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260)

"루디 씨셨군요. 오늘도 카르멘 씨를 찾아 오신건가요?"

"부탁할게."

"마침 카르멘 씨도 한동안 루디 씨가 안 찾아오신다고 아쉬워 하던 참이었습니다. 가장 위의 방으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알려줘서 고마워."

팁으로 주머니에 들어있는 은화를 한 닢 꺼내 던져주었다.

한 층 걸어올라갈 때마다 열락의 밤을 보내고 있는 이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영원의 밤은 일반적인 창관과는 급이 달랐다.

싸구려 창녀들이 대동화 몇 닢에 몸을 팔아치운다면, 이곳의 창녀들은 하룻밤에 금화 한 닢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고급 창관이었다.

단순히 몸을 대주는 것 뿐만 아니라 손님의 쾌감을 최대치로 자극시킬 수 있도록 훈련받고, 단순한 성교뿐만 아니라 말동무나 각자의 취향에 맞는 플레이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때문에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대부분 대상인이나 그들의 자제들이었다.

영원의 밤의 단골 손님들은 한 번 여기를 겪으면 다른 창관들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말한다고 카르멘이 자랑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거의 한 달 만에 찾아온 셈인가.

카르멘은 이곳 영원한 밤의 주인이었다.

듣기로는 예전에는 작은 상단을 물려받았는데 도적들의 습격 때문에 완전히 망해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남은 돈으로 간신히 만든 곳이 영원한 밤이었다고.

여기서 일하는 창녀들에 대한 대우도 월등히 좋아서 영원한 밤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애들은 카르멘을 언니라 부르며 잘 따랐다.

본래 카르멘은 창관의 관리만을 하지만 내가 찾아왔을 때는 가끔 관계를 맺기도 했다.

모험가로 활동할 때 만난 여자들처럼 털털하고, 입이 가볍지 않은 여자였다.

때문에 내가 살내음이 그리워 가끔씩 창관을 찾아와도 아무 말 없이 나를 끌어안아준 채 잠들기도 했다.

카르멘이 부드럽게 안아주면 꼭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의 품 안 같아서 아늑한 기분이 들곤 했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용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문이 보였다.

아랫층처럼 한 층에 여섯 개의 방이 있는게 아닌,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방.

창관의 주인인 카르멘의 방이었다.

주먹을 쥐고 가볍게 두 번 두드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지금은 서류 작업 중이니 급한 일 아니면 나중에 찾아와."

"그럼 다음에 찾아와야겠네."

곧이어 문 너머에서 우당탕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후 방문이 열렸다.

갈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여자가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다만 평소의 매혹적인 눈과는 달리 오늘은 지쳤는지 눈가에 옅은 다크서클이 남아 있었다.

"뭐야. 진짜 루디였네?"

"일하고 있던 중이었으면 미안한데."

"됐어. 들어와."

방 안으로 들어오니 난잡하게 어질러진 서재가 보였다.

책상 위에 흐트러져 있는 서류 더미와 방금까지 사인 중이었던 펜이 뚜껑도 닫히지 않은 채 굴러다니고 있었다.

"우리야 원래부터 부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니 상관 없지만, 다른 창관들은 다 죽게 생겼다면서 어떻게든 도와달라고 하더라고. 그것 땜에 아주 골치야."

"모험가들과 용병 때문인가?"

창관의 주 고객은 모험가와 용병들이다. 몬스터, 혹은 인간과의 전투를 하고 온 그들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따뜻한 밥과 술, 그리고 여자 뿐이었다.

그런데 던전이 생기고 나서 모험가들이 계속 죽어나가고, 이번에는 용병단과 함께 간 모험가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것 때문에 갑자기 손님의 수가 확 줄어드니 창관들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었다.

"애초에 우리랑은 상관 없는 이야긴데, 돼지새끼마냥 도와달라고 꽥꽥 되서는..."

모험가나 용병들을 손님으로 거의 받지 않는 영원한 밤이지만 바스티안 영지에서 가장 큰 창관인만큼 창관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다른 창관들의 요청을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웠다는 소리다.

"그나마 던전이 사라져서 다행이지, 아직도 남아있었더라면... 으으, 상상도 하기 싫네."

팔짱을 끼며 몸서리치는 카르멘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내가 안 좋은 타이밍에 찾아온 것 같네."

"아냐. 나도 짜증나서 이대로 오 분만 더 앉아있었다가는 방 안 가구를 다 때려부술 것 같았거든. 오랜만에 좀 쉬어야겠어."

카르멘은 꼴도 보기 싫은지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서류를 발로 짓밟고는 와인셀러를 열어 검은 빛을 띠는 와인을 한 병 꺼냈다.

"한 잔 할거지?"

"안 그래도 술이 땡기던 참이었지."

잠이 오지 않을 때 술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카르멘이 방금 꺼낸 와인은 서늘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냉각 마법과 온도 조절 마법이 동시에 부여되어 있는 와인셀러는 꽤나 값이 나갔지만, 애주가인 카르멘은 거금을 들여 자신만의 와인셀러를 만들었다.

카르멘이 건넨 와인잔을 받자 카르멘은 능숙하게 코르크 마개를 따고는 우아한 손놀림으로 내 잔을 절반 정도 채워 주었다.

잔에서는 포도와 블루베리 향이 섞인 달콤한 냄새가 풍겨왔다. 코를 간질이는 그윽한 향기에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카르멘은 자신의 잔에도 와인을 붓고는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잔이 부딪치며 '짠'하는 소리와 함께 나와 카르멘은 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첫 잔 특유의 시큼한 맛이 느껴졌지만 점차 달콤한 향기가 입 안 가득 퍼졌다.

"좋은 술이네."

"그야 당연하지. 수도에서도 손꼽히는 양조장까지 가서 사온 거니까."

카르멘과 나는 와인을 홀짝거리며 금새 잔을 모두 비웠다. 생각보다 도수가 있었는지 천천히 몸이 달아올랐다.

몸이 조금 뜨거워지고, 얼굴이 붉어졌다.

마나를 이용해 취기를 단숨에 날려버릴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이렇게 취해 있는 편이 숙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알딸딸한 기분을 즐기고 있었다.

카르멘이 내 빈 잔을 채워주었다.

"고마워."

"별 말씀을."

자신의 잔에도 술을 부은 카르멘은 다시금 나와 잔을 부딪치고는 와인을 벌컥거렸다. 처음이 맛보기였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잔을 비웠다.

순식간에 잔을 비운 카르멘의 얼굴은 상당히 붉어져 있었다. 평소에는 느긋하게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최근에 힘든 일이 많은 것 같았다.

"오늘은 너무 빠르게 달리는거 아냐? 그러다 내일 아침에 고생한다."

"됐어. 던전이 사라진 이상 내가 할 일도 별로 없고. 그런 돼지새끼들 따위야 그냥 다 뒈져버리라지이이..."

결국에는 잔을 원샷하더니 마지막에는 완전히 혀가 풀려서는 헤롱헤롱 거리는 카르멘이었다.

살짝 풀린 눈으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모습이 평소의 털털한 모습과 전혀 달라 귀여웠다.

나는 그런 카르멘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딱히 그녀의 입술을 탐하고 그 뒤의 행위가 하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라, 왠지 그렇게 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주 살짝 입술이 맞닿은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카르멘은 이미 잠이 달아난 것처럼 보였다.

카르멘은 입술을 혀로 요염하게 핥았다.

"...할래? 지난번에는 하지도 않고 그냥 돌아갔잖아."

갑자기 거리를 좁혀 다가온 카르멘은 내 귓가에 속삭이며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능숙하게 몸을 더듬는 카르멘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내 몸을 만지작거리던 카르멘은 내 목덜미에 코를 갖다대더니 갑자기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흐응...여자 냄새가 나는데?"

그렇게 말하는 카르멘의 목소리는 살짝 차가워져 있었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네. 적어도 세 명이야."

"세 명이라니..."

분명 욕실에서 몸을 깨끗하게 씻었는데 어떻게 그런 냄새를 맡았는지는 둘째치고, 내 몸에 냄새가 벨 정도로 가까운 여자가 있을리가.......

'있네.'

불과 며칠 전에 아르웬과 섹스를 하고, 당장 오늘 낮에 앨리스에게 달라붙어 몸을 애무하고, 아이린과는 계속해서 하루 종일 붙어 있었다.

"사람 냄새를 일일이 구분까지 할 수 있는거야?"

"이쪽 일을 하다보면 사람 고유의 체취 정도야 쉽게 구분할 수 있지."

"네가 하는 일이라고 해봤자 서류 작업 밖에 없잖아."

카르멘은 포주였다. 이곳에서 일하는 창녀들을 가족같이 대하고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는 점이 다른 창관들과는 다른 점이었지만 말이다.

그녀는 평소에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밀려 있는 서류를 처리하거나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곤한다.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애들한테 나는 냄새를 맡아보면 그날 상대한 손님 냄새를 알 수 있거든. 사람의 체취는 모두 달라서, 잘 섞이지도 않고 남아 있는 법이야."

"...그건 또 처음 듣는 말이네."

수인족도 울고 갈 법한 후각이었다.

"쳇. 흥이 식었어."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곧바로 내게서 떨어졌다.

다시 와인잔을 입에 머금는 카르멘의 모습은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결국 그 날은 카르멘의 술주정을 들어주며 새벽이 깊어지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나는 카르멘을 등 뒤에서 끌어안은 상태였다.

카르멘은 새벽까지 술을 세 병이나 비우고는 그대로 뻗어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