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260)

"...뭐, 그렇죠. 그런데 지금 이건..."

"어젯밤에 가장 먼저 일어난게 저였기에 다른 자매들을 깨워 뒷정리를 했습니다. 주인님이 완전히 기절하셨길래 우선은 제 방으로 옮겼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방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옷장과 작은 탁자 하나가 전부인 단출한 방이었다.

보통 여자의 방이라면 그래도 여러가지 가구나 인형들이 있기 마련인데, 모네의 방에서는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도 모네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양 손으로 내 물건을 주물거리고 있었다.

"저기...이것 좀..."

아무렇지 않게 내 물건을 주물거리는 모네의 손길은 내 기분 좋은 곳만을 자극하고 있었기에 쾌감이 전해져서 계속 즐기고 싶었다.

"아침에 주인님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방에 와보니 주인님의 물건이 생리현상을 겪고있더군요. 남자들은 그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괴롭고 힘들다고 배웠기에 제 몸으로 풀어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건 대체 어디서 들은거야?!"

저택 밖으로 한 번 나가본 적 없는 호문쿨루스면서 저런 성에 관련된 지식은 어디서 습득했는지.

"전(前) 주인님에게 들었습니다. 새로운 주인님이 오신다면 이런걸 해드리면 무척 좋아할거라고 하셨습니다."

범인은 다름아닌 트라다 쿠스만이었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앞으론 안 해도 돼."

이러고 있는 것을 아이린이나 릴리스에게 들켰다면... 으으. 상상도 하기 싫군.

"기분이 안 좋으셨습니까? 비록 실전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만 몇 번 연습을 했었는데요."

"...연습?"

실전이 처음인 것은 둘째치고 저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냉기를 폴폴 풍겨대는 모네가 펠라치오 연습을 했다는 말에 더욱 놀랐다.

그런 내 반응을 본 모네의 눈매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제가 연습을 했다는게 그리 이상합니까?"

"아니. 그건 아닌데..."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는 모네의 시선에 나는 곧바로 꼬리를 말았다.

보통 여자가 남자에게 펠라치오를 해줄 때는 사랑이 듬뿍 담겨 있거나 복종의 표현인데, 눈 앞의 모네에게서는 그런게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마치 형식적으로 정액을 쥐어짜내려는 것 같아 아랫도리가 기분 좋은 것과는 별개로 정신이 거부를 했다.

"아니. 보통 이런건 사랑하는 사람이랑만 하는거니까. 너희들은 메이드지 노예가 아니잖아?"

"저희는 메이드이기 이전에 주인님의 것입니다. 인간 노예와 달리 저희의 마음까지도 모두 주인님만의 것이니 원하시는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말 한마디를 안 지는구만. 논리정연한 모네의 말의 허점을 찾지못한 나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 그럼 주인으로 명령할게. 앞으로는 내가 시키기 전에는 이런 짓 하지마."

아무리 계약이 무사히 끝나고, 내가 새로운 주인으로 인정받았다고는 해도 모네의 달라진 태도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모네는 내 명령을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조금 뾰루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라? 설마 지금 삐진건가?

새로운 주인님에게 처음으로 한 봉사인데, 그걸 거절당해서 삐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 상대가 모네만 아니라면 말이다.

'모네가 그럴리가 없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모네가 삐지는 것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내가 처음이라고 했지? 이런 짓은 트라다 쿠스만과는 하지 않은거야?"

어딘가 방금 전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모네가 대답했다.

"...전 주인님께서는 성욕이 거의 없다시피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호문쿨루스와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셨기에 저희 자매중 누구도 그분과 몸을 겹친 적은 없습니다."

세상에나. 그럼 이 저택에 있는 여자들은 죄다 처녀란 소리잖아?

한창 혈기왕성한 남자 모험가가 저택의 주인이 됐다면 완전히 주지육림이 따로 없었다.

스물네 명의 메이드들에게 시중을 받으며 그녀들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마법의 발전이고 나발이고 눈 앞에 이런 미녀들이 널려 있는데 그런 것을 신경쓸리가.

나는 반쯤 벗겨진 바지를 끌어당겨 다시 입었다.

모네는 방금 전 내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내 물건을 빨아댄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평소처럼 다소곳이 침대 옆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 안의 마나가 느릿하게나마 회복되는 것을 확인하고 눈을 몇 번 감았다 떴다. 아직 몸의 균형이 불완전했지만 일상생활 하는 정도는 무리가 없었다.

"주인님이 입고 계시던 옷은 세탁중이니 조금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고보니 마지막에 쓰러질 때 코와 입에서 동시에 피를 쏟아냈었다. 그 때를 다시 떠올리니 오싹했다.

이 영지에 오며 가늘고 길게 사는걸 목표로 잡았었는데, 하마터면 비명횡사 할 뻔 했다.

"...아."

그 때의 상황을 떠올리던 나는 계약을 하기 전 모네가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분명 계약이 무사히 끝나면 릴리스에 대한 비밀을 모두 말해주기로 약속했었지.

어차피 급한 일은 없었기에 나는 다시 침대에 걸터 앉으며 내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내 의도를 눈치챈 모네는 아무말 없이 얌전히 내 옆에 앉았다.

"그럼 약속대로 릴리스에 대한 비밀을 알려줘 봐."

모네는 쉽사리 말하기 어려운지 두어 번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재촉하지 않고 모네가 말하는 것을 기다렸다.

그녀는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결국 릴리스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본래 주인님은 저희를 만드실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주인님이 만들고자 했던 호문쿨루스는 릴리스. 단 한 명 뿐입니다. 자세한 것은 제가 만들어지기 전의 일이라 잘 모르지만, 주인님이 가끔씩 들려주신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트라다 쿠스만의 집안은 결코 유복한 편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는 마법적인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부모님의 일을 돕고, 밤에는 마법을 독학하며 배웠다.

그런 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병약한 여동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를 거듭하던 여동생은 결국 불치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런 동생을 마법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 싶어 더욱 마법에 정진한 그였지만 마법은 상처를 치유할 뿐 병 자체를 치료할 수는 없었다.

대신 유명한 마법사로 거듭나며 벌어들인 돈으로 여동생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온갖 약들을 사들였다. 하지만 그 어떤 연금술사도 동생의 병을 낫게 하는 약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결국 천재의 반열에 들었던 그는 스스로 동생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한 약을 만들기로 한다.

몇 년에 걸쳐 연금술을 배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약과 포션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동생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약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값비싼 약재와 진귀한 재료들을 아낌없이 사용하며 엘릭서 이상의 영약을 만들어 여동생에게 먹여봤지만 그조차도 일시적일 뿐, 병의 완치는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트라다 쿠스만의 여동생은 혼수상태로 하루의 대부분을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동생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트라다 쿠스만은 자신이 만들어낸 약과 포션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연금술을 배우며 겸사겸사 만들어낸 마도 공학품들은 제국에 혁신을 일으켰다.

막대한 부와 인맥을 얻은 그는 친구인 교황에게 동생을 데려가봤지만 교황의 축복조차도 그녀의 병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

실의에 빠진 트라다 쿠스만이었지만, 그는 최후의 수단을 찾아낸다.

'영혼 이식'.

여동생의 영혼을 다른 육신에 옮겨담는 것.

영혼을 다루는 마법은 흑마법사들 사이에서나 돌아다니는 것이기에 당연히 제국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트라다 쿠스만은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동생을 구하기 위해 배운 마법이었다.

하나뿐인 동생을 위해서라면 법 따위는 얼마든지 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제국 변방의 영지로 내려왔다. 깊은 숲 속에 마법을 이용해서 며칠 만에 저택을 하나 지었다.

가진 재산의 일부를 동원해 여동생의 영혼을 옮겨담을 수 있는 육신의 재료들을 구했다.

편한 방법으로는 빈민가에 굴러다니는 여자 아이의 시체를 구해오는 것이 훨씬 편하겠지만 그는 동생이 다시는 병을 앓거나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최고의 재료들로 육체를 구성했다.

오우거의 힘줄, 트롤의 피, 레비아탄의 심장, 뱀파이어의 송곳니 등 최고의 재료들을 아낌없이 사용해서 만들어낸 극상의 미를 가진 육체. 그것이 바로 릴리스였다.

거기까지 들은 나는 믿을 수가 없어서 입을 쩍 벌렸다.

그런 재료들을 가공해서 인간의 육체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도 그렇고, 각기 개성이 강한 몬스터들의 신체들을 재료들로 새로운 육신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정말 믿기 힘들 정도였다.

심지어 릴리스처럼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미소녀를 만들어냈다.

그쯤되면 인간이 아니라 신의 경지에 가까웠다.

나는 트라다 쿠스만에 대해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내 생각을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트라다 쿠스만은 릴리스라는 최고의 육신을 만든 것 뿐만 아니라 여동생의 의식을 릴리스의 육신으로 성공적으로 옮겨내기까지 했다. 다만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났다.

"기억을...잃었다고?"

"네. 사실상 목숨이 끊어진 것이나 다름 없는걸 전 주인님의 마력으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의식을 옮기는 것의 부작용인지 생전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자신의 인생을 바쳐 구하려 했던 사람이 자신을 잊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대체 얼마만큼의 상실감과 허무함을 느꼈을까.

"그래도 전 주인님은 겉으로 크게 내색하지 않으셨어요. 차라리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게 낫다고, 아픈 기억은 모두 잊고, 어린아이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하셨거든요."

말은 그렇지만 모네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트라다 쿠스만은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속으로 엄청나게 오열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 그것도 가족이 자신을 잊어버리는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하니까.

입 안이 썼다. 설마하니 릴리스가 트라다 쿠스만의 동생이었을 줄이야. 릴리스의 자매들이 어째서 릴리스를 첫 번째로 계약하게 하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을 만들어낸 창조주의 동생. 그것도 이런 안타까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면 그럴 수 밖에.

"...이건 릴리스에게 숨기는게 좋겠죠?"

"저희들은 주인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만, 전 주인님께서는 비밀로 남겨주시기를 바라셨습니다."

'나는 남들에게 대마법사라 추앙받는 주제에 그 아이의 육신조차 지켜내지 못했다. 간신히 건져낸 것은 한 조각의 영혼 뿐. 더 이상 그 아이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으니, 내 존재는 비밀로 남겨두거라.'

모네에게 트라다 쿠스만의 전언을 들은 나는 입술을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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