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260)

마나 포션의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마나 포션을 처음 복용하는 경우 마나의 그릇을 좀 더 넓혀주는 기능이 있었다.

때문에 마탑의 마법사들의 훈련 중에 한계까지 마나를 소모한 다음 마나 포션을 복용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있었다.

마나 포션을  반복해서 복용하게 되면 그 수치도 점점 감소하지만 이제 막 마법사가 된 풋내기들에게는 무척 크게 작용한다.

나중에는 몇 달 동안 수련해도 늘어나지 않는 것이 마나의 그릇인데, 마나 포션을 마시면 하루마다 비약적으로 그릇의 크기가 성장하니 결코 그만둘 수 없는 것이리라.

그런데 트라다 쿠스만은 이에 대해서 새로운 의견을 내놓았다.

'마나 포션'을 마시는 것으로 마나의 그릇이 늘어나는 것이 아닌, 마나 감응성이 높아지는 것을 통해 본래 자신의 마나의 그릇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뿐이라고.

마나 포션을 사용해서 성장한 마법사는 남들보다 성장이 조금 빠를 뿐이지 나중에 숙련된 마법사가 됐을 때는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그에 따른 이유와 이론 역시 논리정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나 역시 아이린에게 마법 훈련을 시킬 때 같은 방법을 사용했기에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책을 읽었다.

다행스럽게도 마나 포션을 마시고 하는 훈련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마나 포션을 복용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설프게 다른 마법을 연습하지말고 마나 감응도를 올려줄 수 있는 '감지'나 '명상'을 위주로 익히라는 충고도 들어 있었다.

내가 시켰던 훈련과 크게 궤를 달리 하지 않았기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린에게 마법을 가르치면서도 스스로 확신이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스승에게 배웠던 방식은 무척 특이해 아이린에게 적용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고, 나는 다른 사람에게 마법을 가르쳐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이린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몇 번이나 의심이 들었는데, 트라다 쿠스만의 자료를 보고 스스로의 방식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한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어느새 책을 완독한 나는 눈을 감은 채 머릿속으로 책의 내용을 정리했다.

책에 기록되어 있던 내용들 중 절반 정도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었기에 정리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탐독(貪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지식을 습득한 기쁨에 뇌는 가열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마법적인 이론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트라다 쿠스만의 능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시간 종료입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그제서야 나는 방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네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책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까먹고 있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모네는 릴리스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는지 릴리스는 마치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모습으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네. 얼마든지요."

내 대답에 모네는 의외라는듯이 끼고 있던 안경을 검지로 누르며 고쳐썼다.

하긴, 한 시간 안에 모두 읽기에는 책의 두께가 상당히 두꺼웠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이 밑바탕 되어 있는 내게는 그저 연장선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마법사에서 연금술사로 직업을 바꿨을 때, 가장 많이 참고한 인물이 다름 아닌 트라다 쿠스만이었다.

마법사로 활동할 때도 기본적인 회복 포션의 제조법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미약, 마비약 등 다양한 종류의 포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금술사로서의 지식이 필수불가결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트라다 쿠스만이 만든 것이나 다름 없는 포션 레시피를 보게 된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트라다 쿠스만이 정립해놓은 그의 이론과 레시피에 대해 빠삭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오랜 세월이 흐르며 그가  남겨놓은 제조법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재료는 비슷했다.

'마나 포션이 특이한 경우지.'

사용의 목적이 다르다. 트라다 쿠스만은 값비싼 재료를 섞어 최고의 효과를 내는 마나 포션을 만들었고, 나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하급품을 만든다.

당연히 사용되는 재료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모네는 내 반응을 이상하게 여기며 내 손에 들려있던 책을 돌려받고는 책을 휘리릭 넘기며 내가 이상한 수작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

마법 중에는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그대로 담을 수 있는 카피 마법도 존재했기에 저런 의심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금방 들키는 그런 얄팍한 수를 부릴 리가 없었다.

책에 별다른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모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은 자신의 유산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 놈에게 넘겨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하셨지요. 두 번째 시련의 내용이 이런 것 역시 그 때문입니다."

하긴, 머릿속이 근육으로 꽉 찬 기사가 만약 유산을 물려받는다면 트라다 쿠스만의 서고에 있는 이 보물같은 서적들은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었다.

"부디 루디 씨는 주인님의 염원에 부응하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모네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진심으로 응하는게 좋겠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나 이상으로 트라다 쿠스만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연금술사로서, 마법사로서도 그는 내 우상에 가까웠다.

역사에 기록된 마법사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재능. 단순한 이론놀음에 불과한 현대의 마법사들과는 다른 파격적인 연구들.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거겠지.'

"그럼,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먼저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마나 포션의 재료는 무엇입니까?"

나를 너무나도 무시하는 질문에 나는 막힘 없이 입을 열어 답했다.

"하피의 깃털, 포투나 꽃의 잎, 와이번의 비늘, 오우거의 힘줄, 블러드 울프의 눈, 정제된 마나 수정, 블랙 베어의 간, 워터 드레이크의 심장."

워터 드레이크 하니 집에 있는 워드가 떠올랐다.

모네는 내 대답을 듣고는 조금 눈썹을 꿈틀거렸다.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이 읊을 줄은 몰랐던 것일까. 희미하게 그녀가 놀라는 것이 보였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주인님이 만든 마나 포션의 효과에 대해 설명하십시오."

"몸 안에 잔재하는 무의식의 마나까지 활용할 수 있도록 마나 감응성을 최대로 증가시키고, 마나의 회복량을 짧은 시간 동안 대폭 증가시킨다. 대신 그 부작용으로 한동안 마나를 다룰 수 없게 된다."

마나를 회복시키는 것과 회복량을 증가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내가 만드는 포션은 복용자의 마나를 회복시킨다. 예를 들어 마나의 그릇이 1인 사람이 0까지 마나를 썼을 때, 0.5만큼 다시 채워 주는 것이다.

하지만 트라다 쿠스만이 만든 마나 포션은 마나의 그릇이 1인 사람의 그릇을 1.5까지 늘려주고, 한 번에 0.5만큼 회복 시키는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마나를 회복시켜주는 포션이었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포션. 어지간한 사제의 버프보다도 훨씬 나은 수준이었다.

마법사에게 있어 마나는 생명과도 같은 것. 계속해서 마나를 걱정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여벌의 목숨을 가진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마나 감응도마저 올려주며 마법의 위력까지 올려준다.

전설 속의 보물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었다. 실제로 이 포션 하나 제작에 들어간 재료값만 해도 그런 보물들의 가치에 비견되지만 말이다.

두 번째 질문마저 완벽하게 답하자 모네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흔들리는 눈동자와 떨리는 입꼬리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몇 번인가 내가 연금술사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제대로 듣지 않은 것일까.

'믿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지.'

이미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습득한 나는 그 이후로도 하나의 질문도 빠짐 없이 완벽한 해답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의심했던 모네가 더욱 어려운 질문들을 내놓았지만 내게는 무의미한 짓이었다.

결국 내가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것을 인정 할 수 밖에 없게된 모네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두 번째 시련... 통과입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고를 나오니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릴리스가 그런 나를 보고 우다다다 달려왔다.

방금 전 모네에게 혼나고 정신이 나갔던 것은 금세 회복한 모양이었다.

"오빠. 두 번째 시련도 통과한거야?"

"물론이지."

오히려 첫 번째 시간보다도 짧게 끝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복도 저 편에서 아이린과 다른 메이드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주인님!"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낯가림이 심한 편인 아이린이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메이드들과는 자연스럽게 있는 것 같았다.

희미하게 웃음까지 짓고 있는걸보니 내가 시련을 통과하는 도중에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무사히 통과하신 것 같네요."

가장 앞에 서 있던 메이드가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다른 여자 메이들도 가볍게 손뼉을 치며 축하해주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방 안에 남아있던 모네가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마음을 조금 추스렀는지 방금 전처럼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습관처럼 안경을 고쳐쓰는 손길이 떨리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그럼, 이어서 세 번째 시련을 마저 치르시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죠."

분명 내가 기억하는 한 세 번째 시련은 이 저택의 호문쿨루스들에게 유산을 물려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증명하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나도 추상적인 시련의 내용에 긴가민가 했지만 지금은 대충 알 것 같았다.

호문쿨루스는 자신을 만들어낸 주인의 마나에 반응하여 움직인다. 그런 호문쿨루스의 주인을 바꾸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분명 모네가 '마나 포션'에 관한 책을 내게 꺼내준 것 역시 우연이 아니겠지.

""마나 계약.""

모네와 내 말이 겹쳤다.

트라다 쿠스만의 마나가 주입된 덕분에 그녀들은 아직까지도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그녀들의 새로운 주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트라다 쿠스만의 마나를 지우고, 내 마나를 그녀들에게 덧씌워야만 했다.

문제는 이 저택에 있는 호문쿨루스들의 숫자가 한 둘이 아니란 점이었다.

최소 스무 명이 넘는 그녀들과 마나 계약을 맺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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