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술, 담배, 마약
Chapter.3-8 술, 담배, 마약(8)
도로를 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어서일까, 금방 협회에 도착했다. 운전해준사람들은 우리를 주차장 입구에 내려준 후 정비를 위해 다른 구역으로 이동했다.
사무실로 들어갔을 때, 다른 사람은 없고 유연만이 핸드폰을 만지면서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그는 우리가 들어오자 일어나 소파 한쪽으로 이동했다. 테이블 위에는 도시락이 4세트 올라와 있었다.
“오셨어요?”
“응, 오, 진짜로 사 왔네? 고마워.”
레이나가 미리 연락해뒀었나 보다.
“뭐, 저야 제가 먹을 거 사는 김에 같이 포장해서 왔죠.”
“그럼 전 화장실만 잠시 다녀올게요.”
혜지는 그렇게 안으로 들어갔고, 레이나와 나는 소파에 앉았다. 으, 나도 좀 씻고 싶은데…. 비로 인해 속옷까지 다 젖을 정도였으니까 옷도 갈아입고 싶었다. 다 말랐더라도 찝찝하다구…. 레이나는 마법소녀 복으로 갈아입었던지라 젖은 것 하나 없이 말끔했다. 그녀는 시선을 눈치챘는지 말을 꺼냈다.
“생각해보니까, 옷 같은 것도좀 옮겨놔야겠네. 조금 있다 올라갈 거니까, 혜지 옷을 빌릴 필요는 없고, 일단 손부터 씻고 오렴.”
“전 상관없지 않을까요?”
“원래 뭐 먹을 때 손 닦는 건 예의야.”
“네에….”
화장실은 혜지가 쓰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샤워실로 가서 손을 간단히 씻고 왔다. 그런데, 레이나는? 금방 손을 씻고 나와서 물었다. 설마 말해놓고 자기만 빠진 건 아니겠지?
“언니는요?”
“난 주방에서 씻고 왔지. 자 물 좀 마셔.”
조용히 컵을 내밀어 유리병에 담긴 물을 받았다. 익숙한 생김새, 음료수병을 재활용했구나. 이어서 혜지도 왔고, 다 같이 포장을 뜯은 후 먹기 시작했다.
“자, 먹자.”
종이로 된 도시락 상자 속에는 종이에 기름종이를 덧댄 후 칸을 나눠 양념이 번지거나 물드는 것을 막고 있었다. 고슬고슬한 흰 쌀밥과 돈가스가 메인이었고, 제육볶음 약간과 볶음 김치, 정체를 알 수 없는 버섯 무침과 계란 장조림이 사이드 메뉴로 올라가 있었다. 해산물 빼고 다 들어간, 도시락이라고 보기에는 다양한 구성이었다.
서툴게 젓가락을 집어 밥을 먹었다. 숟가락은 없나? 아 플라스틱 숟가락이 없지 참. 아직도 이런 점은 어색했다. 플라스틱 빨대나 컵 같은 것들이 없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불편함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유리 너는 젓가락질도 연습해야겠다. 유연이 너는 먹을 때는 핸드폰 좀 내려놓고.”
“아직도 어색한걸요.”
젓가락을 쥐어본 적이 너무 오래되어서 본능적으로 쥐고 있을 뿐이었기에, 난 그렇게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유연은….
“어, 잠시만요. 이것만 깨고요.”
바로 옆에서 붙들려서 고통받고 있었다. 게임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으악! 악! 아파요!”
역시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물리적인 힘으로 진압당했다. 어라?
“혜지 언니, 그건 뭐예요?”
혼자서 물이 아닌 다른 것을 마시고 있었다. 갈색 유리병을 꺼내 놓고 입을 대고 마시고 있었는데, 상표가 가려지는 각도라 뭔지 안보였다.
“아, 이거? 병맥주. 너도 마실래?”
“누나 또 반주해요?”
“왜, 이게어때서. 너도 마실래?”
“전 이따 저녁에 방송해야 해서 사양할게요.”
굳이 설거지거릴 늘릴 필요는 없으니 컵에 있던 물을 다 마신 후 컵을 내밀었다.
“전 주세요.”
“오키, 잔을 살짝 기울여, 맥주는 그렇게 기울여서 받아야 해.”
“네에….”
황금빛 액체가 유리컵 안을 채우고, 보글보글 공기 방울이 올라왔다.
“언니도 드실래요?”
“응? 아니, 난 됐어. 잠깐 위에 올라가 봐야 해서.”
“네, 유리야. 짠 하자 짠.”
“넹.”
짠하고 유리컵이 부딪히며 맑은소리를 냈다. 나와 혜지는 도시락을 안주로 해서 맥주를 연달아 마셨다. 마저도시락을 먹고 나서 언니를 잡고 물었다.
“저, 옷 갈아입고 싶어요.”
“아, 맞아. 자꾸 까먹네. 미안, 미안. 같이 가자 25층까지 같이 가줄게”
“넹.”
“그럼 우린 먼저 가본다?”
“네, 쉬세요. 저도 샤워하고 일찍 잘 거예요.”
“응, 내일 보자.”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한 후 레이나를 따라갔다.
“난 5층 들렀다 갈 거니까, 25층에서 내려서 내 집으로 가렴. 갈 수 있지?”
“넵.”
25층에서 내린 다음 밖으로 발을 디뎠다. 그러고 보니 혼자서 가는 건 처음이구나, 겨우 수십 미터의 거리가 멀어 보였다. 혼자 다녀서일까? 다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뭐라도 사갈까? 아니야. 딱히 어디 들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심신을 안정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가방을 꼭 쥐고 사방의 반응을 살피며 걸어가 겨우 구름다리에 닿았다.
출입 카드를 찍고 다리에 진입한 이후에야 겨우 한숨돌릴 수 있었다.
이미 친해진 사람과 같이 있을 때와 혼자 남았을 때의 느낌이 너무 달랐다. 가방에서 꺼낸 담배를 물고, 천천히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탁자 위에 앉아 있던 강아지가 말을 걸었다. 레이나랑 같이 왔었을 땐 빈 탁자였었는데?
“여기는 금연이에요.”
“앗! 안 필게요. 그냥 뭐라도 물고 싶었어요.”
“그럼 이거라도 물고 있을래요?”
강아지는 꼬리로 서랍을 열고 열심히 발짓(?)하더니 사탕을 하나 꺼내서 내게 줬다. 종이로 감싸진 막대사탕이었다.
“아마도 유통기한은 안 지났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포장지째 입에 사탕을 넣었다. 포장지? 그건 먹는 거예요. 작은 유리에게 걸리면 사르르 녹는답니다.
엘리베이터 문 안에 선 나는 손목을 가져다 댔다. 위잉거리는 소리와 함께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려 입구에 잠시 주저앉아 있었다.
일단은 씻고 싶어….
아직 개인 옷장이 없어 사둔 채 그대로 종이 가방 안에 들어있는 옷을 꺼낸 다음 화장실 앞에 두었다. 머리띠와 옷을 벗고, 옷 바구니에 넣어 둔 채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만 초커는 제거하는 법을 몰라서 놔뒀다. 아무리 만져 봐도 연결고리가 없는데 어떻게 내 목에 채운 걸까? 그래도 꼬리가 사라졌다는 점에 만족하며,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곰곰이 생각해본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이제 밖으로 나온 지 2일 차, 아니 3일 차인가? 보통 이런 경우엔 적응할 기간을 넉넉히 주지 않던가? 사고가 나더라도 2주는 누워 있기 마련인데… 하다못해 하루밖에 쉬지 않았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통해 무언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었다.
햇님달님에서도 그렇지 않던가? 하늘에서 오누이를 살리기 위해동아줄이 내려왔다. 동화에서는 줄을 타고 올라왔지만, 실상은 거기에목을 매어 하늘로 올라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늘나라란, 그런 곳이니까. 이유 없는 호의는 없었다. 호랑이는 죽은 오누이와 함께 썩은 시체를 봤겠지….
음….
아니면 내가 모르는, 혹은 알 필요가 없는다른 일이라도 벌어지고 있는 건가? 과연 레이나는 믿을만한 사람이 맞는 건가? 나는 누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나는 바뀐 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적어도 확실한 건 레이나는 내게 아직 손해될만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행위는… 서로 좋은 거니까 그와는다른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야트막한 신뢰의 끈과 끈적한 육체적 관계가 있으니 정이라도 붙으면 비교적 괜찮지 않을까? 20 평생 하지 않던 생각을 하려고 했더니 머리가 아파 왔다.
욕조 끄트머리에 앉아 샤워기를 틀었다. 따뜻한 물을 맞으며 생각했다. 고민 따위는 집어치우고 그냥 생각하지 말고 살까? 어차피 내게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터다. 역시 고민은 내게 맞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뒤집어엎으면 되겠지. 어쨌든 지금은 잘 대해주니까. 그걸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당하기만 하는 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음부에서 점액을 내어 욕조 바닥으로 흘렸다. 물과 섞이지 않고, 샤워기의 물줄기를 통통 튕겨내며 마치젤리마냥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위에서 한 가닥의 촉수를 일으켰다. 내 의지에 따라 살랑거리며 움직이는 촉수. 입을 벌리고 뻐끔거리며 물을 촉수 안에 채워갔다. 그리고 물총처럼 벽에 살짝 쏘아보았다. 찍! 이걸로 잘만 하면 역으로 박아버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계속 멍하니 물만 틀어놓고 있었음을 깨닫고, 샴푸를 두세 번 펌프질해 듬뿍 머리에 묻혔다. 생각은 실컷 했다. 상상도 많이 했다. 10년 동안 그 짓을 하며 내가 깨달은 건 단 하나, 생각만 해선 바뀌지 않는다는 것. 이제는 움직일 수 있으니 알아가며 보면 될 것이다.
똑똑.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머리에 거품을 내고 있는데, 욕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솟아 올렸던 촉수를 붕괴시켰다.
“누…, 누구세요?!”
“나야. 씻고 있었네?”
“네, 네에….”
맨몸인 채로 들어온 레이나는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가까이 다가와 등 뒤에서 감싸 안으며 내 표정을 살폈다.
“표정이 이상한데?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아뇨, 전혀요!”
“흐응… 그렇다고 해줄게.”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뭔가 불안한데…? 머리에 여전히 손을 올린채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리 오렴, 안 잡아먹어.”
“네….”
어차피 욕실이라 물러날 곳도 없었다. 체념한 채 몸을 가까이 대었다. 분명히 성적인 접촉을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녀는 손을 내 머리에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머리는 그렇게 감으면 안 돼. 그러면 두피 부분에만 집중되잖니, 살살 비벼서 머리카락 전체에 골고루 거품이 묻어야지.”
부드러운 손길이 내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아으….”
“뭐야, 기대했어?”
“...”
난 얼굴을 붉힌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품으로 자위하는 건 별로 안 좋아. 질 내부는 전용 청결제를 써야 하거든. 뭐, 너한테는 상관없겠다.”
“네? 아닛…!”
그녀는 욕조 바닥에 쌓인 점액을 보고 오해한 듯 나를 감싸 안고 손을 내 음부로 가까이 가져가 장난을 쳤다. 옅은 온기를 느끼면서 달아오른 숨을 내쉬고 있는데, 그녀가 익숙한 것을 다시 가지고 왔다.
“자, 이것도 빼먹지 않고 해야지. 활용은 어느 정도 되니까, 그냥 넣고만있자.”
“아니….”
난 늘어난 구슬을 보고 울상을 지었으나, 그녀는 기쁜 듯이 추가로 집어넣을 뿐이었다.
“자, 어… 딜도… 망가… 니!”
“저기 단어 사이의 공백이 이상하지 않아요…?”
“국어 안 배웠니? 안 배웠구나! 참. 중의법이야 중의법.”
중의법은 그런데 쓰이는 게 아니었던 거 같은데? 하지만 의문을 가지기에는 그녀의 손길이 이미 내 음부에 닿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음부와는 다르게 여기는 전혀 개발되어 있지 않았잖니? 천천히 진행하고 있어.”
“보통은 개발을 아예 안 하지않을까요?”
“아냐, 남자 중에서도 하는 사람이 있는걸?”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게이들인가?
“원래 구멍이란 게 있으면 넣고 싶어지는 게 자지 달린 사람들의 심리란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못하는 거지.”
그녀의 손길은 내 손길을 가볍게 밀어내며 음부 위를 매만졌다.
“어때, 할래?”
나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