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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화 (216/260)

216화

<-- Ch 41 -그녀가 바라는 것- -->

그렇게 저택의 바로 옆 골목까지 앨리스를 바래다주었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루디 씨도 어서 돌아가세요. 아이린이 기다리고 있다면서요."

여전히 비틀거리는 앨리스가 걱정되 그녀의 저택의 옆골목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녀가 기사들의 인사를 받으며 저택에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다시 길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한적한 밤거리는 새벽바람으로 꽤나 쌀쌀했다. 술기운에 달아올랐던 몸이 차갑게 식자 나도 모르게 외투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는건 아니겠지.

방금 전 골목길에서 옷을 벗고 몇 시간이나 해댄 것을 생각하면 걸려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런 이유로 감기에 걸렸다간 어디가서 변명도 하지 못한다.

발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덧붙이자면 내 온 몸은 차갑게 굳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젠장. 술이 웬수지. 무슨 생각으로 취기를 몰아내지 않은건지 알 수가 없었다.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간신히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이린은 탁자에 엎드려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녀를 깨우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문을 닫았는데, 문이 닫히며 나는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린이 반쯤 감긴 눈을 떴다.

"...으응...주인님..."

마치 아기 고양이처럼 자신의 눈가를 손등으로 비비는 모습은 무척 귀여웠다. 잠기운이 덜 깼는지 눈을 희미하게 뜬 아이린은 내게 다가왔다.

다가온 아이린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외투를 끌어당겨 냄새를 맡았다.

"...주인님. 혹시 술 드셨어요?"

아이린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아이린은 내 외투를 잡아당기며 집요하게 냄새를 맡았고, 점점 눈매가 사납게 치켜올라갔다.

딱 봐도 화나 보이는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나는 일부러 취한척 그녀를 끌어안았다.

지금은 술기운이 거의 다 사라졌지만 맨정신으로 아이린을 달래는 것보단 취한척 슬쩍 넘어가는게 편하겠지.

일부러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척을 했다.

눈을 반쯤 감고 양 팔로 아이린의 등을 감았다.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몰라보게 성장한 아이린이었지만, 아직까지는 내 품 안에 쏙 들어왔다.

"아이린. 아직... 안 자고 있었구나. 후우..."

숨을 내쉬자 술냄새가 확 풍겼다. 일부러 혀 꼬인 발음을 흉내내느라 힘들었지만, 아이린의 경계심을 푸는데는 성공했다.

내가 예상 이상으로 만취했다고 생각하는지 그녀는 당황하면서 내 등을 토닥였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그럼. 괜찮고말고. 별로 취하지도 않았단다."

"정말이지..."

그렇게 아이린은 나를 부축해서 방까지 데려다주었다.

내가 비틀댈 때마다 아이린이 나를 걱정스레 쳐다봐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어깨를 부축하기 위해 아이린이 달라붙자 코를 간질이는 달콤한 체취에 침을 삼켰다.

서큐버스들은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고 들었는데 그 덕분일까.

내 방에 들어온 다음, 나는 아이린의 부축을 받아 침대 위에 쓰러졌다. 꽤나 피곤했기에 조금만 긴장을 풀면 그대로 잠들어 버릴 것 같았다.

"주인님도 참. 어쩌다 이렇게 취하신거에요?"

아이린은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쳐다봤다. 나는 아이린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고, 술에 취해 잠꼬대를 하는 척 연기했다.

"으음...아이린..."

그렇게 잠시 앉아있던 아이린은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손이 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자 조금 낯간지러웠다.

평소에는 늘 내가 아이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는데, 이렇게 반대의 입장이 되니 기분이 묘했다.

아이린은 멈출 생각도 하지 않고 내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좀처럼 그만둘 생각이 없어보였기에 나는 결국 강수를 두기로 했다.

손을 뻗어 내 옆에 앉아있던 아이린을 끌어당겼고, 당황한 아이린은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내 옆에 쓰러졌다.

사이좋게 침대에 누운 모습은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하기 딱 좋았다.

"...꺄악?! 주인님?!"

이 좁은 침대에 누웠더니 방금 전의 그 향기가 더욱 짙어졌다.

조금만 더 맡았다간 중독될 정도로 감미로운 향기였다. 원래는 조금 놀래켜줄 생각뿐이었지만, 점점 스스로를 절제하기가 힘들어졌다.

아이린의 부드러운 입술과 루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자 그녀를 덮치고 싶은 욕망이 강해졌다.

'술기운이 아직 남아있는건가.'

방금전에 앨리스와 그렇게 해대고도 내 물건은 꿈틀대며 2차전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정말 참지 못하고 아이린을 덮칠 것 같아서 나는 몸을 돌리고 눈을 감았다.

내 옆에 누워있던 아이린이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제대로 듣지 못했다.

다행히 새벽 늦은 시간이어서 금세 졸음이 몰려왔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내가 눈을 뜨고 마주한 것은 좀처럼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내 옆에 누워있는 아이린은 쇄골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셔츠가 흘러내려 있었다.

아이린이 잠결에 몸을 움직일 때마다 셔츠가 흘러내려 차마 눈 둘 곳이 없었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대체 밤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린의 잠옷 바지가 반쯤 벗겨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그녀의 소중한 곳을 가리는 귀여운 핑크색 팬티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정작 아이린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지만, 내가 용납할 수 없었다.

아이린이 깨지 않도록 그녀의 잠옷바지를 조심해서 끌어올렸다.

다행히 그녀는 깨지 않았고, 나는 이마에 흐르던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만약 바지를 올려주던 도중에 아이린이 눈을 떴다면... 그 뒤의 일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런데 대체 어쩌다 이렇게된거지?'

어젯밤에 술에 꽤나 취해서 그런지 중간중간 기억이 비어있긴 했지만 집에 돌아와서 아이린과 이야기를 나눈 것은 기억났다.

희미한 기억을 어떻게든 더듬던 나는 마지막으로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잠들었던 기억을 떠올려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었다. 다 큰 소녀를 한 침대에 끌고 들어오다니.

다른 애였다면 싫다고 했을텐데 아이린은 워낙 나를 잘 따르는 아이라 그런지 당황하기만 할 뿐 거부하지 않았다.

내가 술에 취해서 한 행동이라고는 해도 아이린에게는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딱 잘라서 안 된다고 말해야겠다.

하는 김에 아이린에게 사과도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맞지?'

혹시 몰라 바지를 들춰 아랫도리가 멀쩡한지 확인했다.

다행히 아랫도리는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혹시나 싶었던 일이 없었다는 생각에 안도한 나는 조심스레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혹시나 술김에 아이린에게 그런 짓을 했다면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방에서 나온 나는 팔을 돌리며 굳어있던 몸의 근육을 풀어주었다.

서늘한 밤의 뒷골목에서 그렇게 격렬하게 앨리스와 해대고, 술도 진탕 마셨으니 오늘 컨디션은 죽여주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내 몸은 푹 쉬고 일어난 것마냥 쌩쌩했다.

'아이린 덕분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숙취가 하나도 없는 것은 말도 안 됐다. 아이린이 서큐버스의 힘을 발휘해서 내 몸과 정신을 치료해준 것이 분명했다.

내가 아이린을 챙겨줘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그녀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나중에 일어나면 잘 챙겨줘야겠네.'

그녀가 저렇게 곤히 잠들어 있는 것도 취해서 곯아떨어진 나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 생각하자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우선은 아이린이 일어났을 때 먹을 수 있는 스프부터 끓이기로 했다.

최근에는 아이린이 식사를 도맡아서 하는 바람에 내가 솜씨를 발휘할 기회가 없었지만 오늘은 힘 좀 쓰기로 했다.

몸의 원기를 회복시키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버섯과 향을 잡아줄 약초도 아낌없이 털어넣었다.

작은 그릇에 스프를 담아 간을 확인하고는 적당히 끓기 시작한 냄비를 내버려두고 지갑을 챙겨 크루거의 가게로 뛰어가 방금 막 구워진 따끈따끈한 빵을 사왔다.

아이린이 방문을 열고 나온 것은 냄비의 불을 끄고 스프를 접시에 담을 때였다.

"잘 잤니. 아이린?"

"...네. 주인님도 잘 주무셨어요?"

어딘가 확인하는 듯한 아이린의 물음에 나는 활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었다.

"물론이지.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구나."

굳이 네 덕분에 잘잤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아이린은 자신이 서큐버스라는 사실을 기피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내 대답만으로 충분했는지 아이린은 배시시 웃으며 행복해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린의 미소를 볼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보니 나도 상당히 중증이었다.

"배고플텐데 손부터 씻고오렴."

미리 준비한 스프와 빵을 본 아이린은 손을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오늘 스프는 일부러 아이린의 입맛에 맞춰 담백함을 줄이고 설탕을 조금 더 넣었다.

아이린이 손을 씻고 올 동안 나는 상을 차렸다. 아이린이 돌아온 다음에는 함께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이린이었다.

조신하게 스푼으로 스프를 떠 먹고, 손으로 조심스레 빵을 뜯어먹었다. 중간중간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내 쪽을 힐끔거렸지만 딱히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보니 그녀가 내 집에 처음 왔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삶을 포기한 듯한 체념의 눈빛과 뼈밖에 없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깡마른 몸.

처음 아이린을 구매했을 때는 단순히 서큐버스라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었지만, 이제와서는 그녀가 서큐버스가 아니라도 상관 없었다.

지금의 아이린은 내 가족과 다름없었다.

"아이린. 혹시 내가 어젯밤에... 이상한 소리를 하지는 않았니?"

분명 내 기억으로는 자연스럽게 아이린의 추궁을 넘기고, 아무 일 없이 잠들었지만 잠에 취했을때 무슨 소리를 했을지 모르는 법이다.

"딱히 그런 말씀은 안하셨어요."

"그래? 다행이구나. 그리고 어제는 미안했단다. 다 큰 처녀를 술김에 한 장난이라고는 해도 한 침대에 끌어들이다니. 면목이 없구나."

아이린이 가끔 비가 오거나 천둥이 치는 날 내 방에 찾아오긴 했지만 자신의 의지로 찾아오는 것과 내가 끌고오는 것은 의미가 전혀 달랐다.

"헤헷. 그런거라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요. 주인님. 오랜만에 주인님이랑 한 침대에서 잘 수 있어서 좋았는걸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린은 진심으로 즐거워보였다. 아이린이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다음부터는 내가 술에 취해서 이상한 소리를 해도 단호하게 거절하렴. 어제는 취해서 못 볼 꼴을 보였구나."

그런데 아이린은 내 말에 뺨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짓궂은 주인님도 딱히 싫지는 않았어요."

"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슬슬 가게 영업 준비를 해야하지 않나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린은 평소보다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1. 예상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정리해야할 일도 많고, 글을 마음에 들게 마무리짓느라 시간이 걸렸네요.

2. 대신 오늘 낮에는 한 편 더 올라갑니다. 원래는 어제 올리려 했지만 마침 오늘이 공휴일이니 오늘 하루 결제하시는 분들이 몰아서 보시기 편하라고 연참 일정을 잡았습니다.

3.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푹 쉰 동안 늦어졌던 분량은 금방 따라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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