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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화 (250/260)

2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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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체로 투기장을 홍보하고 있던 근육질의 남자에게 투기장의 위치를 묻자 투기장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무척 친절한 사람이었다.

투기장 입구에 서 있던 두 남자가 표 값을 걷었다.

"특별석으로 하시겠습니까? 일반석으로 하시겠습니까?"

투기장에도 연극과 마찬가지로 가장 좋은 자리가 존재한다. 결투를 바로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특별석은 일반석의 네 배나 되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망설임없이 특별석으로 두 자리를 구매했다.

"특별석은 왼쪽으로 쭉 나가시면 됩니다."

은화 여덟닢을 받은 남자는 길을 터 주었고, 그의 말대로 왼쪽으로 좀 더 걸어가자 투기장이 코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특별석이 있었다. 웃돈을 주고 특별석에 앉는 사람은 없는지 자리가 텅텅 비어있었다.

조금 떨어진 일반석에는 사람들이 꽤나 모여있었다. 그 중에서도 시선을 잡아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좌석 앞에 서서 사람들에게 베팅을 권하는 중계자였다. 말이 중계자지 도박꾼들에게 바람을 불어넣는 바람잡이 역할에 불과했다.

"자자. 오늘 나오는 아울베어를 상대할 검투사는 베테랑 검투사인 '그람'이라고 하더군! 먼저 그람한테 돈을 걸 사람 없나!"

"그람 정도라면 믿을 수 있지. 난 그람에 은화 네 닢 걸겠어!"

"난 은화 일곱 닢!"

"멍청이들아! 상대는 아울베어라고! 그람이 아무리 잘해봤자 아울베어를 이길 수 있을거 같냐?"

중간에 한 남자가 그렇게 외치며 흐름을 끊었지만, 이미 그람이라는 검투사에게 돈을 건 사람들의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닥쳐 쫄보야! 네가 그러니까 도박에서 큰 돈을 못 버는거다!"

"그람은 오크 두 마리를 상대로도 여유롭게 이겼다고!"

투기장에서 돈을 잃고 깽판을 치거나, 걷은 돈을 경기 후에 분배해줘야하는 중계자가 돈을 가지고 도망치는 일도 흔했다. 그야말로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저런 놈들이 아이린 옆에 앉는건 절대 두고볼 수 없었기에 일부러 비싼 돈을 주고 특별석을 구했다.

확실히 아울베어라는 흔치 않은 몬스터의 이름값 때문인지 넓은 투기장의 자리가 절반 이상 찼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오늘의 경기의 흥을 돋굴 사회자가 맞은편 단상 위에 올라섰다. 증폭 마법을 사용했는지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투기장을 가득 채웠다.

"오늘 경기장을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경기의 사회를 맡게된 마이크라고 합니다. 오늘은 많은 분들이 기대하셨던 '아울베어'와 저희 투기장의 베테랑 검투사 '그람'의 대결이 있는 날입니다!"

사회자의 목소리에 앉아있던 관객들이 함성을 질러댔다. 아이린은 그런 분위기에 압도당했는지 내게 바짝붙어서 멍하니 투기장 한가운데를 응시했다.

"오크 두 마리를 상대로 일격도 허용하지 않은 채 제압한 투기장 최고의 유망주! 과연 아울베어를 상대로도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이름은 바로바로~ 그람!!!"

양쪽 투기장의 문이 열리며 가죽을 덧댄 갑옷을 입은 남자가 투기장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사회자는 적당히 검투사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며 띄워올렸고, 그람에게 돈을 건 쪽은 그에게 열광했다.

"난 오늘 너한테 전재산을 걸었다고! 지면 죽여버린다!"

"그람! 아울베어따윈 단칼에 베어버리라고!"

그들의 외침에 그람은 가볍게 웃으면서 옆구리에 차고있던 검을 꺼내들었다. 날카롭게 빛나는 롱소드는 순식간에 상대의 목숨을 앗아갈 것 같았다. 투기장에서는 두꺼운 철제 방어구의 사용은 금기나 다름없다.

설령 검투사가 지더라도 피를 흘리며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매출에 더 좋다고 했던가.

그래도 그람이라는 남자는 긴장한 기색 없이 여유롭게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여유를 부리는건지, 아울베어를 몰라서 저러는건지.

적어도 내가 아는 아울베어는 저런 경장 차림으로 홀로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가 절대 아니었다. 놈의 가죽에 마법을 몇 발이나 퍼붓고, 검으로 깊은 상처를 열 번이 넘게 내고 나서야 간신히 쓰러뜨릴 수 있었다. 애초에 일개 투기장이 어떻게 아울베어를 포획해왔는지도 의문이었다.

'제압을 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닐텐데.'

그리고 나는 그람이 걸어온 문의 맞은편에서 나오는 아울베어의 모습을 보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아울베어와 비교하는게 미안할 정도로 왜소한 체구, 아직 덜 자랐는지 짧은 발톱과 군데군데 피부를 덮지 않고 있는 털까지. 누가 봐도 성체가 되려면 한참 남은 아울베어였다.

곰의 육신과 올빼미의 머리를 가진 아울베어는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전설 속에서 볼 수 있는 존재나 다름 없었다. 그 수가 워낙 적을 뿐 아니라, 처음 봤을 때는 그 기괴한 모습에 당황하는 경우가 잦다.

예전에 마탑에서 아울베어가 마법의 연구에 희생된 키메라인지, 아니면 자연 발생한 존재인지 연구했었지만 결국 표본 부족으로 연구에 실패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관객들은 생각보다 작은 아울베어의 덩치를 보고는 벌써 그람이 이기기라도 한 것처럼 환호성을 질러댔다.

"주인님. 주인님은 둘 중 누가 이길거라고 생각하세요?"

이미 관객들의 반응만 보면 그람의 압승이겠지만, 내 시선은 아울베어의 등에 향해있었다. 대략 2미터가 조금 넘는 덩치의 아울베어의 어깻죽지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아마 아울베어가 이길 것 같구나."

만약 저 날개가 없었다면 나도 그람이라는 남자에게 승기가 있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저 녀석은 평범한 아울베어가 아니라 '윙드 아울베어'였다. 날개가 달려있는 아울베어는 평범한 아울베어를 상대하는 것보다 몇 배는 힘들다.

사회자의 신호와 함께 선공을 취한건 그람이라는 남자였다. 그는 롱소드 한 자루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무장을 갖추지 않았다. 으레 검투사들이 방패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죽 갑옷을 입어서 몸을 가볍게 만들고, 속도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라는게 느껴졌다.

"아아! 그람 선수가 아울베어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자의 말대로 그람은 화려하게 검을 휘두르며 아울베어를 압박했다. 아직 어린 아울베어는 그람의 검을 피하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육중한 덩치의 아울베어가 그람의 검을 피하는데는 무리가 있었고, 몸의 가죽에 상처가 하나씩 새겨지기 시작했다. 반항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모습에 관객들은 더욱 열광했다.

그람도 아울베어가 반항조차 못하는 걸 파악하고는 여유롭게 아울베어를 농락하기 시작했다. 아울베어가 휘두르는 팔을 손쉽게 피해버린다거나, 역으로 다리를 검으로 그어버리며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를 뽐냈다.

'글쎄.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지금 상황은 그람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울베어도 이렇다할 치명타를 입지 않았다. 온 몸에 생채기가 나긴 했지만 가죽을 뚫을 정도로 깊은 상처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저 날개.

"...어?"

그람은 갑자기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천천히 공중으로 부유하기 시작하는 아울베어의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장식인줄 알았던 날개가 펄럭이며 아울베어는 낮게나마 날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관객들의 환호성이 점차 수그러들었다.

덩치가 덩치인만큼 새처럼 훨훨 날지는 못했지만, 그람의 키를 넘길 정도의 높이로 날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람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이점인 '속도'를 잃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저렇게 날아다니는 몬스터를 상대로는 검으로 유효타를 먹이기도 힘들다.

"주인님. 저건..."

이때까지 실컷 얻어맞은 아울베어는 크게 포효하며 그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그람을 덮쳤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몸을 굴려 아울베어의 공격을 피한 그람은 검을 잡은 채로 아울베어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는 무방비하게 노출된 옆구리에 검을 박아넣고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비릿한 피냄새가 흘러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람의 몸이 튕겨나갔다. 쩌렁쩌렁한 아울베어의 포효가 투기장에 가득 울려퍼졌다.

"크워어어어!!"

가죽을 관통하는 검상에 울부짖는 아울베어가 한 손으로 그람의 몸을 날려버린 것이었다. 몇 번이나 바닥을 굴렀던 그람은 쉽사리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그야 같은 인간이나 오크같은 인간형 몬스터를 상대하다가, 저런 거대한 몬스터를 상대하면 쉽게 적응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흉포해진 아울베어는 그람을 살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옆구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날개를 펄럭이며 다시 날기 시작한 녀석은 그람을 향해 날아갔다.

그람은 어떻게든 피하려 했지만, 얇은 가죽 갑옷 정도로는 아울베어의 일격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크으윽..."

그리고 그런 그람의 머리 위로 아울베어가 낙하했다. 분노가 가득 담긴 날카로운 발톱으로 그람의 등을 짓밟고 육중한 몸으로 그의 몸을 짓눌렀다. 그게 그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숨이 끊어진 그람을 보고 관객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람이 일방적으로 아울베어를 두들겨 팰 때만 해도 신나서 해설을 하던 사회자도 순식간에 경기가 끝나버리자 할 말을 잃었다.

'너무 방심했어.'

성체 아울베어는 원래 오우거나 만티코어에 비견될 정도로 강대한 몬스터다. 반면 저 녀석은 덩치를 보니 아직 태어난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빠른 속도를 이용해서 쉴 틈 없이 몰아붙여야했다. 날개를 펼 생각조차 못하도록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면 아마 그람은 손쉽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람도 설마 저런 곰 같은 녀석이 설마 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진 못했겠지. 아울베어가 나는 순간 그람의 패배는 정해져 있던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몬스터에게 검사가 할 수 있는거라곤 눈 뜨고 손가락이나 빠는 것 뿐이니까.

공격의 주도권조차 넘어갔으니 체급, 맷집, 힘에서 모두 유리한 아울베어가 단숨에 그람을 잡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이 와중에도 투기장에서는 아울베어는 이미 발에 짓눌려 육편이 되어버린 그람을 발로 쾅쾅 짓밟아댔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공격한 인간에 대한 복수인가 싶었다.

"크와아아악!!"

아울베어가 크게 울부짖으며 다시 하늘을 날려고하자 아까 아울베어가 입장했던 문에서 걸어나온 마법사들이 영창으로 녀석을 구속했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결국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빛의 사슬에 꽁꽁 묶여서는 끌려나갔다.

고요해진 투기장 한가운데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시체 한 구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사회자가 경기의 종료와 함께 아울베어의 승리를 선언했고, 그람에게 돈을 걸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욕을 내뱉으며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된 그람을 얼간이라고 욕했다. 그람을 동정하거나 위로하는 말은 단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그들다운 모습이었다.

아이린은 마법사들에게 구속되어 끌려가는 아울베어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1. 다들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2. 요즘에는 모바일 게임에 푹 빠졌습니다. 옛날에는 스도쿠 같은 머리 쓰는 게임을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게임이 많아서 좋네요.

3. 어느덧 250화까지 왔네요.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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