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가 끝난 후에 찾은 곳은 플로라의 어머니가 근무하는 옷가게였다. 이 영지에 있는 옷가게들 중 유일하게 고급 의상들을 취급하는 곳이었다.
가게에 들어서자 다른 손님을 안내하고 있던 직원이 플로라의 어머니를 호출했다.
"어머. 루디 씨.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지난번 플로라의 일 때문에 분위기가 어색할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했다.
"이 녀석이 입을만한 속옷이랑 옷 좀 추천해 주십시오."
그제서야 릴리스를 처음 본 그녀는 잠시 동안 넋을 놓고 릴리스를 쳐다봤다.
내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알았다는 말과 함께 릴리스를 데리고 매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고급 의류점이다보니 옷 뿐만 아니라 고급스런 여성 속옷도 팔고 있었다.
한쪽 벽을 모두 차지한 브래지어와 형형색색의 팬티들이 자꾸만 시선을 끌었다.
지난번에 아이린을 데리고 여기 올 때도 그렇지만 참 눈 둘 곳이 없는 곳이었다.
사라진 두 사람을 기다리며 의자에 아이린과 함께 앉아 있는데, 살짝 붉어진 얼굴의 아이린이 내게 다가와서는 귀에다가 속삭였다.
"주인님...사실 저... 가, 가슴이 조금 커졌는데 새 속옷을 사면 안 될까요?"
아이린은 자기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웠는지 홍조를 띤 얼굴로 작게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나도 왠지 부끄러워져서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조금 있다가 직원 분이 오시면 물어보렴."
요즘 아이들이 어떤 속옷을 입는지 알 턱이 없는 나로서는 아이린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 봤을 때는 무척 아담한 가슴이었는데, 벌써 브래지어가 작게 느껴질 정도로 성장한 것일까.
아이들의 성장은 무척 빠르구나... 또 다시 상념에 빠질 뻔한 내 의식을 낚아챈 것은 떨리는 아이린의 목소리였다.
"저는 주인님이 골라주시는 걸로 사고 싶은데..."
그렇게 말한 아이린은 차마 내 얼굴을 마주볼 수가 없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피곤해서 환청을 들은걸까.
마음 같아선 아이린에게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발갛게 물든 그녀의 귓볼을 보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럼 저걸로."
사고가 반쯤 정지한 나는 눈을 감은 채 손을 뻗어 아무 속옷이나 가리켰다. 차마 그걸 확인할 자신은 없어서 쳐다보지는 못했다.
"저, 저거요?!"
화들짝 놀라는 아이린의 반응에 내가 잘못 고른건가 싶었지만 이제와서 무른다면 그 편이 더 이상하게 보이리라.
"...부끄럽지만,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그런 말을 하며 아이린은 걸려 있던 브래지어를 들고 탈의실 안쪽으로 사라졌다. 탈의실 너머로 옷을 벗는 소리와 브래지어의 후크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덩달아 나도 침을 삼켰다. 살면서 이렇게 긴장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아이린이 속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무슨 말을 해야할까.
칭찬을 하면 오히려 변태같아 보일테고, 그렇다고 쓴소리를 하면 쓰레기가 따로 없었다.
어느 쪽이든 지뢰 밖에 없는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찾던 순간, 탈의실의 천막이 걷히며 속옷을 갈아입은 아이린의 모습이 드러났다.
천막이 천천히 걷어지며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아이린의 방황하는 시선이었다. 아이린은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고개를 돌린 채 천막을 완전히 걷었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에 나는 입을 벌렸다. 탈의실에서 나온 아이린이 입고 있는 것은 차마 속옷이라 부르기도 힘든 것이었다. 하늘거리는 레이스가 달린 란제리 슬립.
그것도 하필이면 검은색이라 퇴폐미가 물씬 풍겨오는 종류였다.
움푹 파인 가슴골이 그대로 들어나고, 봉긋한 아이린의 젖가슴이 속살까지 비쳤다.
란제리 슬립이라 그런지 몰라도 입고 온 바지까지 벗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드러나는 허벅지 사이로 드러난 흰색의 팬티가 보였다.
아이린이 머뭇거리면서도 자신의 몸을 드러내 보여주는 모습이 쓸데없이 배덕감 넘쳤다.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는 것 같은 기분.
이대로 있다간 코피를 쏟을 것만 같았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세뇌했다.
그래, 이건 아버지가 딸의 속옷을 골라주는 것일 뿐이다. 어디에서나 있는 평범한...
평범한 일일 리가 없잖아! 대체 세상 어느 집에서 아버지가 딸 속옷을 골라주냐고!
속으로 소리치자 그제서야 거침없이 뻗어나가던 뇌내 망상을 간신히 멈췄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었다간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
"저...주인님. 역시 저한테 이런 건..."
아이린은 그런 내 태도를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겼는지 붉은 홍조를 띤 얼굴로 부끄러워 했다.
...그래. 아이린은 나름대로 큰 용기를 내서 입은 것이다. 비록 눈을 감고 고르긴 했지만 저걸 고른 것도 나니 당연히 아이린에게 솔직한 감상을 들려주는 것이 맞겠지.
"아냐. 그... 흠흠. 너무 잘 어울려서 잠깐 당황한 거란다."
저런 입지 않는 것만도 못한 속옷이 잘 어울린다고 하는 것은 어떤가 싶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린은 그런 내 칭찬에도 좋아해 주었다.
"정말인가요? 주인님?"
눈을 반짝이며 기뻐하는 아이린을 보니 역시 칭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린은 자존감이 낮다보니 작은 칭찬에도 무척 기뻐하곤 했다.
문제는 기뻐하는 아이린이 거리낌 없이 내게 다가오는 바람에 내려보는 자세에서 아이린의 란제리 안쪽 부분이 비쳐 보였다.
아이린에게는 조금 컸는지 가슴과 란제리 사이가 살짝 벌어져 있었고, 그 때문에 아이린의 핑크빛 콩알이 그대로 드러났다.
"크흡!"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다가온 아이린을 살짝 밀어냈다. 무척 가녀린 아이린의 양 어깨를 잡은 채 부드럽게 밀어내자 아이린도 그제서야 자신이 하려 했던 행동을 자각하고는 몸을 돌렸다.
아이린의 새하얀 등과 브래지어의 선이 보였다. 매끈한 그녀의 등을 뒤에서 꼭 끌어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다른 직원분들이 보실 수도 있으니 어서 갈아입으렴."
"아...알겠습니다. 주인님."
아이린은 다시 탈의실 안으로 들어간 다음 가림막을 쳤다. 가림막 너머로도 아이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직원한테 저걸 계산해달라고 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으려나.
아이린 같은 어린애한테 저런걸 입히는 변태라고 오해받을지도 모르고...
'에라, 모르겠다.'
방금 전 아이린의 모습이 워낙 매력적이라 사고회로가 모두 다 불타버린 것만 같았다.
이성적인 사고보다는 본능이 기민하게 반응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눈은 무의식적으로 아이린의 몸을 향했다.
아직 미성숙하고 아담하지만 예쁜 가슴, 속이 비치는 슬립 너머로 보이는 귀여운 배꼽, 아직 어린애 티가 나는 새하얀 팬티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자신은 이상했다. 아이린을 이런 시선으로 본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물론 아이린의 '본능'이 꿈에서 나왔을 때는 조금 흥분했지만, 지금처럼 어린 아이린을 보고 음심을 품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로리콤, 쓰레기, 변태, 호색한. 부정적인 온갖 단어들이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호흡을 가다듬으려는 순간, 주홍빛 원피스를 입은 릴리스와 플로라의 어머니가 함께 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내게 달려오는 릴리스를 받아줘야했다.
"어때? 예뻐? 귀여워? 막 끌어안아 주고 싶어?"
자신만을 보라는 듯이 내 앞에 선 릴리스는 온갖 포즈를 잡으며 자신의 귀여움을 과시했다. 실제로도 원피스를 입은 릴리스는 또래의 아이들처럼 순수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이 잔뜩 뿜어져 나왔다.
플로라의 어머니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듯이 웃고 있었다.
"그래. 귀엽네. 그걸로 살거지?"
"응! 그리고 이 언니가 다른 옷도 몇 개 더 추천해줬어!"
언니라니. 플로라의 어머니가 젊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서른 중반이다. 서른 하나인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데 언니는 조금... 그렇게 생각하는데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소름돋는 웃음을 짓고 있는 플로라의 어머니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저 옷이랑 추천해주시는 것으로 몇 벌 더 챙겨달라'고 했고, 그제서야 그녀는 평소처럼 웃으며 '감사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로 응대했다.
참고로 아이린의 경우에는 다른 직원 분의 추천을 받아 아까 그 속옷(?)과 함께 자신의 사이즈에 맞는 것을 몇 개 더 구매했다. 아이린은 그렇게나 많이 필요없다고 했지만 나는 모두 구매했다.
지금이야 괜찮다고 하더라도 조금 후에 여름이 오면 속옷이 여러 벌 필요하기 마련이다.
냄새도 그렇고, 청결도 그렇고 속옷은 여러 벌 있을수록 좋았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속옷 구매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고서점에 들러 트라다 쿠스만에 대한 책을 찾았다.
수백년도 더 전의 인물이라 그와 관련된 서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렇게 서적 몇 권을 구매한 다음, 지난번에 갔던 카페에 들러 케이크를 비롯한 디저트를 잔뜩 사서 돌아왔다.
이제 부양해야할 입이 두 명이나 되기 때문에 지출도 더 늘어났다.
물론 큰 금액은 아니었기에 무리는 없었다. 내가 포션을 팔아 얻는 수익으로도 충분히 감당 가능한 지출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먼저 아이린과 릴리스가 씻도록 했다. 혼자 씻겠다고 하는 아이린을 따라 들어간 릴리스가 욕실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그러는 동안, 나는 고서점에서 사 온 책들을 뒤적였다.
다른 책들처럼 마법에 대해 다루며 잠깐 나온게 아니라 트라다 쿠스만이라는 인물 하나에 대해 다룬 책들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상세한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트라다 쿠스만의 친구들 중에는 교황 뿐만 아니라 제국의 왕실 기사단 단장도 있었다. 마탑의 마탑주, 제국을 주름잡던 대상인까지. 정말로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그의 인맥은 상상을 초월했고, 그 인물들과의 관계 또한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던 도중 나는 이상할 정도로 정보가 적은 한 페이지를 발견했다.
이름은 프레이 쿠스만.
트라다 쿠스만의 여동생으로 어릴때부터 몸이 병약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외적으로 존재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거주지 또한 불명. 죽은 것이 아니냐는 소문 또한 돌지만 정작 트라다 쿠스만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짤막한 세 문장이 그녀에 대해 적혀 있던 정보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