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을 하는데...갑자기 언니가...독침에 맞아서...히끅..."
조금 닮았다 싶었는데 언니였던건가. 아무래도 방심하고 있다가 고블린의 독침을 맞고 그대로 쓰러진 것 같았다.
"제발...언니 좀...살려주세요...흑... 살려만 주시면 뭐든지 할테니까..."
그녀는 주저 앉은 채 자신의 언니를 끌어안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알겠으니까 그만 우십시오. 이름은 뭡니까?"
"제시...카. 제시카에요."
제시카.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가게를 찾는 모험가들이 가끔씩 다른 모험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들은 적이 있었다.
언니가 마법사, 동생이 검사를 맡는 2인 파티로 꽤나 반반한 얼굴을 가진 자매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 뒤로는 모험가 특유의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이 이어졌기 때문에 별로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제시카 씨. 이런 독은 신전에서 치료 받는게 빠를텐데요. 왜 굳이 제 가게로 오셨습니까?"
신성 마법과 포션의 차이가 여기서 있었다.
신성 마법은 독의 종류에 상관 없이 해주가 가능하지만 포션의 경우 독의 종류에 따라 다른 포션을 복용해야 했다.
때문에 중독된 모험가들은 대부분 신전에 찾아가 큐어(Cure) 마법을 받고 해주를 하는게 정상이었다.
"신전에도 갔었는데, 당분간은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한다고 쫓겨났어요..."
이제 조금 정신을 차렸는지 울먹거리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는 제시카였다.
나름대로 정신을 붙잡고 있는게 마음에 들었다. 계속 질질 짜면서 살려달라고만 했으면 나도 짜증을 냈을지 모른다.
그건 그렇고 신전에서 그런 말을 했을 줄이야. 물론 이런 밤에는 신전에 깨어있는 사제가 적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문전 박대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제들이 교대로 남아 밤에 찾아온 환자나 모험가들을 돌봐준다고 들었는데.
문득 내가 골동품점에서 찾은 성물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것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물에 대한 것은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우선은 눈 앞의 환자부터 살리기로 했다.
"언니 분이 당하신 독은 '퍼플 제인'이라는 독입니다. 보통 중독되고 반나절이면 사망에 이르는 강력한 독입니다."
부패독 중에서는 효과가 꽤나 빠른 편이었다. 단순한 극독과 달리 피부를 썩어들어가게 하는 독의 경우 신성력으로 독기를 몰아내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단순한 해독 포션으로는 진행을 멈추거나 늦추는 것일 뿐, 이미 썩어들어간 피부를 원래대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 그래도 방법은 있는거죠? 언니 살려주시면 가진 돈 전부 드릴게요. 모자라면 나중에 의뢰 받아서 번 돈으로 다 갚아드릴테니까 제발......."
내게 사정하던 제시카는 나중에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별 수 없이 나는 양 손을 걷어붙이고는 제시카의 언니를 안아들고 내 방으로 갔다.
그리고 내 침대 위에 눕힌 후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지난번 아르웬에게 먹었던 미약 말고도 효과가 강력한 포션은 여럿 남아 있었다.
그 중에서도 '마취제'로 사용하는 포션을 꺼내 내 뒤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제시카에게 던졌다.
"해독제를 만들테니 그 포션을 언니에게 모두 먹이십시오. 못 삼키더라도 억지로 마시게 하세요."
내가 단호히 말하자 제시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병을 열려고 하다가 갑옷을 입은 채로는 약병 뚜껑을 열기 힘들단 것을 깨달았는지 갑옷을 벗었다.
갑옷을 벗고 드러난 그녀의 몸매는 상상 이상이었다. 플로라와 견주어도 될 정도로 풍만한 가슴과 모험가로 활동하며 만들어진 탄탄한 허벅지, 잘 빠진 엉덩이까지.
갑옷을 입지 않았다면 남자들의 눈을 확실하게 사로잡았을 매력적인 몸매였다.
제시카는 내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지 벗은 갑옷을 내팽개치고는 서둘러 약병 뚜껑을 따더니 언니의 입 안으로 흘려넣었다. 무의식적으로 입 안에 들어오는 액체를 뱉어내려하는 언니의 목을 젖히고는 약이 흘러내리지 않게 천천히 붓기 시작했다.
모험을 꽤나 하면서 포션을 먹이는 법을 익힌 모양이니 딱히 내가 손을 대거나 할 부분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약을 먹이는 제시카를 두고 방을 나와 창고로 향했다.
창고 안에는 채집해둔 약초와 만들어둔 포션병, 그리고 다양한 식재료들로 가득했다. 그 중에서도 병에 담아뒀던 '오우거의 힘줄'과 '라스티아 꽃의 줄기'를 꺼냈다.
당장 이 두 개의 재료만 해도 5골드를 호가하는 재료들이다. 오우거의 힘줄은 고급 활이나 장갑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특유의 끈끈한 재질과 독과 마비에 대한 일부 저항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오우거에게 독을 풀어도 잘 통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오우거는 죽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전투를 부르짖는 종족이기 때문에 끊어지지 않은 힘줄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려웠고, 부르는게 값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라스티아 꽃'. 이 꽃 역시도 보름달이 빛나는 밤에만 피는 꽃이라며 채집이 힘든 꽃 중 하나였다. 라스티아 꽃의 꽃잎은 미용효과가 있고, 줄기는 독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약재료 사용하곤 했다.
그리고 진열장에 뒀던 포션병들 중 검은색의 포션병을 꺼내 오우거의 힘줄을 포션병 안에 넣었다.
소드 오러를 이용해서 칼로 베어도 잘 베어지지 않는 오우거의 힘줄이 포션병 안에 들어가자 부글거리며 그대로 녹아내렸다.
이윽고 라스티아 꽃의 줄기 윗부분을 살짝 베어내자 초록색 즙이 흘러나왔다. 포션병 안에 즙을 모두 흘려넣고 나자 옅은 회색빛을 띠는 포션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포션을 들고 방으로 돌아가니 희미하게 눈을 뜨고 있는 제시카의 언니가 보였다. 그리고 그런 언니를 끌어안고 펑펑 울고 있는 제시카도.
"으흑...미안해...언니... 내가 그 의뢰를 받지만 않았어도..."
"괜찮아 제시카. 나도 동의했는걸. 네 탓이 아니야."
마취약을 먹었다고는 해도 저렇게 담담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은 꽤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분명 온 몸의 근육이 쥐어짜이는 듯한 감각일텐데도 동생을 위로하다니. 여러 의미로 대단한 자매였다.
"포션이 완성 됐으니 조금만 비켜주세요."
내 말에 제시카가 잡고 있던 언니의 손을 놓고는 옆으로 물러났다. 제시카는 내가 만든 포션의 색을 보고 조금 멈칫했지만 그래도 내게 따져묻지는 않았다.
"제시카 씨의 언니분이시죠?"
"네. 안젤리카라고 불러주세요."
중독된게 남의 일인 것마냥 평범하게 대화하는 안젤리카를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안젤리카 씨 상처 부위에 퍼져 있는 썩은 피를 빼낼 겁니다. 그 후에 해독제를 투여할겁니다. 마취 포션을 마시긴 했지만 꽤나 아플 거에요."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안젤리카는 잘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살짝 움직여 내게 감사를 표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재킷에서 얇은 나이프를 꺼냈다. 조금이라도 잘못 그었다가는 썩은 피가 아니라 멀쩡한 피가 쏟아질 것이었기에 안젤리카의 목덜미를 신중하게 그었다.
벌어진 상처에서 새카맣게 썩은 피가 콸콸 흘러나왔다.
'침대 시트는 바꿔야겠군.'
흘러나온 피가 안젤리카의 목덜미를 타고 침대로 흘러내렸다. 동시에 안젤리카의 몸에 퍼져 있던 검은 피의 색이 살짝 흐릿해졌다.
다행히도 안젤리카는 비명도 지르지 않고 고통을 잘 참아내고 있었다.
"입 벌려주세요."
내 말에 곧바로 입술을 살짝 뗀 안젤리카의 입 안으로 회색빛 포션을 흘려넣었다.
오우거의 힘줄과 라스티아 꽃의 줄기를 함께 사용한만큼 독기를 몰아내는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썩은 피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고, 안젤리카의 피부 색이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나는 곧바로 하급 포션을 안젤리카의 상처 부위에 뿌렸다.
검은피를 모두 쏟아내고 붉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할 즈음 하급 포션을 뿌리자 피가 흘러나오는 속도가 느려졌다.
다만 상처 부위에 포션을 부은 것은 조금 아팠는지 안젤리카는 희미한 신음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했다.
"흐윽...으윽...아흑...!"
"언니...조금만 참아."
제시카는 그런 언니의 손을 꽉 잡은 채 안젤리카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하급 포션을 세 병쯤 사용했을 때 안젤리카는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았다. 방금 전 내가 나이프로 그었던 상처 부위도 말끔하게 아물어 있었다.
"흐으...후아..."
거친 숨을 내쉬며 호흡을 고르는 안젤리카에게 제시카가 결국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언니이이!!"
완전히 괜찮아진 자신의 언니를 끌어안고 또 감정이 북받쳤는지 울음을 터뜨리는 제시카와 그런 제시카의 등을 토닥이는 안젤리카를 나는 벽에 기댄 채 한참동안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린 제시카에게 듣고 나서야 안 것이지만 최근 북쪽 숲에 던전이 생기며 숲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다른 숲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자신의 영역에서 쫓겨나 흉폭해진 놈들인만큼 예상보다 고군분투하다가 언니가 독침에 맞자 무기도 내팽개치고 언니를 업은 채 곧바로 도망나왔다고 한다.
이제는 멀쩡하니 걱정 할 필요 없다고 동생을 안심시키던 안젤리카가 자신이 쏟아낸 검은 피로 물든 침대를 보고 살짝 굳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포션 값이랑 침대는 반드시 배상하겠습니다."
"루디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리고 포션 값은 필요없습니다. 오늘 제 기분이 좋기도 하니 서비스로 드린 셈 치겠습니다. 침대 시트 값만 주십시오."
돈이 필요해서 연 가게가 아니었다.
고작해야 C~D랭크인 이 두 사람한테 5골드라는 거금을 뜯어낼만큼 궁핍하게 살고 있지도 않았기에 적당히 서비스로 줄 의향이 있었다.
"루디 씨. 아무리 그래도 목숨을 건져주셨는데 입만 닦는 것은 저희들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안젤리카는 역시 심성이 곧은 사람이었다. 제시카 역시도 안젤리카 옆에서 말을 덧붙였다.
"맞아요. 이래봬도 저희 그럭저럭 벌고 있는 편이니 포션 값 정도는 충당할 수 있어요."
두 사람 다 포션값을 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자 조금 난감했다.
적당히 가격을 낮춰 부를까 싶었지만 아까 전에 제시카가 했던 말이 떠올라 충고도 해줄 겸 가격을 사실대로 말했다.
"5골드 입니다."
"......네?"
"......."
제시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고, 안젤리카는 짐작가는게 있는지 입을 다물었다.
"루디 씨? 아무리 그래도 해독제 한 병이 5골드라니. 그건 너무 비싼 거 아닌가요?"
제시카가 소심하게 묻자 나는 가격이 5골드인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방금 안젤리카가 복용한 포션에는 오우거의 힘줄과 라스타이 꽃의 줄기가 들어갔습니다. 두 재료의 가격만 합쳐도 5골드를 넘습니다. 거기다 안젤리카 씨의 상처에 부은 하급 포션의 가격까지 합치면 6골드도 넘겠군요. 참고로 아마 신전을 찾아가셨어도 비슷할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독이 상당 부분 퍼져 있었고, 퍼플 제인은 상급 사제 정도는 되야 간신히 해주할 수 있으니까요."
침대 시트도 바꿔야한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5골드라는 말에 이미 두 사람은 혼이 나간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서비스로 드린 셈 치겠다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5골드짜리 포션을 그냥 받는 것도..."
그렇게 말하면서도 5골드를 지불한 능력은 없는지 말을 망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