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260)

조금의 수치심도 없이 자신의 알몸을 드러낸 릴리스는 새하얀 다리를 내게 쭉 뻗었다.

그녀의 말랑말랑한 종아리를 잡은 나는 오소리의 털로 만든 솔에 바디 워시의 거품을 묻혔다.

거품을 잔뜩 묻히고 나서 왼손으로는 릴리스의 다리를 잡고, 솔을 쥔 오른손으로 릴리스의 다리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솔에 묻어있던 거품이 더욱 불어나며 릴리스의 매끈한 다리에 거품을 일으켰다.

"으응... 뭔가 오싹오싹한 기분..."

릴리스는 솔로 몸을 문지르는 것이 처음인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택에서 모네 씨가 씻겨줄때는 어떻게 씻었는데?"

"늘 모네가 직접 손으로 씻겨줬어요."

그 차가워 보이던 여자가 알몸으로 릴리스와 함께 목욕을 하며 손으로 씻겨준다니. 쉽사리 상상이 가질 않았다.

"으읏...간지러...아읏."

처음에는 생소한 감각이라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째 갈수록 목소리가 더욱 야릇하게 변해갔다.

릴리스의 알몸을 봤을 때 아무런 음심도 품지 않았지만 그녀의 몸을 솔로 문지를 때마다 야릇한 신음을 토해내니 나도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이린은 그런 릴리스와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차마 끼어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양 다리 다음에는 허벅지였다.

릴리스가 자꾸만 몸을 꼬는 바람에 제대로 씻길 수가 없게 되자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다른 허벅지를 누른 채 솔을 움직였다.

움직이는 릴리스를 따라 몸을 비틀다가 실수로 욕조의 모서리에 팔꿈치를 살짝 베였다.

별로 아프지도 않은, 조금 긁힌 정도라 신경쓰지 않고 마저 손을 움직였다.

아이린의 시선도 있는만큼 최대한 서둘러 일을 끝낼 생각에 솔을 급하게 움직이다보니 솔이 릴리스의 안쪽 허벅지 깊숙히까지 닿았다.

"...아흥."

이전과 달리 명백한 신음소리에 아이린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눈을 번뜩이는 아이린을 보니 나는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묘하게 얼굴이 달아오른 릴리스가 양 손으로 내 팔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그 사이로 보이는 귀여운 배꼽, 핑크빛 콩알이 선명하게 보이는 앙증맞은 젖가슴, 찰랑거리는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까지.

진작에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긴 했다.

"...오빠... 방금 거 뭐야? 좀 더 안쪽까지 씻겨주면 안 돼?"

분명 나는 로리콤이 아닌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내 팔을 꽉 잡고 있는 릴리스는 마치 달콤한 것을 처음 먹어본 어린아이처럼 내게 좀 더 많은 '쾌감'을 갈구했다.

호기심과 흥분이 반반인 눈을 반짝이며 내 손을 자신의 둔덕으로 끌어가려 했다. 나는 그런 릴리스의 루비처럼 반짝이는 릴리스의 눈동자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멍하니 릴리스가 이끄는 대로 그녀의 둔덕으로 향하던 내 손을 멈춘 것은 아이린이었다.

"그만해. 주인님이 싫어하시잖아."

아이린의 차가운 목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마치 머리에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화들짝 일어난 정신이 그제서야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릴리스의 허벅지 사이로 슬금슬금 기어 들어가던 손을 회수하고, 릴리스의 다리에 차가운 물을 끼얹었다.

그녀의 다리에 묻어 있던 거품이 모두 사그라들며 씻겨나갔다.

달아오른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릴리스는 잠시 어리둥절 하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녀를 다시 씻길 수도 없는 노릇.

다행스럽게도 아이린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릴리스와 함께 씻겠다고 말해준 덕분에 나는 자연스레 욕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분명 방금 전 릴리스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차라리 아이린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음마(淫魔)인 서큐버스라면 알몸으로 접촉해서 본능이 반응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릴리스는 서큐버스가 아닌 호문쿨루스였다.

사실 나는 릴리스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된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마법에 대해서는 대륙 제일, 연금술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고 나름대로 자부하지만 호문쿨루스라는 존재는 그런 내게도 생소한 존재였다.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되고, 흑마법과 마찬가지로 연구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호문쿨루스를 만드는 것 역시 워낙 필요한 재료가 많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수백 년 전 마법사들이 꿈꿨던 헛된 희망이라 치부된 것이 현실이었다.

나는 릴리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녀가 어떻게 강력한 힘을 얻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인간다운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말이다.

결국 또 창고에 있는 고서들을 뒤적거려 봐야하는건가.

호문쿨루스는 서큐버스 보다도 알려진 정보가 적다.

서큐버스는 그래도 현대에 여전히 남아있는 존재지만, 호문쿨루스는 실체가 드러난 적도 없는 상상 속의 생명체니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는 짓이나 다름 없었다.

'차라리 트라다 쿠스만에 대해 좀 더 알아보는게 낫겠군.'

그 영감이 대체 무슨 의도로 호문쿨루스들을 만든 것인지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마법사란 존재는 원래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 법이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마법, 비술, 연구의 결과물들을 남들에게 자랑하지 못해 안달난 종족이다.

그런데 트라다 쿠스만은 이렇게나 많은 호문쿨루스들을 만들고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것이 제국이 법적으로 금지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릴리스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유산을 물려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은 시련을 모두 통과하고 그의 연구 결과와 기록을 보고 추측해야하나.'

욕실을 먼저 나와 웃옷을 벗었다. 팔을 들어 방금 전 베였던 팔꿈치가 살짝 까져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는 이미 멎었기에 수건으로 핏자국을 닦아냈다.

욕실 안에서는 아이린이 릴리스와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지한 쪽은 아이린 뿐이고, 릴리스는 장난을 치며 즐거워하는 것 같지만.

붉은 핏기가 묻어 있는 수건을 내 옷과 함께 바구니에 넣었다. 방으로 돌아가 새로운 셔츠와 바지로  갈아 입었다.

아이린의 방에 들어가 릴리스가 갈아 입을만한 옷을 꺼냈다.

릴리스에겐 조금 크겠지만 그렇다고 내 옷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적당한 셔츠와 바지를 두 벌 꺼내 욕실 앞에 놓고, 그녀들의 식은 몸을 데워줄 차를 끓였다.

아이린도 아직 어려서 그런지 차도 일반적인 홍차보다는 밀크티처럼 우유와 설탕을 넣어서 주는 것을 좋아했다.

릴리스의 취향은 모르지만 어린애처럼 구는 그녀의 태도를 생각해봤을 때 아이린과 비슷할 정도로 달게 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홍차를 세 잔 끓인 다음, 내 몫의 한 잔을 제외한 두 잔에는 우유와 설탕을 듬뿍 넣어 밀크티를 만들었다.

밀크티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을 때, 욕실의 문이 열리며 릴리스와 아이린이 나왔다.

그런데 릴리스는 처음 욕실에 들어올 때 알몸이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아이린과 마찬가지로 허리에 수건을 감고 있었다.

완전히 닦아내지 못한 물기가 릴리스의 붉은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릴리스는 밀크티의 향을 맡고는 곧바로 내게 달려왔다.

그 와중에 허리를 감고 있던 수건이 흔들리며 매끈한 허벅지가 다 드러났지만 본인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오빠. 달콤한 냄새가 나는데 뭐야?"

"밀크티야. 홍차에 우유를 넣었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릴리스의 뒤에 서 있던 아이린은 몇 번인가 내가 타준 밀크티를 마셔본 경험이 있기에 곧바로 이해했지만 릴리스는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홍차...? 으으... 난 홍차 싫어. 저택에 있을 때 모네도 맛없는 홍차만 매일 마신단 말이야."

홍차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지 기피하는 릴리스였다. 확실히 스트레이트는 어린애들에게 조금 이르지. 모네의 성격상 릴리스에게 밀크티를 만들어주는 수고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다도를 익히는 것이야 말로 기품있는 일이라고 다그쳤겠지.

절로 상상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말고 마셔봐."

밀크티가 담긴 잔을 릴리스에게 내밀자 릴리스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 오르는 잔을 손에 쥔 채 한참 동안 냄새를 맡다가 조심스레 한 모금을 머금었다.

처음 한 모금을 마신 다음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꼴깍, 꼴깍 거리며 밀크티를 단숨에 다 마셔버렸다. 뜨겁지도 않나.

"오빠! 이거 엄청 맛있어!"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한 잔 더 줘!"

"그건 안 돼."

어린 애들이 우유를 많이 마시면 설사를 하거나 배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지난번에 아이린이 밀크티를 세 잔이나 마셨다가 그 날은 하루 종일 배앓이를 했다.

"치잇...오빠 쪼잔해."

"그럼 릴리스 넌 앞으로 밀크티 없다."

내 말에 릴리스가 펄쩍 뛰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빈 잔을 꽉 움켜쥐었다.

"아앗! 그런게 어디있어!"

"그거야 타주는 사람 마음대로지. 앞으로도 마시고 싶으면 '죄송합니다.'라고 해."

이번 기회에 릴리스를 길들일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천방지축 기질이 있는 릴리스는 내 예상을 벗어날 수도 있으니 늘 고삐를 쥐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내 명령에 릴리스는 우물쭈물 거리면서도 결국은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래. 앞으로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렇게 솔직하게 사과하면 되는거야. 알겠지?"

늘 같은 호문쿨루스들 사이에서 귀여움 받으며 자라온 릴리스였기에 이렇게 남에게 사과하는 것에는 서툴러 보였다.

모네의 경우에는 일방적인 훈계 뿐이었기에 오히려 릴리스가 반항을 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할 생각이었다.

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흔쾌히 사과를 받아주자 그녀는 히힛하고 웃으며 기분좋게 미소를 지었다.

"응. 오빠."

"그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오빠가 아니라 아저씨라 부르렴."

아무리 그래도 열살 남짓으로 보이는 릴리스에게 오빠라고 불리는 것은 생리적으로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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