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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화 (220/260)

2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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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게 될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대놓고 묻지는 않지만 아주머니들과 대화할 때도 뉘앙스에서 멀쩡한 청년이 왜 아직도 결혼을 안하는 것인지 궁금해하는게 느껴졌으니까.

"글쎄. 너희가 보기엔 왜 그런 것 같니?"

역으로 내가 질문하자 소녀들은 각기 생각에 잠겼다. 과연 그들이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했기에 느긋하게 옆의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나에 대해 수군거리는 어른들이야 그렇다쳐도, 순수한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궁금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아까부터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던 소녀였다. 그녀는 입가에 생크림이 잔뜩 묻은 채 외쳤다.

"저희 아빠가 그랬어요! 그 나이를 먹고도 아내가 없다는건, 고자인게 분명하다고!"

너무나도 당당한 외침에 순간 다들 얼굴이 굳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다못해 성불구자 취급을 받게 될 줄이야.

다른 소녀들은 '고자'라는 단어가 부끄러운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들의 시선은 자꾸만 내 쪽으로 향했다. 마치 정말로 내가 성적으로 심각한 결함이 있는지 가늠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 말해두겠지만 난 고자가 아니야. 내 것은 지극히 정상이니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러니 너희 아버지한테는...아니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만약 애들한테 이런 말을 한게 알려졌다간 단번에 평판이 바닥을 향해 떨어질 것이었다.

어린애들한테 성희롱을 일삼는 변태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아무리 남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부정당해서 발끈했다고는 해도, 애들한테 할만한 말은 아니었다.

"방금 전에 내가 한 말은 잊어주렴. 그보다 다른 생각은 없니?"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고, 이런 화제가 거북했던 다른 소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직 해맑게 웃으며 고자라고 외쳤던 소녀만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다행히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기 전에 다른 소녀가 말했다.

"저는... 루디 씨가 어린 여자들에게 관심 없어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확실히 저런 면이 있다. 흔히 여자는 자신보다 성숙하고 능력있는 연인을 원하지만, 남자는 귀엽고 어린 연인을 찾으니까.

대부분의 부부는 남편이 아내보다 나이가 많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녀의 말은 내가 그런 '특수한' 취향이라 연인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확실히 방금 전에 비하면 정상적인 추측이었다.

당연하지만 영지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노처녀는 없다. 사실 내 나이 정도의 여자라면 자식을 두셋 정도는 낳고도 남았다.

"아깝지만 틀렸어."

물론 나도 예전에는 연상의 여자들이 더욱 끌릴 때가 있었다.

나보다 어린 여자는 너무 풋풋한 느낌이 나서 차마 건드리질 못하고, 자연스럽게 경험이 많고, 하룻밤 상대를 할 수 있는 여자를 찾았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연상의 여자들을 만났고.

하지만 이제와서는 나보다 연상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최근에 나와 관계를 맺은 여자만봐도 나보다 연상은 한 명도 없었다.

'릴리스와 모네가 연상이라면 연상이긴한데...'

그 두사람은 인간이 아니니 제외하도록하자.

"그것도 아니라면 루디 씨는 대체 왜 아무도 안 사귀는거에요? 혹시 다른 곳에 숨겨둔 아내가 있다거나...?"

"그럴리가 있겠냐. 그냥 이 영지에 내려온지 얼마 안 되서 아는 여자도 없었고, 아이린까지 돌보게 됐으니 사귈 수가 없었던거지."

아무리 친척의 아이라고 해도 애가 딸려있는 남자와 사귀고 싶어하는 여자는 드문 법이다. 내 말에 납득했는지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루디 씨는 여기 내려오기 전에는 뭐했어요?"

그러고보니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최대한 과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적당히 돌려말할까 싶었지만... 맑은 그녀들의 눈을 마주보니 거짓말을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모험가."

"역시 그랬구나."

"헤에... 루디 씨도 모험가였군요."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신기하네요."

...어라? 눈 앞의 소녀들은 마치 내가 모험가로 활동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었다는 태도였다. 나는 이때까지 티를 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 의문에 소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그야 몸이 좋잖아요."""

그녀들은 그렇게 소리치면서 내 배를 슬쩍 쳐다봤다.

"다른 아저씨들은 루디 씨 나이쯤되면 배가 잔뜩 나오는걸요?"

"맞아맞아. 하나같이 배불뚝이 아저씨들 뿐이라니까."

"그에 반해 루디씨는 근육이 드러날 정도인걸요?"

그런걸로 들킨건가. 어쩐지 김 빠지는군.

확실히 영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늘 가게에만 있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배가 튀어나와 있었다.

꾸준히 몸을 단련해야하는 모험가나 기사가 아닌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살이 찔 수 밖에.

"헤헷. 저도 아저씨 근육 한 번만 만져보면 안되요?"

"...어머. 그럼 저도 한 번만."

"흠흠. 거기에 대해선 저도 관심이 있어요."

하나같이 위험한 눈을 한 소녀들이 내 배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

물론 그녀들도 한창때니 이런 것에 관심이 있는 것도 이해하지만, 곧 있으면 성인이 될 소녀들이 외간 남자의 몸을 만지는 것도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이걸 거절해야하나, 눈 딱 감고 허락해줘야하나 고민하던 도중 아이린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들을 멈췄다.

"시간이 늦었는데. 다들 들어가야하지 않아?"

분명 부드럽게 친구들에게 묻는 목소리였지만, 아이린의 눈은 전혀 웃고있지 않았다.

당장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이라는 압박감마저 느껴졌다. 아이린의 친구들은 뻗었던 손을 슬금슬금 빼더니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버렸네."

"나, 나도 슬슬 돌아가야해."

"맛있는 간식 대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가게를 나가버렸다. 평소에는 친구들을 배웅하던 아이린도 오늘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아이린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친구들을 상대로 좀 심했다.

"아이린. 나중에 친구들한테 사과해야한다?"

"...네. 주인님."

아이린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이린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주인님... 혹시 제가... 주인님한테 방해인가요?"

마치 노예 시장에서 처음 데려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은 눈을 한 아이린은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응? 갑자기 무슨 소리니?"

"혹시 주인님이 사귀거나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있는데, 저 때문에 못하고 있는거라면..."

갑자기 무슨 소린가 했는데 아까 내가 둘러대며 했던 말을 신경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럴리가 있겠니."

내게 결혼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다. 적어도 아이린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들이 먹은 다과의 접시와 찻잔을 치웠다. 쟁반에 식기를 모두 담은 다음 아직까지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아이린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은 기분좋게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아이린. 나는 널 만날 수 있어서 늘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지난번에도 말했지? 네가 날 떠나지 않는 이상 나도 널 버리지 않을거라고."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테고.

"네가 머무르고 싶다면 언제까지고 함께해도 되니까. 그런건 신경쓸 필요 없단다."

"...네!"

그제서야 아이린의 자책이 담긴 표정이 풀렸다. 역시 아이린은 미소가 훨씬 잘 어울린다. 언제까지고 그녀의 웃는 모습만을 보고 싶었다.

그로부터 사흘 후. 할터가 디아나를 데리고 찾아왔다.

"길드 토벌이 내일로 확정됐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다행이군요. 마침 내일은 쉬는 날이니 가게 일을 쉬지 않아도 되겠네요."

아이린은 차를 내오러 부엌으로 갔고, 대화에 관심이 없는 디아나는 진열장에 있는 포션을 하나하나 들어올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얼굴을 찌푸리며 코를 부여잡는 걸 보니 향이 고약한 모양이다.

"그럼 내일 새벽 일찍 만나는 것으로 하고, 따로 준비할 건 없습니까?"

"숲의 지도와 취사 도구는 저희가 챙겼습니다. 따로 필요한게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사실 영지 바로 옆의 숲에 들어가는 것인데 거창하게 준비할 것은 없었다. 그저 할터의 대답이 궁금해서 던져본 질문이었을 뿐이다.

확실히 할터는 이런 경험이 많은지 능숙하게 대답했다. 발목을 잡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저희는 어느쪽으로 가면 됩니까?"

"저희는 서쪽 숲의 오크 부락을 맡게 됐습니다. 오크 부락의 위치는 정찰대가 지도에 표시했으니, 그곳을 중심으로 주변의 몬스터들을 토벌하면 됩니다."

서쪽 숲이면 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남쪽이나 북쪽 숲처럼 지형이 가파른 것도 아니고, 몬스터들도 제법 있었다.

적어도 실적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때마침 아이린이 차를 내왔다. 할터와 나는 대화를 잠시 멈추고 차를 마시며 디아나를 쳐다봤다.

포션을 이것저것 살펴보는 디아나는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지난번에 온몸을 던져서 내게 덤벼들었던 그녀라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혹시 실적이 높으면 따로 보상이 있습니까?"

"네. 길드의 창고에 있는 무기를 원하는 것을 하나 대여할 수 있고, 길드의 간부 자리중 하나를 준다고 하더군요."

길드의 간부 자리는 꽤나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별 볼일 없는 길드도 아니고, A랭크 길드인 나이트 울프의 간부 자리는 많은 영향력을 가졌을테니까.

"할터 씨는 간부가 되는 것에 관심 없나요?"

"하하. 디아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완장에는 흥미가 없어서 말입니다. 저는 그저 마음에 맞는 동료를 구해 모험을 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단지 동료를 구하고 싶다는 말을 할 때는 조금 씁쓸해보였다. 함께해온 동료를 잃고 새로운 사람을 구하는 것이 썩 쉽지는 않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새벽 서쪽 성문 앞에서 만나는걸로 괜찮습니까?"

"물론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할터와 악수를 한 번 하고 헤어졌다.

이때까지 가만히 있던 디아나가 오늘도 대련을 하자고 난리를 쳤지만, 내일 새벽 일찍 움직여야한다는 것을 이유로 거절했다.

두 사람이 떠난 다음에는 아이린과 함께 방에 들어가서 마법을 연습했다.

최근 들어 잘 하지 않았던 원소 마법에 대한 교육과 함께 아이린의 몸상태를 점검했다.

다행히 아이린의 몸은 정순한 마나로 가득차 있었다. 꾸준히 마나를 순환시키며 차근차근 그릇을 늘린 덕분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1.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오류는 보는대로 바로 수정중이니 댓글로 알려주세요!

2. 분명 가을이 한창인데도 모기가 자꾸만 나오는 것은 왜일까요. 으으...

3. 이번 주말에는 연참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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