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260)

"...신성한 성령이여. 위대한 하늘이...."

"신성 주문 영창하지 마시고요?!"

그제서야 내 팔을 가슴골 사이에서 빼낸 그녀였다.

"하아, 정말이지. 주인님이 마법사만 아니었어도 이대로 덮쳐버리는건데."

그렇게 말하며 입맛을 다시는 그녀에게 다시 신성 주문을 영창하려 하자 그제서야 장난을 그만뒀다.

그러고보니 방금 전 이 녀석. 내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이린도 내가 마법사라는걸 알고 있나?"

"대충 짐작은 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마족은 마나를 감지하는 것에 민감하거든요. 주인님 정도의 마력이면 감춰도 어느 정도 기척이 새어나와서 알 수 있어요."

나름 잘 숨긴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알고 있던 모양이다.

"정말 안 하실거에요? 이래봬도 서큐버스인만큼 테크닉도 현실의 여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은데요?"

그렇게 말하며 살짝 가슴을 가린 부분을 벌려 핑크빛 젖꼭지를 드러내며 유혹하는 그녀였다.

"됐어. 빨리 내 꿈에서 나가기나 해."

"치잇...주인님이 피곤해 보여서 기껏 도와주려고 온건데."

투덜거리던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입술을 내밀며 양팔을 벌렸다.

"그럼 키스 한 번만 해주세요."

"신성한 성령이여. 위대한 하늘이 굽어살펴 보나니..."

내 영창에 새하얀 마법진이 그려지며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빛이 그녀를 감쌌다.

"꺄아아악! 아파앗!! 자, 잠깐만요! 일단 저도 아이린의 일부라고요?!"

소란스런 비명을 무시하고 마저 마법을 발동시키려다 아이린의 일부라는 말에 영창을 멈췄다.

"쳇."

일단은 아이린의 무의식 같은 존재라고 했으니 그녀를 없앴다가는 아이린의 몸에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른다.

신성 마법에 잔뜩 그을린 그녀는 나를 울먹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영창을 멈추자 그제서야 고통스런 비명을 멈춘 그녀가 나를 노려봤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고 내가 그 시선을 맞받아치자 결국 먼저 꼬리를 내린 쪽은 그녀였다.

서럽게 훌쩍이는 그녀를 보고 있다가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그럼 서큐버스들은 다들 아이린처럼 성인식 전에는 본능과 분리되어 있는건가?"

그녀는 삐졌다고 티라도 내고 싶은지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내가 다시 영창을 준비하자 곧바로 입을 열었다.

"씨잉... 그냥 아이린이 특이한 경우에요. 일반적인 서큐버스들은 태어날 때부터 성적인 일에 대한 교육을 받고, 정기를 갈취하는 법을 배우니까요."

그래. 지난번에 책을 읽었을  때도 서큐버스와 인큐버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남자면 인큐버스 쪽이, 여자면 서큐버스 쪽이 데려가서 키운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이린은 부모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일단 어머니 쪽은 서큐버스라는게 확실하지만 아버지 쪽은...

'인간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속에는 서큐버스의 본능이 잠들어 있다.

아마 아이린의 아버지가 인간이라 그런 것이겠지.

인간과 서큐버스의 사랑.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서큐버스에게 인간 남자는 정기를 갈취할 상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먹잇감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겠지만...'

당장 아이린과 나만 봐도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인간에게 달라붙고, 의존하는 서큐버스라니.

분명 아이린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던거겠지.

이번 기회에 아이린에 대해 좀 더 캐물어 보려고 했지만 그 순간 갑자기 머리가 욱씬거렸다.

"...크윽!"

갑작스레 찾아온 두통에 양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자 그녀는 아쉽다는듯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아~ 벌써 시간이 다 됐나 보네요. 역시, 아직 어려서 그런지 제대로 꿈에 개입하는 건 무리인가."

시야가 흐릿해졌다. 눈 앞에 있던 그녀의 모습조차 잔상만이 남는 것처럼 보였다.

"잠깐...으윽!"

점점 일그러져 가는 시야를 바로 잡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두통은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치유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마나를 다룰 수가 없었다.

좀 더 물어볼게 있는데. 아직 물어보지 못한게 많은데.

결국 더욱 심해진 두통에 나는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머릿속이 울리는 감각에 귀가 멍멍해졌다.

고작해야 꿈인 주제에 쓸데없이 디테일 했다.

"그야 평범한 꿈이 아니라 몽마(夢魔)가 만들어낸 꿈이니까요. 뭐, 아쉽게도 정기는 못 얻었지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냈으니 괜찮아요. 현실의 아이린에게도 부디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아이린은 더 대단하고, 더 약한 아이니까요."

그렇게 부드럽게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악몽이 아닌, 말 그대로 기분 나쁜 꿈이었다. 꿈에서 본 '서큐버스의 본능'이라는 존재를 생각하니 위가 쓰렸다.

설마 아이린이 나중에는 정말로 발랑까진 옷이나 입고 있던 그 여자처럼 되는건 아니겠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눈을 떠 옆을 보니 내 허리에 팔을 감은 채 나를 끌어안고 자고 있는 아이린이 보였다.

입을 살짝 벌린 채 기분좋게 자고 있는 아이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린은 기분좋은지 헤실거리며 잠꼬대를 했다.

"주인님...이히힛...거긴 안대여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아이린이 깨지 않도록 조심해서 내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팔을 풀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기에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이불을 덮어주었다.

방문을 닫으니 목이 뻐근했다.

부엌에 나와 컵에 냉수를 담아 한 잔 마시니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그녀에게 비록 다른 질문을 더 하지는 못했지만 몇 개 건진 것도 있었다.

아이린의 어머니는 서큐버스, 아버지는 인간이라는 사실.

서큐버스들에게는 '성인식'이라는 관례가 있다는 것.

문제는 서큐버스들의 성인식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서큐버스에 관련된 문헌을 수십 개나 뒤져봤지만 성인식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저 성인식 이후에 제대로 서큐버스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그 말은 다른 서큐버스들과의 교류가 전혀 없는 아이린의 경우 성인식을 치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나중에 서큐버스 한 마리 잡아와야하나.'

지난번에 말했던 7대 미궁 중 하나인 '영원한 꿈의 정원'에 가면 서큐버스들이 잔뜩 있을게 분명했다. 잡아온 서큐버스를 족쳐보면 무슨 정보라도 나오겠지.

문득, 성인식을 치르고 나서도 아이린이 내 품에 남아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황급히 고개를 돌려 떨쳐냈다.

애초에 평생 아이린을 데리고 살 것도 아니었지 않은가. 내가 아이린을 노예로 샀던 이유는 혼자 사는 삶이 적적했기 때문이다.

딱히 그녀에게 비틀린 소유욕을 품고 있었기에 산 게 아니었다.

지금 아이린이 내게 계속해서 달라붙고 스킨쉽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때까지 받지 못한 사랑 때문에 내게 의존하는 것에 불과했다.

아이린이 성인이 된 모습을 상상하던 나는 아까 꿈에서 봤던 그녀의 외모와 몸매를 떠올렸다.

내가 본 누구보다 아름다운 얼굴과 폭력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찔한 몸매.

아이린이 미래에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그런 상상을 하던 나는 문득 아이린을 상대로 추잡한 상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작해야 열세 살짜리 애한테 무슨 상상을 하는거냐.

아니면 이것도 몽마의 꿈을 꾼 영향일까.

어찌됐든, 지금 이렇게 생각해봤자 달라질 것은 별로 없었다. 아이린은 아직 고작해야 열세 살 짜리 꼬맹이였고, 그녀가 성인식을 치르기까지는 한참 남아있었다.

그 때까지는 이런 평온한 일상을 즐기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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