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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화 (228/260)

228화

<-- Ch 45 -나이트 울프(Night Wolf)- -->

영지로 돌아가는 길에는 고블린 정찰병 한 마리와 마주친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꽁지 빠지게 도망갔다.

그렇게 숲을 빠져나오자 긴장이 풀린 디아나가 기지개를 켰다.

"으으... 온 몸이 뻐근해."

아이린도 같은 생각인지 조금 피곤한 기색이었다. 평소에 자던 푹신한 침대가 아니라 딱딱한 바닥에서 밤을 보냈으니 저러는 것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괜찮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보이는 아이린은 정말 천사가 따로 없었다.

숲을 빠져나와 걷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벽이 보였다. 성벽 위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들을 본 나는 잠시 고민하다 할터를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성문을 통과할 때 저 녀석들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게 좋을지 생각하는 중이었습니다."

온 몸에 피멍이들어있는 네 명을 밧줄로 묶어가면 병사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볼게 분명했다. 물론 우리는 사실대로 저들이 우리를 숲속에서 습격했고, 정당방위로 제압했다고 말하면 된다.

하지만 병사들이 이 넷의 신원을 조회하고 나이트 울프의 길드원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일이 복잡해진다.

나이트 울프는 바스티안 영지의 전속 길드다. 그런 곳의 길드원이 같은 길드원을 습격했다는 소문이 퍼졌다간 나이트 울프뿐만 아니라 그런 길드를 뽑은 앨리스의 안목까지 의심받는다.

할터도 자신의 길드가 피해를 입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지 잠시 고민했다. 물론 그러고 있는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기에, 내가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럼 이렇게하죠. 성벽에 가까이가면 밧줄을 풀어주는 대신 이 네 명은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이다 부상을 입었고, 저희가 그걸 부축해서 돌아왔다고 설명하는 겁니다. 어차피 저런 몸상태로는 도망치지도 못할테니까요."

당장 포션을 마시고 사제에게 치유 주문을 받아도 거동이 힘든데, 영지 밖으로 도망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내 의견에 동의한 할터는 디아나에게 내 말을 전했다.

내 뒤에 서 있는 놈들을 연결한 밧줄을 나이프로 끊어냈다. 자유의 몸이 됐음에도 그들은 도망가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밤동안 추위에 떨며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지 초췌한 얼굴이었다.

아까 할터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하자 그들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성벽 아래에 도착하자 상단의 것으로 보이는 마차와 성문 앞에서 검문을 하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상단의 마차 품목을 천천히 살펴보던 병사가 나를 발견하고는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제보니 그는 나와도 안면이 있는 경비대장이었다. 어제 성문을 나설 때보다 늘어난 인원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루디 씨. 어쩌다가 이렇게 늦게 돌아오신 겁니까. 영애님이 얼마나 걱정을... 뒤에 있는 사람들은 누굽니까?"

혹시나 내가 늦게 돌아온 이유가 이들 때문인지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하하. 경비대장님이 걱정하시는 일은 없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단지 숲을 돌아다니다, 몬스터들과 전투중인 다른 길드원들을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하고 야영하다가 이제 막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렇습니까? 루디 씨의 말씀이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만..."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인 것 치고는 온 몸에 피멍이 들어있는게 꼭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인지 경비대장이 그들을 훑어보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의심을 지우지 못하는 경비대장을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는 가방에 넣어놨던 포션 하나를 꺼냈다. 요사한 핑크빛을 띄는 포션은 어딘가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대장님. 요즘 몸이 예전같지 않거나 하진 않으십니까?"

"무, 무슨 말인가. 크흠."

헛기침을 하면서 모르는 척하는 경비대장의 주머니에 포션을 찔러넣었다.

"밤에 하기 전에 조금씩 마시면 됩니다. 한 모금만 마셔도 며칠은 거뜬하실 겁니다."

남자에게 있어서는 거부할 수 없는 '정력제'. 내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영지에 막 도착하고 자리를 잡을 때, 경비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이런 정력제를 몇 번인가 선물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만든 포션인만큼 효과는 더할나위 없었고, 늘 집에 돌아가서 바가지를 긁히던 경비병들은 달라진 아내의 대우에 기뻐하며 내게 혹시 포션을 더 받을 수는 없는지 넌지시 물어보곤 했다.

재료가 부족해서 당분간은 만들기 힘들 것 같다고 하자, 경비병들은 아쉬워하면서 돌아갔었다.

"저번에 드렸던 것보다 효과는 훨씬 좋을겁니다. 제가 보증하죠."

"흠흠. 자네 뭘 이런걸..."

경비대장은 그런 소리를 하면서도 거부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번보다 효과가 좋을 거라는 말에 입이 귀에 걸린 상태였다.

"자네를 봐서 이번에는 통과시켜 주겠네. 그래도 앞으로는 조심하게나. 영애님께서도 자네의 안위를 걱정하셨으니 말이야."

앨리스가 경비대장에게 미리 내 편의를 봐주라고 언질을 준 것은 알고있다. 조만간 얼굴이라도 보러가야겠군.

"물론입니다. 영애님께는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분좋게 돌아온 경비대장은 앞에 있던 상단의 마차 옆으로 길을 트게하고는 우리를 먼저 통과시켜 주었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인이 불만스러운듯이 얼굴을 찌푸렸지만 괜한 소리를 해서 경비대장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검문이 더 길어지기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루디 씨. 어떻게 해결하신겁니까?"

"전에 경비대장님과 친분이 조금 있었는데, 약소한 선물을 드리는 것으로 해결했죠."

"아하..."

병사들에게 뇌물을 찔러주고 혜택을 받는 것은 별로 드문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바스티안 영지의 병사들은 영주가 기사 출신이라 그런지 다른 영지에 비해 뇌물을 거의 받지 않는 편이었다.

"그보다 저 녀석들 좀 부축해 주시지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는 남자 둘을 할터가 양 어깨에 들쳐맸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제니아를 내가 업었다. 나머지 한 명은 그나마 몸이 멀쩡했기에 제 발로 걸어서 우리 뒤를 따라왔다.

아이린은 내가 제니아를 업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가볍게 볼을 부풀렸지만, 그녀의 이마에 장난스레 키스해주자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서는 디아나에게 달려가버렸다.

나이트 울프의 길드하우스는 모험가 길드 바로 옆 건물이었다. 정문에 사납게 생긴 늑대의 음각이 새겨져 있었다. 방금 전에 상대했던 늑대처럼 생생한 조각의 모습에 아이린이 멍하니 바라봤다.

할터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침부터 술판이라니.

이대로 괜찮은건가 싶었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수도에서 친하게 지내던 수인족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하나같이 마초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근육 괴물들이었다.

확실히 제니아 같은 놈들만 있었다면 나이트 울프가 B랭크 길드라고 인정 받을 수 있었을리가 없다. 그저 이 녀석들이 약해빠졌을 뿐이리라. 그들은 우리를 보고도 눈길 하나 주지않고 자기들끼리 건배를 해댔다.

원래 길드가 이런 곳이던가? 적어도 내가 아는 길드는 동료가 모험을 나갔다 돌아오면 인사 정도는 하면서 반겨주는 곳이었는데.

하지만 디아나와 할터는 이런 반응에 익숙한듯 아무렇지 않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반면 아이린은 그야말로 시각에 폭력적일 정도로 이어지는 근육질 육체들의 향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2층과 3층은 길드원들의 숙소인지 하품을 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이 드물게 보였다. 계단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집무실이라고 팻말이 걸려있는 방이 나왔다.

디아나는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고는 긴장한 표정으로 방문을 두드렸다. 노크를 하고 기다리자 방 안에서 조금은 신경질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여자?'

허락이 떨어지자 디아나가 방문을 열고 들어갔고, 우리도 그 뒤를 따랐다. 집무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넓었는데 벽에는 방패, 검, 창, 도끼 등 온갖 무구들이 걸려 있었다.

집무실이 아니라 무기 창고를 잘못 들어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정말이지. 한창 바쁠 때... 디아나? 뒤에 있는 사람은..."

신경질적으로 책상에 쌓여있는 문서를 집어든 수인족 소녀는 토끼 귀가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키도 무척 작아서, 마치 처음 만났을 때의 아이린을 떠올리게 했다. 어째서인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의 옆에 있는 남자는 늑대 수인족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듯이 회색빛 머리카락을 장발로 기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인간 쪽의 피를 강하게 물려받았는지 귀와 꼬리를 제외하고는 인간과 다른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남자 쪽은 외부인이 집무실에 들어왔음에도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상황을 보면 오른쪽의 남자가 '데린'이라는 길드 마스터겠지.

하지만 나는 그와 대면하고도 언제 만났던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내가 고민에 빠져있는 동안 디아나는 토끼 귀 소녀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미안해. 루카. 그래도 뒤에 있는 사람은 우리를 도와주신 분이니까 너무..."

'루카'라고 불린 토끼 수인족 소녀는 여전히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그녀의 옆에 있는 데린도 마찬가지였다. 뭐냐.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건가?

"...그래. 아무래도 지금은 일을 할 때가 아닌 것 같네. 루디 씨와 그 일행 분. 차를 내올테니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주시곘어? 디아나 너는 나하고 이야기 좀 해."

루카의 말에 상황이 정리됐다. 루카는 차를 내오겠다는 말과 함께 디아나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렇게 둘이 사라지자 이때까지 가만히 있던 데린이 입을 열었다.

"할터.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듣겠다. 이만 가서 쉬도록."

그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느껴졌다. 단순히 위엄어린 목소리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순간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아이린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입꼬리를 파르르 떨며 내 팔을 꼬옥 끌어안았다.

전에도 비슷한 감각을 느낀 적은 몇 번인가 있었다.

인간을 유혹해 바다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들을 때가 그랬다. 물론 데린에게서 느낀 힘은 세이렌의 허접한 유혹과는 격이 달랐다.

본능적으로 상대방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명령을 받들게 만드는 강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미물을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한 힘이었지만, 이미 정신 계열 마법은 빌어먹을 스승으로 단련된 나였기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저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에 불과할 뿐이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1.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론 수인족도 무척 좋아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힘들고 다음 작품이 있다면 제대로 다뤄보고 싶습니다.

2. 주인공의 과거행적이 드러나면서, 아이린과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교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진도를 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3. 오타나 오류는 댓글로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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