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가의 고아였던 모양이니 글을 모른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중에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서라도 글은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욕실과 부엌을 사용하는 법도 가르쳐야했다.
지금까지야 홀로 마법을 이용해서 별 문제 없었지만 아이린이 온 이상 그녀도 마법을 익혀야했다.
물론 태생이 서큐버스인만큼 마법을 익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두 세 달 정도면 모두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마법은 검과 달리 재능이 무척 중요했다.
노력을 한다고 보이지 않는 마나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마나를 보고, 다룰 수 있는 마법사는 무척이나 귀한 대접을 받았다.
노예 경매에서 구경꾼들이 아이린의 날개를 보지 못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이런 변경의 영지에서 아이린의 날개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백작의 전속 마법사 정도 뿐이리라.
포션의 판매 목록을 확인하고는 빈 재고를 채우기 위해 창고에서 재료를 꺼냈왔다.
프라미아 꽃잎과 트롤의 피. 가장 기본적인 하급 포션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재료였다.
다른 포션 상점에서는 트롤의 피가 비싸기 때문인지 프라미아 꽃잎을 물에 희석시켜 싸구려 포션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프라미아 꽃잎을 나무 봉으로 잘게 빻으니 연한 분홍빛 가루가 되었다.
병에 담아둔 트롤의 피 안에 가루를 털어넣자 붉은 색을 띠던 병이 천천히 옅은 분홍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완전히 분홍색이 된 병을 들고 나는 가볍게 중얼거렸다.
"일곱 번째 별이 떴다 지니 밤하늘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영창이 끝나자 흰색 마법진이 유리병에 새겨지더니 잠시 빛을 내고는 흩어져 버렸다. 방금 사용한 마법은 '수면'을 부가효과로 추가시키는 마법이었다.
지난번에 아이린이 몸에 발랐던 것처럼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포션을 복용한 경우, 다소 끔찍한 고통을 유발하기에 차라리 수면 상태에 빠져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물론 하는 김에 '신체 재생과 체력 회복' 효과도 추가로 부여한 것은 덤이었다. 내가 남들보다 비싼 가격에 포션을 팔면서도 상점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마법 부여.
방금 전에 걸었던 '수면' 마법과 '리커버리' 마법 두 개를 동시에 걸어놓은만큼 마나가 잔뜩 깃든 포션의 효과는 훨씬 좋을 수 밖에 없었다.
가격은 조금 비싸더라도 후유증도, 사기도 없었다.
다른 가게에서 싸구려 포션을 샀다가 제대로 된 효과도 보지 못하는 것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내 가게를 찾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지 가게를 찾는 단골 모험가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몇 번인가 다른 가게에서 내 포션을 사간 적도 있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그들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트롤의 피를 섞었다는 것 정도뿐일 테니까.
게다가 최근에는 단순히 상처 회복 포션 뿐만 아니라 피부와 컨디션을 조절 할 수도 있는 포션도 만들고 있었다.
여드름이나 뾰루지가 난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만드는 족족 죄다 팔려버려서 지금은 재고가 아예 없는 상태였다.
컨디션 조절 포션의 경우에는 라벤더 잎과 트롤의 피를 옅게 섞고 '안정화' 마법을 부여해서 만든 포션으로 긴장감 완화, 체력 일시적 증가의 효과가 붙어 있었다.
다른 싸구려 포션들보다야 비쌌지만 평범한 마을 사람들도 부담없이 살 수 있는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기에 포션을 사가면서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싸게 팔면 뭐 남는게 있긴 해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곤 했다.
'남는게 있을리가.'
평균적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트롤의 피만 해도 포션 한 병 크기에 담긴 양이면 하급 포션 세 개 값이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것을 알기에 다른 포션 가게들도 트롤의 피를 재료로 사용하는 것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야 다른 방법으로 원가를 절감하니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러고보니 주말에 하루 정도는 가게를 비워야하는데 아이린이 집을 잘 볼 수 있을지 걱정됐다. 혹시라도 창고에 들어가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다가 여차하면 함께 데려가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약초를 구분하는 법을 데려가서 익혀두면 나중에 가게를 운영하는데도 도움이 되리라. 방금 막 만들어낸 포션병을 빈 진열장에 올려 두었다.
'각성제는 만들어봤자 안팔릴 것 같고.'
일시적으로 힘을 증가시키거나 마력을 증가시키는 포션을 '각성제'라고 부르는데 그런 포션의 경우 제국의 수도에 있는 연금술사들에게 가서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재료가 까다롭고 제작하는 과정도 복잡해 가격이 어지간한 집 한 채와 비슷했기에 매물도 없고 잘 팔리지도 않는 포션이었다.
물론 만들려면 만들 수야 있지만 정작 살 사람이 없어서야 본말 전도였다.
그렇게 새로운 포션의 구상을 하던 도중 한 사람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첫 손님인만큼 웃으며 환영하려 했지만 들어온 사람의 얼굴을 보고 나도 모르게 어색하게 웃었다.
"루디 씨. 오랜만이네요."
"네, 아르웬 씨도."
미소를 지으며 가게에 들어온 것은 방금 전 플로라가 말했던 내게 호감이 있는 여성 중 하나인 '아르웬'이었다. 젊은 나이에도 실력을 인정받아 시청의 주요 사무직에 배치되었다.
몇 번인가 시민권과 세금의 처리 때문에 시청에 갔을 때 만난 적이 있었다.
옅은 회색빛 단발, 늘 시청에서 근무할 때 입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가슴팍이 꽤나 트여 있어서 셔츠 너머로 속살이 살짝 비쳤다.
"아,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그러고보니 루디 씨가 1급 시민이 됐다고 영주님에게서 서신이 왔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거에요?"
의자에서 일어서며 그녀를 맞이하려는 내 행동을 제지한 아르웬은 내 앞에 있는 의자를 하나 빼내서는 자연스레 나와 마주보고 앉았다.
매일같이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어서 그런지 친화력이 플로라 못지 않았다.
"집사장님이 절 찾아오셔서 영주님의 딸을 치료할 수 있는 포션 제작을 부탁하셨는데 운이 좋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덕분에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죠."
내 말에 아르웬의 눈이 호기심으로 더욱 반짝거렸다.
"정말요? 영주님의 딸은 몇 년이나 병 때문에 쓰러져 계셨다고 들었는데... 루디 씨는 역시 대단한 분이셨군요."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내 겸손한 말에도 아르웬은 연신 나를 칭찬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루디 씨 덕분에 모험가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훨씬 줄었다거나, 마을 사람들에게 평판이 무척이 좋다는 말들 말이다.
"루디 씨가 오시고 나서부터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요."
"그거 다행이네요. 이곳에 오랫동안 머무를 생각일만큼, 마을 사람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차를 한 잔 내오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르웬은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그래도 손님에게 차 한 잔도 내어가지 않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하기에 찬장에 넣어둔 파리안드 꽃잎의 가루를 꺼냈다.
파리안드 가루는 물에 쉽게 희석되는 고급 차 중 하나였다. 마법으로 끓인 물을 컵에 살짝 붓고 파리안드 가루를 넣은 채 스푼으로 몇 번 저어주자 은은한 박하 향이 가득 퍼졌다.
그렇게 내 몫까지 차를 두 잔 준비한 나는 탁자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아이린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아이린의 거취에 대해서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노예를 넷 이상 소유하는 경우에는 시청에 보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그 이하의 경우에는 개인 소유로 인정되어 굳이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친척이라고 둘러댄 이상 아이린에게도 시민권을 발급받아둘 필요가 있었다.
마침 눈앞의 아르웬은 시청에서 그런 잡무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 그런 걸 물어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파리안드 차입니다."
"어머, 고마워요."
아르웬은 차를 후후 불더니 한 모금 마시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저도 파리안드 차는 전에 몇 번인가 마셔본 적이 있는데 훨씬 더 맛있는데요?"
"빈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아뇨. 빈말이 아니라 이건 정말..."
아르웬은 연신 차를 홀짝이며 신기하다는 듯이 찻잔을 힐끗거렸다. 달달하고 따뜻한 차가 들어가니 표정이 한결 더 풀렸다.
"그런데, 아르웬 씨는 어쩐 일로 저희 가게에 오셨나요?"
"그냥 아르웬이라 부르셔도 되는데."
살짝 기대하는 듯이 묻는 아르웬에게 나는 미소 지으며 거절했다.
"네. 아르웬 씨."
내 철벽에 아르웬은 쓴웃음을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본론을 꺼냈다.
"최근 성 밖에 꽤나 규모가 큰 던전히 하나 발견되고 나서 다른 도시의 모험가들까지 저희 영지로 몰려왔는데 이미 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훨씬 많고요."
던전. 동굴의 형태를 띠고 있는 미궁을 말한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던전의 끝에는 막대한 보물과 재화가 있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런 던전의 경우 몬스터나 언데드 역시도 상당하기에 어느 정도 실력 있는 모험가가 아니면 목숨만 내던지는 꼴이었다.
"던전의 영향인지 주변 숲의 몬스터들도 흉포해져서 며칠 전에는 고블린 부락 몇 개가 성벽까지 쳐들어왔다고 해요."
고블린 몇 마리야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영지의 안정을 책임질 수 없는만큼, 모험가들의 안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나온 시청과 모험가 길드의 지원정책이 바로.
"시청과 길드가 포션을 대량으로 주문해서 가격을 일부 부담한다. 시중보다 싼 가격에 모험가들에게 포션을 보급하고, 모험가들에게 의뢰를 발주해 빠르게 던전을 소멸시키는 겁니까?"
"좋은 포션은 여벌의 목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던전을 빠르게 처리하라는 것은 영주님이 직접 내리신 명령이에요."
확실히, 나름대로 일리 있는 말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모험가들이 하루에 밥을 한 끼 먹는 한이 있더라도 구매해 두는 것이 포션이기도 했다.
아르웬의 말에 나는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접니까? 저 말고도 다른 포션 가게들은 꽤나 많을텐데요."
"하하...다른 가게들의 포션은 솔직히 썩 효과가 좋지 않아서요. 그리고 마침 영주님도 루디 씨에게 이 일을 맡기는게 어떠냐고 하셨거든요."
어제 집사장이 돌아가기 전에 했던말이 허언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포션은 어떤 걸로 주문하실 겁니까?"
"루디 씨 가게의 포션이라면 하급 포션으로도 충분할 거라고 모험가 분들이 그러셔서 하급 포션 위주로 구매하려고요."
아르웬이 물어본 이들 중 내 가게의 단골들이 몇 명 있었나보다.
"그럼, 가격은 어떻게 하실겁니까?"
내 말에 아르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아마 상관에게 어떻게든 가격을 깎아보라는 말을 듣고 오지 않았을까.
"사, 사실 저희 시청에서 루디 씨에게 대량 구매한 포션의 가격 절반을 부담하고, 모험가들에게는 절반의 가격에 포션을 공급할 생각이에요. 물론 루디 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가격을 조율하고 싶기는 하지만..."
횡설수설하며 말을 늘어놓는 아르웬에게 나는 가볍게 말해주었다.
"정가의 70% 어떻습니까."
"...네,네?!"
"이 이상은 저도 곤란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