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를 둘러봤을 때, 그 영지의 실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홍등가니까. 정말 썩어빠진 영지에는 도박장, 투기장, 창관이 잔뜩 늘어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
영지를 완전히 홍등가 자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뭐, 귀족들이 자신의 영지를 어떻게 하든 내게는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다.
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홍등가의 거리를 지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술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잔을 닦고 있던 바텐더가 의외라는듯이 물었다.
"호오. 이 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의뢰를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요."
그는 내가 의뢰를 맡기러 왔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고, 너희 대장이랑 연락하는 수정구있지? 그거나 줘봐."
"......."
바텐더로 위장한 지부장은 어이없다는 듯이 잔을 닦던 손을 멈추고는 나를 쳐다보다가, 결국에는 한숨을 내쉬며 밑에 넣어둔 수정구를 꺼내주었다.
"지하실에 내려가서 청소라도 하고 오라고. 어차피 손님도 없잖아?"
길드에서 이미 한 번 싹 쓸고갔는지 술집 안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술 냄새조차 나지 않는걸보면 오늘 이곳에 다른 녀석들이 찾아올 일은 없겠지.
남에게 들려줄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내가 돌려말하자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숨겨진 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갔다.
지부장이 완전히 지하로 내려간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금 방음 마법을 한 번 더 걸어 놓고 수정구에 마나를 주입했다.
수정구는 몇 번인가 빛을 깜박이며 신호를 보내다가 불이 들어왔다.
희미하게 비치던 수정구가 불이 들어오고, 하품을 하며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델론즈의 모습이 비쳤다.
"흐아암... 아이씨...모처럼 기분 좋게 자고 있는데...누구..."
늘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델론즈는 아직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반쯤 감긴 눈을 떴다 감기를 반복했다.
"암흑가의 주인이라는 놈이 벌써부터 잠을 자면 되나."
녀석은 그제서야 연락한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눈을 번쩍 떴다.
"뭐야. 루디냐? 네가 왜 연락을......아아."
델론즈는 굳어있던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는지 내가 말하기도 전에 답을 알아차렸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 황궁에서 출정식이 열렸다고 들었는데, 벌써 도착했나."
이미 황자와 황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파악한 델론즈에게 나는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그래. 덕분에 완전히 난리가 났다고. 이런 구석진 영지까지 황족이 친히 발걸음을 하실줄 누가 알았겠어."
"킥킥. 그럼 이번에 필요한 정보는 4황녀와 6황자에 대한건가? 유감이지만 그들에 대한 정보는 몇 없어. 4황녀의 어머니가 평민이라는 것과 6황자가 다른 황자들에게 상당히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것 정도일까."
"황녀의 어머니가 평민이라고?"
"그래. 국왕의 시녀였는데 그 외모가 상당히 뛰어났는지 눈에 들어 첩으로 간택됐다고 하더군. 너도 황녀를 봤을거아냐? 그만한 외모는 타고나지 않고서는 힘들지."
황녀가 아름다운 것은 유전이었나. 왜 4황녀가 순례에 참여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후작이나 공작쯤되면 첩을 여럿 들이는 경우가 잦은데, 그런 첩들의 자식은 자신의 핏줄을 무척 중요시한다.
자신의 어머니가 귀족이라면 괜찮지만 평민이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노예라고 차별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황녀는 아마 어머니가 시녀 출신이기 때문에 다른 황자나 황녀들에게 경멸받았을 것이고, 황궁에서 머무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순례를 도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지원한거겠지.
"그리고 6황자의 경우에는... 조금 애매하네.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6황자는 어릴때부터 상당히 영특했던 모양이야. 어린아이 답지않게 정치나 외교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실제로 그 분야에 대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모양이라 황제가 무척 아꼈다는 것 같아."
6황자의 경우에는 무능한 형제들의 질투인가.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조금 의외였다. 곱상한 얼굴로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영락없이 순진한 어린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는 몇 번인가 위험한 사건도 있었던 모양이야. 황자의 차에 마비독이 타져 있었거나, 새벽에 그의 침실에 침입하려는 괴한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물론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델론즈는 그렇게 덧붙이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유없는 소문은 없는 법이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아니고, 델론즈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아마 다른 황자들이 이야기가 새어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았기 때문이겠지.
한 마디로 똑똑한 동생이 자신의 계승권을 위협하는게 싫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황제가 아끼는 그를 죽였다간 뒷감당이 되지 않을테니 몇 번 위협을 했을테고, 쫓기듯이 이번 순례에 참여했다고 보는게 맞다.
가진 놈들이 더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황제가 될 수 없다고 해도 평생을 놀고먹으면서 황족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데, 어떻게든 피로 물든 저 왕관을 한 번 써보고 싶어서 발악한다.
설령 자신이 황제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다고 해도 남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은 추악한 모습마저 보였다.
물론 지금은 6황자가 피해자로 보이는 상황이라 그럴 뿐이지, 사실 6황자도 속으로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형들을 자빠뜨리고 자신이 왕관을 쓰는 상상 말이다.
원래 성 안의 암투는 그런 것이니까.
"그것말고 다른 정보는 더 없나?"
"글쎄. 그 외에는 전부 다 팔아먹기도 힘들 정도로 허무맹랑한 정보들 뿐이라 말이지."
델론즈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그렇겠지. 사실 이 정도 정보만 있어도 충분하긴 했다.
나는 혹시라도 황녀나 황자가 마리안에게 다른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니까.
델론즈에게 들은 정보에 의하면 두 사람 다 순례에 참여할 이유가 명백하니 그런 점은 고려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지난번에 신전에 찾아갔을 때의 마리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내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걱정했다면서 내 품에 안겨들었다.
밤에 몰래 그녀의 방에 숨어들어가서 다행이지 만약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간 꽤나 곤란해졌을 것이다.
결국 나는 그날 밤새도록 마리안에게 사과와 함께 내가 저택에서 겪었던 일을 조금씩 각색해서 들려주었다.
릴리스를 비롯한 호문쿨루스들을 만났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숲 속에 거대한 저택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과 그 저택의 주인이 트라다 쿠스만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지난번에 마리안에게 트라다 쿠스만의 이름을 아냐고 물었던 이유도 설명해주었다.
마리안은 그가 남겨놓은 막대의 유산을 내가 계승했다는 것을 듣고는 무척 놀라워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품 속에 넣어왔던 트라다 쿠스만과 23대 교황이 주고받은 편지꾸러미를 들려주었다.
편지에는 친한 친구끼리 주고 받는 것처럼 가벼운 문장들로 안부를 묻거나, 잡담을 하는 것들이 적혀 있었지만 마리안은 그것을 읽느라 시간 가는줄 몰랐다.
교황이 트라다 쿠스만에게 신전에 기부금을 내줘서 고맙다는 감사인사, 성녀복을 제작해줄 수 없겠냐는 부탁, 언제 술이나 한 잔 하자는 사소한 이야기들부터, 신전의 중대한 일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게 편지를 읽는게 끝나고, 마리안은 내 품에 안긴 채 순례를 돌기 싫다고 털어놓았다.
자신 때문에 파벌을 가르고 싸우는 것도 싫고, 그 과정에 다른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것도 싫다고.
지금처럼 조용히 지내며 친한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고 고백해왔다.
하지만 마리안은 신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직책인 성녀였다.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인만큼 그런 의무를 벗어던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리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말 다음에는 괜한 투정을 부려서 미안하다고 내게 사과했다.
물론 나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얼마든지 투정 부려도 되니 마음 속에 품고 앓지 말라고 달래주었다.
그 날은 내게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마리안의 마음도, 몸도 모두 보듬어주었다. 덕분에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서 이른 저녁부터 수면을 취했다.
델론즈와 조금 더 잡담을 나누던 나는 조만간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과 함께 수정구의 연결을 끊었다.
빛이 꺼진 수정구의 회로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고는 지하실로 통하는 문 위에서 발을 두어번 구르자 지하실에 내려갔던 지부장이 다시 올라왔다.
"용건은 다 끝나셨습니까?"
"그래. 이건 팁."
주머니에 넣어뒀던 금화를 튕기자 지부장은 오른손으로 포물선을 그리는 금화를 낚아챘다.
"...이건?"
다만 그의 손에 쥐어진 금화는 제국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아니었다. 500년 전에 사용되었던 유물로, 트라다 쿠스만의 창고에 남아있던 것이었다.
"글쎄. 한 번 잘 살펴보라고."
손을 흔들며 가게를 나오자 다시금 홍등가를 순찰하는 나이트 울프의 길드원들과 마주쳤다. 몇 없는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하던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한 명은 날카로운 눈매에 뺨에 칼자국이 남아있는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조금 멍한 기색을 보이는 여자였다.
남자 쪽은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쓰고있고, 옆구리에 칼을 차고 있었고 여자 쪽은 오른손에는 나무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남자 쪽은 알 수 없지만 여자 쪽은 여우의 것처럼 보이는 귀가 달려 있었다.
겉으로 볼 때는 꽤나 괜찮은 미녀였지만 입고 있는 겉옷에 새겨진 나이트 울프의 문양과 여자의 옆에 있는 남자의 기세에 눌린 사람들은 쉽사리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피해다녔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구석의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두 길드원들이 내 옆을 지나가는 순간 수인족 여자의 귀가 쫑긋거렸다.
"...응?"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며 걷던 그녀의 눈에 초점이 들어오고,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모른척 지나가려 했지만 이미 내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그녀가 어느새 내 앞을 가로막아섰다.
방금 전의 그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반짝이는 눈빛이었다.
"당신. 이름이 뭐야?"
다짜고짜 통성명인가. 물론 수도에 있을 때 수인족을 몇 번인가 만나본 적이 있었기에 딱히 불쾌하지는 않았다.
원래 수인족들은 말수가 적고, 행동으로 표현하니까.
인간과 달리 가식과 내숭도 잘 떨지 않고, 본능이 이끄는대로 솔직담백한게 그들의 특징이었다.
"루디."
내가 이름을 말하자 수인족 여자는 귀를 쫑긋거리다가 어느새 다시 다가온 옆의 남자에게 물었다.
"할터. 루디라는 이름, 들어본적 있어?"
"...글쎄. 적어도 이 영지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할터라고 불린 남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지만 수인족 소녀는 신경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제국어가 능숙한걸보니 할터는 수인족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겉모습도 수인족으로 보이는 특징은 없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