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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화 (221/260)

221화

<-- Ch 43 -몬스터 토벌- -->

아이린은 몬스터를 직접 잡으러 간다는 말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드디어 마법을 실전에서 쓸 수 있다는 말에 기뻐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한건가.'

아이린 또래의 소녀들에게 오크나 고블린은 흉악한 괴물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아이린이 두려워하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그녀의 관심은 온통 마법에 관한 것 뿐이었다.

"아이린. 혹시 몬스터들을 마주했을 때 무서우면 바로 말해주렴. 어디까지나 실전 연습이니까 천천히 익숙해지면 된단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님."

하지만 아이린은 정말로 몬스터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결국 나는 아이린의 마법 교육을 하며 그날 저녁까지 시간을 보냈다. 최근 들어서 아이린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였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을 다시 습득하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지식을 흡수했다. 정신 계열 마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생각을 유도하는 '암시', 정신을 망가뜨리는 '파괴', 마음을 지배하는 '최면'.

보통 마법의 난이도 역시 순서대로였다.

정신 계열 마법이 미숙하면 생각을 조금 유도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실력 있는 마법사는 완전히 정신을 붕괴시켜 자아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

노예상에서 정신 계열 마법사를 구하는 이유도 저 때문이었다. 성격이 드센 노예의 경우에는 꼭두각시처럼 자아를 없애서 파는게 훨씬 수월하니까.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된 적도 있었지만.'

예전에는 저런 방식으로 지나가는 일반인을 붙잡아 정신을 파괴시켜 팔아치운 적이 있어서 황실에서 명을 내려 노예상인들의 그런 행위를 엄중히 처벌했다.

아이린은 마법을 배운지 반년도 되지 않아서 벌써 파괴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타고난 종족 덕분인지, 다른 사람의 정신이라는 낯선 곳을 들어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린과 나는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약간의 건조식량과 물이 담긴 수통. 그리고 비상시를 대비한 포션을 몇 병 챙겼다. 아이린은 평소처럼 하늘하늘한 원피스가 아닌, 움직이기 편한 반바지에 셔츠를 걸쳤다.

마음 같아서는 보호 마법이 부여된 로브라도 선물해주고 싶었지만, 아이린이 괜찮다며 극구 사양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이른 새벽의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중간중간 벽에 기대 쓰러져 있는 주정뱅이들만이 코를 골아댈 뿐이었다. 목적지인 서쪽 성문 앞에는 이미 할터와 디아나가 와 있었다.

"오셨군요. 그럼 출발할까요?"

"잠깐만요. 그 전에 이것부터."

나는 챙겨뒀던 포션병을 하나 꺼내 바닥에 뿌렸다.

벌레나 곤충을 쫓아내는 향을 가진 포션이었다. 나와 할터는 물려도 신경쓰지 않지만, 한창 때의 소녀인 디아나와 아이린은 피부를 걱정해야하니까.

"이런 효과를 가진 포션도 있습니까. 신기하군요."

할터는 신기하다는 듯이 몸에 베인 향을 맡았다. 디아나는 포션의 향이 자극적이었는지 조금 얼굴을 찌푸렸지만 벌레가 꼬이지 않는다는 말에 참고 있었다.

아이린은 평소에도 포션을 다루던만큼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서쪽 성문의 입구에는 경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나이트 울프 길드에게 언질받은게 있는지 디아나와 할터의 옷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바로 통과시켰다.

"원래는 오크 부락 뿐만 아니라 주변의 고블린 부락들도 청소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저희 말고도 서쪽 숲에 배정받은 파티가 몇 개 더 있더군요. 아무래도 오크 부락 주변으로만 한 번 돌아야할 것 같습니다."

파티 간의 영역을 침범했다간 분쟁으로 일어날 수 있다. 나와 아이린이라는 외부인이 함께 있는 이상 그런 분쟁은 최대한 피해야했다.

"저야 편해서 좋긴 합니다만, 실적은 그걸로 괜찮습니까?"

"할당받은 부락만 토벌하면 그 이상은 자율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다시피 디아나와 저는 실적에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요."

이유는 그것 뿐만이 아닌 것 같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와 나의 관계는 오늘 하루의 동행 뿐이다. 앞으로 내가 그를 만날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서쪽 숲은 성벽에서 멀지 않았다.

남쪽 숲과 다르게 평소에도 모험가들이 자주 찾은 탓에 길이 잘 닦여 있었다. 숲의 입구에는 나이트 울프의 길드원으로 보이는 수인족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디아나와 할터는 그들에게 아는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다.

둘의 뒤를 따라 걸어가던 도중 뒤에서 들려오는 작은 비웃음 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내가 들은 것을 디아나가 듣지 못했을리가 없다. 그녀는 평소와는 다른 굳은 얼굴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어쩐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숲을 나아가며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몬스터가 아닌 멧돼지였다.

이미 다른 곳에서 전투를 치렀는지 놈의 몸에는 군데군데 상처가 남아있었다. 아마 저대로 놨두면 피냄새에 이끌린 몬스터들이 달려들겠지.

"어떡할까요?"

"저쪽은 저희를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놈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멀쩡한 다른 발로 바닥을 두어 번 차더니 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저기에 부딪쳤다간 날아가는 정도로 끝나지 않겠지.

디아나와 할터는 재빨리 나무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가만히 서 있던 아이린은 코앞에 다가온 멧돼지의 돌진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나는 아이린의 목덜미를 붙잡고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멧돼지는 아슬아슬하게 아이린의 옷자락을 스쳐지나갔다.

놈이 달려나간 바닥에는 놈의 다리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날파리들이 꼬이기 전에 빠르게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에 마법을 영창하려는 순간, 할터와 디아나가 먼저 나섰다.

등에 메고 있던 대검을 검집에서 꺼내든 할터가 다시 몸을 돌리려는 멧돼지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자신의 덩치만한 대검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할터의 대검이 질긴 가죽 사이를 파고들고, 멧돼지는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꾸웨에엑!!"

하지만 녀석이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옆에 서 있던 디아나가 주문을 읊었다.

지난번에 봤던 검은 안개가 흘러나오고, 대검이 새겨놓은 자상에 파고들었다.

비틀거리던 놈은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옆으로 넘어졌다.

덩치가 덩치인만큼 녀석이 쓰러지는 순간 바닥에 굉음이 울렸다.

"날파리가 꼬이기 전에 서두르죠."

할터와 디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냄새를 맡은 고블린이나 오크의 정찰병이라도 만났다간 훨씬 더 번거로워진다.

아직도 옆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아이린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아이린. 방금 봤듯이 실전에서는 여유있게 영창할 시간이 없단다. 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화살이 날라올 수도 있고, 기습을 당할 수도 있지."

그제서야 아이린의 눈에 희미하게 공포가 서렸다. 방금 전에 내가 아이린을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죽지는 않았더라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중상을 입었겠지.

아이린은 이런 몬스터를 직접 상대해본 적이 없다. 숙련된 베테랑 모험가도 고블린에게 목숨을 잃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 모험가는 늘 날을 세우고 있어야한다.

자신의 등을 지켜줄 동료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적이라고 생각해야만 한다.

"오늘은 내가 지켜주겠지만, 앞으로는 조심하렴."

"명심하겠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엄한 목소리에 아이린이 조금 주눅들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아이린에게 몬스터나 야생 동물들의 위험에 대해 교육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직접 그 공포를 겪어보는 것이다. 죽음의 경각에 다다른 경험이 다른 사람의 어떤 경고보다도 실감난다.

"너무 그렇게 쳐져 있지는 말고. 아이린 너는 이런 모험이 처음이잖니. 하나씩 배우고, 다시 그러지 않으면 되는 거란다."

아이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격려하자 방금 전까지 울상을 짓고 있던게 거짓말처럼 표정을 풀었다. 내 손을 꼬옥 붙잡은 아이린은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린과 그러는 동안, 디아나와 할터는 앞장서서 길을 찾고 있었다. 지도에 기록된 위치는 어디까지나 대략적이었기에 직접 찾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십 분 정도 숲을 헤매자 간신히 절벽 아래에 위치한 오크 부락을 찾을 수 있었다. 가파른 절벽 아래에 있는 오크 부락의 모습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놈들은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한창 난교를 벌여대고 있었다.

최소한의 경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교미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만 그 숫자는 결코 적지 않았다. 눈대중으로 봐도 오십 마리가 넘어 보이는 놈들을 한 번에 일망타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행인 점은 절벽 아래에 있는 동굴을 거점으로 삼았는지 그 주변에 나무로 어설프게 울타리를 쳐놨다는 것이다. 울타리 옆으로 나 있는 출구는 두 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할터는 넌지시 내 의견을 물었다.

"글쎄요. 일단은 출구를 막고, 마법으로 소탕하는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문제는 인원 배분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내가 절벽 위에서 마법을 쏟아내고, 할터와 디아나가 각각 출구를 하나씩 지키는 것이었다.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이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이깟 오크들 정도는 마법 하나만으로도 모두 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디아나와 할터에게 그런 마법을 보여줄 정도로 신뢰가 있지는 않았다.

디아나와 할터는 내가 그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니까.

"...제가 할게요."

조금 떨리고 있지만, 분명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였다.

내 손을 붙잡고 있던 아이린은 결연한 눈빛을 하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제가 마법을 쓸게요."

"아이린. 정말 괜찮겠니? 무리 하지 않아도 돼."

아이린의 마법 실력이라면 내가 보증할 수 있다.

그도 그럴게 내가 직접 가르쳤으니까. 하지만 방금 전에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했던 아이린이 망설임 없이 마법을 쓸 수 있을까.

마법은 자기 자신을 믿고 정신을 집중해야만 제대로 된 위력을 볼 수 있다.

만약 어설픈 마법을 썼다간 놈들의 화를 돋구기만 할지도 모른다. 이건 나 혼자 결정할게 아니었기에 다른 두 사람에게도 의견을 구했다.

"두 분은 괜찮으시겠습니까?"

"난 괜찮아. 설령 실패한데도 우리들끼리 막을 수 있는걸."

"저도 괜찮습니다. 루디 씨도 저 아이를 믿으니까 물어보시는 것 아닙니까? 전 루디 씨를 믿겠습니다."

오늘 처음 몬스터에게 마법을 쓰는 아이린에게 두 사람이 너무나도 흔쾌히 허락을 해주는 바람에 내가 당황할 정도였다.

어쨌든 둘의 허락도 떨어졌으니 역할을 짜기로 했다.

먼저 두 개의 출구중 하나는 디아나와 할터가, 나머지 하나는 내가 막기로 했다.

조용히 출구쪽의 수풀로 잠입한 다음, 아이린이 절벽 위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기점으로 뛰쳐나가기로 약속했다.

"혹시라도 화살이나 돌이 날라올 수도 있으니 마법을 쓰고나면 바로 엎드리거나 수풀에 숨으렴."

아이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데, 과연 그녀가 제대로 마법을 쓸 수 있을지 걱정됐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1.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점심이나 저녁쯤에 한 편 더 올라올 예정입니다!

2. 다들 주말에 푹 쉬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저도 시험이 끝나고 쉬면서 열심히 글을 적는 중이랍니다.

3. 오타는 댓글로 남겨주시면 확인하는대로 수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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