!”
민재는 여유롭게 그녀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지금 민재가 있는 곳은 그의 서재책상 앞,
아이의 요리가 늦어지는 동안...
그동안 못했던 풋볼매니저 게임에 완전 몰입해서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밥은 늦게 먹어도 아이가 요리하는 동안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으니 개이득!
그의 팀은 스페인 라리가의명문 FC바르셀로나.
원래 해외 축구에 관심이 많으셨던 아버지께서 해외 축구팀 중 FC바르셀로나를 가장 좋아하셨기 때문이었다.
어릴적 민재는 아버지와 함께 케이블 방송 스포츠 채널에서 중계해주던 FC바르셀로나의 경기를 즐겨보곤 했다.
당시에는 FC바르셀로나가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티키타카 전술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롸르디올라 감독 체제에서의 세련된 패스플레이보다는 바비 롭슨 감독 체제에서 호나우두(브라질의 호돈신, 호나우두 나자리오)가 미친듯한 드리블과 득점력으로 라리가를 씹어 먹던 시절과,
루이스 반갈 감독 1기 시절 클루이베르트, 피구, 히바우두, 루이스 엔리케, 데부어 형제 등과 함께 네덜란드 스타일의 선 굵은 토털 축구를 선보이던 그 때,
그리고 ‘외계인’ 호나우지뉴가 그라운드 위에서 도저히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과거의 FC 바르셀로나가 지금보다 훨씬 재미있는 축구를 했다며 푸념을 늘어놓으시곤 했다.
아버지와의 추억 때문일까, 민재는 게임을 하면 늘 FC바르셀로나를 선택하곤 했다. (메시가 있어서 고르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런데 이 게임을 하다보면 사람의 성향,
특히 팀을 경영하는자로서의 마인드와 리더십이 엿보이게 된다.
실축(실제 축구)에서나 게임에서나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성적을 올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실력이 검증된 비싼 몸값의 유명 선수들을 많이 영입해 올스타급 스쿼드를 꾸리는 것이다.
하지만 민재는 이런 방식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게임 속에서 유소년팀, 2군팀에서부터 어린 선수들을 키우고 기회를 주어 경험치와 능력치를 높여 중용하는 정책을 더 선호했다.
팀 스쿼드 대부분을 이렇게 팀에서 육성한 선수들로 꾸리고,정말 필요한 포지션에서만 외부 영입한 능력 있는 선수들로 채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급료 예산을 낭비하지 않고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다가,
정말 필요한 대형 스타를 위해 한 번에 큰 돈을 써서 영입할 여유 자금을 만들어 놓는 것,
그래서 팀의 성적 뿐 아니라 재정 상태도 튼튼하게 만들어 놓는 것,
그것이 민재가 게임 속에서 FC바르셀로나를 세계 최고의 팀으로 유지시키는 운영 전략인 것이다.
지금도 아이가 주방에서 열심히 스튜와 사투(?)를 벌이는 이 순간에도,
민재는 게임 속 자신의 팀을 위해 어떤 결정을 할지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큰 돈 들여서 제이든 산초를 영입하는 것보다는 우리 팀 유망주인 페드리나 트린캉에게 기회를 더 많이 주어 경험을 쌓는게 이득이겠지. 산초라면 나이도 어리고 하니까 이적해 와서 똥망할 가능성은 없지만, 팀내 윙 자원들이 차고도 넘치는데 굳이 비싼 돈 들여 산초같은 윙을 데려올 필요는 없을 거야. 게다가 우스만 뎀벨레 같이 치워야 할 똥들도 많은데 여기서 더 윙을 데려올 필요는...’
현실 반영이 너무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한 풋볼매니저답게, 우스만 뎀벨레는 게임 내에서도 엄청난 골칫거리였다.
다른 팀에 팔려고 해도 몸값이 비싸서 살 만한 팀도 많지 않고,
게임 내에서도 불성실한 훈련 태도에 들쭉날쭉한 경기력, 툭하면 부상당하는 유리몸인 우스만 뎀벨레의 악명이 널리 퍼졌는지 선뜻 데려가려는 팀도 없다.
그렇다고 선발기용 안하면 불평 불만 일삼고 락커룸에서 동료들을 선동질해서 팀분위기 흐트러뜨리고...
‘이런 시키 없어도 안수 파티 있으니까 그냥 돈 주고 방출해버려??? 아, 그래도... 아무리 게임이라도 사람함부로 버리면 안 되는데... 이 시키를 팔지 못하면 어떻게든 갱생이라도 시켜야 하는데...’
민재는 마우스를 이리 저리 이동시키며 게임에 골몰했다.
이렇게 간만에 집에서 게임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도 모두 (아이의 요리가 늦어져서... 란 이유도 있겠지만)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는 추운 겨울이 되면서 집 밖에 잘 나가지 않게 된 것도 한 몫 했다.
지난 어학당 여름 방학 때는 국내 여기저기로 여행도 다니고 그랬지만,
겨울은 활동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집돌이, 집순이로 만드는 계절,
민재와 아이도 대치동 건물 두 사람만의 헬스장 가는 거랑 마트 가는 거, 가끔 쇼핑하러 나가는 거 외에는 집 밖에 잘 나지 않게 되었다.
사실 아이가 한국의 겨울 날씨를 많이 힘들어하는 것도 외출을 삼가는 큰 원인이었다.
한국의 겨울은 일본의 겨울보다 훨씬 더 춥고 혹독하다.
아이가 민재의 집에 들어오기 전 혼자서 원룸 살 때에는 겨울에 정말 밖에 한 발자국도 못나가고 집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있을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은 민재의 집이 난방이 빵빵하게 잘 되서 따뜻하게 잘 지내고있지만,
운동하려고 대치동 건물이라도 한 번 다녀오면 추위에 오돌오돌 몸이 떨리는 것이 쉬 멈추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민재를 꼭 끌어안고 코타츠 이불 속으로 쏙~!
요즘에 두 사람은 거실에 놓은 코타츠에 푹 빠져 있었다.
식사도 주방 식탁이 아닌 코타츠 테이블 위로 가져와서 먹을 정도로.
“오빠~! 점심 다 되었어요~! 이제 식사하세요~!”
아이가 거실에 식사 준비를 마치고 민재를 불렀다.
민재는 살짝 아쉬운 표정으로 (남자라면 밥보다는 게임이지... 하지만 아이가 부르니까... 이건 인정한다...) 게임을 저장하고 거실로 나갔다.
코타츠 테이블 위에는 보글보글 끓는 뽀토푀 스튜와 현미로 만든 프랑스 스타일 식사용 빵 (아이의 다이어트 때문에 일반 밀가루 빵 대신 현미로 된 빵을 먹고 있는데, 프랑스 정통 빵 중에는 현미로 만든 빵을 파는 곳이 많지 않다. 이 빵은 인터넷을 보고 일부러 서래 마을까지 가서 직접 사온 빵이다.) 빵을 찍어 먹을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 피클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빠, 배 많이 고프시죠? 어서드세요~!”
아이가 국자로 민재 앞에 있는 오목한 그릇에 소고기와 야채를 듬뿍 덜어주며 말했다.
두 사람은 코타츠 이불 속으로 다리를 쏙 집어넣고 나란히 함께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야... 역시 아이가 만든 거라 정말 맛있는데요?”
“정말요? 입맛에 맞으세요?”
“네, 맛있어요! 크림소스 덕분에 상당히 색다른 맛도 나고, 아주 좋아요.”
“느끼하지는 않으시구요...? 오빠 매운 거 좋아하시는데...”
“아, 아니에요~! 저 크림 소스도 좋아하잖아요? 아이가 만들어준 크림소스 파스타나 도리아, 그라탕도 얼마나 맛있게 잘 먹었는데요?”
두 사람은 빵과 함께 스튜를 맛있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겨울이 되서 그런가, 집안이 조금 건조해진 거 같지 않아요?”
“스코시(약간)... 조금 건조하긴 해도 저거 놓고 나서는 조금 나아진 거 같아요.”
아이가 손으로 창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창가 크리스마스 트리 맞은편에는 커다란 초가집 옆에 물레방아에서 물이 흐르는 가습기가 놓여 있었다.
원래 서초구 아파트에서 쓰던 물건이었는데, 민재가 이사할 때 가지고와서 지금까지 창고에 짱박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민재의 아파트는 워낙 고층이기 때문에 창가에 있는 열 수 있는 창문은 상당히 작다. 그걸로는 환기가 어렵고 아파트 자체 공조기로 공기가 순환되는 구조이다. 그러다보니 겨울에는 확실히 건조기가 필요할 거 같아 이번 기회에 거실에 꺼내 놓게 되었다.
마스터룸에도 건조기를 하나 사서 둘까 생각했지만 차라리 침대 앞에 있는 해먹 기둥에 젖은 빨래를 옷걸이에 걸어두는 것으로 습도를 조절하기로 했다. 수건 등 건조기를바로 돌리지 않아도 되는 빨래들을 탈수만 시켜서 걸어두는 것이다.
“얏빠리(역시)... 한국의 겨울은 일본보다 춥고 건조한 거 같아요.”
“가끔 일기 예보 보면 한국 겨울 기온이 모스크바 보다 더 추울 때도 있다고도 해요.”
“헤에~? 러시아 모스크바보다도 더 춥다구요? 하긴, 폴란드나 스웨덴에서 온 어학당 친구들도 가끔 한국이 자기들 고향보다 더 추울 때가 있다고 말하는 거 들었어요.”
아이의 고향 치바현의 경우 바닷가와 가까워서 겨울이 되면 칼바람이 불곤 하지만 기온은 한국보다 조금 높고 온난 건조한 편이다. 니카타나 호쿠리쿠 등 동해쪽에 있는 지역의 경우도 강수량이 많고 폭설도 잦은 편이긴 하지만 평균 기온 자체가 낮은 편은 아니다.
한국의 추위는 일본 출신 아이에게는 아직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혹독한 것이었다.
민재가 부드럽게 푹 삶아진 소고기를 한입 크기로 찢어 아이의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
“추울 때 운동하면 열량 소모가 더 커서 다이어트 효과가 더 크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곳 추위에 적응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일 거예요. 몸도 적응 안 되었는데 무리하게 운동한다고 나갔다가는 감기 들기 쉽상이니까, 며칠 운동 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이가 민재가 입에 넣어준 소고기를 오물오물 씹고는 조금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을까요? 그동안 살 도로 찌면 어떻게 해요? 히잉~”
“운동 꾸준히 해서 기초대사량 많이 높여 놨으니까 괜찮아요. 먹는 거만 적당히 조절하면서 집에서도 조금씩 운동하면 상관없을 거에요.”
“정말요?”
“당연하죠. 그리고 추운 겨울에 단백질이나 지방을 너무 안 먹으면 면역력 떨어져서 금방 몸이 아플 수도 있으니까, 음식 먹는 거에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요.”
“혼또(정말)? 아아, 요캇타(다행이다)~!”
아이가 젓가락으로 닭다리살에 있는 뼈를 발라 살만 민재의 입에 쏘옥 넣어주며 말했다.
“그럼 운동 쉬면서 집에서 맛있는 거 먹는 김에... 우리 술도 먹어도 되요?”
“음... 그러고보니 다이어트 하고 나서 집에서 술 안 먹은지도 꽤 되었죠?”
“네!”
“그럼 우리 이따 밤에, 진짜 오랜만에 치킨에 맥주 한 잔씩 할래요?”
“네~! 너무 좋아요~!”
아이는 양손에 젓가락을 하나씩 들고 어깨춤을 신나게 추었다.
“참, 그런데 아이?”
“네?”
“혹시 아버님께서... 우리 언제 일본으로 오라고 아직 말씀 없으세요?”
어머니 린코의 도움으로, 이제 아이와 요시노부는 완전히 화해도 하고 서로 통화도 다시 나누게 되었다.
요시노부는 아이에게 일본으로 돌아오라느니, 한국인과 사귀지 말라느니 같은 말은 두 번 다시 하지 않고는 있지만,
아직 한국인 예비 사위를 받아드릴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건지, 아님 지난번 아이에게 요란을 떤 게 미안해서 그런건지,
아이가 방학이 되었는데도 아직 두 사람더러 일본으로 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그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중에... 이렇게만 말씀하신데요.”
“우리 두 사람 사이를 반대하지 않게 되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니까, 조금 더 기다리면 아버님께서도 곧 기별을 주시겠죠.”
“네, 아마 우리가 만난 지 아직 1년도 안되었으니까, 우리 둘이 어떻게 사귀나, 잘 지내나 좀 더 지켜보신 뒤에 부르실 거 같기도 해요.”
“하긴, 어른들이 보시기에 우리가 너무 서두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민재가 얇게 썬 현미빵에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살짝 찍어 아이의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
“그나저나 유키나도 종강하고 겨울 방학이겠네요? 이번에도한국 오고 싶다 하지 않아요?”
“네, 이번에도 한국가고 싶다고 그랬데요.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가 여름에도 갔는데 겨울에 또 가냐고, 이번에는 유키나 네가 직접 돈 모아서 다녀오라 그러셨데요. 그래서 지금 유키나 왕복 비행기 티켓 비용하고 여행 경비 모으려고 알바 시작했다고 하네요.”
유키나가 오면 또 아이랑 같이 걔를 데리고 돌아다녀야 하는데,
아이가 겨울 추위에 약한데 함께 돌아다니다가 감기라도 들면 어쩌나 괜히 걱정이 되었다.
“유키나도 한국 왔다가 추위 때문에 고생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네요. 차라리 내년 봄이나 여름에 오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데.”
“아, 그래서 유키나가 한국 왔을 때 제주도에 데려가 줄 수 있냐고 물어보던데요? 그나마 제주도는 남쪽에 있어서 한국 다른 지역보다 따뜻하고 관광할 것도 많을 것 같다면서요.”
“제주도요?”
민재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제주도란 말에 갑자기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주도 공항면세점으로 떠난 그녀,
시은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