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악! 뭐 하는 짓이에요!"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빤히 쳐다보며 눈을 마주치자 앨리스는 그제서야 자신이 릴리스를 너무 쳐다봤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시선을 돌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건 그렇고 릴리스의 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나름 미(美)에 초탈한 나도 릴리스를 보는 순간 잠시 넋을 놓을 정도였으니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당장 정신을 잃고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고보니 아이린만 멀쩡하네.'
아이린은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릴리스의 외모를 보고도 경계 어린 태도만을 보일 뿐 딱히 다른 사람들처럼 홀린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당장 지금만 봐도 아이린의 뒤를 쫓아다니는 릴리스를 귀찮다는 듯이 밀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릴리스는 자기 또래의 애를 만난 것이 처음이라며 계속 아이린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마족이라 그런 것인지, 아이린에게 특별한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린이 릴리스와 나름대로 잘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닥투닥 거리면서도 화를 내지는 않는게, 나이 차이가 꽤 있는 자매 관계 같아 보였으니까.
어리광을 잘 피우고 말괄량이 기질이 있는 릴리스, 맏언니답게 동생들을 잘 돌보고 요령있게 일을 잘 해치우지만 가끔씩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린.
어느 쪽도 고르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아이들이었다.
투덜거리면서도 앨리스는 시청과 모험가 길드 측에 모험가들의 남쪽 숲의 출입을 금지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내가 모든 시련을 통과하고 난다면 괜찮겠지만 그 전에 욕망에 충실한 모험가들이 남쪽 숲의 결계 안에 들어갔다가 다른 호문쿨루스들과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혹시나 싶어 릴리스에게 물어봐도 '모네는 엄청 강하니까 괜찮아!'라는 말만 반복할 뿐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 지난번에 모네는 마법사지만 마법은 거의 못쓴다고 하지 않았나.'
마법을 못 쓰는 마법사가 의미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당장 눈 앞의 릴리스만 봐도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지만 어지간한 모험가는 박살낼 수 있는 무력이 있으니 더 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아마 호문쿨루스의 신체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다른 종족의 부위를 갖다 쓰다 보니 겉으로만 인간이고 알맹이는 어지간한 괴물에 육박하는 무력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럼...일단 먼저 씻으렴."
릴리스는 옷도 갈아입혀야 하고, 내가 마법으로 우산을 씌워주긴 했지만 물이 튀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릴리스는 씻으라는 내 말에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선의 의미를 생각하던 나는 혹시나 싶어 입을 열었다.
"설마 너..."
"난 혼자 못 씻어. 오빠가 같이 씻겨 줘."
"수백 년이 넘게 살았으면서 혼자 못 씻는다고?"
어이가 없어 되묻자 릴리스는 되려 자랑스런 표정으로 가슴을 내밀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에는 청결 마법이 부여되어 있어서 더러운게 묻어도 금방 깨끗해지고, 냄새도 안 나는걸. 가끔 씻는 것도 늘 모네가 함께 씻겨줬어."
결국 나는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릴리스를 씻기는 것은 문제가 없다.
처음에는 인형같은 그녀의 외모에 놀랐지만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후로는 큰 감흥은 없었다.
문제는 나와 릴리스를 노려보고 있는 아이린 쪽이었다. 묘하게 질투어린 시선으로 나와 릴리스를 노려보던 아이린은 결국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주인님. 그럼 제가 릴리스랑 같이 목욕을..."
"그래줄래?"
아이린의 빠른 커버에 나는 화색을 띠었지만 오히려 릴리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칭얼거렸다.
"싫어어...오빠도 같이 씻자. 응?"
칼같이 거절하려 했지만 눈물까지 고인 채 애원하는 릴리스와, 내가 함께 씻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린을 보며 결국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욕실이 작은 편은 아니지만 세 명이 들어가기에는 조금 비좁았다.
마법으로 데운 따뜻한 물을 욕조 안에 붓고, 물 온도를 확인했다. 아이들의 피부는 민감하니 너무 뜨거우면 화상을 입을지도 모른다.
물론 하나는 반마족에 하나는 호문쿨루스긴 하다만.
그래도 아이린과 릴리스 모두 평범한 아이처럼 대해주고 싶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아직 그녀들은 호문쿨루스와 마족으로서의 힘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아직 어린아이일 뿐인 둘을 괴물 취급하는 것은 둘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좋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욕조의 물이 얼추 맞자 나는 욕실 밖에 있던 아이린과 릴리스를 불렀다.
릴리스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달려왔고, 아이린은 그런 릴리스의 뒤를 쫓아 쭈뼛쭈뼛 걸어왔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린은 릴리스와 달리 수치심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가슴팍과 허리를 감싸는 수건을 한 장 걸치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가슴팍과 허벅지를 감싸는 수건의 모습이 요염했다.
조금만 수건이 흔들려도 둔부와 가슴 둘 중 하나가 노출되기 때문인지 아이린의 걸음걸이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특히 내 시선을 자각한 후로는 얼굴을 붉히며 걸치고 있던 수건을 강하게 끌어안으며 자신의 몸을 가렸다.
부끄러워 하는 아이린도 정말 귀여웠다.
그래도 더 쳐다보면 릴리스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볼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욕조에서 비켜주었다.
그러자 릴리스는 곧바로 욕조 안으로 뛰어들었고,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욕조의 물이 흘러넘쳤다.
바다의 파도가 치듯이 출렁인 물이 내 바지춤을 적셨다.
어차피 비로 잔뜩 젖은 옷이니 별로 상관은 없었다.
나는 바지춤을 걷어올리며 팔을 뻗어 비누를 움켜쥐었다.
비로 어느 정도 씻어냈지만 내 손은 흙투성이였다.
비누를 손에 비비며 거품을 내자 등 뒤로 아이린이 조심스레 욕조에 몸을 담궜다.
릴리스는 그런 아이린에게 가볍게 물을 튀기며 물장구를 쳤고, 아이린은 발끈하면서도 한 손으로 수건을 꽉 잡고 있었다.
아이린의 몸을 감고 있던 수건은 물을 먹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처럼 흔들렸다.
다행스럽게도 굴절 때문에 아이린의 부끄러운 부분이 보이는 일은 없었지만 그걸 모르는 아이린은 자꾸만 이쪽을 힐끔거리며 수건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저건 저것 나름대로 귀여우니 괜찮았다.
오히려 저 정도 경계심과 수치심 정도는 있는 편이 좋다. 릴리스처럼 알몸으로도 거리낌없이 첨벙거리면 이쪽을 남자로 생각하긴 하는건지 의심이 드니까.
비누 거품을 잔뜩 낸 손을 물로 헹구고는 적당히 욕실의 발판 위에 걸터 앉았다.
여전히 릴리스는 아이린에게 물을 튀기며 웃어대고 있었고, 아이린은 어떻게든 한 손으로 반격하려 했지만 역부족으로 물을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훈훈하기도 하고, 뭔가 재밌기도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노는 것을 지켜보다 들려온 릴리스의 말에 잠시 얼굴이 굳었다.
"오빠. 오빠는 옷 안 벗어?"
욕실 안에서도 계속 옷을 입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릴리스의 의심은 어떻게 보면 타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옷을 벗을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딱히 이상한 분위기가 되거나, 음심이 동한 것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내 '몸'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때까지 알몸이 된 적은 몇 번이나 있었다. 다른 여자들과 섹스를 할 때도 나는 몇 번이나 알몸을 보여줬었다.
하지만 그들은 눈 앞의 두 소녀와 달리 평범한 인간이었다. 때문에 내가 내 몸에 걸어놓은 '환각 마법'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걸 몸에 직접 새겨넣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쉽사리 눈치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내 몸에는 온갖 상흔들이 남겨져 있다. 모험가로 활동하는 동안 생겨난 무수히 많은 상처들은 평범한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 구역질을 일으킬 정도로 흉했다.
당장 어릴 때 입었던 거대한 화상자국이 등짝에 남아 있었다. 모험가로 활동할 때, 침대에 들어가서 내 상처를 본 여모험가들이 놀라는 일도 종종 있었다.
물론 그녀들은 온갖 일을 다 겪은 별종들이라 내 몸의 상처를 훈장같다며 오히려 좋아했지만.
지금 내가 머무는 곳의 여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니 그녀들이 싫어할만한 것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릴리스의 경우에는 마나에 대해 둔한 것 같지만 아이린은 다르다. 마나 자체를 다루는 마족인 그녀가 내 마법을 꿰뚫어볼 수도 있었다.
어린아이에게 보여줄만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옷으로 몸을 감추는 것이었다.
아이린이 보기 흉한 내 몸을 보고 상처받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어차피 너희 씻기고 나면 나는 따로 씻어야 해서 괜찮아. 그것보다, 몸 좀 불렸으면 슬슬 나와라."
멍하니 있는 사이에 이미 욕조에 들어간지 10분이 넘었다.
내가 릴리스에게 손짓하자 릴리스는 아쉬워하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릴리스가 욕조에 걸터 앉고는 다리만을 욕조에 담궜다.
그리고 나는 비누로 거품을 낸 손을 그녀의 머리에 갖다댔다.
릴리스의 머리카락은 아무런 저항 없이 내 손가락이 들어갔다. 하다못해 흙먼지를 뒤집어쓰면 조금 뻑뻑하기라도 해야하는데, 손에 걸리는 것 하나 없었다.
릴리스의 두피를 꾹꾹 눌러주며 그녀의 머리에 거품을 잔뜩 냈다. 릴리스는 이상한 감각이라며 꺄르륵거렸지만 아이린은 그런 릴리스가 신경 쓰였는지 자꾸만 시선을 돌렸다.
그 다음에는 대야에 받은 물을 릴리스의 머리 위로 부었다.
대야에 담겨 있던 물이 릴리스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거품을 모두 씻어냈다.
머리에 거품이 남아있지 않도록 손으로 머리를 감기며 두어 번 정도 더 대야에 물을 받아 릴리스의 머리에 부었다.
연달아 물을 뒤집어쓴 릴리스는 비에 쫄딱 젖은 생쥐꼴이 되었지만 그래도 좋다고 실실 웃고 있었다.
돌리고 있던 몸을 이쪽으로 향해서 그런지 소위 말하는 '중요 부위'가 가감없이 드러났다.
아직 덜 여문 핑크빛 꼭지와 희미하게 한 두 가닥씩 나 있는 붉은 색 음모. 이제 막 여물기 시작한 풋풋한 소녀의 몸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릴리스는 저 상태로 500년을 있었다는 것이겠지만.
호문쿨루스는 처음 만들어진 모습에서 변하지 않는다.
머리카락과 손톱이 자라는 정도라면 모를까, 체형이 변하는 일은 없다.
만약 호문쿨루스가 '성장'한다면 이미 그건 호문쿨루스라 부를 수 없는 무언가였다.
결국 릴리스는 저 몸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