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정의 구현 제대로 한 번! (2)
정의 구현 제대로 한 번! (2)
다음 날,
민재는 아이에게 날아온 성희롱 DM들을 모조리 캡처해 김 변호사에게 보내고 그와 통화를 했다.
“이게 지금까지 온 쓰레기 같은 DM 들입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계속 이런 게 올 것 같구요.”
[그럼 오는 족족 제게 보내주십시오. 그런 문자 보내는 양이 늘어날수록 피의자의 혐의와 그에 따른 형량을 가중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나루사와씨께서는 어떻게 대처하신다고 하십니까? 피의자나 인스타 등에 고소 사실을 알리신답니까?]
“아니오, 굳이 이런 일이 있었다고 먼저 공개할 팔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피의자한테 너 고소미 먹일 테니 각오해, 이러는 것도 쿨해 보이지 않구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원래 그렇게 피해자로부터 고소 사실을 알게 되는 것보다 피의자 조사 받아야 하니 경찰서로 출두하라는 전화를 받는 게 당사자에게 훨씬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될 겁니다.]
실제로 그렇다.
대체로 이런 일을 저지르는 쓰레기들은 피해자가 ‘너희들이 써놓은 글 다 캡처해서 고소할거다’라고 하는 말에 무서워하거나 주눅 들지 않는다. 오히려 고소할 테면 해봐라, 하고 비웃고 조롱하기를 멈추지 않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정작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면 태도가 싹 달라지게 된다.
그 때부터 진짜 두려움을 느끼는 거지.
좀 이해가 안되는 게,
그런 녀석들은 정말 이상하게도 피해자가 ‘너 고소할거야’ 라고 하면 믿지 않거나 오히려 고소를 부추기는 태도를 취한다.
‘해봐, 해봐, 고소한다고 하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알고?’
진짜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한 번도 고소당하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게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지 몰라서 그러는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에 해당될 수도 있는 일인지도 모르고.
그런데 정말 본인에게
“00경찰서 00과 000조사관입니다. 000씨에 대한 0000 혐의로 피의자 조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몇 월 며칠 몇 시까지 경찰서로 출두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조사에 불응하는 경우 수배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경찰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게 된 후부터는 99%의 피의자들이 거짓말처럼 태도가 돌변하게 된다.
그제서야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며 두려움에 빠지는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일로 처벌을 받게 되고 전과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과자란 꼬리표 때문에 나중에 취업과 사회생활에 악영향을 당할지 모른다는 걱정과 불안감...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것쯤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일 텐데,
진짜 고소당할 때까지 이런 걸 모르고 있다는 것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고소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피해자를 비웃으며 괴롭히는 녀석들도 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가서 불쌍한 표정 지으며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합의해주세요~ 이러면 될 줄안다.
하지만 민재는 완전 다른 상대다.
착하고 너그러운 성격인건 맞지만,
아이를 괴롭힌 상대에게는 추호도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었다.
“그럼 이 쓰레기 같은 녀석, 형량은 얼마나 받을까요?”
[일단 통신매체이용음란죄의 처벌 수준은 2년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날려져 있습니다만, 피의자가 음란 문자를 전송한 횟수나 내용 경위, 과거 동일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여부 등을 고려해 처벌 수준이 가중될 수도 있습니다.]
“그 녀석이 보낸 DM이 총 103개나 되었는데, 이러면 어느 정도 처벌을 받게 만들 수 있죠?”
[일단 벌금 최대 500만원은 꾹꾹 눌러 받게 만들 수 있구요, 만일 피의자가 이전에도 이와 같은 죄를 저지른 전과가 있는데 재범을 한 거라면 징역 선고 후 집행 유예, 죄질에 따라서는 실제 징역까지 가능하리라 봅니다. 또, 지금 보낸 거에서 추가로 계속 이런 짓을 계속 해도 마찬가지이구요.]
당연히 마음 같아서는 이런 놈 징역 사는 꼴을 반드시 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아이에게 당분간 인스타 보지 말라고 해야겠다. 대신 내가 그 녀석이 DM이나 댓글을 다는지 체크했다가 김 변호사님한테 알려드려야겠어. 그래서 계속 혐의가 쌓이고 징역 형량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야겠지.’
민재는 김 변호사에게 보낸 그 쓰레기 녀석의 DM들을 다시 한 번 주욱 훑어보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 * *
김 변호사가 열심히 고소장을 작성하고 있을 무렵,
민재는 아이에게 DM을 보낸 쓰레기 녀석의 인스타를 찾아 들어가 보았다.
이름은 적혀 있지 않고 Y2S 라는 닉네임만 적혀 있는 인스타,
사진 속 면상을 보니 어떤 동네든 하나쯤은 있을 법한 양아치 관상이다.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서른 살 초반 쯤? 일단 민재보다는 많아 보였다. 아니, 피부랑 얼굴이 삭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일단 노안에 속하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못생기고 험악하게 생긴 얼굴에 짧게 깎은 머리,
원래 까만건지 간이 좋지 않아 그런건지 한국인치고 유독 시커먼 피부,
민소매를 입고 찍은 사진들에서 그의 몸에 있는 여러 문신들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상당히 저렴하고 싼티 나는 문신에 채색을 하려다 못했는지 검은 펜선 같은 것만 찍찍 그려져 있는 허접한 그림들이 어깨와 등판에 가득한 것이 딱 동네 양아치같은 느낌이었다.
‘난 또 저번에 그 오따쿠 스토커처럼 별 볼일 없는 키보드 워리어 같은 녀석인 줄알았는데, 그래도 꼴에 가오는 잡는 놈인가 본데?’
인스타 사진들을 훑어보니 어떤 놈인지 대충 감이 왔다.
비슷한 덩치에 배 나온 문신 돼지들과 함께 어울려 술 먹고 노는 사진들,
자기 차인지 남의 차인지 모를 비싼 외제차 위에서 허세 부리는 사진들,
어딘지는 모를 클럽에서 노는 사진들하며,
구0로고가 새겨진 커다란 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마찬가지로 큼지막한 루이0통 로고가 그려진 일수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원래 K-pop 스타가 입어서 유명해졌다가 이제는 양아치들의 전용 패션으로 전락해 버린 톰00운의 옷을 완전 어울리지도 않게 입고 있는 사진들...
그런데 덩치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민재처럼 완벽한 근육질의 몸은 아니지만 배는 나오지 않은 것 같고 헬스장을 오래 다녔는지 어깨나 가슴 근육도 제법 있고, 떡대로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좀 더 살펴보니 녀석이 운동하는 사진이나 영상들도 나왔다.
헬스장에서 찍은 같잖은 포즈를 취하며 개갈 안 나는 이두, 삼두 근육을 자랑하는 사진들하며,
3대 300도 못칠 것 같은데 무거운 바벨 들고 더럽게 인상 쓰며 찍은 컨셉 사진들,
그리고,
이어서 민재의 눈길을 끄는 사진들도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하는데,
‘허, 이 새끼 봐라? 격투기도 배운 놈인가?’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사진 말고도, 주짓수 도복을 입고 찍은 사진들도 제법 많았다.
그런데 띠는 흰띠인데 도복은 파란색, 까만색, 핑크색... 아주 그냥 패셔너블하게 입고 운동하는 모양이었다.
‘주짓수 전문 체육관은 아닌 것 같고... 주짓수하고 종합격투기를 같이 가르치는 체육관에 다니는 놈인가?’
도복을 입은 사진 외에도 몸에 착 달라붙는 MMA 팬츠와 래쉬가드를 입고 샌드백을 치거나 스파링 (인지 그냥 파트너십 기술 훈련인지 알 수 없는) 같은 걸 하는 사진들이 주욱 이어졌다.
그리고 중간에 동영상도 하나 나오는데, MMA용 오픈 핑커 글러브를 끼고 코치로 보이는 사람과 미트를 치는 장면이었다.
민재는 동영상 소리를 켜 보았다.
팡! 팡!
미트를 칠 때마다 나는 타격음이 제법 크고 날카로웠다.
때릴 때 임팩트도 있는 것이 분명 힘도 셀 것 같았다.
하지만 민재도 아마추어 전적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상위 레벨이었던 선수 출신,
상대가 미트 치고 훈련하는 것만 봐도 그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
‘이 새끼... 제대로 배운 놈이 아닌데?’
실제로 미트 치는 자세가 살짝 엉성했다.
풋워크를 할 때 스탠스가 엉망이라몸의 균형이 쉽게 무너졌고,
펀치를 내지른 주먹이 가드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어깨 밑으로 뚝, 떨어진다던지,
킥을 찰 때 발목의 회전은 고사하고 허리와 골반의 회전도 없이 발만 내지른다던지,
힘은 세지만 암만 봐도 선수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격투기보다 헬스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몸이 몹시 둔하고 유연하지 못해 보였다.
미트를 때릴 때 힘은 상당히 강해 보이지만 상당히 느리고 심지어 어설퍼 보이기까지 하고,
격투기 수련은 오래 한 것 같아 보이지만 스파링이나 실제 경기 출전 경험은 없는 것 같았다.
이런 걸 어떻게 아냐면,
보통 시합 출전 경험이 있는 선출들은 코치와 미트를 치는 미트웍 훈련을 하는 중에도 부단히 풋워크를 하고 헤드 무빙(머리를 움직이는 것)을 하며 상대 공격에 대비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런 모습이 하나도 없다.
미트를 치는 1분 정도의 짧은 영상이긴하지만, 이 녀석은 미트를 잡아주는 코치와의 거리 유지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바싹 붙어서 강하게 치고 휘두르는 것만 하고 있었다.
당연히 풋워크나 헤드무빙을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수련생 수준인 놈이네. 꼭 이런 놈들이 운동 좀 했다고 깝치고 약한 사람들 괴롭히기나 하지.’
민재는 이걸보고 더욱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운동조금 한 동네 양아치 같은 녀석이 감히 아이를 건드려?
그것도 성희롱을 해?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붙잡아와 링 위에 세우고 참교육을 해주고 싶었다.
‘관장님께 부탁하면 이런 놈은 바로 찾아서 잡아올 수 있... 아...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러면 안 되지...’
물론 강운예 관장과 그가 데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태권소녀 기유민’을 본 독자라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그런 일은 하면 안 되는 일이다. 엄연히 불법이니까 말이다.
잡아오면납치고, 억지로 링위에 세우면 협박과 강요다.
또, 아무리 쌍방이 합의한 상황이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든지 폭행죄가 성립될 수있지 않나?
‘일단 김 변호사님이 고소장 접수하고 경찰로부터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후우~ 일단 참자, 참아...!’
내 여자를 건드렸다는 생각에, 민재는 자신이 모욕을 당한 것보다더 큰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 * *
저번에 오따쿠 스토커를 고소할 때도 그러더니만,
역시 이번에도 고소장이 접수된 후 해결이 날 때까지 또 시일이 소요될 모양이었다,
보통 이런 일은 담당 형사가 배정되기까지 몇 주, 피해자 조사와 피의자 조사가 진행되기까지 또 몇 주, 마지막으로 검찰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지 말지 결정하는데 까지도 또 몇 주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경찰에 쌓인 고소 건수가 한 두건이 아닐 테니, 이건 민재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경찰 고소 과정에 대한 일은 김 변호사에게 일임하고,
민재는 아이와 함께 즐거운 연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도 당분간 인스타나 유튜브 댓글 같은 건 일체 보지 않고 마음을 다 잡으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고 느꼈을 때,
민재는 그제서야 아이에게 내년 강운예 관장이 주최하는 아마추어 대회에 참여할 거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아이가 몹시 걱정하면서 대회 나가지 말라고 하면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했는데,
이게 웬걸,
“아라? 정말요? 오빠, 잘 생각하셨어요. 저도 오빠 경기하는 거 한번쯤은 직접 보고 싶었는데! 오빠, 너무 멋있어요!”
라고 좋아하는 게 아닌가?
“아... 고마워요... 근데 걱정은 안 되요...? 나 시합 나갔다가 다칠 수도 있는데...?”
“에이~ 오빠 실력에 다치기나 하시겠어요? 다치면 오빠 상대가 다치겠지! 상대가 누구든 그냥 다 이길 거 같은데?”
아이 얘는 민재의 실력을 완전히 신뢰하는가 보다.
하긴, 안 된다고 반대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제가 그럼 오빠 대회 준비하는 거 도와드릴게요! 대회 나가는 거니까 오빠 감량 들어가실거죠? 제가 다이어트 식단도 만들어드리고 대치동 건물에서 훈련하는 것도 도와드릴게요!”
“하하, 고마워요, 아이. 하지만 훈련은 주로 관장님네 체육관 가서 할 거예요. 대치동 건물에서는 웨이트나 개인 훈련 위주로 할 거구요.”
“그럼 제가 관장님네 체육관에도 따라 가서 도울게요!”
“어떤 걸 도와주고 싶은데요?”
“웅... 오빠 샌드백 칠 때 뒤에서 안 흔들리게 잡아줄게요!”
그것도 필요한 도움이긴 한데, 민재 타격 한 방이면 그냥 날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튼 이렇게라도 도와주려는 그녀의 모습에,
그리고 Y2S라는 놈 때문에 잠시 잃었던 웃음을 되찾은그녀의 모습에 민재는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