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어떻게 우리 집에는 멀쩡한 사람이 없냐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 구석에서 집 주인이 이상한 놈인데 그런 사람이 있을리가 있냐고 타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렇겠지.
오늘 우리가 가는 곳은 영지의 강 상류에 있는 계곡이었다.
지난번에 놀러갔던 강변보다 훨씬 멀리 위치해 있지만 그만큼 풍경도 좋고 무엇보다 물이 깨끗해서 물고기도 많이 살고 있었다.
내 양 옆에서 걸어가는 두 녀석 때문에 거리를 걸어가는 길에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끌었지만, 지난번처럼 우리 뒤를 쫓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저 홀린듯이 지나가는 우리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영지 안에 위치한 작은 뒷산에 불과했지만 의외로 비탈이 심해 올라가기 힘들었다.
숲 속을 제 집처럼 돌아다니던 릴리스와 모험가로 활동할 때 이런 산을 탄을 매일같이 탔던 나와 달리 아이린은 비탈진 산을 오르는 것을 힘겨워 했다.
그래서 중간중간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는 바위들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경우에는 내가 아이린을 등에 업은 채 이동했다.
아이린은 내 목덜미를 양 손으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중간중간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아이린에게 혹시라도 땀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린은 불쾌해 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를 등 뒤에서 끌어안은 자세가 부끄러운지 얼굴에 홍조를 옅게 띄고 있었다.
조금만 발을 삐끗해도 굴러떨어지는 험한 비탈을 보며 동네 애들은 어떻게 이런 산을 돌아다니는 것인지 궁금해졌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조금 더 완만한 길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계곡에 도착한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겉옷을 벗어 던졌다. 숨을 몇 번 고르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의 풍경이 보였다.
지난번에 사람들에게 들었던대로 계곡의 경치는 상당한 절경이었다.
깎아지른 폭포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물줄기와 무성한 숲이 만들어낸 풍경은 쉽게 볼 수 없었다.
바닥의 자갈들을 발로 차서 치운 다음, 바구니에 담겨 있던 돗자리를 깔았다. 조금 울퉁불퉁한 지형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마법으로 바닥을 평평하게 정리할 수도 있지만,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보면 마법의 본질을 잊게 된다.
이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하는 편이 아이들의 경험을 위해서라도 좋을 것이다.
언제까지가 내가 아이들의 곁에 붙어서 뒤치다꺼리를 해줄 수도 없는 일이니까.
돗자리를 깔고,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돗자리 위에 올라오자 나는 바구니에 담겨있던 도시락통을 꺼냈다.
도시락통에 담긴 음식들을 꺼내자 닭튀김 냄새가 화악 퍼졌다. 아이린과 릴리스의 시선은 닭튀김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먼저 닭튀김이 담긴 통을 내려놓고, 그 옆에 있던 샌드위치를 꺼냈지만 릴리스와 아이린은 이미 정신 없이 닭튀김을 손에 쥐고 먹기 시작했다.
앙증맞은 입술을 벌려 튀김의 겉옷을 씹자 바삭바삭한 소리가 들려왔다. 온도 조절 마법 덕에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나던 닭튀김을 호호 불어가면서 맛있게 먹는 그녀들이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샌드위치를 하나 손에 들고 베어먹었다. 부드러운 빵의 식감과 함께 채소와 잘 버무려진 소스의 맛이 느껴졌다.
그렇게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계곡 주변을 천천히 돌아다니던 도중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폭포가 쏟아지는 곳의 한 구석에서만 물고기가 보이질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잘만 활개치고 돌아다니던 물고기들의 모습이 이곳에서만 보이질 않았다.
'어째 여기만 물 속이 잘 안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곳은 한 점 흐림없이 투명한 계곡이었지만 유난히 이 부분만은 물의 색이 탁해보였다.
'...혹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몬스터 중에 이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녀석은 놈 밖에 없었다.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거친 폭포수가 쏟아지는 곳 바로 코앞이었으니 계곡에 놀러온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고 말이다.
옷이 젖는 것은 싫은데.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셔츠를 걷었다.
팔뚝을 드러낸 다음, 손가락으로 작게 마법진을 그렸다. 계곡의 물고기가 다 죽어버렸다간 난리가 날테니 적당히 위력이 약한 놈으로 골랐다.
전격계 마법. 물 속에서 사는 몬스터에게는 그 이상 치명적일 수가 없는 속성이었다.
"라이트닝 볼트."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그려진 노란빛 마법진이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향해 번개를 내질렀다.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흐릿하게 보이던 부분이 잠시 부글거리더니 잠시 후 무언가가 튀어올라왔다.
거의 내 몸만한 거대한 도마뱀이 물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허공에 떠오른 녀석의 몸을 놓치지 않도록 곧바로 달려들어 잡아챘다.
폭포의 물처럼 푸른 가죽을 가진 녀석은 마법을 직격으로 맞았는지 내게 제압당하고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간간이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찔거릴 뿐이었다.
소란이 저쪽까지 들렸는지 상황을 파악하러 온 릴리스와 아이린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내 손 밑에 깔려있는 몬스터를 보고 작게 감탄을 터뜨렸다.
워터 드레이크. 물이 맑은 곳에서만 사는 도마뱀 계열의 몬스터다.
딱히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몬스터는 아니지만, 특이한 가죽 색 때문에 귀족들이 키우는 관상용이나 가죽을 벗겨 가구의 재료로 비싸게 거래되곤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장점이 있다면.
'이 놈이 그렇게 정력에 좋다던데.'
원래 산의 좋은 기운을 받고 살아가는 영물들이 으레 몸에 좋다고 소문난 것처럼, 워터 드레이크를 잡아먹으면 정력이 좋아진다는 소문은 모험가들 사이에서 꽤나 흔한 이야기였다.
입맛을 다시며 놈을 응시하자 나와 눈이 마주친 놈의 몸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때까지 가만히 있던 워터 드레이크가 빠져나가기 위해 꿈틀댔다. 하지만 전격 마법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었는지 몸을 조금 움직이는 것으로 그쳤다.
마음 같아선 당장 이 놈을 회 뜨고 싶었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워터 드레이크를 쳐다보고 있는 두 소녀 앞에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특히 아이린은 워터 드레이크에게 약간의 동정심 마저 보이고 있었다. 마치 다 죽어가는 강아지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워터 드레이크를 불쌍히 여기는 아이린의 태도 때문에라도 차마 이 자리에서 녀석을 잡을 수는 없었다.
아이린이 자신의 생명의 동아줄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놈은 내가 놈을 억누르던 손을 떼자 아이린 앞으로 재빨리 기어가서는 아이린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애교를 부렸다.
혀를 낼름거리며 중간중간 몸을 뒤집어 자신의 배를 보이기까지하며 복종의 모습을 보이자 아이린은 그런 워터 드레이크가 재밌는지 쿡쿡 웃으며 귀여워했다.
나와 비슷한 덩치의 대형 도마뱀을 귀여워하는 아이린의 미적 감각이 의심스러웠지만, 저렇게 동물을 귀여워하는 아이린의 모습은 처음봤기에 조금 망설여졌다.
어느새 워터 드레이크의 턱을 어루만지며 꺄르륵 거리는 릴리스와 머리를 쓰다듬는 아이린을 보니 잡아먹기는 글른 것 같았다.
"아이린."
내가 부르자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며 워터 드레이크를 쓰다듬던 손을 뗀 아이린은 나와 워터 드레이크를 곁눈질했다. 아이린의 안 좋은 버릇 중 하나였다.
자꾸만 내 눈치를 본다는 것. 물론 노예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적어도 아이린이 이제 나를 단순한 주인님이 아닌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랬다.
"... 내 눈치 보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주렴. 저 녀석을 키우고 싶니?"
이번에는 타겟을 바꿔 릴리스에게 열심히 애교를 부리고 있는 워터 드레이크를 가리키자 아이린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인님. 주인님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면 꼭 키우고 싶어요! 제가 먹이도 주고, 잘 관리할테니까...키우면 안 되나요?"
간절한 아이린의 부탁에 나는 그녀의 머리 위에 툭 하고 손을 올린 채 천천히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아이린의 머리칼의 감촉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리가 있나. 앞으로도 부탁이 있거나 원하는게 있다면 이번처럼 솔직하게 말하면 된단다. 알겠지?"
"주인님..."
내 말에 아이린은 눈가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 품에 꼬옥 안겼다.
워터 드레이크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것이 알려지면 또 다시 영지 내에서는 난리가 나겠지만, 이미 릴리스로 꽤나 유명해진만큼 고작 워터 드레이크 정도는 금세 적응될 것이었다.
"그럼 이름이라도 정해주겠니? 계속 워터 드레이크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아이린이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을 아는지 놈은 아이린이 돌아오자마자 아이린에게 혀를 낼름거리며 몸을 빙글빙글 돌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애교를 부리던 녀석이 곧바로 몸을 돌려버리자 화가 난 릴리스가 꼬리를 발로 밟아버리자 녀석은 펄쩍 뛰며 기분 나쁜 비명 소리를 냈다.
"...워드한테 그러지마!"
그런 릴리스 앞을 아이린이 가로막았다. 그런데 워드라니.
설마 워터 드레이크를 줄여서 워드인가?
'설마. 그럴리가.'
아무리 작명 센스가 없다 하더라도 아이린이 그렇게 단순하게 이름을 지을리가 없었다.
분명 자기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지은 이름이겠지.
아이린이 워드를 끌어안고 지키고 있자 릴리스는 심통이 났는지 내게 달려와서 떼를 썼다.
"오빠. 나도 쟤랑 똑같은 애로 하나 잡아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워터 드레이크가 무슨 고블린도 아니고."
가뜩이나 잘 번식하지도 않는 놈들이라 양식을 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운이 따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물이 깨끗한 계곡이기에 찾을 수 있었던 것 뿐. 만약 숲 속의 강가였다면 진작에 다른 모험가들이 잡아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 공격성은 전무하다시피 한 녀석이니까. 평소에도 서식지 주변을 돌아다니는 작은 물고기들로 배를 채우는 놈이었다.
내 단호한 거절에 릴리스는 볼을 부풀리며 다정하게 붙어있는 아이린과 워드를 노려봤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릴리스만 이렇게 따돌리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바구니에 들어있던 사과를 꺼내 반으로 쪼개 주었다. 사과를 건네받은 릴리스는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워터 드레이크들은 평소 작은 물고기들만 잡아먹지만 달콤한 과일에는 정신 못차려. 들고가서 한 번 먹여봐."
그제서야 릴리스는 자신이 들고 있는 사과를 한 번 더 작게 조각내서 워드에게 다가갔다.
아이린과 함께 있던 워드는 자신의 꼬리를 밟았던 릴리스가 다가오자 경계하며 물러나려 했지만, 릴리스의 손에 쥐어진 사과의 과즙 냄새를 맡았는지 멈춰섰다.
혹시 자신을 주려는 것일까. 그런 기대감을 품고 녀석은 느릿느릿 기어 릴리스의 앞에 갔다.
릴리스는 정말로 이게 통할 줄은 몰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아이린은 배신당한 표정으로 워드를 보고 있었다.
흠. 아무리 어린애들이라지만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한거 아닌가. 고작해야 애완동물 하나 때문에 저렇게까지 바뀔 줄이야.
워드는 입을 쩍 벌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고, 릴리스는 거만한 표정으로 사과 조각 하나를 워드의 입 안으로 던져 넣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과일인지 녀석은 입을 다물고 맛을 깊게 음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