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디 씨! 안에 있었어요?"
"그래. 이 시간에 웬일이야?"
가게 안에 들어와 있던 사람은 플로라였다. 그녀의 양 손에는 밀짚으로 엮어만든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혹시 벌써 점심 드셨어요?"
"...아직인데."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플로라에게 차마 이미 점심을 먹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플로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듯이 자신의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자신이 양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탁자 위에 올렸다.
"루디 씨가 밥 잘 안 챙겨먹을 줄 알고 제가 이렇게 준비해왔어요!"
바구니를 열어보니 하나는 샌드위치가 가득 들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방금 막 구운 것으로 보이는 쿠키가 들어 있었다.
그러고보니 과자 만드는걸 좋아한다고 했었지.
지난번에 플로라와 관계를 맺은 이후에 다시 한 번 플로라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플로라와 내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지금 당장 사귀지는 못하지만 이제부터 플로라를 제대로 한 명의 여자로 바라보기로 한 것을 말이다.
물론 섹스한 것은 빼놓고 설명했다. 중간중간 적당한 각색과 함께 내 설명을 들은 플로라의 부모님은 의외로 쉽게 납득해주었다.
여차하면 따귀 한두 대를 맞거나 당장 꺼지라는 말을 들을 각오까지 했었는데 너무 싱겁게 끝나서 내가 당황했을 정도였다.
나중에 부모님과 화해한 플로라에게서 들은 것이지만 플로라의 부모님은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고 한다.
이번 일로 플로라와 내 관계가 진전 된다면 다행이고, 아니라면 정말로 약혼 상대를 구할 생각이었다는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약혼을 잡았다고 했던 것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쿠단의 연기는 대극단의 주연에 버금가는 열연이었다.
그렇게 진지하게 말해놓고는 사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 그게 말이야 방구야.
"너도 정말 대단하다. 이 영지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처음 듣는 이름의 남자가 약혼 상대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냐?"
그렇게 핀잔을 주니 플로라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지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때는 약혼한다는 말만 듣고 흥분해서..."
담벼락 앞에서 궁상 맞게 떨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는지 플로라는 고개를 홱홱 저었다.
"아, 아무튼! 부모님한테 허락도 받았으니 이제 마음대로 찾아올거에요!"
언제는 내 허락 받고 찾아온 것처럼 말하는구만.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았기에 나는 결국 포기했다.
내 대답을 들은 플로라는 실실 웃으며 내 옆에 다가와서는 자신이 들고 있던 바구니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바구니에 담긴 샌드위치는 샐러드와 토마토, 그리고 햄이 들어 있었다.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샌드위치를 보니 식욕이 돋았다.
불과 한 시간 전에 점심을 먹긴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먹성 좋은 아이린에게 반찬을 양보했기에 적당히 배를 채울 정도로만 먹었기 때문이다.
"후후. 제가 직접 만든 거라고요. 자. 아앙~"
어디서 본 건 있는지 한 손에 샌드위치를 들고 내 입가에 갖다댄 플로라가 염장 지르는 연인들이 흔히 하는 '아앙'을 요구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밖이었으면 틀림없이 거절했겠지만 이 곳은 내 가게 안이었기에 나는 굳이 거절하지 않고 입을 벌렸다.
플로라의 손에 들린 샌드위치가 내 입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우물거리며 샌드위치를 씹어먹었다.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샐러드와 토마토, 부드러운 빵과 육즙이 흘러나오는 햄까지.
샌드위치가 실패하기 쉬운 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든 정성이 느껴졌다.
"자, 여기 물이요."
살짝 퍽퍽한 샌드위치만 먹고 있는데 시원한 물이 담긴 물병까지 건네주었다. 역시 현모양처 같단 말이지.
연애는 몰라도 결혼은 꼭 플로랑 같은 여자랑 해야 한다. 이렇게 헌신적이고 배려심 있는 성격은 흔치 않으니까. 소위 말하는 내조의 여왕 같은 느낌이다.
"어때요? 맛있어요?"
"응. 엄청 맛있네. 고마워."
내 칭찬에 플로라는 방긋 웃으며 다시 샌드위치를 잡아 내 입에 들이밀었다.
또 다시 그건가.
보는 사람도 없고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입을 벌리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니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아이린과 앨리스가 보였다.
아이린이 방문을 꽉 잡은 손이 부들부들 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시선 역시 며칠 전에 플로라와 하고 돌아왔을 때 쳐다보던 그런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 아내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나마 앨리스의 경우에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앨리스는 이미 내가 다른 여자가 여럿 있다는 것을 얼추 짐작하고 있었다.
말은 안했지만 마리안과의 관계 역시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린과 앨리스, 두 사람의 극명한 반응을 확인한 나는 저런 시선을 받아내면서까지 이 짓을 할 자신은 없었기에 아이린과 플로라에게 손짓했다.
내가 손짓을 하자마자 아이린은 총알처럼 튀어나와 내 품에 안겼고 앨리스는 기품있는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아이린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순진한 얼굴로 옆에 자리가 많은데도 내 다리 사이에 앉았다. 아이린의 머리카락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풍겨왔다.
찰랑이는 아이린의 보랏빛 머리카락을 손으로 살살 어루만졌다.
플로라는 그런 나와 아이린을 보고 불만스러워 했지만 어린애를 상대로 질투하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는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마침 플로라가 준비해온 샌드위치의 양도 넉넉했기에 네 명이서 나눠 먹기에는 충분했다.
"그런데...앨리스 님은 루디 씨랑 무슨 관계세요?"
아이린과 달리 앨리스는 플로라에게 있어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귀족. 그것도 자신이 사는 영지의 주인이 될 사람이라 그런지 질문도 무척 조심스럽게 했다.
앨리스는 내게 잠시 시선을 줬다가 적당히 둘러댔다.
"다른 분들에게는 비밀이지만 사실 루디 씨는 대단한 마법사에요. 그래서 루디 씨에게 직접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 찾아온거랍니다."
딱히 거짓말은 아니지만.
"아...그렇군요."
플로라도 지난번에 내가 직접 마법을 쓰는걸 봤으니 납득은 했지만 여전히 앨리스와 내 관계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플로라 성격에 내가 여자가 여럿 있다는 걸 알면 곱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은데.
'괜찮겠지...?'
앨리스는 평소 고급스런 식사만 해서 이런 건 잘 안 먹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몹시 맛있게 먹었다.
"저희 가문은 귀족이라고 해도 그렇게 부유한 편이 아니라 사치를 안 부리니까요."
영지가 넓긴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사는 성 안의 면적은 적고 인구수도 많지 않다.
무엇보다 성 안에 머무는 인구들 중 사분의 일은 세금을 내지 않는 모험가들이다.
물론 그들 덕분에 치안이 유지되고 있지만 그래도 세금을 걷지 못하는 것은 영주의 입장에서 꽤나 뼈아프리라.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샌드위치는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내 허벅지 사이에 엉덩이를 밀어넣고 앉아있는 아이린 때문이었다.
하나도 남겨두지 않겠다는듯이 전투적으로 샌드위치를 먹어치우는 아이린은 무척 화가 난 것 같았다.
샌드위치만 먹기도 그래서 차를 한 잔 대접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부엌에 가서 찬장에 있는 찻잎을 꺼내고 물을 끓였다.
네 명 분의 차를 준비하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가게에 활기가 도는 것 같기도 해서 기분이 좋았다.
찻잎을 깊이 우려내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차를 네 잔 접시에 담아 다시 탁자로 돌아오니 이상한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마치 여자 세 명이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어색한 느낌이랄까.
정확히 말하자면 플로라와 아이린의 사이에서 불꽃이 튀고 있었고 앨리스는 쿠키를 집어먹으며 그런 두 사람을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돌아온 것을 가장 먼저 확인한 앨리스가 아이린과 플로라를 가리키며 작게 속삭였다.
"혹시 여기서 여자를 더 늘리실 생각은 아니시죠? 그랬다간 큰일 날 것 같은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내 걱정은 기우였다.
플로라도 앨리스도 기본적으로 예의를 아는 여인들이었기에 먼저 분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물론 플로라와 아이린 사이의 묘한 기싸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앨리스의 태도를 본 플로라는 앨리스가 내게 관심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렇게 플로라가 매일같이 찾아오고, 앨리스와 아이린에게 꾸준히 마법수련을 해주는 동안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물론 단순히 훈련만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린이 친구들과 놀러간 동안에는 가게 문을 닫아놓고 앨리스를 불러내 내 방에서 섹스를 하기도 하고, 사흘에 한 번 정도는 밤에 몰래 마리안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플로라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변태적인 취미를 갖고 있었다.
"츄릅...우음..."
바로 지금처럼 내 탁자 밑에 들어가서는 내 물건을 빨아대는 것이었다.
아이린은 지금 자기 방에서 마법서를 읽으며 공부하고 있었고 지금은 사용한 포션을 채우러 오는 모험가들이 찾아오는 이른 저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흙먼지가 묻은 갑옷을 입은 단골이 찾아왔다.
그는 중년의 남자로 이 영지에서는 꽤나 견실한 모험가 파티를 이끄는 리더 중 하나였다.
"오늘은 꽤나 힘든 의뢰를 수행하셨나 보군요."
단골에게 묻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래. 시청에서 오크의 숫자를 줄여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그 수가 많아서 고전했지 뭐야. 뭐, 그래도 결국 다 잡았으니 보수는 두둑하겠지."
"그것 참 축하드릴...으윽..."
말을 하던 도중 입술을 강하게 오므리며 내 물건을 빨아대는 플로라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