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260)

쫄깃쫄깃한 식감과 한 입 베어물 때마다 흘러나오는 육즙까지. 확실히 비싼 값을 하는 음식다웠다.

아이린도 나와 마찬가지로 스테이크를 꼭꼭 씹어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금세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스테이크를 먹어치우고 나니 후식으로 딸기맛 마카롱과 사과맛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아이린이 딸기맛 마카롱을 먹고는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짓길래 내 몫의 마카롱도 주었다.

아이린은 처음에는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지만 재차 내가 마카롱을 아이린의 접시에 올려주자 감사 인사를 하며 맛있게 먹었다.

사과 아이스크림은 입 안에서 살살 녹아내렸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깔끔하게 식사를 마무리 한 다음에는 주머니에 있던 가죽주머니에서 은화 다섯 개를 꺼내 접시 밑에 넣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도와준 웨이터에 대한 팁이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이런 류의 팁을 주는 행위가 흔했다.

공개적으로 웨이터를 불러 팁을 주는 것은 졸부 티를 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식당을 매일같이 오는 이들은 늘 이렇게 웨이터가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팁을 두고 떠난다.

예전에 모험가로 한창 잘 나갈 때 익혔던 것들 중 하나였다.

아이린과 내가 식사를 마치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웨이터가 다가와 계산을 했다.

"A코스 두 명해서 2골드 입니다."

미리 꺼내둔 2골드를 웨이터의 손에 올려주었다. 웨이터는 금화를 받아 서랍에 넣고는 정중히 허리를 숙여 아이린과 나를 배웅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식당을 나오며 나는 다시 아이린의 손을 맞잡았다. 아이린도 이제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은 채 길을 걷게 되었다.

거리를 걷던 도중 낯익은 모험가와 안면이 있는 주민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나와 손을 잡고 있는 아이린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무척 귀엽다는 칭찬을 하고 갔다. 아이린은 그런 사람들에게 예의바르게 인사해 잔뜩 귀여움 받았다.

적어도 거리에서 아이린과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다행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린아이와 보호자가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걸까.

집까지 돌아오는 내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랜만에 즐거운 외식을 한 것도 있지만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아이린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돌아왔다는 점일 것이다.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있었다. 비록 하루를 완전히 날렸지만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이린과 좀 더 스스럼 없이 있을 수 있게 됐으니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린도 오늘 갔던 레스토랑이 마음에 들었는지 돌아오는 길 내내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해맑은 아이린의 표정을 보니 나도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부디 이런 시간이 오래 이어질 수 있기를 어디 있는지 모를 신에게 빌었다.

다음날은 날씨가 무척 화창한 날이었다.

그리고 아이린을 시청에 보내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저께 강가에 놀러가다가 아르웬을 만났을 때, 아르웬은 이번 홍수 사태 때문에 아이들에게 대대적인 안전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재해 복구가 얼추 끝난 오늘 아침 아이린을 시청으로 보내달라고 했던 것이다.

물론 아이린 뿐만 아니라 영지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도 시청에 가서 안전 교육을 받고 올 것이다.

지난번엔 특이한 경우였고 평소엔 물이 불어난 강에 놀러가지 않거나, 어른들 허락 없이 멋대로 숲에 놀러간다거나 하는 것을 주의주려는 것이겠지.

일단은 시청에서 일을 하고 있는만큼 영지민의 안전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지난번에 짧게나마 훈계를 듣기도 했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리고 아이린의 방에 노크를 두 번 했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잠든 아이린의 모습이 보였다.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헤실거리며 푹 잠들어 있던 아이린을 깨우고 싶지 않았지만 아르웬의 부탁이니 어쩔 수 없었다.

아이린의 어깨를 살살 흔드니 금세 눈을 떴다.

"...으응...주인님?"

"그래. 오늘은 시청에서 하는 교육을 받으러 가야하니 조금 일찍 깨웠단다."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킨 아이린은 몽롱한 눈을 한 채 다시 침대에 누우려는 것을 받아냈다.

아이린은 유난히 아침잠이 많았다.

밤에 주로 활동하는 서큐버스라 아침에 약한 것인지는 몰라도 평소에 똑 부러지는 모습에 비해 아침에는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곤 했다.

나는 그런 아이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등을 토닥여 달랬다.

"졸린건 알겠지만 자는건 교육을 받고 와서 하렴. 점심 먹고 나서 낮잠 자도 되니까."

그렇게 토닥여주니 잠이 좀 깼는지 아이린은 욕실까지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다만 아직 정신을 덜 차렸는지 욕실에 들어가지도 않고 문 앞에서 셔츠와 바지를 훌렁 벗어던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침 식사 준비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미리 꺼내놨던 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냈다. 잘라낸 고기를 준비해둔 우유통에 담궜다.

장작에 불을 붙이고는 그 위에 냄비를 올렸다. 냄비 안에 기름을 푼 다음에는 버터 한 조각을 떨어뜨렸다. 향을 잡기 위해서 파스린 가루도 살짝 털어넣고는 볶기 시작했다.

은은한 향기가 슬슬 올라오기 시작하자 우유통에 담궈뒀던 고기를 꺼냈다. 꺼낸 고기는 넣기 전에 남아있던 잡내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고기를 냄비 속에 넣고 천천히 볶기 시작했다. 고기를 볶는 중간중간 썰어낸 샐러리를 털어넣었다.

그렇게 고기가 먹기 좋게 볶아지고 있을 때 즈음 갈아둔 토마토 소스를  절반 정도 냄비 안에 흘려넣었다.

아이린의 입맛에 맛도록 소금과 후추를 넉넉하게 뿌렸다.

토마토 소스까지 들어가자 슬슬 스튜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는 물을 세 컵 정도 더 부어주고는 남은 토마토 소스를 모두 냄비 안에 털어넣었다.

두 명이서 먹기에는 무척 많아 보이는 양이었지만 아이린의 식성을 감안하면 이 정도로도 모자랐다.

고기만 있으면 심심하니 창고에 있던 찬거리를 뒤적거려 감자와 버섯을 찾아냈다.

버섯을 송송 썰어서 냄비에 털어넣고, 감자의 껍질을 벗겨 냄비 안에 털어넣었다. 맛있는 스튜 냄새가 어느새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조금 시간을 들여 푹 끓이자 비로소 스튜가 완성됐다. 잘 됐나 맛을 볼 때를 맞춰서 아이린이 욕실에서 나왔다.

한 번 맛을 본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냄비를 부엌의 탁자 위로 옮겼다.

샤워를 끝낸 아이린은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의 정체가 궁금했는지 쫄래쫄래 걸어와서는 냄비 안에 담긴 것을 확인했다.

"...?"

스튜를 본 것은 처음인지 냄비 안을 쳐다보며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아기 강아지 같은 모습에 나는 그런 아이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설명했다.

"이건 스튜라는 음식이란다. 스프와는 조금 달리 여기 있는 고기와 감자를 함께 떠 먹는 거야."

그제서야 아이린은 스튜가 어떤 음식인지 이해하고는 기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나는 냄비 안에 있던 스튜중 고기와 감자가 많은 부분을 가득 퍼서 아이린의 접시에 담아주었다.

토마토 소스의 향과 파스린 가루의 향이 섞여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아이린은 조심스레 스푼을 쥐고는 스튜를 떠서 입 안으로 가져갔다. 자그마한 입술을 다물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던 아이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금방이라도 승천할 것 같은 행복한 미소를 지은 아이린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재차 스푼을 움직였다.

행복하게 먹어주는 아이린을 보니 나도 요리를 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어제처럼 고급 식당에 가서 먹는 것도 괜찮지만, 역시 내가 한 요리를 먹은 누군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게 좋다.

"입맛에 맞니?"

아이린이 허겁지겁 스튜가 담긴 접시를 비우는 걸 보면 이미 답은 알고 있지만 아이린의 입으로 직접 대답을 듣고 싶다는 내 욕망에 아이린은 성실히 답해주었다.

"고기도 입 안에서 사르르 녹고...감자도 부드러워서 맛있어요."

나는 그런 아이린에게 빵이 담겨 있는 접시를 내밀었다.

"빵을 손으로 찢어 스튜에 찍어 먹어보렴."

아이린은 내 말대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빵을 찢어서는 스튜에 찍어 소스를 묻혔다. 그 빵 조각을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리던 아이린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말이 필요 없는 반응이었다.

나도 내 몫의 스튜를 덜어 내 접시에 담아 아침을 먹었다.

즐거운 아침식사 시간이 끝나고 나는 아이린과 함께 시청까지 같이 가주기로 했다.

딱히 내가 팔불출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시청 바로 옆에 있는 바스티안 가문의 저택에 볼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앨리스의 애널에 그 막대기를 넣어놓고 거의 보름 동안 찾아보질 못했다.

앨리스도 자리를 비운 아버지를 대신해서 교회의 일의 뒤처리를 하느라 바빴고, 나 역시도 마리안과 아이린의 일 때문에 앨리스를 신경쓸 겨를이 별로 없었다.

이제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았으니 한 번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마침 오늘은 휴일이라 가게를 비워도 괜찮았다.

가게 문을 잠근 다음 아이린과 함께 시청으로 향했다.

별 말 없이 거리를 걷던 도중 나는 아이린이 내 손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혹시 지난번에 돌아올 때처럼 손을 잡고 싶어하는 것일까 싶어 아이린의 자그마한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아이린은 무척 기뻐하며 종종걸음으로 내 옆에 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 해맑은 미소에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긴장을 해서 그런것인지 손에서는 땀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린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즐겁게 거리를 둘러보고 있었다.

시청에 거의 도착하자 나는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따스한 온기가 멀어지자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아이린의 친구들 앞에서까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간 아이린이 놀림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시청의 앞에는 아이린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듣기 위해 온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지난번에 강가에 갔던 그룹의 아이들이 아이린을 알아보고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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