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260)

이어서 주인님의 입김이 제 목덜미에 닿았습니다. 뜨거운 입김이 목덜미에 닿자 간지러운 감각에 저절로 몸을 꼬았습니다.

주인님은 무언가 작게 말을 중얼거리는 것 같았지만 놀란 나머지 제대로 듣지는 못했습니다.

"주, 주, 주인니임...?"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습니다. 분명 지금 제 얼굴은 토마토처럼 붉어져 있겠지요. 아직도 제 목덜미에 주인님의 숨결이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주인님은 더 이상 제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몸을 뺐습니다.

저도 본능적으로 주인님과 거리를 벌리며 물러섰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방금 전과 같은 행동에서 저는 처음으로 '흥분' 했습니다. 주인님의 숨결이 닿은 것 만으로 왠지 모르게 몸이 달아올랐습니다. 평소에 경멸하고 한심하게 여겼던 남녀 간의 행위에 대해 저도 모르게 기대해버린 것입니다.

만약 주인님이 그만두지 않고 계속 몸을 탐했더라도 저는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그걸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저항은 육체적인 저항이 아닌 정신적인 저항을 뜻합니다.

주인님에게 범해진다 하더라도 그 행위를 한심하게 여겼을 과거와 달리, 지금은 주인님에게 범해진다면 저 역시도 주인님에게 흥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감각은 무척이나 생소했습니다. 이것도 제 어깻죽지에 달린 날개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혹시 다른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내 친척이라고 하거라. 앞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삼촌이라고 부르도록 하고."

주인님의 말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제가 목에 차고 있는 구속구를 본다면 곧바로 알 텐데 말이죠.

제가 구속구를 한 번 쳐다보고 주인님을 다시 쳐다봤지만 주인님은 아무 말 없이 가게 문을 여셨습니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지 가만히 저를 쳐다보시는 주인님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저는 결국 밖으로 나왔습니다.

우선 쓰레받이를 구석에 치워두고, 빗자루로 바닥을 쓸어 먼지를 모았습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쓰레기와 먼지들을 쓰레받이에 담아놓고 좀 더 멀리까지 청소를 하려는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묘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저보다 서너 살 정도 많을까요. 반짝이는 금발과 빵빵한 가슴이 인상적인 여자였습니다.

"어머. 처음 보는 아인데, 넌 누구니?"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그녀의 행동에 놀란 저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나며 대답했습니다.

"아, 아이린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딱딱하게 굴 필요 없어. 후훗. 그런데 넌 왜 루디 씨 가게 앞을 쓸고 있는 거니?"

제가 이름을 밝히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더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은 조금 이상했습니다.

제가 목에 차고 있는 목걸이를 보면 곧바로 제가 노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텐데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우선 저는 주인님의 명령대로 제 신분에 대해 숨기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저를 쳐다보는 그녀의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왠지 모르게 저를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단순히 제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어째서인지 저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서는 묘한 질투와 경계가 섞여 있었습니다.

"주인...아니, 어제부터 삼촌과 함께 살게 되서 일을 조금씩 돕기로 했어요."

입에 붙은 것인지 무의식적으로 주인님이라고 말할 뻔 했지만 그 순간 목에 찬 구속구가 푸른 빛을 내며 제 목을 조여와 황급히 말을 바꿨습니다.

다행히도 눈 앞의 소녀는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 대답을 들은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제게 착 달라 붙었습니다.

"어머, 루디 씨 친척이었구나. 흠흠. 루디 씨는 가족 이야기 같은 건 별로 해주지 않으셔서 이런 귀여운 친척이 있는줄도 몰랐어."

어느새 저를 끌어안고는 제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의 행동을 어떻게든 뿌리치려 했지만 제 가느다란 팔로는 고작해야 허우적거리는게 전부였습니다.

결국 제 얼굴은 그녀의 풍만한 가슴골 사이에 파묻힌 채 머리를 쓰다듬어지게 되었습니다.

......쓸데없이 부드러운게 더 짜증납니다. 고작해야 지방 덩어리일 뿐인데요. 혹시 주인님도 이런 가슴을 좋아하시는 걸까요?

아뇨. 그럴리 없습니다. 저를 구매하신 것만 봐도 이런 쓸데없는 지방 덩어리보다는 저처럼 절제된 가슴을 좋아하실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에 점점 숨이 막혀 옵니다.

이대로 질식하는건 아닐까 싶은 차에 주인님이 가게 문을 열고 나오셨습니다.

주인님이 나오시자 그녀는 곧바로 자세를 바꿔 저를 뒤에서 끌어안았습니다.

저는 등을 짓누르는 지방 덩어리를 그대로 걷어차 버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주인님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어머, 루디 씨."

가슴 괴물의 인사에도 주인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이실 뿐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귀찮아 하시는 표정인데 이 가슴 괴물은 포기 하지 않고 말을 이었습니다.

"루디 씨! 이런 귀여운 애가 친척중에 있었으면 말씀해주셨어야죠!"

그렇게 말하며 저를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제 얼굴에 자신의 뺨을 비벼댔습니다. 언제 봤다고 저한테 이렇게 친한 척을 하는 걸까요.

처음 느꼈던 불쾌감은 점차 등에 가하는 압력이 커질수록 패배감으로 바뀌었습니다. 고작해야 지방인데, 지방일 뿐인데.......

"굳이 이야기 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뿐이야. 아이린, 슬슬 가게 안도 쓸거라."

주인님의 명령에 저는 곧바로 가슴 괴물의 품에서 벗어나 가게 안으로 도망쳤습니다. 다시는 마주치지 않고 싶은 여자였습니다.

혹시 주인님이 안주인을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저 여자만큼은 결사 반대 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가게 안에 놓인 진열장을 건드리지 않고 조심스레 쓸고 있던 도중 밖에서 대화를 나누는 주인님과 여자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습니다.

몰래 대화를 엿들어보니 저 가슴 괴물은 '플로라'라는 여자인 것 같습니다.

플로라는 주인님에게 시답잖은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영양가라고는 조금도 없는 대화에도 주인님은 상냥하게 일일이 대답해주셨습니다.

어느새 가게 벽에 찰싹 붙어 이야기를 듣던 저는 이어진 플로라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루디 씨, 켈튼 아저씨가 말하길 루디 씨가 지난 밤에 동쪽 홍등가에서 나오는걸 봤다던데요?"

홍등가. 빈민가의 아이들이라면 모를 일이 없는 단어입니다. 여자 고아들의 경우 대부분이 몸을 파는 창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몸 말고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는 고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창부가 된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몸을 팔아 얻는 돈의 대부분은 포주에게 바쳐야 하고, 결국 남는 돈은 간신히 허기를 때울 수 있을 정도의 푼돈 뿐.

그렇게 매일같이 몸을 혹사시키다 아이를 배어 더 이상 몸을 팔 수 없게 되거나 성병에 걸려 그대로 비참하게 죽는게 창부들의 운명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빈민가에서 조금만 더 굴렀다면 창부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의 저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았지만요.

물론 '노예'가 된 지금의 제 신세는 창부보다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부는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지만 노예는 가축처럼 사육되곤 하니까요.

'그래도, 주인님은 저를 배려해주고 있으니까.'

그래서 저는 창부가 안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노예 상인인 리키에게도 아주 조금, 개미 눈물만큼 고마운 마음도 생겼습니다.

덕분에 이런 상냥한 주인님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정말이지, 좀 더 부끄러워 하던가 그런 적 없다고 발뺌을 하셔야죠. 그렇게 당당하게 인정하시다니."

들려오는 플로라의 말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확실히, 주인님이 홍등가에 다니신다는 말은 성적인 기능이 정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를 덮치지 않으시는걸까요?

처녀를 지킬 수 있으니 분명 기뻐해야 할텐데, 저는 묘하게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주인님이 홍등가에서 다른 여자와 교합을 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가슴이 꽉 막힌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말 이상한 기분입니다.

결국 머릿속이 그 생각으로 가득 차 그때부터는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연초를 모두 태우고 돌아오신 주인님은 제가 청소한 것을 보고는 칭찬해 주셨습니다.

주인님에게서 풍기는 연초 냄새는 분명 지독했지만 막상 주인님의 것이라 생각하니 괜찮았습니다. 이것도 목에 찬 구속구의 효과일까요?

구속구는 행동만을 제어한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노예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이 부여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수고했다. 빗자루랑 쓰레받기는 용구함에 넣어놓고, 방에 가서 잠깐 쉬고 있거라."

이것 보세요. 주인님의 '수고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분명 구속구에 마법이 걸려 있는게 틀림 없습니다. 아니면 제가 먹은 음식에 최음 효과가 있는 약이 들어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제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끌어와 덮었습니다. 차라리 잠이라도 자면 괜찮아질까 싶어 눈을 감아보았지만 떠오르는건 주인님의 얼굴 뿐이었습니다.

차갑고 무뚝뚝한 인상과 달리 배려 깊고 마음이 따뜻한 주인님. 주인님을 생각할수록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습니다.

이런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면 좋겠다는 바람에 행복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도중 손님이 찾아왔는지 주인님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습니다.

거리가 멀어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화 상대의 목소리는 플로라가 아닌 다른 여자의 것이었습니다.

띄엄띄엄 들려오던 목소리가 너무 작아 알아들을 수 없기에 저는 다시 이불 위에 누웠습니다.

다만 아까처럼 잠들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주인님은 잠깐 쉬라고 하셨지 자라고 하지는 않으셨으니까요. 조금 있다가 새로운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인님이 제 방에 찾아오시기를 기다리며 얌전히 앉아 있는데 어느새 밖에서 작게 들려오던 소리는 완전히 끊겼습니다.

손님이 돌아간 것인가 싶어 주인님이 제 방에 찾아오시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에 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제 어깻죽지에 달린 날개가 격하게 퍼덕이고, 엉덩이에 난 꼬리가 흔들렸습니다.

동시에 몸이 조금씩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쩐지 숨이 거칠어지고, 얼굴이 뜨거워졌습니다.

갑작스레 일어난 몸의 변화에 저도 모르게 주인님을 찾았습니다. 정말로 주인님이 최음제를 탄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살짝 여는 순간 저는 보고 말았습니다.

짧은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주인님의 목을 팔로 휘감은 채 입을 맞추고 있는 장면을요.

처음에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럴리가 없다고. 잘못 본 게 분명하다고 방문을 닫고 눈을 몇 번이나 깜박인 뒤 다시 방문을 살짝 열었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주인님과 은빛 머리카락의 여자가 서로를 끌어안은 채 격렬하게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보며 저는 멍하니 입을 벌렸습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웠습니다. 방금 전 플로라와 주인님이 대화한 것으로 유추했을 때 주인님에게는 아내도, 여자친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 광경은 대체 뭘까요.

고작해야 가게에 들어온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저런 키스라니. 혹시 플로라에게 숨기고 두 사람이 사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제가 진실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저는 하염없이 서로의 혀를 탐하는 주인님과 여자의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참동안 이어지던 키스가 끝나고 서로의 몸이 떨어지자 저는 황급히 방문을 닫았습니다. 주인님과 눈이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주인님은 저런 여자가 취향이신 걸까요.

척 봐도 저보다 키가 한참은 커 보였습니다. 가슴은 플로라처럼 빵빵한 가슴이 아닌 저랑 비슷한 수준의 절벽이었지만 은빛 머리카락의 그녀는 틀림없이 성숙한 여자였습니다.

왠지 모를 실망감에 몸을 웅크렸습니다.

주인님이 다른 누구와 키스를 하든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닐텐데도 자꾸만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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