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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화 (224/260)

224화

<-- Ch 44 -짐승 길들이기- -->

하지만 그 전에 상황 파악이 우선이었다. 지능이 낮은 수인족이라고 해도 아무런 생각도 없이 같은 길드원을 공격할리가 없다. 그들이 과연 무슨 배짱으로 이런 짓을 하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아직은 디아나와 내 존재를 들키지 않은 것 같으니,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할터가 다친 것을 보고 흥분한 디아나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 하는 바람에 뒤에서 그녀를 붙잡고 입을 틀어막았다.

"흐읍?! 우으읍!!"

입이 막힌 채로도 발버둥을 치는 그녀에게 검지를 입에 갖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제서야 얌전해진 디아나가 의문스런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저 녀석들이 무슨 속셈인지는 알아야할거 아냐."

그래야 나도 어느 정도로 손을 써야할지 가늠할 수 있고 말이다. 물론 저놈들이 박살나는 것은 확정된 일이다. 그저 얼마나 박살날지가 정해질 뿐.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동료의 뒤통수를 치는 놈이었다.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도 바쁜 와중에 등을 노리는 놈이 내 뒤에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돌아버릴 것 같다.

모험가란 족속은 기본적으로 고상한 부랑자에 가깝기 때문에 몇 년이나 같이 다닌 동료라고 해도 자신이 이득을 볼 수 있다면 배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파티를 습격하는 악질도 있었다.

몬스터와 싸우는 것만으로 벅찬 상황에서 인간의 시체를 파먹고 사는 구더기 같은 놈들이었다.

보아하니 디아나와 할터는 저들과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분명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할터가 다친 것이야 나와 상관없지만...'

만약 나 홀로 왔다면 할터가 다치든 죽었든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할터의 등 뒤에 숨어있는 아이린이 있었다. 개같은 놈들이 감히 아이린을 위협했다.

겉으로 보기엔 눈에 띄는 상처가 없지만 오늘 몬스터도 처음 상대해본 여린 아이가 다른 사람들의 살의에 얼마나 겁먹었을지 상상도 가질 않았다.

반드시 팔다리를 다 분지르고, 손가락을 마디마다 꺾어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할터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할터는 충분히 저들을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는 실력이었다.

조금의 부상을 감수한다면 무리 없이 숲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는 나와 한 약속 때문에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아이린을 지킨 것이었다. 자신의 안위보다도 약속을 우선시한 것이었다.

"너도 좋은 동료를 뒀네."

내 말에 디아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할터에게는 나중에 따로 감사를 표하기로 하고, 지금은 밖의 상황에 귀를 기울일 때였다. 마나를 이용해 청력을 강화하고 동굴의 벽에 귀를 갖다댔다.

"...그러니까... 했으면..."

"뒤에... 하여튼... 끼리끼리..."

띄엄띄엄 들려오는 목소리는 제각각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마치 장난감을 갖고노는 아이마냥 즐거워보였다. 마나를 조금 더 주입하며 감각을 강화했다.

"인간 주제에 쓸데없이 맷집만 좋기는. 계속 비키지 않으면 우리도 험한 방법을 쓸 수 밖에 없다니까?"

"그래. 얌전히 길만 비켜주면 너한텐 관심도 없다고."

"수인족도 아닌 인간 주제에 디아나를 왜 아끼는거냐? 혹시 그런 취향인가?"

놈들은 할터를 조롱하며 비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의 목적은 할터가 아니라 디아나인 것 같다.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겠는걸. 그보다 너희는 길드에 돌아갔을 때 후환이 두렵지 않은거냐? 내가 길드 마스터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하면 어쩌려고?"

할터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떨림을 알 수 있었다. 나와 디아나가 나올때까지 시간을 끌 생각인걸까. 최대한 대화를 늘리려고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킥킥. 그건 디아나 그년만 죽이면 문제 없다고. 길드 마스터가 인간인 네 말을 들을까 우리 말을 들을까? 이방인이면 얌전히 구석에 쳐박혀 있지 그런년이랑 붙어먹으니까 이렇게 되는거야."

간드러지는 여자의 목소리에 할터가 침묵했다. 부정하지 않는걸보니 아마 그들의 말이 맞겠지.

마나를 사용하지 않아도 오감이 뛰어난 디아나는 그들의 말을 들었는지 표정이 굳어있었다. 그녀는 부축이 없으면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겨운 몸상태였다. 체력을 소모하지 않은 파티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리가 없다.

'어차피 할터에게는 빚도 졌고, 마침 뭐든지 두들겨패고 싶었으니 상관없겠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디아나의 몸에 둘러주었다.

"금방 끝낼테니까 얌전히 있어. 녀석들의 목표는 너니까 눈에 띄지말라고. 알겠지?"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고 중얼거리자 디아나는 홀린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괜히 이런 몸으로 뛰쳐나왔다간 지켜야 할 사람이 셋으로 늘어나버린다. 화를 푸는 것은 저놈들을 모두 제압한 뒤에 해도 늦지않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들어봤자 의미가 없다. 그리고 나도 티는 안냈지만 갑자기 저들이 아이린을 공격할까봐 엄청나게 걱정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짓을 했다간 온몸을 토막내서 개밥으로 던져줬겠지만.

나는 일부러 워커를 신은 채 당당하게 동굴 밖으로 걸어나왔다. 뚜벅거리는 발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내쪽으로 향했다.

할터의 눈동자에서는 안도와 혼란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디아나는 안쪽에서 쉬고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예상대로 디아나가 무사하다는 말에 바로 안심하는 할터였다.

"제가 더 감사하죠. 도망칠 수도 있었을텐데 약속을 지켜주셨으니까요. 이제는 쉬셔도 됩니다."

할터의 등 뒤에 숨어있던 아이린도 어느새 내게 다가왔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옷자락을 붙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미안하다. 아이린. 많이 늦었지?"

아이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가에 그렁그렁 매달려 있는 눈물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이봐. 당신은 또 누구야? 디아나는 어디갔고?"

"누가 반쪽짜리 아니랄까봐 인간이랑 붙어먹고 다녔다니까."

"저 녀석은 죽이는 편이 좋겠지? 길드원도 아니잖아."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는 모습이 같잖기 짝이 없었다. 빌어먹을 놈들이. 네 명이서 몬스터랑 싸우러 들어간 사람을 습격하는 것도 모자라서 어린애를 상대로 무력시위까지 했다.

만약 예전의 나였다면 단숨에 목을 베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성숙한 어른이었다.

조금 더 신사적이고, 건설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알았다.

"할터 씨는 아이린을 데리고 들어가십시오. 제가 저들과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이린은 가기싫다는듯이 내 옷자락을 놓지 않았지만 금방 끝날것이라고 가볍게 다독여주니 할터와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할터와 아이린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앞에 앉아있던 소년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씨발. 웃기고 자빠졌네. 이봐 아저씨. 당신이 뭔데 우리랑 말을 하겠다는거야? 아저씨는 여기서 죽어. 디아나 그년이랑 무슨 사이인지는 몰라도 잘못 걸린거라고."

이제야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넷 모두 수인족이었다.

그것도 짐승의 피를 짙게 물려받은 쪽이었다. 디아나처럼 인간의 몸에 꼬리나 귀가 달린게 아닌, 동물의 몸과 머리를 가진 놈들이었다.

놈들과 인간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이족보행을 한다는 것 뿐이었다.

육체가 짐승에 가까울수록 신체능력은 뛰어나지만 지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드물게 지능이 높은 녀석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먹으로 모든걸 해결하려했다.

"그러게. 웃기지않냐."

평소에는 그런 그들을 비웃었지만, 나도 지금만큼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이라는 간편한 해결방법이 있는데 뭐하러 대화를 나누겠는가.

"짐승 새끼가 상대도 못 알아보다니 말이야."

수도에서 만났던 수인족들은 하나같이 한 가락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수도에서 모험가로 살아남지 못한다.

수도의 모험가들과 바스티안 영지의 모험가들은 엄청난 수준차이가 있었으니까.

반면 눈 앞의 얼간이들은 상대의 강함을 가늠조차 못하고 있었다.

"이 아저씨가 미쳤나?"

"냄새나니까 입은 다물어줬으면 좋겠군. 개새끼 주둥아리에서 풍기는 악취는 참기 힘드니까."

"푸하핫!! 콜튼! 들었어? 너보고 개새끼래!"

옆에 있던 여우 수인족 여자가 내 말을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반면 눈 앞의 '콜튼'이라는 늑대인간은 내 조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를 갈며 노려보고 있었다.

"입 다물어. 제니아."

콜튼의 으르렁거림에도 제니아는 쉬지않고 웃어댔다. 결국 비웃음을 참다못한 콜튼은 내게 달려들었다. 확실히 짐승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았는지 속도가 디아나보다도 빨랐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내 머리를 단숨에 날릴 생각인지 노골적으로 내 목을 노렸다.

"멍청하긴."

그리고 콜튼의 손톱이 내 목덜미에 닿으려는 순간, 콜튼의 목은 이미 내 손아귀에 들어와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아무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콜튼이 먼저 팔을 휘둘렀고, 나는 갑작스런 공격에 반응하지 못한것처럼 공격을 그대로 허용했다.

하지만 눈을 감았다 떠보니 콜튼이 내게 멱살을 잡힌 채 낑낑대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데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그건 콜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잡고있는 골튼의 목에 힘을 줬다. 목뼈를 부숴버릴 기세로 힘을 주자 콜튼은 양 손으로 내 팔을 붙잡았다.

"끄윽...끄어억!"

그는 안간힘을 써서라도 벗어나려 들었지만, 내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날카로운 손톱으로 내 팔을 그으려 했지만 마나로 강화된 팔은 손쉽게 그의 손톱을 튕겨냈다.

방금 전에는 그렇게 강한척 폼을 잡더니, 알맹이를 까보니 형편없는 실력이었다.

물론 나도 그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것은 샌드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젠장! 어떻게 된거야!"

"콜튼이 어떻게?!"

"빌어먹을 자식!"

반면 콜튼의 동료들은 이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각자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래봤자 내가 보기엔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말이다.

마음같아선 싹다 목을 따서 파묻어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일이 귀찮아지겠지.

"하여튼 짐승새끼들은 꼭 패야 말을 듣는다니까."

나는 힘을 실은 주먹으로 콜튼의 턱을 갈겨버렸다.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목이 꺾인 콜튼은 그대로 기절했다. 숨을 쉬는걸보니 아직 죽지는 않았다.

다만 목뼈가 다시 붙기 전까지는 한동안 목이 꺾인 채로 지내야 할 것이다.

"그래. 분명 방금 전에 이렇게 말했지? 넌 잘못 걸린거라고."

그 말을 그대로 돌려줄 차례였다.

가뜩이나 기대 이하였던 블랙 오크 때문에 분풀이 상대가 필요했는데, 샌드백이 네 마리나 굴러들어올 줄이야.

나는 원래 신을 믿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신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1. 지난화를 쓸때 너무 피곤했는지 오타가 제법 있었습니다. 그래도 독자분들의 댓글을 확인하는대로 바로 수정했답니다.

2. 어제 휴재한 대신 오늘 저녁에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3.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오류는 댓글로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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