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260)

 

겉으로 봐도 확연히 드러나는 봉긋하게 솟은 가슴과 늘씬한 허벅지는 그녀를 절대 열세 살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했다.

갑작스레 육체가 성장한 아이린의 키는 예전에 가슴팍에 간신히 닿던 것이 이제는 목덜미까지도 닿을 것 같았다. 대체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변한거지?

혹시 내가 술에 취해 몇 년 동안이나 잠들어 있었던건가?

그게 아니라면 술김에 내가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포션을 만들어 아이린에게 먹인건가?

어느쪽이든 쉽사리 결론이 나오??않았다.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나는 곰곰히 어젯밤의 기억을 떠올려내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방에 도착한 후의 기억이 잘려나간 것마냥 전혀 떠오르질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결국 아이린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이린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아까 의류점에 들러서 산 옷이 아니었다.

갑작스런 몸의 성장 때문에 입고 있던 원피스가 몸에 꽉 끼게 달라붙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잠잘 때라 속옷도 입지 않은 아이린의 가슴이 그대로 비쳐보였다.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레 아이린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으응...주인니임...?"

이미 아침이 밝았는데도 졸린지 아이린은 눈을 비비며 몽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이린. 혹시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니?"

갑자기 몸이 커졌다고하면 아이린 본인도 당황할 수 있으니 최대한 돌려서 물어보자 아이린은 갑자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문제는 체형이 변하며 외모 역시 성숙해진 아이린이 배시시 웃는 것마저 요염해 보였다. 남자들 여럿의 마음을 들었다놨다 할 정도로 치명적인 미소였다.

"딱히 별 일 없었어요. 주인님."

그런 것 치고는 아이린이 자꾸만 웃고 있는게 신경쓰였다.

물론 아이린의 성격상 내게 해가 될 일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석연찮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린의 몸이 저렇게 급성장을 한 것에 대한 설명도 되지 않았고 말이다.

아직도 잠에서 덜 깼는지 슬쩍 내 품에 안기려고 하는 아이린을 가볍게 밀어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내 품에 딱 안기는 귀여운 체구였는데, 지금 그랬다가는 스스로도 어떤 반응을 할지 몰랐다.

특히 눈에 띄게 성장한 아이린의 흉부는 속옷을 입지 않아서 그런지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 아이린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고민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x x x

저는 처음 주인님을 따라서 수도에 간다고 했을 때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비록 놀러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인님과 함께 여행을 간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좋았습니다.

평소에 가게에 있을 때는 다른 여자들도 자주 찾아왔지만, 적어도 여행하는 동안에는 주인님과 단둘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말을 타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떨렸지만 주인님의 자상한 목소리에 금세 진정됐습니다.

"내 허리만 꽉 잡고 있으면 떨어질 일 없으니 걱정 마렴."

저는 조심스럽게 주인님의 허리를 제 팔로 감았고, 주인님을 뒤에서 꼭 끌어안았습니다.

탄탄한 주인님의 복근의 감촉과 주인님의 냄새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들었던 동화 중에서도 분명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마법사와 공주님이 밤에 몰래 말을 타고 빠져나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목적지에 도착할때까지 쉬지않고 쿵쾅대는 심장의 고동이 주인님에게 들리지 않기만을 빌었습니다.

영지에 도착한 다음에는 처음 타 보는 '텔레포트 게이트'라는 것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는 막대한 양의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조금 무서웠지만 주인님이 손을 잡아주신 덕분에 저는 망설임 없이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수도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마법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말을 타고 며칠은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눈 깜짝할사이에 올 수 있다는 사실에 재차 놀랐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탑이라는 곳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할아버지들은 정말로 무서웠습니다. 주인님과 비견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나의 기운.

게다가 제 정체를 꿰뚫어 보는듯한 날카로운 시선에 저는 당장이라도 방을 뛰쳐나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도 주인님과 대화를 나누시더니 결국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어졌습니다. 저런 분들과도 친분이 있으시다니. 역시 주인님은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더욱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주인님의 곁에 언제까지 남아있을 수 있을까요.

주인님이라면 분명 귀족들과 결혼하셔도 이상하시지 않습니다.

특히 저희 영지의 '앨리스'라는 여자의 냄새가 간간히 주인님에게서 나는 걸 보면 이미 그런 관계이신지도 모릅니다.

물론 저처럼 하찮은 노예가 주인님처럼 상냥하고 위대하신 분을 모시는 것만으로도 주제넘는 일이지만, 최근에는 주인님에게서 다른 여자들의 냄새가 나면 저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집니다.

최대한 주인님에게는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요즘들어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가 많아 숨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분명 저는 질투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고작해야 노예 주제에 주인님이 다른 여자들을 품는 것을 질투하다니.

주제 넘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는 그 마음을 결코 버릴 수 없었습니다.

저도 주인님에게 솔직한 제 마음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주인님의 사랑한다는 달콤한 목소리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에게 제 몸으로 봉사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들어 아랫도리가 젖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흥분했지만, 이제는 주인님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릴 때마다 끈적하게 젖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심할 때는 밤이 새도록 흥분한 몸을 달래느라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분명 저는 하루에 두 세시간만 자도 졸리지 않는 몸인데도 말이죠.

그렇게 마탑에서 돌아와 여관에 왔을 때, 저는 주인님에게 달라붙는 여자애를 만났습니다.

주인님께 '사야'라고 불린 소녀는 주인님에게 달라붙어서는 주인님의 냄새를 맡아대며 애교를 부렸습니다.

주인님은 저런 애교있는 성격을 좋아하시는 걸까요?

조금 뒤에 식당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그들은 주인님의 전(前) 파티원이라고 합니다. 주인님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주인님은 늘 찾아온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주변의 다른 아저씨들이 떠들어대는 주인님에 대한 이야기와, 주인님의 전 파티원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저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습니다.

주인님이 과거 지독할 정도로 몬스터를 혐오해서 학살을 벌이고 다녔다는 사실은 저를 찔리게 했습니다.

분명 지난번에 읽었던 마도서에서는 몬스터와 마족을 다르게 분류해놨었지만 인간에게 해가 되는 종족인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저 역시 마족이었습니다.

당장 제 어깻죽지에 감춰진 날개와 머리에 나 있는 자그마한 뿔이 그 증거였습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은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겠지만 주인님은 무척 대단한 마법사이십니다. 이미 제가 마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실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주인님은 저를 거두어들이신걸까요?

어쩌면 제가 너무 어려서 차마 죽일 수 없었거나, 조금 더 키워서 그 때 죽이시려는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주인님이 저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도 주인님에게 버림받는다는 사실이 더욱 두려웠습니다.

쓴웃음을 지으시면서도 저를 상냥하게 깨워주시는 주인님의 손길, 심부름을 하거나 마법을 열심히 연습할 때마다 해주시는 이마의 키스, 커다란 손으로도 부드럽게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는 것까지.

그런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왔습니다.

저는 이미 주인님에게 완전히 길들여진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주인님이 없는 삶은 더 이상 제게 의미가 없었습니다.

설령 마족의 증표인 뿔을 자르고, 서큐버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날개를 자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주인님의 곁에 남을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습니다.

주인님은 제게 있어서 모든 것이었습니다.

저를 차가운 철창 속에서 꺼내주시고, 고작해야 노예에 불과한 저를 마치 딸처럼 키워주셨습니다.

제 또래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고, 함께 식사를 하게 해주셨습니다. 과분하기 짝이 없는 대우입니다.

결국 저는 그런 주인님에게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속마음은 한없이 따뜻하신 주인님에게 말입니다.

만약 주인님만 괜찮으시다면, 영원히 주인님을 모시고 싶으시다는 막연한 환상마저 품고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주인님이 사실은 병적으로 몬스터를 싫어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저는 당장이라도 주인님이 저를 버리실 것만 같은 위기감과 공포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곘습니?

완전히 공황상태가 된 저는 멍하니 있다가 결국 탁자에 엎드려버렸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엉엉 울고 싶었지만 다른 분들이 모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눈치 없게 그랬다가는 주인님께 민폐가 될 것이 분명하니 저는 최대한 소리내지 않고 훌쩍거렸습니다.

그렇게 울음을 참으며 훌쩍이다 지친 저는 잠에 빠졌고, 악몽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반쪽짜리라고는 해도 서큐버스가 악몽을 꾸다니.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틀림없이 비웃을 것입니다.

하지만 악몽 속에서의 저는 너무나도 비참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님의 곁에는 제가 이미 알고 있는 몇몇 여자들이 곁에 붙어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제 주인님에게 달라붙으며 아양을 떨었고, 주인님은 그런 그녀들의 가슴을 주무르며 웃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이것이 꿈이란 것을 자각했습니다.

주인님은 절대 저런 색마가 아니시니까요. 하지만 비록 진짜 주인님이 아니라고는 해도, 주인님의 형상을 한 그가 여자들과 놀아나는 것을 보는 것은 절대 기분좋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인님."

결국 참지 못한 저는 주인님을 불렀습니다. 애타는 제 목소리가 닿은 것인지 그는 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쯧. 냄새나니까 저리 꺼져. 빌어먹을 마족 년아."

이때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경멸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마치 더러운 오물을 본 것처럼 얼굴을 찌푸린 주인님은 다시 자신에게 아양을 떨어대는 여자들을 보며 헤벌레 웃었습니다.

분명 저 남자는 진짜 주인님이 아닌데도, 저는 주인님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그런 상황은 몇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주인님을 다시 만날 때마다 주인님은 각기 다른 여자들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고, 제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주인님을 애타게 불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무시로 일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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