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균열과 사냥 (48/66)



〈 48화 〉균열과 사냥

Chapter.6-7 균열과 사냥(7)

쿠르릉! 콰지직!

불타 쓰러지는 나무들 사이로 접근해 오는 차들이 언덕 저 아래로 보였다. 잡초와 수풀이 우거진 옛 도로의 흔적을 따라 잔가지와 잡초들을 밟고 오는 차들. 불은 생각보다 크게 번지지 않고 브레스에 직격당한 벚나무들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점막의 가장자리로 가서 맨발로 바닥의 흙을 치워본다. 제대로 관리된 적이 없는 도로였지만, 아스팔트는 아직도 남아있어 식물이 자라는 것을 막고 있었기에, 균열 사이로 잡초나 작은 나무들 정도만 조금 자라 있었다. 이전에 내놓은 도로들을 이용해서 접근하는 건가. 호숫가다 보니 호수를 둘러싼 도로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

매캐한 연기가 하늘을 메운다. 연기를 따라 채, 지지 못한 벚꽃잎들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아차, 조심해야지. 우비가 닿아서 녹아버릴지도 몰라.

담배 피우다 산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산불에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하지만 담배는 레이나에게 있는걸…. 차에서 내려 여기까지 오려면 5분은 걸릴  같으니, 뒤로 돌아 레이나가 싸우는 광경을 본다. 괴물은 하늘을 나는 능력은 없는 듯, 고개를 들어 사방으로 불을 뿜고 있었다. 그녀는 유유히 날아다니며 회피하고 시선을 끌고 있다.

참다못한 괴물은 몸을 돌리고 외각의 창살로 돌진한다. 숲이나 땅으로 숨고자 하는 속셈. 하지만,

쾅!

창살을 뚫을 수는 없었다. 내 팔뚝 정도도  되는 얇은 촉수지만, 강도는  세상 어느 것이 와도 뚫을  없다. 혹시 의외의 점프 능력으로 뛰어넘을까 싶어 창살의 높이를  더 높인다. 땅굴을 팔 수도 없고, 엄폐할 곳도 없다.

쾅! 쾅!

몇 번 발로 내리치던 녀석은 포기한 채 위에서 구경하고 있는 레이나에게로 다가간다. 그녀는 유유자적하게 공중을 맴돌면서 비웃고 있었다. 그녀라면 편하게 잡을 수 있을 텐데, 애써 굳이 잡지 않는 이유가 뭘까? 그러고 보면 마법소녀가 되는 것에도 딱히 이유가 없다고 했었지. 선택받은 것이라고 했었다. 세계평화를 위한 또는 민간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괴물을 잡는 마법소녀는 만화나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나?

“네가 협회에 새로 들어온 신입인가?”

“에? 안녕하세요?”

어느새 금속 재질의 중갑을 입은 남자가 뒤에 있었다. 중세시대의 기사가 입는 것처럼 생긴 갑옷에 오토바이 헬멧을 뒤집어쓴 모양새가 독특했다. 무기는… 양손 망치인가? 그는 가까이 다가와 점막을 살펴봤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발자국도, 그 소리도 남지 않았다.

“이건…. 튼튼하군.”

창살을 쥐고 부러뜨릴 듯 힘을 주었지만 당연하게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들은 바에 따르면 네가 이유리겠군, 반갑다.”

무언가 어색한, 무뚝뚝한 말투. 원래 이런 사람인가? 헬멧의 유리로 보이는 부분은 까맣게 선텐이 되어있어 표정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저씨는 누군데요?”

오는 말이 곱지 않으니 당연히 가는 말도 나쁠 수밖에,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이, 그렇게 딱딱하게 말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대장님. 안녕?”

이 사람은 또 뭔가? 그래도 사탕을 내밀었기에 봐주기로 했다. 역시 오는 게 있어야 좋은 법이다. 가는건 없냐고? 이런 곳에서 공격 안 하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이야, 거의 콜로세움인데, 이거 얼마나 지속할 수 있어요? 꼬마 아가씨?”

이목구비가 뚜렷한 큰 키, 눈이 작아 눈동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꼬마 아가씨라니, 이 사람도 나이가 좀 있나 보다. 그 외에 특이점이라면 머리를 길게 기르고, 무선 헤드폰을 쓰고 있었다. 전투에 방해되지 않나? 이제 보니 둘  복장에 같은 마크를 박고 있었다. 붉은 심장을 가르는 검은 화살의 모양새, 밸런타인데이에나 어울릴 것 같은데.

“우리 밸런타인 길드….”

“풉!”

아, 순간적으로 뿜어버렸다.

“후, 그러니까 길드 명을 바꾸자고 했잖습니까.”

“안 돼, 영국 전차명중에 남은 게 그거밖에 없었어.”

“에휴…. 저기 미국이나 독일 전차도 좋은 게 많은데 하필…. 저희 길장님이 이래도 좀 이해해 주세요. 저는 작전참모 서진우라고 합니다. 저기 헬멧 쓰고 있는 사람은 길드장이신 김갑수옹.”

“옹이라니, 난 아직 한참이야.”

둘이 한참을 티격태격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오고 나서야 다툼을 멈췄다. 둘이  길을 통해 완전 무장을 한 사람들이줄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걔중 앞에서 오고 있던 견장을 달고 있는 사람이 여기로 다가오고, 나머지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다들 투구나 헬멧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어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없었다.

“휴우, 이런 전장이라니, 역시 돈을 들인 보람이 있어. 안 그래 1팀장?”

“나름 신병들 그냥 내보내기도 불안하니까요. 레이드에 협회의 지원을 받아서 신병 사상자도 줄이고, 이렇게 경험치도 쌓으면 좋죠. 뭣하냐? 준비해!”

아니, 이거 돈 받고 나가는 거였어?! 레이나는 왜 나에겐 말 한마디 없었지?!

툭.

물고 있던 사탕이 바닥에 떨어졌다가 점막에 녹아 사라졌다.

“아차, 잊고 있었네. 아가씨, 이거 언제까지 지속돼요?”

참모라고 했던가? 이름은 아까 들었는데 까먹었다. 어떻게 한 번만 듣고 바로 외울 수가 있어? 대충 실눈이라고 하자. 실눈이 말을 걸어왔다.

“음, 딱히 시간을 재 본 적은 없는데, 적어도 제가 접촉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계속돼요.”

“고마워요. 모두 장비 점검 후 지정된 위치로 이동한다.”

사탕을 받아먹기 좋은 길드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몸을 돌려 레이나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괴물과 그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귀찮아서, 괴물은 공격수단이 없어서 저렇게 된 것 같았다.

분명히 급박한 것처럼 얘기해 놓고서는, 그리 위급한 게 아니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 거래가 있었을까? 다시 뒤를 돌아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서는 대부분 금속이나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전체 인원은 대략 30명 정도. 장비를 보면 창과 칼, 방패, 그리고 활 등 냉병기가 대부분이었고, 극히 일부만이 총기류를 들고 있었다. 아, 권총은 하나씩 다들 차고 있구나.

활은 양궁할 때를 생각나게 하는 듯 정체 모를 각종 장비가 부착되어 있었다. 총을 잘 안 쓰는 것은 비용 때문인가? 화살은 재활용할 수 있지만, 총알은 그것마저도 소모품이기 때문에? 아니면 소음?

귀에 꽂은 무선 이어폰으로 제각각 소통하면서 자리를 잡아나간다. 길드장과 참모만 정면에서 들어가고 나머지는 점막 바깥에서부터 초승달처럼 둘러싸며 한 번에 들어갈 모양. 그러고 보면 저기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특별히 다른 냄새가 나지 않았다. 금속이 가지고 있는 쇳내라던가 몸이나 화장을 통한 냄새가 전혀 없었다. 기습을 하기 위해 특수한 약품으로 냄새를 제거하여 후각을 교란하는 건가?

점막 밖의 숲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3방향에서 동시에 쫓아 들어갔다. 엄폐물을 제공해줄까 생각도 해 봤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같았다. 죽으면 죽는 거고, 레이나나 기다리면서 구경하지 뭐.

거대한 전투 망치를  길드장이 선두에 서고, 팀장들이 엄호한다. 저 사람들도 긴장감이 그렇게 있어 보이진 않네, 도리어 문제가 되는 것들은 팀원들일까? 여기서도 보일 정도로 손을 덜덜 떠는 사람이   보였다. 머리를맞으며 구박당하는 모습. 저렇게 덜떨어져서야 오래 살기 힘들 것이다.

작전참모라던 사람은 대구경 저격총을 들고, 길드원들의 배치를 신경 써서 하고 있었다. 무선 헤드셋은 저걸 위한 거였구나. 다들 통신장비를 끼고 있는 듯했다.

“4팀은 밖에서 대기하고 엄호 준비. 1에서부터 3번 팀까지는 1개 조만 전장에 진입한다. 나머지는 대기하다가 길드장님의 신호에 맞춰서 추가로 진입. 등급은 8등급. 공격력은 7, 방어력은 9등급이다. 영리하고 덩치에 맞지 않게 재빠른 녀석이다. 독이 있을지도 모르니 가시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고, 입에서 브레스를 쏜다는  확인되었다. 원딜러들은  맞출 자신이 없다면 입 벌릴 때를 노려. 나머지는 다리부터 차근차근 공략해 나간다. 휘둘러지는 꼬리는 방패병이 마크하도록. 괴물의 이름은 갑각룡으로 지정되었다.”

참모는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며 전장을 조율한다. 옆에는 어느새 올라온 또 다른 사람이 촬영 장비를 들고 전투 현장을 찍고 있었다.

위잉-

작은 헬리콥터 같은 것(드론)이 하늘을 날며 위에서부터도 촬영한다. 레이나는 그것과 교대하듯 여기로 날아와  옆에 내려앉았다.

“고생했어.”

“답답한  빼면 별거 아녔어요.”

서로의 공격이 전혀 통하질 않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뭐, 능력의 특성 때문이니까 어쩔  없지. 유리 네 능력은 대형 괴물보다는 소형에 더  어울리니까. 자, 핸드폰이랑 담배. 이거라도 피고 있어.”

“네에...”

레이나는 친절하게도 내 입에다 담배를 3개 물려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는 왜 피우는 걸까? 나야 독소를 먹기 위해서 한다지만…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면으로 접근한 길드장의 망치질을 시작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격을 휘감은 망치가 갑각룡의 머리를 때려간다. 녀석은 머리를 들어 가볍게 피하면서 거대한 앞발을 휘둘러 중갑을 부숴버릴 내리쳤지만, 잽싸게 옆으로 구르며 회피했다. 어느새 좌우로 창을 든 사람이 각각 3명씩 포진해 찌를  말 듯 견제하고 있다. 창병은 움직임을 억제하고, 검병은 다리를 노려 베어간다.

견장을 차고 있는 3명의 팀장과 길드장이 정면에서 갑각룡의 머리를 노리고, 때로는 휘두르는 앞발을 막았다. 숙련된 솜씨로 공격을 흘려 나가면서 다리에 상처를 누적시킨다. 화가 잔뜩 난 갑각룡이 꼬리를 휘둘러 사람들을 쓸어내려 하지만, 거대한 방패가 양쪽에서 버티며 꼬리의 움직임을 억제한다.

쾅! 쾅!

크워어어어어!

충돌하면서 나는 소음, 갑각룡이 내는 괴성이 숲속을 울려 퍼졌다. 마구잡이로 난동을 부리는 괴물과 대조되게, 길드원들은 침착하게 공격에 대응하면서 상처를 누적시켜 나간다. 과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일까. 충돌음 외에는 말소리라던지 다른 소리가 나지 않는다. 쓸데없이 소음을 발생시키지 않아서 다른 곳에 있는 괴물에게 최대한 시선을  끌기 위한 모습.

탕-!

바로 옆에서 드디어 첫 번째 총소리가 났다. 갑각룡이 브레스를 쏘려고 하자 실눈이 입안에 총알을 정확히 꽂아 넣었다. 목구멍이 뚫리며 총알이 입안에 박혔는데도 여전히 발광하듯 움직인다. 상처에서 나온 피비린내가 전장을 가득 채웠다.

전투를 감상하던 레이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는 전투는 안중에도 없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언니, 우리 어떻게 집에 가요?”

“응? 차가 올 거야. 저 사람들이 오면서 이쪽 길을 다 뚫어준 덕분에 편하게 움직일 수 있어.”

“아하.”

구름이 짙게  것처럼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비행선이 천천히 하강하며 생긴 그림자가 여기를 드리우고 있었다. 일반적인 차량으론 가져가기 힘드니까 비행선을 이용해서 옮기는 걸까? 어느새 괴물은 다리가 해체된 채 죽기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고 허무하게 끝난 전투. 이렇게까지 준비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다. 우리가 올 이유는 없었던 게 아닐까?

쿵! 하고 갑각룡의 머리가 바닥을 찧으며 굉음을 냈다.

“죽었나 보네, 우리도 차로 가자. 점막은 이제 회수하고.”

“네, 언니.”

테두리에서부터 천천히 점막을 흡수해나간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제법 빠르게 회수되고 있는 점막. 점막을 깔면서 장애물들을 흡수했었기 때문에, 황폐해진 대지가 드러난다. 흙과 돌밖에 남지 않은 넓은 공터 위로 갑각룡의 시체가 피를 흘리며 누워있었다. 점막을 통해 몰래 맛본 공룡의 피는, 뜨겁고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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