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사람마다 마나의 파장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호문쿨루스들 역시 마나의 파장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런 그녀들의 몸에 남아있는 트라다 쿠스만의 마나를 지워내고, 다시 내 마나로 채워넣는 과정은... 상당히 위험했다.
내가 조금만 마나를 잘못 다룬다면 그녀는 영영 눈을 뜨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주인님은 저희 모두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방금 전에 보신 마나 포션을 직접 마시셨죠. 만인에게 천재라 찬사받던 주인님조차 그런 것을 복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고작해야 일 이년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생명에게 영원한 힘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말도 안 되는 양의 마나가 필요하리라.
"그러니 몇몇 호문쿨루스들은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이 저택에 머무는 호문쿨루스들은 모두 트라다 쿠스만의 마나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당연히 마나를 덧씌우는 작업 역시 모두 동시에 해야만 했다.
만약 내가 마나 계약 작업을 하던 도중 탈진해버리면, 작업을 하지 못한 호문쿨루스들은 그대로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주인님은 그조차도 운명이라 하셨습니다. 그만큼이 새로운 주인의 역량이니, 그는 죽어버린 호문쿨루스들을 보며 마법에 대해 더욱 정진하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문득 나는 방금 전 내가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의 힘으로 소중한 사람을 지킨다는 것 말이다.
내 힘이 부족해서 소중한 누군가가 죽는다면, 대체 얼마만큼의 죄책감과 자괴감이 들 것인가.
물론 눈 앞의 다른 메이드들은 내게 소중한 사람이 아니다. 몇 번 보지도 않았고, 이렇다 할 접점도 없다.
하지만 그녀들은 릴리스와 모네의 가족이다.
500년도 넘께 함께하며 유대를 쌓은 가족. 그런 가족이 죽는다면 대체 얼마만큼의 절망에 허우적댈지 나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모네는 자신의 가족들이 죽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듯이, 다른 호문쿨루스들이 죽는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유산을 포기하겠어."
"세 번째 시련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루디 씨가 중도 포기를 하신다면, 저희의 몸에 남아 있는 주인님과의 마나 계약이 사라지며 모두 죽게 됩니다."
이제와서는 그만두지도 못한다는건가.
가라앉았던 감정이 끓어올랐다.
누군가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어도 지키지 못해서 이렇게 됐는데, 저렇게 처음부터 단정짓는 모습이라니.
물론 모네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전설적인 입지를 가진 트라다 쿠스만이 그녀의 주인이었다.
그런 그녀의 주인조차도 극심한 패널티를 가진 마나 포션을 복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이미 마나 계약을 한 상대에게 마나를 덧씌우는 것은 더욱 힘든 작업이었다.
이를 악물었다.
시련의 이름이 '자격의 증명'인 이유가 이해됐다. 호문쿨루스와의 마나 계약에 성공하는 것 자체가 그녀들에게 인정을 받는 방법이었다.
자격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녀들은 죽는다. 인간이나 다름없이 웃고, 울며 이야기하는 사람이 내 기량 부족으로 죽는 것이다.
"...지독한 악취미야."
내 중얼거림에 모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어떤 비난을 하더라도 감수하겠다는 태도였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알아차린 아이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메이드들은 자신들은 괜찮다는 듯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오직 릴리스만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응? 다들 왜 그래? 오빠가 마지막 시련을 통과하면 새로운 주인님이 되는거잖아."
"릴리스..."
다른 메이드가 릴리스를 작게 부르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릴리스가 모네에게 다가갔다.
"모네. 다들 왜 이러는거야?"
하지만 모네는 여전히 침묵을 유지했다.
아무래도 트라다 쿠스만의 세 번째 시련에 관련된 일은 릴리스를 제외한 호문쿨루스들만이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직 어린 릴리스를 위한 배려인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다들 이상해."
결국 릴리스가 돌아온 곳은 내 곁이었다.
릴리스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은연중에 알아차렸다. 그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기에 모른 척하는 것일 뿐.
"오빠... 난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모르겠어. 그래도..."
"......"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달려 있는 릴리스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언니들이 사라지는 건 싫어...! 데이지 언니도, 제이나 언니도, 모네도 전부 다 소중한 내 가족인걸! 주인님처럼 다른 사람들도 다 사라지고 혼자 남는 건 싫어..."
나는 선뜻 올라가지 않는 손을 움찔거렸다.
지금 손을 들어올리면 나 자신도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세기의 천재라고 했던 트라다 쿠스만조차 몸에 부담이 가는 마나 포션을 사용하며 간신히 해낸 일을 나는 홀로 해내야 한다.
만약 실패라도 했다간 나 때문에 기대를 품은 릴리스의 실망감은 두 배가 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릴리스의 눈을 마주치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릴리스. 소중한 사람이 사라지는게 싫니?"
"응..."
"언니들을 사랑하니?"
"당연히...수백 년을 함께 해 온 자매인걸... 나한테는 언니들 뿐이야..."
릴리스의 울먹거림에 다른 메이드들이 눈가를 훔쳤다.
그녀들 역시 속으로는 살고 싶다는 욕망과,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모네 역시 마찬가지였다.
냉정한 척 하고 있었지만 릴리스의 진심에 결국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흘러나온 눈물이 안경에 번지자 그녀는 안경을 벗고 손등으로 눈가를 닦았다.
온 주변이 울음바다였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우는 것은 실패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릴리스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할 때였다.
"걱정마렴. 릴리스. 네 언니들 중 그 누구도 죽지 않게 할거야. 내가 그렇게 할 거다."
최대한 진심을 담아 한 말이 통했는지, 릴리스는 그제서야 눈물을 그쳤다.
"...정말?"
"정말이지 그럼. 난 이런 걸로 거짓말 안 해."
"오빠! 진짜 최고야. 사랑해!"
릴리스는 평소처럼 밝은 표정으로 방방 뛰며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다 갑자기 내 품에 달려들더니 내 입에 앙증맞은 자신의 입술을 맞췄다.
입술이 닿았다는 자각이 없을 정도로 짧은 키스였고 정작 본인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내게는 반드시 릴리스의 가족들을 모두 살리기로 한 약속처럼 느껴졌다.
확인한 결과 저택에 있는 호문쿨루스는 릴리스를 포함해 모두 24명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머리색, 말투, 체형 등 모든 것이 달랐다.
스물 넷이나 되는 대인원과 마나 계약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미 그녀들이 계약을 맺고 있는 트라다 쿠스만과의 계약 위에 내 계약을 덧씌워야하기에 더욱 그랬다.
나는 머리를 싸매며 트라다 쿠스만의 마법진을 파훼하고 계약을 맺을 방법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모네가 호문쿨루스의 제작법과 계약을 기록해놓은 트라다 쿠스만의 일기를 들고온 덕에 그 점은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트라다 쿠스만은 자신이 호문쿨루스들과 계약을 했을 때의 기록을 남겨뒀다.
그런데 '첫 번째 자식'인 릴리스를 제외한 다른 스물세 명의 계약 방법에 대해서만 기록되어 있었던 탓이었다.
'그러고보니 왜 릴리스가 첫 번째 자식이지?'
지난번에 모네는 분명 자신을 주인님의 두 번째 자식이라고 했다.
맏언니 같아 보이는 모네가 두 번째 자식인데, 릴리스가 첫 번째 자식이라는 것은 조금 석연찮은 부분이었다.
그것 말고도 릴리스는 수상한 점이 많았다.
인간이 아닌듯한 비정상적으로 아름다운 외모와, 성숙한 외형의 다른 호문쿨루스들과 달리 혼자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무지막지한 무력. 베테랑 모험가 서너 명을 합친 것보다 힘이 강했다.
몇 개를 제외하고는 마법을 거의 사용할 줄 모르는 모네와 전투를 할 수 있는 무력이 전무한 다른 메이드들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모네와 다른 자매들이 자기들끼리 눈짓을 주고받는 것을 보면 릴리스만이 모르는 비밀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것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당장 눈 앞의 문제에 대해 집중해야 할 때였다. 나는 손보고 있던 마법진의 술식을 생각하며 다시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트라다 쿠스만이 그녀들의 몸에 새겨놓은 마법뿐만 아니라 이 저택 전체에 마법이 걸려 있었다. 다른 호문쿨루스들은 저택 밖으로 쉽사리 나갈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는 저택 주변에 펼쳐져있는 '결계'를 기점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마법이 걸려 있었다. 오직 릴리스만이 제한 없이 밖을 거닐 수 있었다.
모네는 세 번째 시련이 시작되고 나서 하루 안에 새로운 마나 계약을 하지 못한 호문쿨루스들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했다.
한참 동안 트라다 쿠스만의 마법진에 대한 자료를 긁어모으고, 술식을 뜯어고치다 보니 어느새 남은 시간은 반나절 남짓이었다.
촉박해지는 시간에 더욱 마음도 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