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시련은 무력의 증명. 샌드 골렘을 쓰러뜨리는 것으로 자신의 힘을 증명한다.
두 번째 시련은 지혜의 증명. 트라다 쿠스만이 남겨놓은 보고서 중 하나를 읽고 그 이론을 모네에게 직접 설명한다.
마지막 세 번째 시련은 자격의 증명. 이 저택에 남아있는 '호문쿨루스'들에게 스스로가 유산을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으라고 했었지.
앞의 두 가지는 그렇다쳐도 세 번째 시련은 조금 애매모호했다. 호문쿨루스들에게 인정을 받으라니. 아첨이라도 떨어야 하는 것인가 싶었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눈 앞의 샌드 골렘이 허리춤에 박혀 있는 붉은 핵을 반짝거리며 육중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으니까.
트라다 쿠스만이 직접 만든 샌드 골렘이다. 일반적인 샌드 골렘과 동급으로 생각했다간 낭패를 볼 것이 분명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내게 주먹을 휘두르는 샌드 골렘을 향해 달려들었다.
샌드 골렘. 흙으로 만들어진 골렘에 마법적 처리를 해서 만들어진 몬스터다.
골렘들 중에서는 가장 흔한 편이다.
허리에 박혀 있는 붉은 색의 '핵'을 파괴하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단점 때문에 강력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지금의 나는 핵을 파괴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 귀찮았다.
핵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공터의 흙을 매개체로 계속해서 몸을 복구할테니까.
게다가 골렘들 중 드물게 파괴될수록 더욱 강화되는 종류도 있는만큼, 대책 없이 부술 생각은 없다.
묵직한 골렘의 주먹이 날아오는 것을 옆으로 도약해서 피해내는 순간, 다른 골렘이 내가 도약한 위치를 향해 주먹을 내려찍었다.
예상외로 빠른 반응에 놀라며 황급히 뒤로 몸을 던졌다. 내가 남아있던 자리가 움푹 파이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골렘들은 대부분 힘은 무식하게 강하지만 연계 공격이나 전략이 없다시피 하기에 중견 모험가쯤 되면 쉽사리 공략할 수 있는 녀석이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트라다 쿠스만이라는 천재 마법사가 남긴 유산답게 놈들은 유기적으로 공격을 연계하고 있었다.
'성가시구만.'
마음 같아서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저 핵을 단숨에 부숴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실격처리 되겠지. 나는 손가락을 튕겨 마법을 발동시켰다.
붉은 색의 마법진이 허공에 그려지며 엄청난 열기로 타오르는 불화살들이 샌드 골렘들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역시 흙으로 만들어진 골렘인 탓인지 불화살을 모두 뒤집어 썼음에도 금세 불씨가 사그라들었다.
녀석들은 불화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덩치 큰 샌드 골렘 세 명이 나를 포위해서는 계속해서 주먹을 휘두르다 보니 자연스레 구석에 몰리게 되었는데, 그 순간 모네의 얄미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고로 공터 바깥으로 나가시면 장외패입니다."
샌드 골렘 세 놈의 덩치만 해도 공터의 사 분의 일을 차지하는데 저런 소리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모네는 재차 자신의 안경을 치켜올리며 나와 샌드골렘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내일은 몸이 고생 좀 하겠구만.
몸 안의 마나를 끓어올리며 오른손에 마나를 갑옷처럼 겹쳐 둘렀다.
지난번 재키와 싸울 때 그랬던 것처럼, 몸에 마나를 두르면 단순한 주먹질이라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나를 포위한 샌드골렘 중 한 마리가 육중한 주먹을 나를 짓뭉개기 위해 휘둘렀다.
내 머리를 향해 정확히 날아오는 샌드 골렘의 주먹질에 나 역시 마나를 두른 주먹을 내밀었다.
까앙! 분명 부딪친 것은 주먹이었지만 마치 검과 검이 맞부딪친듯한 소리가 공터에 울려퍼졌다. 더불어 이 쪽을 보고 있는 모네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그야 내 주먹과 부딪친 샌드 골렘의 팔이 산산조각 났으니까.
내 주먹과 부딪친 순간 작은 균열이 생긴 샌드 골렘의 주먹은 그대로 부서졌고, 이어서 녀석의 팔 마저 완전히 붕괴해버렸다.
한쪽 팔이 사라지자 균형을 잡기 힘든지 녀석은 비틀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조금 있으면 금세 팔을 복구하겠지만.
'그 전에 끝내야겠지.'
한 놈이 비틀거리는 틈을 타 공터의 중앙으로 빠져나갔다. 이번에 사용할 마법은 꽤나 강력한 놈이라 직접 바닥에 마법진을 그려야했다.
여전히 멀쩡한 샌드 골렘 두 마리가 쿵쿵 거리며 내 쪽으로 달려왔고, 나는 그 때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마법진을 모두 그려낼 수 있었다.
급하게 그리느라 평소의 나 답지 않게 삐뚤삐뚤하고 엉성한 마법진이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모든 것을 가두는 억겁의 얼음은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영창이 끝나고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네 역시 그 점을 이상하게 여겼는지 나를 빤히 쳐다봤지만 나는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공터를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푸른 빛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마법진을 사용하는 것은 오랜만이라 몸의 마나가 쫘악 빠져나가며 탈력감이 들었지만 금세 본래의 페이스를 찾았다.
고작 이 정도로 쓰러졌다면 스승인 할망구가 당장 나를 마탑에 끌고 가서 재교육시켰겠지.
이윽고 하늘에 그려진 마법진에서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얼음조각들이 샌드 골렘들을 향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공터 안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처럼 차가워졌다.
처음에는 꽤나 잘 버텼던 샌드골렘들이었지만 계속해서 쏟아져 내리는 얼음 덩어리들마저 버텨낼 수는 없었다.
이미 그들의 발은 꽁꽁 얼어붙은 채 조금의 움직임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놈들은 몸을 짓누르는 얼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공터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굉음이 진동했다.
게다가 방금 전 내가 사용했던 불화살 때문이 뜨거워져 있던 샌드 골렘의 몸의 온도가 급속도로 식어내리며 놈들의 몸에 자그마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가뭄에 비틀어진 땅처럼 갈라지기 시작한 균열은 그들의 몸 전체에 걸쳐 일어났다.
서서히 커지는 균열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놈들의 몸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거대한 암석 덩어리들이 되어 바닥에 떨어지자 몇 번 들썩들썩거리더니 결국에는 완전히 움직임을 정지했다.
거대한 돌더미 아래에 깔린 세 개의 핵을 모두 회수한 나는 모네에게 돌아왔다. 붉은 핵을 받은 모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시험의 통과를 알렸다.
"축하드립니다. 이걸로 첫 번째 시련을 통과하셨군요. 곧바로 두 번째 시험을 보시겠습니까?"
"...아니. 두 번째 시험은 다음에 보는걸로 하지."
체감상으로는 숲에 들어온지 벌써 반나절이 넘었다. 가게에서 홀로 남아있을 아이린을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돌아가시는 길에 릴리스를 붙여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시험을 보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찾아와 주십시오."
'생각보다 담담하군.'
하다못해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모네는 딱히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방금 전에 내가 샌드 골렘의 주먹을 정면에서 받아냈을 때도 조금 놀란 것이 전부였다.
단순히 감정의 기복이 적은 것인지, 그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상념에 잠기려는 순간 뒤에서 나타난 릴리스가 내 옆에 달라붙었다. 어린아이처럼 구는 릴리스는 아이린과 정반대 같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은 어른인 아이린과 나이는 많지만 정신은 어린애인 릴리스.
마침 둘의 체형도 비슷했기에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절로 상상됐다. 아이린이 언니 역할, 릴리스가 동생 역할을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릴리스는 내가 첫 번째 시험을 통과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더니 방방 뛰어댔다.
"정말? 역시 오빠는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딱히 할 말이 없어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릴리스의 뒤를 따라 걷자 그녀는 심통난 표정으로 내 다리를 걷어찼다. 그래봤자 어린애의 투정이라 아프지도 않았다.
"쳇. 오빠도 전 주인님이랑 똑같아. 말도 적고 재미없어."
전 주인. 트라다 쿠스만이라는 이름의 천재 마법사이자 연금술사. 인륜에 어긋나는 호문쿨루스를 만들어낸 괴짜. 릴리스의 말을 듣고 나는 그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눈 앞의 소녀를 만들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피처럼 선명한 붉은색 머리카락. 루비처럼 반짝이는 보석같은 눈. 아직 어리지만 입고 있는 고딕 드레스가 나이에 걸맞지 않는 배덕감과 요염함을 일으켰다.
'그래봤자 꼬맹이긴 하지만.'
외모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그녀의 행동은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으면 금세 삐지고, 자그마한 일에도 신나서 잔뜩 이야기를 늘어놓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녀가 호문쿨루스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트라다 쿠스만은 호문쿨루스를 만들어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고작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많은 호문쿨루스를 만들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저택에 있던 호문쿨루스들은 내가 본 것만 해도 열 명이 넘었으니까.
결국 답은 세 개의 시련을 모두 통과하고 나서야 알 수 있겠지.
저택을 나가는 길에 다른 호문쿨루스들이 몇 명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들은 저택의 정원에서 꽃을 가꾸고 나무의 가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릴리스를 본 그녀들은 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귀여워했다.
그들은 내가 '트라다 쿠스만'의 유산을 물려받기 위한 첫 번째 시련을 통과했다는 말에 놀라워 했지만 딱히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았다.
아까 모네가 알려줬던 '세 번째 시련'을 통과하려면 다른 호문쿨루스들의 호감 역시 중요할 것 같았기에 나는 그녀들과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었다.
다행히 그녀들은 내게 경계심을 보이지 않고 미소로 응해주었다.
그 결과 알아낸 것은 이 저택 안의 호문쿨루스들은 대부분 '인간'과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음식, 취미도 천차만별에 몸짓과 습관적인 행동이 모두 달랐다.
트라다 쿠스만이 얼마나 신중하게 호문쿨루스를 하나씩 제조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릴리스와 함께 정원을 나왔다. 그녀들은 뒤에서 또 오라며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었다.
다시 한참 동안 릴리스의 뒤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결계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으니 안 가르쳐줘도 돼."
내 말에 릴리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악동같은 웃음을 지었다.
짖궂은 장난이 생각났을 때 지을법한 표정을 한 릴리스는 내게 달라붙어서는 애교를 부렸다.
"오빠... 영지 안에 나 한 번만 데려가주면 안 돼? 어차피 나중에 저택에 다시 찾아갈 때도 내 도움이 필요하잖아. 응?"
아무래도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궁금한 것 같았다.
붉은 눈동자를 연신 깜박거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릴리스는 무척 아름다웠지만 나름대로 여자 경험이 많은 편인 나는 거기 넘어가지 않았다.
"저택에 돌아가야 되는 거 아냐? 아까도 저택 밖에 멋대로 나갔다고 모네한테 혼났잖아."
내 말에 찔렸는지 릴리스는 동공이 흔들렸다. 아마 나중에 모네에게 혼날 것을 생각한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