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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화 (211/260)

2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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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해달라는 말이 뭐였습니까?"

"지난번 레드 혼 토벌 때 도와준 보답으로 저택 만찬에 초대할테니 돌아오면 연락해달라고 했어요."

아마 저택 만찬에 초대한다는 것은 앨리스의 의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그런 거추장스러운 짓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있으니까.

아마 그 생각은 앨리스의 아버지. 바스티안 가주에게서 나온 것이겠지.

'결국 들킨건가?'

어차피 몬스터들을 흥분시키는 포션같은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영지 내에 나밖에 없었다.

앨리스가 포션의 출처에 대해 둘러대는 것도 무리가 있을거라 짐작했다.

그러니 바스티안 가주가 내게 관심을 가지고 초대하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꽤나 급했나보군."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지난번 레드 혼 토벌에 참여한 덕분에 당분간은 문제 없어요. 이번에 저는 검을, 언니는 로브를 새로 바꿨어요."

두 사람은 여러모로 우리 영지에서 유명한 자매였다. 안젤리카의 마법사로서의 실력도 높이 평가되었고, 아름다운 미녀 자매가 모험가로 활동한다는 것은 술안주거리로 딱 좋았다.

모험가들에게 계속해서 추파를 받는 모양이었지만, 당연하게도 두 사람 다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야 하나같이 허접한 놈들 뿐이니까 그렇죠! 계획도 없고, 실력도 없는 녀석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제시카가 소리치자 안젤리카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다 이런 부분에서는 똑 부러지는 면이 있단 말이지.

"그래도 두 명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파티 정도는 구하시는게 좋을 겁니다."

불침번을 설 때도 사람이 많을수록 유리한 것처럼, 점점 더 랭크가 높아질수록 파티를 꾸리는 모험가가 늘어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상대하는 몬스터의 등급이 올라갈수록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의 존재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지기 마련이다.

"...고려해볼게요."

조용히 있던 안젤리카가 내 말에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라면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줄 알았다.

"청소중이라 차를 대접하진 못하겠지만, 대신 다른 선물이라도 드리겠습니다."

나는 저택의 창고에서 챙겨왔던 팔찌와 목걸이를 꺼냈다. 설마 장신구가 선물일 줄은 몰랐는지 두 사람 다 놀라워했다. 언제나처럼 냉철하게 물건을 관찰하는 안젤리카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배배꼬는 제시카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루디 씨도 참. 부끄럽게 이런걸 선물로..."

"...이런 아티팩트는 어디서 구하신거죠?"

장난스럽게 내 어깨를 쿡쿡 찌르던 제시카는 언니의 말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티팩트는 고명한 마법사나 연금술사만이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부르는게 값인 진귀한 물건이었다.

일상생활에도 보급된 마도구와 다르게 사용자의 능력을 직접적으로 올려주기 때문에 부르는게 값인 물건이었다. 수많은 모험가들이 던전에 들어가는 것도 아티팩트 때문이었다.

고대에 사용한 아티팩트는 귀족들이나 모험가 길드에서 비싼 가격에 매입하기 때문이다. 아티팩트 하나 팔면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게 아티팩트라고요? 정말?"

조심스레 자신의 앞에 놓인 목걸이를 들어올린 제시카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네. 우연히 창고를 정리하다 나온 물건인데, 저는 더 이상 쓸 일이 없으니 두 분이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티팩트는..."

제시카는 값비싼 선물을 이유도 없이 받는게 꺼림칙한지 자신의 언니에게 선택권을 맡겼다. 안젤리카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제시카의 말대로 아무런 대가 없이 이런걸 받을 수는 없어요."

"그렇습니까."

"루디 씨에게 이런 것은 별 가치가 없다는 것도 알고있어요. 하지만 받는 저희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우니까요."

안젤리카의 말은 사실이었다. 물론 아티팩트가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당장 이 두 개만 팔아치워도 수십 골드는 거뜬히 호가할 것이다.

평범한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큰 돈이었다.

"그렇다면 대여라는 방식은 어떻습니까? 나중에 제가 돌려달라고 할 때 반납하시는거죠."

"...저희를 어떻게 믿고요?"

"방금 전 안젤리카 씨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게 있어서는 별 가치가 없다고. 그 말 그대로입니다. 설령 두 분이 그걸 갖고 도망친다고 해서 제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결국 안젤리카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두 사람에게 아티팩트를 주려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정말로 모험가라는 직업을 사랑하는 것 같았으니까.

흔히들 모험가라고하면 음식점에서 진상을 부리거나, 술에 취해 싸움판을 벌이는 이미지였다.

실제로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인간이 되지 못한 짐승같은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본능에 충실하며, 오늘만을 살고, 창관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런 그들에 비해 제시카와 안젤리카를 보고 있으면 에전 모험가로 활동할 때가 떠올랐다. 물론 그때의 나는 모험을 즐기지 않았지만 내 동료들은 달랐다.

야숙을 할 때도 그들은 늘 웃고 있었고, 다 같이 모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했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하다보니 모험의 진정한 재미를 하나둘씩 알게됐다.

나는 두 사람이 계속해서 모험가로 활동했으면 좋겠다. 이유는 그게 전부였다.

"...알겠어요. 우선은 받아두도록 할게요."

내가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안젤리카는 한숨을 내쉬며 팔찌를 찼다. 그러자 옆에있던 제시카도 주섬주섬 목걸이를 찼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장신구와 다를 바 없었지만 직접 아티팩트를 착용한 안젤리카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세한 효능은 나중에 직접 실험해보십시오. 마저 청소를 해야하니 이만 돌아가시고요."

나는 불청객을 쫓아내듯이 두 사람을 가게에서 내보냈다. 안젤리카는 가게 밖에 서서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지만 딱히 해줄 말은 없었다. 그보다도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아이린을 어떻게 달래야할지가 걱정이었다.

"주인님? 또 다른 여자들한테 선물을..."

아이린은 호색한을 보는 것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물론 아무런 흑심없이 두 사람에게 선물한 나였기에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린. 그게 아니라..."

결국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린을 달래줘야 했다. 그런데 분명 아이린은 내 노예였을터인데 언제부터인가 그녀에게 잡혀 살고 있었다. 세상은 참 불합리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 바스티안 가문에 심부름꾼을 보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저녁 만찬의 일정을 알려주면 참가하겠다는 말도.

정확히 한 시간 뒤, 돌아온 심부름꾼의 말에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그날 밤 저녁 만찬에 초대한다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당일 초대를 할 줄은 몰랐기에 내 귀를 의심했다.

적어도 며칠은 있다 초대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바스티안 가주는 내 생각만큼 참을성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이린. 오늘 저녁은 혼자 해 먹을 수 있지?"

"네. 주인님. 저는 걱정하지 말고 조심히 다녀오세요."

바스티안 가주는 일행이 있으면 함께 와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서큐버스인 아이린을 만찬에 데려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늙었다고는 해도 그는 소드 마스터. 마족을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다.

낮에는 새로운 포션을 만들고, 오랜만에 가게를 열자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오는 모험가들의 주문을 받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래도 한동안 얼굴을 못 봤던 그들이 내게 안부 인사를 묻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가 저물기 전, 나는 아이린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일단은 귀족의 저택에 초대를 받았으니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옷을 입을 필요가 있었다. 평소에는 절대 입지 않는 정장을 꺼내 갈아입었다.

몸 안에 쫙 달라붙는 수트를 입자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래봬도 우리 파티는 꽤나 유명해서 이런 연회에 참가한 적도 많았다. 그때 귀족들의 예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 대부분은 파티원 중 하나인 스텔라가 가르쳐주었지만 말이다.

우리들 중 누구도 서로의 과거를 묻지는 않았지만 스텔라가 몰락 귀족 출신이라는 것은 행동거지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천박한 다른 모험가들과 다르게 그녀는 늘 존댓말을 사용하고, 위생에 각별히 신경을 썼으니까.

갑자기 떠오른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정장의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창 밖의 하늘에는 흐린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럼 갔다오마."

나는 아이린의 배웅을 받으며 가게를 나섰다. 길을 걷던 도중 마주친 지인들은 내 옷차림을 보고 신기해했다.

"이렇게보니 루디 씨도 꼭 귀족같구만. 그런 옷은 어디서 났는가?"

"예전에 입었던 옷입니다. 오늘은 만찬에 초대받아서요."

"그런가? 아무튼 잘 다녀오게나."

"수고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평소와는 다르다는 느낌인 모양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게 잘 어울린다며 칭찬해주었다. 특히 생각보다 근육이 잡혀있는 내 몸을 보고 놀라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바스티안 가문의 저택에 도착했다. 만찬이라고는 했지만 어차피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정문에 도착하자 경비를 서고 있던 경비병들이 허리를 숙이며 비켰다. 열린 철문 사이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메이드가 내 옆에 붙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주인님과 아가씨는 아직 업무를 보는 중이십니다만, 먼저 식당에 가 계시겠습니까?"

"그러지요."

만약 같은 급의 귀족이었다면 직접 가주가 나와 손님을 반기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평민인 내가 그런 대우를 받을리가 없었다. 메이드의 안내를 받아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비록 검소한 생활을 하는 바스티안 가문이라고는 해도 역시 평민과는 격이 달랐다.

서른 명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긴 탁자 위에는 수십 개가 넘는 접시에 요리가 담겨 있었다.

물론 값비싼 재료를 사용한 요리들은 아니었지만 푸짐하다고 부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럼 자리에 앉아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메이드가 권한 자리는 상석의 맞은편이었다.

가주와 정면에서 마주보게 되는 자리였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있으니 탁자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요리가 들어왔다. 중간중간 요리를 세팅하는 메이드들이 나를 힐끔거렸지만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어주었다.

그렇게 오 분 정도 지났을까. 식당 입구에서 묵직한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가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1. 오늘 저녁이나 밤에 한 편 더 올라갈 예정입니다. 추석때 펑크난 몫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적겠습니다.

2. 비록 연휴는 끝났지만 다들 힘내서 한 주를 시작하길 바랍니다!

3. 오타나 오류는 댓글로 남겨주시면 최대한 빨리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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