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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화 (234/260)

2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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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소년이 양상추와 토마토가 섞인 샐러드를 접시에 가득 담아왔다. 소년은 나와 아이린의 앞에 접시를 하나씩 내려놓고, 맞은편의 루카에게 향했다.

토인족인 루카도 고기보단 샐러드가 좋은지 양상추와 토마토를 포크로 찍어먹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만찬에서 샐러드를 먹는 사람은 우리 셋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순식간에 애피타이저로 나온 스프와 훈제 연어를 먹어치우고 메인 요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장의 솜씨는 상상 이상으로 훌륭했다.

훈제 연어는 한 점 집어먹은 것만으로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정신없이 먹다보니 접시가 텅 비어 있었다. 감질맛에 입맛을 다시는 사람들을 보니 애피타이저의 역할은 충분히 하는 것 같다.

옆에 있던 물을 들이키며 입을 헹궜다.

다음 요리가 나오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내 옆에 앉아있던 '시안'이라는 청년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보니 루디 씨는 수도에서 유명인사였죠? 저희 길드도 평판을 쌓으려고 수도에 상경했을 때, 루디 씨의 일로 한창 떠들썩했거든요."

"그래? 별로 유명하진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파티가 수도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 혼자서 이름을 날릴 적은 별로 없었다.

"아니에요. 루디 씨의 파티는 수도에서도 손꼽히는 파티였잖아요. 그런 파티의 리더가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고 사라졌다고 모험가 길드가 발칵 뒤집어졌다니까요?"

시안은 과장스레 양 팔을 벌리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내가 떠나고 그런 일이 있었나. 확실히 파티원들을 제외하고는 모험가를 그만둘 것이라는 말도 하지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서까지 그만둘만큼 거창한 직업도 아니었고, 그 때의 나는 여러모로 지쳐있었다.

지난번에 수도에 올라갔을 때도 다시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지지 말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몇 년 동안이나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들은 내가 죽은 줄 알고 있었다는 모양이다.

"모험가 길드 입장에서 우리는 가장 부려먹기 좋은 전력이었으니 놓치는게 아쉬울 수 밖에."

우리 파티만큼 강한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공작이나 다른 귀족들의 후원을 받거나 파벌에 가입해 있었다. 그에 반해 우리는 아무런 파벌에 속해 있지 않는만큼 그런 부분에 민감한 의뢰를 처리할 때도 적임자였다.

"에이. 그래도 모험가 길드에게 인정 받은거 아닙니까? 길드도 아니고 일개 파티로 인정받는건 정말 힘든일이라고 들었다구요."

확실히 그 부분은 시안의 말대로였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때의 내가 손익을 따지지 않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기에 길드에서 처치곤란이던 의뢰까지 싹싹 긁어왔다.

보수가 적지만 까다로운 몬스터, 보수가 높지만 아무도 잡으려 하지 않는 몬스터 등 아주 놈들의 씨를 말려놓았다.

길드의 골칫거리를 해결해줬던만큼 더 고평가를 받은걸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은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런 잡담을 나누는 사이 접객을 맡은 소년과 소녀가 메인 요리를 담은 카트를 밀고왔다. 카트를 멈추고 접시 위의 덮개를 열자 드러난 것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바베큐 통구이였다.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고깃덩어리가 꼬치로 꿰여 있었다. 다만 냄새를 맡은 순간 나는 고기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망설였다.

이건 아이린이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린에게 말하기도 전에 소년이 각 자리에 접시를 세팅하며 말했다.

"오늘의 메인 요리는 오크 다리 통구이입니다. 혹시 다른 부위를 원하시는 분은 말씀해주시면 주방장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예상대로 오크 다리 고기라는 말에 아이린의 얼굴이 굳었다.

모험가들에게 몬스터 고기를 먹는 행위는 당연하기 짝이 없다. 특히 오크 고기는 별미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때까지 돼지나 소고기만 먹었던 아이린에게 있어서는 문화충격이었을 것이다. 예상대로 얼굴이 잔뜩 굳어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못 먹겠으면 솔직하게 말하렴. 무리해서 먹을 필요는 하나도 없단다."

무엇보다 아이린은 서큐버스다. 비록 종족은 다르지만 같은 마(魔)의 힘을 품은 몬스터 고기를 먹는 것은 영 꺼림칙하겠지.

지난번에도 외식하러 나갔을 때도 메뉴판 몬스터 고기가 있는걸 보고 거부감을 표했다.

'그걸 본 후로는 창고에서 트롤 고기를 한 번도 안 꺼냈지.'

아이린이 내 집에 처음 왔을때 먹었던 고기가 트롤 고기라는 사실은 나만 알고있는 비밀이었다.

요즘 우리 집의 가사를 도맡고 있는 아이린이 그때 먹은 고기는 더 없냐고 물어볼 때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고기라고 둘러대느라 진땀을 뺐다.

아이린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에는 내 말대로 오크 고기를 못 먹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살짝 손을 들어 접객중인 소년에게 오크 고기가 아닌 고기를 부탁했고, 소년은 흔쾌히 알았다는 말과 함께 주방으로 돌아갔다.

아이린 몫의 음식이 준비되기 전까지 나는 오크 통구이를 나이프와 포크로 썰었다.

큼지막한 넓적다리를 통째로 접시에 담아주는 바람에 양이 상당했다.

아마 며칠 전부터 몬스터 토벌을 진행하면서 오크의 시체를 잔뜩 얻었을테고, 아마 길드 내에서는 오크 고기 파티가 벌어졌을 것이다.

먹어본 적 없는 사람들은 몬스터 고기를 어떻게 먹냐고, 무슨 맛으로 먹냐고 말하지만 그건 먹어본 적이 없으니 할 수 있는 말이다.

오크의 고기는 돼지고기와 흡사하면서도 다르다.

아주 소량이지만 마나를 머금은 오크의 고기는 돼지고기보다 더 쫄깃쫄깃하고 기름기가 많다. 괜히 미식가들이 몬스터 고기를 즐겨먹는게 아니다.

포크에 찍은 오크 고기를 한 점 먹자 입 안 가득 육즙이 흘러나왔다.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고기를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쫄깃쫄깃한 식감에 혀를 내둘렀다.

고기에 칼집을 내고 세심한 불조절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사하는데 집중했다. 벌써 접시를 비우고 추가로 고기를 주문하는 녀석도 있었다.

아이린도 자신의 몫으로 나온 돼지고기를 썰고 있었다. 점점 무르익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인지 다음 카트에는 술병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얼음이 들어있는 양동이에 맥주와 와인 병이 가득했다.

어느새 다가온 웨이터 소년이 물었다.

"맥주와 와인. 둘 중 어느쪽으로 하시겠습니까?"

"맥주로 부탁할게."

"옆의 여성 분은..."

아이린은 술을 마신 적이 없으니 거절하려 했지만 아이린이 선수를 쳤다.

"저도 맥주 한 병 주세요."

"알겠습니다."

소년은 맥주 두 병과 컵 두 개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옆 테이블로 떠났다. 아이린이 맥주를 마신다는 말에도 딱히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물론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아이린이 취하면 그 뒤의 일이 감당이 될지 걱정이었다.

맥주의 마개를 가볍게 뜯어내고, 컵에 절반 정도 부었다. 아이린은 잔뜩 부풀어오르는 흰색 거품을 보고 신기해했다. 정말로 괜찮을지 모르겠군.

"마셔보고 안 맞으면 남겨도 된다."

음식을 남기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아이린이기에 충고를 덧붙였다. 아이린은 맥주가 담긴 잔을 빤히 쳐다보다 조심스레 한 모금을 머금었다.

처음 맛보는 술의 쓴맛에 그녀의 동공이 확장됐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꼴깍꼴깍 삼킨 아이린은 결국 단숨에 잔을 비워버렸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으으...써어..."

"그러게 내가 말했지."

혀를 내밀며 그렇게 투덜대는 아이린에게 물컵을 건넸다. 아이린은 물로 입 안을 한 번 헹구고 나서야 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른들은 무슨 맛으로 이런걸 마시는건가요?"

"나중에 술에 익숙해지면 알게될거다."

맥주의 시원한 목넘김을 느끼기엔 아이린은 아직 이른 듯 했다. 그래도 생각보단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마셔본 적도 없는 주제에 단숨에 잔을 비워버리길래 걱정했는데 말이지.

다른 사람들은 이미 한 병을 모두 비우고 본격적으로 대작하기 시작했다. 고기를 한 점 먹을 때마다 한 잔을 비워버리는 주량에 감탄했다. 한동안 수인족과 식사할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수인족들은 술내기를 참 좋아했다.

그들은 누가 마지막까지 남는지 겨루며 거침없이 잔을 맞부딪쳤다. 오직 루카와 데린만이 거기서 벗어나서 가끔씩 잔을 홀짝이며 구경할 뿐이었다.

순식간에 술병들이 탁자 위에 쌓여갔다. 여섯 명이서 서른 병이 넘는 술을 마셔대고 나서야 기세가 한 풀 꺾였다.

이미 두세 명 정도는 진작에 곯아떨어졌고, 아직 정신이 남아있는 사람들도 금세 쓰러질 것처럼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나는 맥주 한 병을 비우고 아이린 몫의 맥주까지 마시고 있었다. 싸구려 여관에서 파는 맥주와 다르게 술술 넘어가는게 일품이었다.

그렇게 술과 고기를 맛보며 기분좋게 만찬을 즐기고 있던 도중, 내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루디 씨이~."

방금 전 내게 발칙한 팬티를 선물했던 세린이었다. 술에 취했는지 붉어진 얼굴로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입을 열자 진한 와인 냄새가 확 풍겼다.

"후후. 드디어 둘만 남았네요."

세린은 동료들의 대작 대결에도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이때를 기다린 모양이다. 이렇게 마주보니 세린도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 미녀였다.

타고난 것으로 보이는 요염한 눈매와 남자라면 누구나 군침을 삼킬 몸매의 소유자였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남자들을 유혹하는 여자였다.

가슴골이 움푹 파여있는 셔츠와 허벅지가 훤히 드러난 반바지가 눈길을 끌었다. 흐트러진 셔츠 사이로 젖가슴을 감싼 검은색 브래지어가 보였다.

그리고는 슬쩍 손을 뻗어 내 허벅지를 만졌다. 요염하게 속삭이는 세린의 손은 점점 허벅지 안쪽까지 뻗어져왔다.

참고로 내 옆에 있던 아이린은 맥주를 원샷했던 여파인지 꾸벅꾸벅 졸더니 이제는 내 팔에 기대어 잠들었다.

"글쎄."

둘만 남은 것 치고는 맞은편에서 이쪽을 응시하는 루카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세린이 조금만 더 내게 달라붙으면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다.

반면 데린은 이쪽에 관심이 없는지 맥주를 잔에 가득 붓고는 마셔댔다. 그보다 혼자서 열 병 가까이 마신 것 같은데. 안 취하나?

"아까는 제대로 말할 시간이 없었지만, 제가 루디 씨를 좋아하는건 진심이에요."

"그 정도는 알고있어."

장난으로 자신의 팬티를 선물할 정도로 바보 같지는 않다. 나름대로의 호감 표시였겠지. 물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줄만한 선물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세린의 엉덩이에 붙어있는 두 갈래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저걸 만지면 분명 기분좋겠지. 폭신폭신하면서도 손에 착 감기는 극상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루카와 아이린의 경멸어린 시선은 덤이겠지. 그만두자.

"그럼 제 마음을 받아주실건가요?"

세린의 손길은 더욱 대담해져서, 내 허벅지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조금만 더 뻗으면 고간이 닿을게 틀림없었다.

여우답게 남자의 애간장을 녹이는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지만 내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미안하지만 무리야."

"...왜죠?"

설마 거절당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거든."

만약 어제 아이린과의 일이 없었다면 나는 세린의 유혹에 넘어갔을 것이다. 요즘 들어서 못 하기도 했고, 먼저 들이대는 여자를 거부한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아이린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이상, 세린의 고백을 받아줄 수는 없었다.

곤히 잠들었는지 새근새근 숨을 내쉬는 아이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1. 쿠폰 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 보답으로 주말에는 최대한 많이 연재하려고 열심히 글을 적고 있어요!!

2. 새로운 캐릭터의 일러스트를 주문하고 싶어서 열심히 글을 적는 중입니다.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느긋하게 기다려주세요!

3.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오류는 댓글로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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