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1화 (201/260)


'아니. 문제가 없긴 개뿔이.'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아이린은 아직 열다섯도 되지 않은 소녀인 것에 비해 나는 서른이 넘은 아저씨였다.


계란 한 판을 채운 것도 모자라 다섯 살만 더 나이를 먹으면 할아버지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다.


대부분의 남자애들이 열일곱에서 열여덟 사이에 결혼을 하고, 여자애들은 성인이 되는 것과 동시에 이미 점찍어둔 신랑감과 결혼을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는 열여섯의 생일이 대륙의 사람들에게는 기념비적인 날인 것이다.


금슬이 좋은 부부라면 결혼하고 일 년 안에 아이를 가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반면 나는 서른이 먹도록 아이는커녕 아내도 없었다.


이런 노총각인 내가 아이린 같은 아이를 품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 일이었다.


'애초에 아이린을 상대로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을리도 없지만.'


비록 아이린과 함께 지낸지는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았지만 나는 아이린에게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보호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를 상대로 음심을 품을 걱정은 없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자 비로소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그래. 어차피 내가 정신을 똑바로 잡고 있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이린이 지금 저러는 것 역시 아직 제대로 된 연애경험이 없어서 그럴뿐이다. 조금만 더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알게된다면 나같은 아저씨는 싫다며 남자친구를 찾아다니겠지.


......그건 그것대로 침울하군.


저택의 계단을 내려가며 건물을 둘러봤다. 트라다 쿠스만의 저택은 영주관보다도 훨씬 큰 크기를 자랑했다.


나선형의 계단과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는 어지간한 공작가의 대저택과 비견됐다.


트라다 쿠스만은 이런 건물을 혼자서 지었다니.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마도공학 뿐만 아니라 건축, 세공, 몬스터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휘한 그의 행적을 되짚어보면 천재라는 말이 절로나왔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사람이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릴리스와 다른 자매들과의 계약 때문에 건물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남아도는게 시간이었기에 느긋하게 돌아보기로 했다.


때마침 지나가던 메이드가 나를 알아봤다.


"어머. 주인님. 되게 오랜만에 뵙네요. 혹시 필요하신거라도 있으세요?"


"아니. 저택을 조금 둘러보고 싶어서.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죠. 주인님에게 봉사하는 것이 저희들의 의무인걸요."


그렇게 거창한 부탁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특히 아이린은 그녀의 '봉사'라는 말을 듣고는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우선은 저택의 약도를 암기하는 것이 먼저였다.


지난번에 둘러봤던 것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창고와 서재 정도였다. 그것 말고는... 욕실 정도일까.


지난번 다른 자매들에게 덮쳐졌던 기억을 떠올리자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러고보니 너는 이름이 어떻게되지?"


"저는 루나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주인님이 이름을 물어보시다니 조금 감동했답니다!"


사실 자매의 수가 워낙 많은만큼 당장 모두의 이름을 외우는 것은 무리일지 몰라도 나흘 동안 계속 마주치다보면 대부분은 외워지지 않을까 싶었다.


어차피 하루 이틀 볼 것도 아니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보게 될 것이니 천천히 알아가도 상관 없다.


"평소에는 저택에서 뭘 하면서 지내?"


사실 나는 그게 가장 궁금했다. 그녀들은 트라다 쿠스만이 걸어놓은 금제 때문에 저택을 벗어날 수 없었다.


유일하게 거기 해당되지 않는 존재가 릴리스였다.


"평소에는 정원에서 나무나 꽃을 가꾸거나 저택을 청소하는데, 보시다시피 오늘은 밖에 폭우가 쏟아져서 말이죠."


루나의 말대로 밖에서는 거센 빗줄기가 창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지난번에 이곳에 왔을 때는 저택에서 조금 멀어지니 날씨가 달라져서 당황했었는데, 아무리 결계가 있다고 해도 끊임없이 비가 쏟아지는 장마까지 피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저택에만 있으면 지루하거나 하지는 않고?"


최근에 내가 그녀들에게 걸린 금제를 풀어주었기에 이제는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5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녀들이 대체 뭘하면서 시간을 보냈는지가 궁금했다.


"글쎄요. 자매들이랑 함께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는걸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루나를 보니 정말로 다른 자매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야 그렇게나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 절로 친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들의 유대감이 보통이 아니란 것은 확실했다.


당장 지난번 자매들과 계약을 할 때 하나같이 자신을 마지막 순번으로 미뤄달라고 했으니까.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다른 자매들을 살리고 싶다는 것이겠지.


그 정도로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무척 부러운 일이었다.


지킬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삶의 동기가 되어준다. 물론 이제는 내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


내 옆에 서 있던 아이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영문을 모른 아이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얌전히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반지를 선물받고 싶다고 한 뒤로는 어색했던 분위기가 루나 덕분에 조금은 풀어졌다.


"두 분도 무척 사이가 좋아 보이시네요. 이름이...아이린이었죠?"


다행히 루나는 지난번 봤던 아이린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앞으로 며칠 더 머무를테니 그동안 잘 돌봐줘."


"후후. 제가 귀여운 동생들을 돌보는걸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맡겨만주세요!"


왠지 잔뜩 흥분한 루나가 눈을 빛내자 아이린은 그런 루나의 태도가 부담스러웠는지 내 뒤로 숨어버렸다.


루나는 조금 아쉬워했지만 내가 저택의 안내를 부탁하자 진지한 표정으로 앞장서서 걸었다.


기본적으로 자매들은 두 명이 한 방을 쓴다고한다. 보통은 만들어진 순서대로 방을 잡지만, 유일하게 릴리스는 예외였다. 단순한 호문쿨루스가 아닌 릴리스는 특별한 존재였기에 모네와 함께 방을 쓴다.


사실 언제 튀어나갈지 모르는 릴리스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모네가 늘 감시하고 있어야하기에 그런 것이라고 루나가 속삭였다.


릴리스의 천방지축 같은 성격을 봤을 때, 충분히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그렇게 자매들의 방을 지나 한 층을 더 내려왔다.


"이쪽은 식당이에요. 저희들은 아침과 저녁 식사는 늘 식당에서 다 같이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답니다."


"반찬같은 것들은 정원에서 기르는 것들로 차리는건가?"


"네. 사실 저희도 미각이 있긴 하지만 먹지 않는다고 해서 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릴리스는 조금 다른 것 같지만요."


릴리스는 조금만 배가 고파도 내게 어서 밥을 달라고 투덜댔고, 달콤한 간식을 한 번 맛본 뒤에는 나 몰래 찬장의 간식들에 손을 댄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런 릴리스에 반해 다른 자매들은 호문쿨루스답게 편리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번에 계약할 때 막대한 마나가 들어간대신 딱히 먹을 것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연료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계속해서 마나를 순환시키며 반영구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식당에 흥미가 생긴 나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정리된 식기와 자매들의 머릿수에 맞게 준비되어 있는 접시와 수저들이 보였다. 탁자 위에는 정원에서 미리 수확한 것들인지 버섯과 야채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아무리 먹을 필요가 없다고는 해도 향신료 하나 없이 야채만 먹는 것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당분간은 나도 그녀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할텐데, 암만 그래도 아이린과 내 몫의 고기만 요리하는 것은 조금 그랬다.


'이럴 줄 알고 고기를 넉넉하게 챙겨오긴 했지만.'


수십명 분의 식사를 준비할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기운이 빠졌다.


"우선은 이 정도면 된 것 같네. 안내해줘서 고마워."


이 정도면 저택의 구조는 대충 이해했다. 적어도 지난번처럼 저택 안에서 길을 잃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루나를 돌려보낸 다음에는 건물의 지하에 있는 서재로 향했다.


사실 루나를 보내기 전에 아이린에게 루나와 함께 쉬고 있겠냐고 물었지만 아이린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내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결국 나는 아이린을 데리고 서재에 올 수 밖에 없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도 생각했지만 트라다 쿠스만의 서재는 수도에 있던 왕립 도서관의 한 구역에 버금가는 크기였다.


물론 자료의 질을 생각하면 왕립 도서관은 이쪽에 상대가 되질 않았다.


과거 전설이라 불렸던 사람이 직접 남긴 기록들이니 그 가치는 차마 매길 수도 없었다.


"...주인님? 혹시 필요한 자료가 있다면 제가 찾는걸 도와드릴까요?"


천사같은 우리 아이린은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찾으려 하는 자료는 다름 아닌 그녀의 비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냥 서재를 둘러보는 것일 뿐이니 괜찮단다. 아이린 너도 흥미가 가는 책이 있다면 꺼내서 읽어보렴."


사실 이곳에서 아이린이 재밌게 읽을만한 책은 거의 없었다. 당연하게도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연애소설같은 것은 전무했다.


아이린의 마법 실력은 일반적인 궤를 뛰어넘었지만 아직 이론적인 부분은 보충해야할 것이 많았다.


마법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트라다 쿠스만의 기록을 보고 배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아이린은 천천히 서재를 둘러보며 읽을만한 책을 찾기 시작했다.


나 역시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의 제목을 훑어보며 괜찮은 것들이 있는지 뒤적거렸다.


'몬스터들의 습성과 비밀', '영적인 몬스터들을 공략하는 법', '인간형 몬스터에 대한 기록' 같은 서큐버스와 관련이 있을 법한 책들을 모두 긁어왔다.


고작해야 수많은 책장들 중에서 하나를 털었을 뿐인데 조건을 충족하는 책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졌다.


이걸 어느 세월에 다 보지.

산더미처럼 쌓인 책을 정리한 다음 책의 겉표지에 있는 제목을 확인했다. 그나마 가장 괜찮아 보이는 것은 '인간형 몬스터에 대한 기록'이었다.


표지를 넘기자 책 안에 쌓여있는 먼지들이 흩날렸다.


손을 휘저어 먼지를 흘려내고 나서야 목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머메이드]

[라미아]

[서큐버스]

[뱀파이어]

.

.

.


목차에 쭈루룩 적혀 있는 몬스터들의 이름들은 대부분 내가 아는 것들이었지만 드물게 처음듣는 것도 있었다.


혹시나 현재는 멸종한 몬스터인지 학구열이 불타올랐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서큐버스가 기록되어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서큐버스는 기본적으로 레이스와 같이 영적인 존재지만 그들보다 훨씬 상위 종족이다. 사람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지성체의 '꿈'에 간섭할 수 있으며, 그들 중에서도 서큐버스 퀸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마저 가능하다고 전해진다.]


서큐버스 퀸에 대한 정보는 처음 들었다. 아무래도 고블린 로드와 비슷한 느낌으로 한 종족의 수장을 의미하는 것 같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서큐버스보다는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서큐버스들은 무리지어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씩 평범한 사람으로 위장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기도 한다. 그들의 아름다운 외모와 보는 것만으로 이성을 매혹하는 색기에 홀린 남성들이 정기를 착취당하는 전례도 있었다.]


기록대로 최근들어 아이린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이 많아졌다. 물론 아이린은 일일이 거절하고 있지만, 신경 쓰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주식은 '마나'로 인간의 꿈을 조작해 음몽을 꾸게 하는 것으로 마나를 흡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는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꿈 속에서 야시시한 란제리를 걸쳐입은 아이린이 나오고, 나는 홀린듯이 그런 아이린과... 아무튼 그날 몽정을 하면서 꿨던 음몽은 역시 이것 때문인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아이린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할 리가...'


하다못해 일반적인 음몽이었다면 내가 성욕에 굶주렸다고 생각하고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꿈 속에서의 나는 아이린을 거칠게 자빠뜨리고, 마치 짐승처럼 덮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침대 옆에 놓여있던 생전 보지 못한 음란한 의상들을 아이린에게 입히려 했었다. 분명 내 기억에는 없는 옷들인데, 대체 그런게 내 꿈에서 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책을 반쯤 덮고 조심스레 아이린의 위치를 확인했다.


아이린은 조금 떨어진 책장 아래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만약 내 꿈에서 나왔던 그것들이, 아이린이 의도한 것이라면...


[서큐버스는 성장할수록 뿔과 날개가 커지는데, 그들에게 뿔은 마력이 응집되어 있는 곳으로 만약 뿔을 잘리게 되면 다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아이린도 처음에는 뾰족하게 솟아있던 작은 뿔들이 산양의 뿔을 연상시키듯이 휘어졌다. 날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내 손바닥보다 작았던 날개가 이제는 내 팔뚝만큼 길어졌다.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망정이지, 만약 이걸 들켰다간 영락없이 마족이라며 끌려갔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큐버스들에게는 '성인식'이라는 것이 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필사적으로 정보를 얻으려 했던 '성인식'에 대한 정보를 드디어 찾아냈기 때문이다.


[서큐버스는 어릴 때는 인간과 별 차이가 없지만, 성장을 하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게 된다. '성인식'의 기준은 서큐버스로서의 '첫 경험'을 의미한다. 첫 경험을 마친 서큐버스는 그때부터 꿈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푸흡!"


진지하게 책을 읽던 나는 '첫 경험'이라는 부분을 보고 사레가 들렸다.


"쿨럭! 쿨럭!"


아니. 그야 서큐버스니까 성인식이 첫 경험이라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아이린의 '그런 모습'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내가 계속해서 기침을 하자 놀란 아이린이 달려왔다. 다행히 기침은 금방 멎었고 내 등을 두드리던 아이린에게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후우. 별 것 아니란다. 책을 읽다가 조금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어서..."


"신경쓰이는 부분이요?"


아. 괜히 아이린의 호기심을 자극했나? 나는 손에 들고있던 책을 바로 덮고는 책더미들 사이로 슬쩍 밀어버렸다. 어차피 아까 그 부분이 서큐버스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보다 슬슬 식당으로 가자꾸나. 곧 있으면 저녁식사 시간이니."


평소 우리의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두 시간도 넘게 남았지만 어떻게든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아무런 소리나 지껄였다.


다행히 아이린은 그런 날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도 내 말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주인님. 그래도 꺼낸 책은 정리를 하고..."


"아냐. 어차피 식사를 하고 금방 돌아올테니까 괜찮단다."


나는 아이린의 등을 떠밀듯이 서재를 나왔다. 때마침 서재 앞으로 향하던 모네와 만날 수 있었다.


"주인님? 벌써 나오셨습니까?"


"그래. 오늘은 첫날이기도 하고, 조금만 찾아보고 쉬려고."


"그러시군요. 그럼 주인님의 방으로 안내를..."


모네는 내 방을 안내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녀의 권유를 거절했다.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식사를 준비하려면 지금부터 시작해도 모자랐다.


릴리스에게 점수도 따고, 다른 자매들에게도 얼굴도장이나 다시 찍을겸 한 번 정도는 힘을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늘은 내가 식사를 준비하겠다는 말에 모네가 납득해주었다.


"그럼 식사 준비를 도와드릴까요?"


"그래주면 고맙지. 보조 한 명이 있으면 여러모로 수월하니까."


모네는 이런 집안일에 능숙하고, 말귀도 잘 알아들으니 그녀가 도와준다면 한결 수월하게 할 수 있겠지.


"저, 저도 도와드릴게요! 주인님!"


옆에 가만히 있던 아이린이 소리쳤다.


물론 나야 거드는 손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지만, 수십 명 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모네가 도와준다는 것을 수락한 이유도 그녀가 피로를 느끼지 않는 호문쿨루스였기 때문이다.


"아이린. 평소에 우리가 식사를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단다. 정말 괜찮겠니?"


"괜찮아요! 저도 주인님을 도와드리고 싶은걸요."


"그래. 대신 힘들면 바로 얘기해줘야 한다?"


결국 아이린에게 지치면 바로 그만두겠다는 확답을 듣고 나서야 돕는 것을 허락했다. 텔레포트 마법의 후유증도 있고, 최근에 고생했으니 아이린은 푹 쉬기를 바랬는데.


아직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아공간 주머니 안에서는 시간이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음식이 부패할 걱정도 없었다.


접시들을 가득 갖다 놓고, 그 위에 챙겨온 고기를 쏟아냈다. 얼마나 먹을지는 몰라서 넉넉히 준비하기로 했다.


물론 레드 혼의 고기가 아닌 평범한 돼지고기였다. 레드 혼의 고기로 서른 명 분의 식사를 준비하려면 금세 동이 날 것이 분명했다.


"어떤 요리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너희 자매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요리는 없어?"


"저희는 고기를 거의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릴리스가 잡아 온 멧돼지를 구워 먹어 본 적은 있지만, 비린내와 잡내가 너무 심해서 별로더군요."


그야 향신료 하나 없이 생고기를 구워 먹으면 그럴 수 밖에 없다. 모네가 이렇다면 다른 자매들도 비슷하겠지.


"그러면 단순하게 해볼까."


아이린과 둘이서 식사를 할 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성을 들여서 음식을 만들겠지만, 이번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쉽고, 빠르게,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복잡한 레시피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은 피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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