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뒤에 앉아 있는 마리안은 이미 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거리낌없이 마법을 사용해서 불을 피웠다.
물이 끓는 동안 나는 마리안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러고보니 요즘은 잘 지내십니까? 최근 일이 많아서 찾아가지 못했네요."
"네. 마을 사람들도 다들 친절 하시고, 제가 대신전에 있을 때 계셨던 사제분들과 수녀님들도 이곳으로 많이 오셔서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마리안과 대화할 때의 좋은 점은 딱히 이야깃거리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마리안은 늘 신전 안에서 지내기 때문에 내가 모험가로 활동했을 때의 모험담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관계를 맺은 후에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처럼 내가 해주는 모험담을 들으며 잠든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내가 모험가가 된지 얼마 안 됐을 때 오크 무리와 마주쳤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사이에 어느새 물이 모두 끓었다.
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 그 안에 곱게 편 찻잎을 넣었다.
시간이 지나자 향긋한 박하 향기가 방 안 가득 퍼지기 시작했다. 마리안과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때 즈음에는 찻잎이 완전히 우려져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마리안의 앞에 잔을 하나 두고 나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아리안은 잔을 양 손으로 쥔 채 호호 불어서 차를 홀짝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입맛에 맞았는지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차를 마셨다.
"그러고보니 루디 씨는 별 일 없으셨나요?"
별 일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내 방에서 잠들어 있을 릴리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내가 지난번에 읽었던 인물사전에서 트라다 쿠스만은 신전과도 꽤나 친분이 있다고 했었다. 물론 그가 호문쿨루스를 만들기 전의 이야기다.
마리안에게 그걸 묻는 것은 양날의 검이나 다름 없었다.
당장 500년 전 제국이 호문쿨루스 제작 실험을 막은 이유 중 하나가 교회의 격렬한 반대 때문이었으니까.
신을 섬기는 그들은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멋대로 생명을 창조하며 신의 흉내를 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고작 그런 것이겠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교리에 위배하는 짓을 하는 마법사들을 규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 마리안에게 호문쿨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어쩐지 물어봐야만 한다고 오랜 세월동안 단련된 내 감이 속삭이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를 이상하게 여긴 마리안이 먼저 말을 걸었다.
"루디 씨,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안색이 별로 안 좋으신데요."
나는 방금 전의 생각을 곱씹었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다 결론을 내린 나는 입술을 떼었다.
"마리안 씨. 트라다 쿠스만이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사실 말하면서도 마리안이 모른다고 딱 잘라 말하면 어떡하나 싶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예상이 맞았는지 그녀는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알고 있어요.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분이잖아요."
그래.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유명하지. 하지만 마리안은 마법사가 아니다.
세간의 정보에 어두운 성녀가 알 정도라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트라다 쿠스만의 입김이 교회에 닿아 있다는 소리였다.
"사실 최근에 그 분의 흔적을 발견했는데, 그에 대한 정보가 터무니 없이 적어 곤란하던 참입니다. 그렇게 자료를 찾다보니 트라다 쿠스만이 예전에 교회와 상당한 친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어본 겁니다."
"500년도 더 된 사람의 흔적이라니. 역시 루디 씨는 평범한 분이 아니시네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 모금 홀짝인 마리안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루디 씨가 알고 있는 사실은 반쯤 맞다고 볼 수 있어요. 트라다 쿠스만 씨는 23대 교황님과 친분이 있었다고 해요. 그것도 단순히 아는 사이가 아니라 절친한 친구였다고 들었어요."
역시 역사에 길이 남을 마법사쯤 되면 친구도 급이 남달랐다. 교황이라니.
평범한 사람은 생전에 한 번 얼굴을 보기도 힘든 사람이 아닌가.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마리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자그마치 500년 전의 일이니까요. 저도 그렇게 들었던 것 뿐이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였는지는 몰라요. 다만 트라다 쿠스만 씨가 해마다 교회에 내는 헌금만 해도 왕궁을 두 번 지을 수 있는 금액이라고 들었어요."
당시 트라다 쿠스만은 마도 공학의 선구자인 것과 동시에 수완 좋은 사업가이기도 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마도 공학품을 대량 생산 했고, 대륙의 가정 곳곳에 마도구를 보급했다.
당연히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을테고, 그에게 있어 그만한 헌금을 내는 것은 썩 어려운 일도 아니었겠지.
"그런데 마리안 씨는 어떻게 트라다 쿠스만 씨에 대해 알게 되신겁니까?"
교황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해도 수백년 전의 사람이었다. 마리안이 신경쓸 필요는 없었다.
"그야 제가 입고 있는 성녀복도 트라다 쿠스만 씨가 만들어놓은 것들 중 하나니까요. 뛰어난 연금술사인 것과 동시에 인류의 정점에 산 마법사였던만큼, 교회의 성녀와 교황을 위해 특별한 옷을 제작해주셨어요."
마법 무효화 마법, 투사체 방어 마법, 고통 감소 마법, 청결 마법, 정화 마법 등 온갖 마법들이 부여된 것으로도 모자라 옷의 천에 오리하르콘을 얇게 바른 다음 마법적인 처리를 더해 칼로 찔러도 구멍 하나 나지 않는다고 한다.
신에게 선택받은 성녀들은 대부분 세 명에서 네 명 정도인데, 전의 성녀가 물러나고 새로운 성녀가 선발되면 트라다 쿠스만이 만들어준 성녀복을 물려 입는다고 한다.
한 마디로 지금 내 앞에서 마리안이 입고 있는 옷은 만들어진지 500년도 더 된 골동품이란 소리였다.
물론 골동품이라고 해도 이 옷의 가치를 생각하면 절로 억소리가 나온다.
트라다 쿠스만은 나처럼 포션과 약이나 조금 만들 줄 아는 아마추어 연금술사가 아닌 진짜배기 연금술사였다. 그의 유산 중에는 이런 연금술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겠지.
혹시라도 성녀복의 제작법을 찾게 된다면 조금 변형해서 아이린과 릴리스에게 옷이라도 만들어 줘야겠다.
물론 이 영지 안에 있는 한 다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의 일이라는게 있는 법이었다.
"트라다 쿠스만 씨는 교회가 지금처럼 커지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신 분 중 하나에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시는 바람에 교황님께서 사람을 풀어 찾았지만 아무도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걸 루디 씨가 찾다니..."
마리안이 기대감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마리안은 다 좋은데 이런 점이 약간 부담스러웠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한 행동 하나하나를 치켜 올려주며 의미를 부여한다.
나를 너무 과대평가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었다. 고작해야 제국 구석에 틀어박힌 퇴물 마법사일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루디 씨가 찾은 트라다 쿠스만 씨의 흔적은 어떤 것인가요?"
드디어 가장 걱정했던 질문이 왔다.
흔적을 찾았다고 했을 때부터 당연히 물어볼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조금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입술에 침을 바르며 목을 가다듬었다. 갑자기 분위기를 잡는 내 행동에 마리안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손에 들려있던 찻잔을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내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하나는 릴리스의 존재를 직접 마리안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트라다 쿠스만의 '호문쿨루스'를 발견했다고 설명한다.
이쪽이 설명하기도 쉽고, 마리안에게도 납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선택지를 고르지 못했다. 이건 너무나도 이기적인 짓이었기에.
호문쿨루스의 존재는 교회에서 언급조차 꺼려지는 '배척'의 대상이다.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지고 있던 호무쿨루스와 키메라들을 모두 죽이고 파괴한 것이 바로 교회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여전히 생명을 창조하는 행위는 교회의 역린과도 같았다.
교회에서 가장 높은 이는 교황이지만 가장 고귀한 이는 성녀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교회의 상징과도 같은 성녀인 마리안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연히 호문쿨루스를 말살하려고 해야한다. 그게 그녀가 이때까지 배워 온 것이고, 교리에 맞는 일이니까.
하지만 마리안은 나를 의식해서 그런 기색을 숨길 것이다. 릴리스가 아직 어린아이라는 것과 내가 데리고 있다는 점이 그녀를 망설이게 만들 것이다.
마리안의 성격은 이미 완전히 파악했다. 순진하고, 거짓말을 못 한다. 정이 많기 때문에 우유부단한 면을 보일 때가 많다.
그녀가 릴리스에 대해 고민하며 혼자서 끙끙 앓아댈 것이 눈에 선했다. 내 일 때문에 그녀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마리안에게는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었기에 그걸 악용하고 싶지 않다.
트라다 쿠스만이 교회와 친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 이상 마리안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겠지.
"사실, 그렇게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단순한 추측일 뿐이지요. 괜히 지금 말씀드렸다가 나중에 허탕을 치면 쑥스러우니 좀 더 확신이 들면 그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금은 김빠지는 내 대답에 마리안도 눈에 띄게 실망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나도 마음 같아선 마리안에게 모두 알려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모르는 편이 그녀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알았어요. 루디 씨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죠. 대신, 나중에 확신이 생기시면 꼭 알려주셔야해요?"
"물론입니다."
유난히 마리안을 상대로는 거짓말을 자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은 드셨습니까? 아직 안 드셨다면 제가 근처에 괜찮은 식당을..."
가게에서 식사를 대접하기에는 당장 내 방에 릴리스와 아이린이 있다.
만약 잠에 취한 둘 중 한 명이라도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내가 열심히 한 거짓말은 금세 들통이 나 버린다.
호문쿨루스든 서큐버스든 교회와는 상극인 존재였다. 다른 사제의 눈에 띄였다간 당장 틀에 매달아 화형을 시켜도 이상하지 않겠지.
"아뇨. 괜찮아요. 아침이라면 이미 신전에서 먹었고, 오늘은 그냥 루디 씨 얼굴을 보려고 찾아온거니까요."
"다음에는 오기 전에 미리 말씀을 주신다면 다과라도 준비해놓겠습니다."
"후훗. 기대할게요."
그렇게 인사를 한 마리안이 가게 밖으로 나가자 대기하고 있던 성기사들이 내쪽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마리안의 들려준 이야기 덕분에 트라다 쿠스만에 대한 정보가 조금 더 모였다.
호문쿨루스를 연구하던 이가 교회에 그렇게 막대한 헌금을 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혹시 트라다 쿠스만이 은거한 것이 제국의 규제 때문이 아니라 절친한 친구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교황의 절친한 친우가 교리에 어긋나는 호문쿨루스를 연구하는 학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친구의 입지가 위험해질지도 모르니 모습을 감춘 채 연구를 한 것이다.
트라다 쿠스만이 가진 황금과 명성이라면 충분히 제국의 규제를 정면을 맞받아칠 수 있었다. 누가 뭐라하든 그는 최고의 마법사이자 연금술사였으니까.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긴 하지만 실제로 호문쿨루스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기까지 했다.
머리 한 구석에 남아있던 석연치 않은 부분이 이제야 해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