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260)

한 번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 때 좀 더 자극을 주면 약하게나마 계속해서 절정을 겪게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어제와는 달리 꽤나 거칠게 손가락을 피스톤질하며 강하게 흔들었다.

"아앙! 하앙! 자, 잠까안! 흐으윽!"

아까 혀를 굴려대며 앨리스가 느끼는 곳에 대해서는 대충 감을 잡은 상태였다.

앨리스는 양 손으로 내 머리를 잡은 채 멈춰달라며 고개를 도리질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앨리스의 요구를 무시한 채 손가락을 움직이는 속도를 더욱 올렸다.

앨리스는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다시금 조수를 뿜어내며 몸을 비틀거렸다.

다만 물줄기는 처음 절정에 이르렀을 때보다 훨씬 약했다. 흘러나오는 애액의 양도 마찬가지였다.

뭐, 그래도 바닥에 홍수가 났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흐아앙......"

여전히 쾌락의 파도에 휩쓸려 있는 앨리스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자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내일은 제가 저택에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에 앨리스는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옆에 치워뒀던 앨리스의 팬티와 브래지어를 직접 입혀 주었다.

앨리스가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피스까지 모두 입히고 나서야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있게 된 앨리스는 자신의 몸을 한 번 살펴보더니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갔다.

적어도 어제처럼 나를 노려보지는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 뒤로는 어제와 마찬가지였다. 앨리스가 있던 자리의 젖은 판자의 물기를 닦아내고, 마법을 이용해 냄새를 지워냈다.

청소를 끝낸 다음에는 연초를 한 대 피웠다.

연초의 지독한 냄새가 가게 안을 가득 채우자 성욕이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연초를 피우며 여러 가지에 대해 생각했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와,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서.

모험가로 활동할 때 나를 아는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보면 꼴사납게 몰락했다고 비웃겠지. 혹은 대체 왜 이런 변두리에 틀어박혀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조차 못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 나이가 모험가로 꽃 피울 나이긴 했다.

나만한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아남은 모험가들은 10년이 넘게 활동하며 경험이 쌓이고, 기사와 동급의 대우를 받는 모험가 랭크를 달성하기 마련이다.

클랜을 만들거나, 정규 파티를 짜서 몬스터를 밥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썰어댄다.

젊을 때는 하지도 않았던 저축을 하기 시작하고, 눈이 맞은 여모험가와 미래를 약속하며 조금 더 돈을 모아서 자그마한 가게를 열자고 약속한다.

모험가들 대부분의 정해진 은퇴 루트였다. 다만 나는 그렇게 되기 전에 좀 더 빨리 발을 뺐을 뿐이고.

만약 내가 아직까지 활동했다고 하더라도 별로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산더미 같은 창고의 재화들의 양이 조금 더 늘어나고, 나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들이 조금 늘어나는게 다겠지.

나는 아이린과 마찬가지로 고아 출신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린은 고아원에서 지낸 적이 있지만, 내가 있던 곳은 형편이 썩 좋지 않아 고아원은커녕 신전조차 없는 곳이었다는 것일까.

"지독했지."

헛웃음이 나왔다. 그 때는 정말 살기 위해 별의 별 짓을 다 했었다. 하수구 주변에 있던 쥐를 잡은 날은 고기를 먹을 수 있어 포식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 할 정도였다.

평소에는 빵집 주변의 쓰레기통을 뒤져 나온 빵 부스러기나 과일 껍데기를 주워 먹곤 했다.

그렇게 몸을 굴리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살아가다가, 한 여자에게 주워졌다.

늘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마음씨 착한 여자였다. 늘 상냥하게 웃어주고, 친절하게 돌봐주던 천사같은 사람이었다.

내 첫사랑이었다.

"씨발."

결국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니, 이뤄질 수 없었다고 하는게 맞을까.

옛날 일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나왔다.

내가 가진 기억은 두 종류였다.

필요한 기억과, 끔찍한 기억.

그녀에 대한 기억은 명백히 후자에 속했다.

2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살기를 내뿜을 때가 많았다. 한창 악몽을 꿀 때는 그것 때문에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샌 적도 있었다.

내가 모험가가 된 것 역시 그 때의 기억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것 때문인지 사람을 쉽게 사귀지 못했다. 그  순간처럼 소중한 사람을 무력하게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런 내 성격은 이성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하룻밤 상대로만 만날 뿐 오랫동안 사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가끔씩 관계를 맺던 여자들과 섹스를 할 때도 계속해서 첫사랑인 '그녀'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결국에는 이 모양 이 꼴이지."

그래서 나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없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쉽지만 그걸 유지하는 법을 모른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거리를 걸으며 사랑을 속삭이고, 정상적으로 사귀는 행위 따위 불가능하다.

이때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완전히 망가져 있었으니까.

플로라와 아이린이 돌아온 것은 연초를 세 대쯤 태우고 난 후였다.

"돌아왔...윽! 루디 씨! 가게 안에서 연초 좀 피지 마세요!"

자각 없이 연초를 계속해서 태운 사이 가게 안에 연초 냄새가 잔뜩 베어 있었다. 플로라는 손으로 코를 잡은 채 내게 화를 냈다.

"미안."

가볍게 사과하며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플로라도 가게 문을 열고는 고개를 내밀어 바깥 공기를 한 번 들이마시고 나서 돌아왔다.

연초 냄새에 정색하는 플로라와 달리 아이린은 오자마자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내 손과 입에서 나는 연초 냄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라붙는 아이린이었다.

플로라가 눈치채지 못하게 공기 정화 마법을 발동시켜 가게 안의 연초 냄새를 지우며 물었다.

"그래서, 아이린이랑 다른 애들은 좀 친해졌어?"

"그게... 너무 잘 되서 문제랄까."

플로라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내 뒤에 붙어 있던 아이린에게 시선을 돌리니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몸서리를 치면서 더욱 내게 달라붙었다.

"솔직히 아이린 정도면 엄청 예쁜 편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남자애들이 아이린한테 계속 들이대다가 결국 자기들끼리 싸워 버려서..."

확실히 아이린은 또래 애들 중에서는 비교할 여자애가 없을 정도로 예뻤다.

주근깨 하나 없는 뽀얀 얼굴에 찬란한 윤기가 흐르는 보랏빛 머리카락, 마치 인형같이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눈코입.

저런 아름다운 얼굴로 미소라도 한 번 지어주면 어떤 남자든 애간장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고작해야 열세 살 남짓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종족 보정인지 묘한 색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결국 제대로 된 대화는 하지도 못했다는 건가."

"그래도 반응이 나쁜 건 아니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플로라는 계면쩍은지 머리카락 끝부분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꼬았다.

"남자애들이야 그렇다 치고, 여자애들은?"

"여자애들은 아마 괜찮을거에요. 그도 그럴게 아이린은 루디 씨의 조카라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조카인게 무슨 상관이길래?

플로라는 그런 내 표정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휴. 모르면 됐어요. 아무튼, 아이린이 애들한테 해코지 당하거나 할 일은 전혀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제가 제일 먼저 말릴테니까요."

"그건 좀 부탁할게."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방식이 있다. 서른이 넘은 내가 애들의 방식에 간섭을 하면 오히려 아이린이 더욱 고립될 가능성이 컸다. 차라리 마당발인 플로라가 아이린을 조금씩 돌봐주는게 낫겠지.

나한테 늘 장난을 쳐서 그렇지, 플로라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마스코트와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어머니한테 점심 고맙다고 전해줘."

탁자 구석이 밀어뒀던 도시락 주머니를 챙겨 플로라에게 넘겨주었다. 플로라가 돌아가고 나서, 나는 찰싹 달라붙어 있는 아이린에게 물었다.

"아이들하고 만나보니 어땠니?"

"...조금 무서웠어요."

빈민가를 전전하고, 노예로 잡혀 오랜 기간동안 혼자 있어서 그런지 동년배의 애들과 대화를 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것 같았다.

"그, 그래도... 다들 친절하고 상냥했어요."

나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것인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애들을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건 다행이구나. 혹시라도 애들이 괴롭히거나 한다면 플로라 언니에게 바로 말하렴."

아이린이 괴롭힘을 당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해결방법이라고 해봤자 그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꼬맹이들을 뒷산에 묻는 것 정도 뿐이었으니까.

차라리 아이들 간의 분란을 조율하는 것에 능숙한 플로라에게 부탁하는게 낫다.

"...네."

"그래. 그럼 씻고 옷부터 갈아입으렴."

나는 아이린을 끌어안으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옛날에 그녀가 내게 자주 해줬던 것이었다. 문득 기억이 나서 아이린에게도 해줬는데 아이린의 얼굴은 완전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고작 이마에 키스한 것 정도로 저런 반응이라니. 스킨쉽에 대한 내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이, 이만 가볼게요!"

곧바로 욕실을 향해 줄행랑치는 아이린이었다.

귀여운 반응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놀려먹는 재미가 있는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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