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음을 하며 욕망을 달래다가 절정할 때의 그 감각이 몇 번이나 연속해서 전해져 오는 기분이었습니다.
게다가 단순한 쾌감 뿐만 아니라 주인님이 잠결에 느끼시는 감각마저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런게 서큐버스의 능력인 것일까요. 저는 주인님에게 입을 맞추고 있을수록 주인님의 몸에 남아있는 정기가 제게 빨려들어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분명 지난번에 읽었던 책에서는 서큐버스에게 정기를 갈취당한 남자는 말라비틀어져 죽는다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지금의 저는 정반대의 상황에 쳐해있었습니다.
주인님의 몸 안에 남아있는 정기는 너무나도 막대해서, 오히려 제 몸이 견뎌내질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민감해진 몸을 달래기 위해 열렬한 키스를 하던 도중, 분명 오늘 아침에 주인님이 숙취로 고생하시던 모습을 기억해냈습니다.
무척 힘들어보이시던데, 혹시 제 능력으로 주인님을 편히 잠들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짐작은 맞았습니다.
주인님의 몸에 남아있던 정기를 빨아들이자 주인님에게서 풍겨오던 술냄새는 점점 사그라들었고, 붉게 달아올라 있던 얼굴색도 평소처럼 돌아오셨습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정기를 빨아들여서 그런지 저는 머리가 조금 어질어질거렸지만 그 이상으로 기분 좋은 쾌감에 만족했습니다.
주인님과 키스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수십 번이 넘는 절정을 연달아 하는 바람에 이미 아랫도리는 애액으로 흥건하게 젖어버렸습니다.
혼자서 자기 위로를 하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비록 이번에는 잠드신 주인님 몰래 해버렸지만 다음에는 꼭 맨정신인 주인님과 이럴 수 있기를 바라며, 저는 기분 좋게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아이린의 갑작스런 변화 때문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정작 아이린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이나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어제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성장한 자신의 흉부를 보며 아이린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제 새로운 옷을 맞춰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안 그랬다가는 아이린이 몸의 라인이 완전히 드러날 정도로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거리를 돌아다녔어야 할 수도 있으니까.
결국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아이린에게 먼저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고는 가방에 챙겨뒀던 수첩을 꺼냈다.
적어도 내가 모르는 현상이 일어난만큼 현상에 대해 기록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인은...알 수 없음. 결과로는 갑작스런 육체의 성장.
만약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못해도 2~3년은 더 있어야 저렇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대단한 비약이라고 해도 몸의 성장을 촉진하는 정도에 불과할 뿐,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체형을 뒤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 추측이 맞다면 아이린의 종족인 '서큐버스'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내게 남아있는 어제의 기억 중에서는 아이린이 저렇게 변할만한 이유로 짐작가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어제 그렇게 술을 마셔대는게 아니었는데.
세이빌의 싸구려 도발에 넘어가는 바람에 완전히 기억이 날아가버렸다. 음. 조금 있다가 세이빌 녀석은 만나면 일단 두드려 패줘야겠군.
그렇게 결심을 하고 있는데 문 너머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루~디! 아침이야! 일어났어?"
어제와 똑같은 상황에 데자뷰가 느껴졌다. 방문을 열어주자 역시나 그 곳에서는 사야가 있었다.
"어라? 생각보다 멀쩡해보이네? 세이빌이랑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다 엎어져 있던데."
사야도 어제와는 정반대로 숙취 하나 없는 나를 보고 이상하게 여겼지만 나는 적당히 허세 섞인 대답을 하며 사야를 먼저 내려보냈다.
"내가 원래 좀 술이 세잖냐. 금방 씻고 내려갈게. 먼저 가서 음식 주문해놔."
"응! 알았어!"
여우귀를 쫑긋 세우고는 종종걸음으로 내려가는 사야를 확인한 나는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보니 오늘로 사야와도 작별인가.
하도 닦달을 해대서 반 년에 한 번은 수도에 올라오기로 약속을 하기는 했지만 매일같이 보던 과거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횟수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모험가로 활동하는 그들과 은퇴한 내가 함께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사야는 무척 아쉬워하며 수도에 가게를 차리면 안 되냐고 했지만 거절했다. 수도에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를 싫어하는 녀석들도 꽤나 있었다.
나 혼자라면 모를까 함께 지내는 아이린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주인님. 다 씻었어요."
아이린은 들고있던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왔다. 키가 성장하며 머리카락 역시 늘어나 있었다.
마치 폭포처럼 그녀의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보랏빛 머리카락은 물기를 머금고 보석처럼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분명 어제만 해도 씻고 나온 그녀를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을텐데.
나는 잡념을 떨쳐내기 위해 욕실에 들어가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었다. 숙취도 없었기에 정신은 금방 깼지만 다른 의미로 머리가 아파왔다.
지금부터 아이린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그리고 영지에 돌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린의 갑작스런 성장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그래도 머리를 싸매고 있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었기에 나는 최대한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다. 다 씻고 욕실에서 나오자 몸단장을 끝낸 아이린이 있었다.
어제 샀던 예쁜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빗은 아이린은 무척 아름다웠다.
어제까지의 아이린이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귀여운 아이네.'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면 지금은 지나가는 남자들이라면 모두 한 번씩은 뒤돌아 볼만한 미녀였다.
아이린은 원래도 예뻤지만 육체가 성장하며 그 미모가 한층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아이린은 평소처럼 내 손을 맞잡고 계단을 내려갔지만 그 의미가 어제와는 크게 달랐다.
어린 아이와 보호자와 같은 느낌과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배덕한 관계로 보이는 것에는 꽤나 큰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예상대로 여관을 내려가자 다른 모험가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녀석들을 일일이 상대하다간 끝이 없었기에 나는 빠르게 무시하며 파티원들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이미 자리에 모여있던 파티원들 역시 확 달라진 아이린의 분위기를 보고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사야는 노골적으로 아이린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아이린은 이겼다는 듯이 우쭐해하며 자신의 가슴을 내밀고 있었다.
꼬맹이 녀석들의 기싸움은 둘째치고 스텔라와 카니스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루디. 어떻게 된거야? 하루만에 저렇게 육체가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는데."
"그러게나 말이야. 꽤나 흥미로운 일이구만."
스텔라는 걱정, 카니스는 호기심 섞인 질문을 던져왔지만 나도 그 원인을 모르니 문제였다.
"미안하지만 나도 모르는 일이야. 아침에 일어나보니 저렇게 커져있더라고."
카니스와 스텔라도 어이없어 했지만 그게 사실인데 어떡하겠는가. 한순간에 사람의 육체를 성장시키는 방법이라니.
그런걸 내가 알고있었다면 포션 상점 따위나 하지 않고 있었겠지.
그렇게 우리 셋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아이린과 사야를 보며 누구 할 것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오직 세이빌만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침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작별 인사가 이어졌다.
사야는 또 내게 떠나지 않으면 안되냐고 매달려왔지만 자주 편지하겠다는 내 약속에 그제서야 입을 삐죽 내밀면서도 떨어졌다.
"다들 그런 눈으로 보지 좀 마. 조만간 다시 올라온다니까 그러네."
"루디는 거짓말쟁이잖아. 모험가를 그만 둘 때도 자주 연락하겠다고 해놓고."
사야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나는 헛기침을 했다.
여전히 불퉁한 태도인 사야를 꼭 끌어안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사야의 머리 위에 있던 여우귀가 살랑살랑 앞뒤로 움직이는걸 보니 이제서야 기분이 좀 풀린 모양이었다.
"이번엔 정말로 약속할게."
"...히잉. 알았어. 루디가 안 올라오면 내가 내려가버릴거니까. 꼭 약속 지켜야해?"
그 다음인 스텔라와는 가벼운 포옹을 했다.
"내가 너를 걱정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몸 조심해."
"그래. 걱정해줘서 고마워."
"뭐... 내가 걱정하는 쪽은 여자 쪽이지만."
그렇게 말한 스텔라가 여전히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아이린과 사야를 슬쩍 눈짓하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고보니 바스티안 영지에서 만난 여자들만해도 한 손으로는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자다가 칼침 맞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지금까지는 아슬아슬하게 관계를 숨겨오느라 들키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럴거란 보장은 없으니까.
스텔라 다음은 카니스였다. 카니스와는 별 다른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악수를 하며 눈빛을 교환할 뿐이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세이빌과는... 그냥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주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생각해보면 이게 다 저 녀석 때문이 아닌가?
어제 술에 취해 있지만 않았어도 아이린이 성장한 이유를 알 수 있었을텐데.
파티원 뿐만 아니라 다른 모험가들과 카바인과도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오고 싶으면 언제든 올라오라고. 그 때는 루디 특제표 메뉴를 개발해두마."
"그것 참 기대되는 이야기네. 지난번의 그 양고기만 아니면 좋겠는데."
입 안이 불타는 듯한 그 얼얼한 감각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았다.
작별인사가 모두 끝나고, 우리는 녀석들의 배웅을 받으며 여관을 나섰다.
물론 이대로 바로 영지에 내려갈 생각은 없었다.
켈디락에 올라와 있는 동안 아이린에게 신경써주지 못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수도를 잔뜩 구경시켜 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여성 잡지에도 자주 실리는 유명 디저트 가게 '프로쉐'였다.
지난번에 아르웬이 내가 준 초콜릿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곳의 디저트는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여자들의 로망이었다.
일반적인 디저트 값의 세 배를 호가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은 몇 개 사먹기도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프로쉐는 단순한 디저트 가게가 아닌 카페 형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귀족가 영애들의 만남의 장소로 손꼽히기도 했다.
프로쉐의 입구에는 메이드복을 입은 직원들이 정중하게 안쪽으로 안내했다. 널찍한 테라스와 함께 온갖 고급스런 디저트들이 준비되어 있는 모습에 아이린이 눈을 반짝였다.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여자라면 단 것에 환장하는 것은 모든 똑같은 모양이었다.
프로쉐는 귀족들이 주 고객인 가게답게 손님마다 직원 한 명이 붙어있다가 메뉴를 고르면 직원이 그것을 담아주는 방식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넉넉하게 챙겨갈까. 단 것을 즐겨먹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손님을 맞이할 때 내놓거나 선물로 들고가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예전에 찾아왔을 때보다도 꽤나 메뉴가 늘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