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260)

여기서 주춤하는 순간 릴리스의 다른 자매들이 목숨을 잃을 확률도 올라간다.

릴리스는 심장 부근이 아픈지 얼굴을 찌푸린 채 약하게 신음하고 있었다. 새로운 계약을 하며 그녀의 몸을 구성하는 마나가 바뀌었으니 당분간은 고생 좀 할 것이다.

나는 릴리스와의 계약이 성공적으로 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모네의 자리로 옮겨갔다.

모네는 자신을 마지막에 해도 상관 없다고 했지만 그걸 지켜볼 그녀들이 아니었다.

결국 모네는 릴리스 다음인 두 번째에 배정되었고, 그 후로도 태어난 순서대로 자리가 배정되어 있었다.

'이번 일이 끝나고 말해준댔으니, 그때까진 비밀에 대해 신경쓰지 않겠습니다.'

방금 전 내가 모네에게 건넸던 말이었다.

오로지 그녀의 자매들을 살리는 것에만 집중하겠다는 내 말에 모네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결국 눈물을 보였다.

말하지는 않아도, 모네 역시 누구보다 자매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방금 전 릴리스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네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다만 릴리스처럼 가슴이 평평한 것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그녀의 유방에 손이 닿을 수 밖에 없었다.

겉으로 볼 때는 몸을 꽉 조이는 클래식 메이드복이라 몰랐는데, 벗으니 몸매가 굉장한 타입이었다.

잘록한 허리에서 나올 수 없다고 생각되는 커다란 가슴과 엉덩이간의 갭이 너무나도 컸다.

물론 그녀의 몸을 훑는 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나는 곧바로 술식을 중얼거리며 그녀의 몸 안에 남아있는 트라다 쿠스만의 마나를 빼내고, 내 마나를 새롭게 주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금 전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양의 마나가 빠져나갔다.

당연히 릴리스만큼은 빠져나가리라 생각했던 나였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의 절반도 되지 않는 양에 놀랐다.

혹시나 계약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세 번째 상대의 경우에는 오히려 모네보다도 적은 양의 마나가 들었다.

물론 릴리스와 모네처럼 큰 차이는 없었지만 뒤로 갈수록 마나 계약에 드는 마나의 양은 점점 줄어들었다.

동시에 나는 늦게 만들어진 자매일수록 그녀의 몸에 부여된 기능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감정을 느끼긴 하지만 릴리스처럼 감정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릴리스보다 조금은 무딘 신경과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 트라다 쿠스만이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트라다 쿠스만은 자기 성취가 강한 사람이다. 스스로의 작품이 규격 이하라면 파기를 하는 그런 부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로 갈수록 호문쿨루스에 들어간 기능이 적어진 이유.

'아마 트라다 쿠스만이 마나 포션을 마신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

그런 것에라도 기대지 않으면 이 자매들을 모두 완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트라다 쿠스만이라도 자그마치 스물네 기의 호문쿨루스들과 계약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테니까.

게다가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트라다 쿠스만에게 있어서는 그 때가 마지막 기회였을 것이다.

전성기가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몸 안에 머무는 마나의 양은 적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마법사들 중에 늙은이가 많은 이유는 단순히 마나의 양이 아닌 경험과 숙련도에서 나온 깨달음 때문이다.

단순히 몸에 잠재된 마나의 양이 많은 걸로 마법사의 강함이 증명되었다면 수많은 마법사들이 마탑에서 연구를 거듭하고 연습을 할 이유가 없었다.

트라다 쿠스만에게 있어서 이 호문쿨루스들은 유품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할 성대한 연구 결과들이자 자신이 정말로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였다.

이 작업이 모두 끝나면 반드시 모네에게 트라다 쿠스만이 왜 그렇게 호문쿨루스 제작에 집착했는지를 물어보겠다고 다짐하며 나는 다음 자매로 넘어갔다.

마나의 양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결코 적지 않은 양이었다.

여덟 명까지는 나름대로 순조로웠다.

쉬지 않고 마나 계약을 반복하며 몸 안에 남아있는 마나의 양을 점검했다.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무난히 작업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열네 명이 넘어가자 슬슬 호흡이 거칠어졌다. 최대한 빠르게 작업을 하고 있는데도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는 마나의 양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견뎌내며 작업에 집중했다.

열아홉 명을 지날 때 즈음에는 피를 한 번 토했다. 필사적으로 몸 안의 마나를 쥐어짜고 있다보니 피가 역류한 것이었다.

기침을 하며 내 입에서 튀어나온 피가 바닥에 튀었지만 눈을 뜨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나는 피가 잔뜩 섞인 가래를 뱉고나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스물두 명을 작업했을 때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이제 두 명 밖에 안남았다는 생각과 아직도 두 명이나 남았냐는 생각이 공존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몸을 제어하고 있는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릴리스의 우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자 흐릿하던 정신이 돌아왔다.

'약속.'

그래. 분명 약속했다. 아무도 죽지 않게 해주겠다고.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지켜질 것이었다.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어떻게든 작업을 끝내기 위해 남아있는 정신력을 쥐어짜냈다.

이미 바닥난 마나라고 생각했지만 죽을 각오로 쥐어짜내니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스물세 명.

마지막으로 남은 자매를 보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이번 일이 끝나면 당분간은 푹 쉬며 요양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오른손을 그녀의 가슴 위에 올리고, 이미 수십 번이나 중얼거렸던 마법을 영창했다.

그녀의 가슴에도 다른 자매들에게 새겨졌던 것과 똑같은 문양이 새겨졌다.

모두 스물네 명과의 계약이 아무 문제 없이 해결되자 내가 바닥에 그렸던 마법진이 찬란한 황금빛을 내뿜으며 빛났다.

시간을 관장하는 마법은 은빛으로, 생명을 관장하는 마법은 황금빛으로 빛난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럼 내가 이 녀석들의 아버지가 되는건가.'

아버지라. 이미 성숙한 그녀들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아이린이나 릴리스 정도라면 모를까.

호칭에 대한 실없는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모든 작업이 끝난 것을 알리며 빛난 마법진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이윽고 방금 전까지 남아있던 것이 거짓말처럼 마법진은 순식간에 지워졌다.

이제 저택 주변을 둘러싼 결계를 손보는 것도, 저택의 창고에 걸려있는 마법을 해제하는 것도 내 마음대로였다.

그 대가로 나도 마나 탈진을 넘어 마나 역류를 할 정도로 힘을 쥐어짜냈지만 말이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지 않아 그대로 바닥에 털석 주저앉았다. 아직 눈을 뜨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트라다 쿠스만. 릴리스. 그리고 마지막 유산...

단어들이 스쳐지나가듯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조금만 더 생각을 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피로에 찌든 뇌는 쉽사리 작동하지 않았다.

녹슨 시계처럼 삐걱대기만 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뇌를 점령한 것은 수마였다.

쏟아지는 졸음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미 작업도 끝났고, 조금은 쉬어도 되겠지.

오랜만에 전력을 다해서 일했다. 그러니 지친 몸과 정신에도 휴식이 필요했다.

꿈 속에서 트라다 쿠스만에 대해 뭔가 기억이 떠오른 것 같았는데, 희미하게 남아있던 그것은 덮쳐오는 수마에 의해 금세 기억에서 지워졌다.거대한 망망대해의 바다에 몸이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천천히 숨이 막혀온다.

이대로는 분명 익사해버릴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한다.

필사적으로 부글거리는 거품과 함께 숨을 내뱉어 보지만 점점 부족해지는 공기와 함께 희미해지는 정신.

마지막 호흡을 내뱉으며 죽음을 직감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눈을 떴다'.

"커억!"

숨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꿈과 마찬가지로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계약이 끝나고 그대로 기절했지.'

그 때는 정말 죽는줄 알았다.

다시 한 번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짓이었다.

마나 역류의 부작용인지 머리가 띵했다. 꿈 속에서 뭔가를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츄릅...츄..."

어쩐지 데자뷰가 들었다. 동시에 몸의 한 부분의 감각이 조금 돌아왔다.

부드러운 혀가 내 물건을 감싸며 핥아대는 야릇한 감촉에 몸을 부르르 떨다 손을 뻗어 이불을 들췄다.

이불을 들추자 고개를 숙인 채 요염하게 혀를 놀리며 내 물건을 빨고 있던 모네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일어난 것을 확인한 모네는 내 물건을 깊숙히까지 자신의 입 안에 머금고 혀로 몇 번 핥으며 문지르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입 안에서 내 물건을 빼냈다.

덕분에 내 물건을 모네의 침으로 완전히 반질반질해져 있었다. 요령좋게 귀두 끝부분을 혀로 핥으며 쮸웁하고 입술로 빨아내는 테크닉은 나도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제 일어나셨습니까?"

방금 전까지 내 물건을 격렬하게 빨아댄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정상적인 인사였다.

심지어 목소리마저 평소와 똑같이 차갑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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