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곳을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 들었지만 잠시 후 드러난 저택의 위용을 보고 나는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앨리스의 저택보다도 훨씬 커 보이는 거대한 저택이 나왔다. 설마하니 숲 속에 이런 거대한 저택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소녀는 저택의 입구에 도착하자 자신이 입고 있던 고풍스런 고딕 드레스의 끝자락을 잡아올렸다.
마치 기품 있는 귀족가의 여식이 스스로를 소개하듯이, 그녀는 옥구슬이 굴러가는 목소리로 스스로를 소개했다.
"이 곳은 우리들의 아버지이자 주인님인 '트라다 쿠스만'님이 남긴 저택. 그리고 나는 주인님의 첫 번째 자식인 '릴리스'야."
트라다 쿠스만. 연금술과 마법을 익힌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었다.
500년도 더 되는 과거의 일이었다. 마법이 비로소 정형화되어 안정되기 시작할 무렵.
마법사가 아닌 이들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하는 물건을 제작하는 것을 '마도학'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트라다 쿠스만은 그 '마도학'의 기초를 정립한 인물이었다.
단순히 포션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던 연금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온갖 마도공학품을 만들어내며 보급한 것 역시 그였다고 한다.
마법의 근원과 발전을 다루는 책이라면 절대 이 이름을 뺴놓?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천재였으니까.
하지만 다른 위인과 달리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는 수십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누군가는 그의 천재성을 시기한 다른 이가 살해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가 가진 돈을 노린 강도에게 납치당했다고도 했다.
어느 쪽이든 근거 없는 뜬소문에 불과했다.
그렇게 수십년, 수백년이 흘렀고, 지금의 책에서는 단순히 실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 이름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전설'이라 불리울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였다면 자신만의 학파나 마탑을 설립하고 싶은게 정상이지만 그는 늘 홀로 연구를 했고, 그의 지식을 연수받은 이도 아무도 없다고 했다.
'설마하니 사라지고 호문쿨루스를 만들고 다녔을 줄이야.'
아마 모습을 감춘 것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호문쿨루스 제작을 규제했기 때문이리라.
남들의 시선을 피해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거점이 필요했을테고, 그게 아마 제국 변두리인 바스티안 영지. 그 중에서도 사람이 잘 찾지 않는 남쪽 숲이었던 것이겠지.
눈 앞의 인형같은 소녀. 릴리스는 웃으며 저택의 철창에 손을 뻗었고, 그녀의 마나를 인식한 철창이 드르륵거리며 문을 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철창은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50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지 않으니 말이다.
릴리스는 음산한 고성처럼 보이는 저택으로 나를 데려갔고, 저택의 입구에 도착하자 메이드 복을 입은 다른 여자와 만날 수 있었다.
릴리스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녀 역시 무척 아름다웠다.
고양이처럼 휘어진 눈매에 코가 오똑해서 그런지 날카롭고 깐깐해 보였지만 특유의 아름다움은 감출 수 없었다.
찰랑거리는 금발이 허리까지 흘러내렸고, 메이드 복장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꽤나 커보이는 가슴이 부각되었다.
분명 호문쿨루스라 시력이 나쁠 일도 없을텐데도 안경을 끼고 있었다.
"모네! 다녀왔어!"
"릴리스. 제가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죠. 그보다 뒤에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그녀는 경계어린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차가운 안경이 빛을 받아 번뜩이는 것만 같았다.
릴리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식으로 나를 소개했다.
"으응... 그러니까... 주인님 냄새가 나는 사람이야."
"그런가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거겠죠."
릴리스의 택도 없는 설명에도 '모네'라 불린 여자는 납득한 것 같았다.
나를 다시 한 번 힐끔거리더니 귀족가에서 으레 볼 수 있는 자세로 우아하게 인사했다.
메이드복의 양 끝자락을 잡아 올리며 허리를 숙였다.
릴리스는 그런 모네의 뒤에 서서 흘러내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저는 주인님의 두 번째 자식인 '모네'입니다. 부족하지만 주인님의 유산을 관리하는 것과 함께 저택의 시녀장을 맡고 있습니다."
날카로우면서도 꼼꼼한 인상의 그녀의 소개를 들은 나도 스스로를 간단하게 소개했다.
"제 이름은 루디. 남쪽 숲의 이상한 점을 조사하다가 릴리스를 만나서 여기까지 오게됐습니다."
"..이상한 점이라뇨?"
"영지에 돌아온 모험가가 릴리스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있고, 최근 남쪽 숲에 찾아온 모험가들 몇 명이 실종됐습니다. 그걸 조사하러 온 것입니다."
"...릴리스?"
내 설명을 들은 모네의 눈이 악마처럼 번뜩였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릴리스는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고 있었지만 결국 모네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다.
"으으... 오빠! 모네 좀 말려줘!"
릴리스의 애원에도 나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딱 보니 저택의 총책임자는 모네인 것 같은데 굳이 그녀와 척을 질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시선을 돌리자 릴리스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발버둥쳤지만 결국 한참 동안 모네에게 훈계를 듣게 됐다.
"정말이지! 제가 제멋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말했었죠! 인간을 만난것도 모자라 처리까지...!"
잔뜩 화가 나서 설교를 늘어놓는 릴리스는 양 손을 들어올린 채 벌을 섰다.
중간 중간 나를 쳐다보며 좀 말려달라고 시선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나는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돌렸다.
대충 한 시간 가까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모네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조금 진정한 모네는 자신의 안경을 치켜올리며 입을 열었다.
"우선 릴리스가 루디 씨에게서 '주인님'의 냄새를 맡았다는 것은 아마 사실일겁니다."
"그런데 '냄새'라는게 무슨 뜻이죠? 체취를 말하는겁니까?"
트라다 쿠스만이 사라질 때 그의 나이는 예순이 넘었다.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라고 해봤자 홀아비 냄새 뿐일텐데. 만약 그런 냄새가 난 것이라면 나는 조금 슬플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모네는 고개를 저었다.
"릴리스가 말하는 냄새는 아마 '약초'냄새 일겁니다. 연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몸에 베게 되는 그 냄새요. 저도 릴리스만큼은 아니지만 희미하게 맡을 수 있습니다."
연금술의 기초는 아무래도 약초나 독초를 기반으로 하다보니 특유의 냄새가 남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맡지 못할텐데, 호문쿨루스라 그런건가?
"그 냄새와 이 저택에 들어올 수 있는 이유가 무슨 상관입니까?"
단순히 약초 냄새가 나는 것만이라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건 저희 주인님이 남기신 유언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이 저택을 찾아온 사람이 있다면 그가 내 유산을 물려받을 자격이 있는지 테스트하고, 그 시험을 통과하면 저택을 비롯한 주인님이 소유하고 계신 모든 지식을 양도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거 또 상당히 골때리는 양반이구만. 절대 순순히 주진 않겠다는 심술궂은 심보가 느껴졌다.
특히 마도학을 새로 정립한 양반이었으니 시험도 보통 어려운게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물러날 생각은 없지만.'
전설이라 불리우는 마법사의 지식을 모두 넘겨받을 수 있다.
마도공학과 관련된 서적이든, 호문쿨루스의 제조 비법이든 마법사들에게 있어서는 무척 군침 도는 먹잇감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시험을 치르실 생각이시군요."
"특별한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릴리스 저 아이가 당신을 데려올 정도면 어느 정도 실력은 있다는 뜻이겠죠. 저래 보여도 그런 부분에서는 확실한 아이니까요."
릴리스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반쯤 내리고 한 숨 돌리고 있다가 모네와 내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하자 울상을 지으며 다시 팔을 들어올렸다.
그런 릴리스를 보며 피식 웃은 나는 모네에게 시험을 치르는 방법에 대해 질문했다.
모네는 시험의 규칙과 내용에 대해 알려주며 저택을 구경시켜 주었다.
둘러볼 겨를이 없어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 저택의 정원에 있는 식물들은 모두 고급 약초였다. 심지어 대륙을 통틀어도 몇 없는 꽃마저 존재했다.
대체 어디서 이런게 났냐는 내 질문에 모네는 자신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있었다는 대답밖에 들려주지 않았다. 혹시 500년 전에는 저 꽃도 흔했던 것일까.
정원을 지나 저택 안쪽으로 들어가자 모네 말고도 다른 호문쿨루스 몇 명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여성체라는 것과 상당한 미녀라는 점이었다.
그래도 릴리스처럼 어린아이 체형은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릴리스가 '첫 번째 자식'이랬으니 500년 가까이 살아온 맏언니임에도 육체도, 정신 연령도 어린아이였다.
저택 안에 있던 그녀들은 모네와 마찬가지로 메이드복을 입은 채 저택 곳곳을 청소하고 있었다.
모네의 옆에 서서 걸어가던 나와 눈이 마주치면 조금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미소를 지어주었다.
모네는 저택 방을 하나씩 짚으며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응접실, 식당, 부엌, 회의실 등 다양한 용도를 가진 방들의 설명을 듣던 도중 내 시선을 사로잡는 방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서고.
500년 전의 마법에 대해 서술된 서적과 트라다 쿠스만이 직접 작성한 논문, 보고서들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죽치고 앉아서 천천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모네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내지 못하고 나는 서고를 나왔다.
또 다른 하나는 창고였다.
당시 마도학을 성행시키며 돈을 무지하게 벌어들인 거부답게 창고에는 온갖 보석과 수백 년 전의 제국에서 사용되었을 금화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 역시 재산으로는 어디서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인 재화들을 보면 기가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엇다.
단순히 보석과 금화뿐만 아니라 트라다 쿠스만이 직접 개발한 마도구와 상당히 높은 순도의 마나석들도 잔뜩 놓여 있었다.
그야말로 보물의 섬이나 다름 없었지만 내 물건이 아니었기에 나는 얌전히 모네를 따라 나왔다.
물론 모네가 말한 세 개의 시련을 통과한다면 저 것들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그 때의 일이었다. 지금의 나는 단순한 손님에 불과하니 괜히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저택을 모두 소개 받은 다음 저택의 뒤편으로 나오니 거대한 공터가 나왔다. 공터에는 내 키의 두 배 정도는 되어 보이는 샌드 골렘이 세 대 있었다.
"아까 말씀드렸던대로 첫 번째 시련은 주인님이 직접 제작하신 샌드 골렘을 쓰러뜨리는 것입니다. 단, 핵은 파괴하시면 안 됩니다."
모네가 말한 세 개의 시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