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8)

사랑의 벽5

다음날 아침, 단칸 방에서 고생하는 아들 내외에게 미안하다며 한사코 어머니는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었다.어린 소년의 눈에 그것은 어른의 고집이었다.사랑하는 그녀와의 오랜 만의 재회가 어른의 고집으로 단 이틀만에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괜한 불평으로 배가 아프다며 아침도 먹지 않았다.

[몇달 후에 이사하면 도련님 서울로 전학 보내세요.어머니]

이미 행장을 차리고 방문을 나서는 어머니 뒤 꽁무니를 따르며 그녀가 말했다.형은 그런 그녀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

[모시메는 큰 물서 놀아야 하는거 알믄서도... 느그 살림이 빈한디 그래도 되것나?]

[어무이도... 아 이눔마는 대학 보내야 되지 안것나,안그라요?]

[......]

어머니는 보이지 않으려 긴 한숨을 한켠에 남기고 고개 등성을 내려갔다.

그리고,경적을 길게 울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소년은 다정히 서서 손을 흔든는 그녀와 형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리고  꼭 서울로 데려와 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그녀에게 보냈다.그런 소년에게 그녀는 찬란한 미소로 답하였다.소년의 눈에는... 소년은 정말로 그녀와의 이별이 싫었지만,야속한 기차는 서서히 궤도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낯설지 않는 육교밑을 지나 크라운 맥주를 끼고서 소년의 집으로 무섭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달 후 그녀와의 이별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년은 전학 문제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서울에 올라가 그녀와 살 수 있다는 희 망으로 소년은 힘든 전학 수속을 잘도 참아내며 버티었다.새 순이 돋고 겨우내 쌓이였던 눈이 금새 시원한 계곡물로 바뀌어 멱이라고 질펀하게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법한 유월 초순 어느날,거짓말 같이 소년과 어머니는 서울행 기차에 다시 몸을 싣고 있었다.

이미  한번의 경험으로 소년은 좀더 편한한 기차 여행이 되었다. 멀어져 가는 고향이 소년에게 섭섭함으로 다가 왔다.소년의 유년을 넉넉히 감싸 안았던 고향의 내음새,무던히도 쏘다녔던 뒤 산등성이,겨울이면 썰매장으로 여름이면 잔디 밭으로 아이들께 봉사하던 산등성이 무덤들...소년에게 고향을 떠난다 함은 어머니 같은 넉넉한 포근함과 다시는 다가갈수 없는 유년을 뒤로 하는 것이리라. 

저녁늦게 소년과 어머니는 영등포역에 도착했다.형과 그녀는 몇달전 서울을 떠날때 그모습 그대로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그 겨울과는 달리 그녀는 시원한 반 팔 티에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서 소년을 맞이했다.백지장같이 히디 흰 얼굴에 연한 화장을 하고서 소년께 반갑게 눈인사를 하였다.가벼운 향수 내음이 소년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녀의 집은 옛날 그집과 멀지 않은곳에 있었다. 조금 크다고 한 그집은 정말로 조금만 컸다.조금 넓어진 부엌, 연탄불에 그을린 양은냄비의 초라함은 변하지 않은 형네의 살림을 말해주는듯 했다.  조금 더 넓어 보였지만 여전한 단칸방. 천정과 연결되있는 앙상한 계단.그 계단위에 소년의 방이 있는 모양이었다. 형은 그녀때문에 들떠있는 소년을 그 계단으로 안내했다. 시커먼 얼굴덕에 유난히 희게 보이는 이빨을 히죽거리며 소년은 어렵게 나무계단을 올랐다. 소년의 방은 소위 다락방이었다.하지만 소년에게 그것은 어느 무엇과도 비교할 수없는 자신만의 방이 될 것이다.그녀와 한 지붕아래 살며,한 솥밥을 먹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년에게는 크나큰 행복이었다.포만감에 소년의 아랫배가 불룩해 졌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옷을 입기 시작햇다.

[농사일이 바빠 갓고...]

기차를 타면서 어머니는 꼬깃꼬깃하게 말은 3만원을 소년에게 꼭 쥐어주었다.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라며...소년의 눈에 눈물이 핑 고였다.어머니도 애써 감추려는 듯 서들러 기차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역 육교위에서 그녀는 소년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어머니와 이별을 아파하는 막내 동생을 위로하듯이...

[도련님,우리 잘 해보자구요,무슨일이 있던 서로에게 다 털어 놓기예요.알았죠?]

소년은 짐짓 으젓한듯 어깨를 쫙 펴며 걸었다.그러나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소년의 발등에 무겁게 내려앉았다.그녀가 옆에 있지만...

소년은 몇칠 후  15분 거리의 중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엔 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아무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정말 서울애들은 텃세를 부리려 소년을 괴롭혓고 소년은 말없이 그 텃세를 견디어 냈다.얻어 터져 집으로 오는 날이 많아졌고 그녀는 안타까운 눈길로 그런 소년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그날도 소년은 얼굴에 깊은 상처를 안고서 집으로 들어왔다.그녀는 서둘러 소독약으로 소년의 얼굴을 닥아주었다.마주 앉은 그녀에게서 소년은 오랜만에 여체의 향내를 맡았다.그동안 학교생활의 스트레스가 그녀를 소년의 관심밖으로 내 몰았었다.

얼굴을 닦아 주는 그녀의 허벅지에 소년이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그녀는 자세를 흐트리지 않은채 흠찍 놀라는 몸짓을 지엇다.얇은 나일론 치마 밑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허벅지가 느껴졌다.그녀는 오직 나의 여자라는 생각이 소년을 격정으로 내 몰았다.나만을 위한 나의 여자,어느 누구의 손도 걷히 지 않았을 나의 여자,소년에게 형이라는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오직 이순간 그녀는 나의 여자가 되어야 한다.소년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말없이 뒤로 밀었다. 놀라고 당황스런 눈빛으로 그녀는 소년을 똑바로 처다보면서도 자신의 몸을 뉘었다.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더듬는 상처난 소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소년의 손이 자신의 치마를 걷어 올리자 사납게  소년의 몸을 밀치며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도련님! 얘기좀 해요!]

이전과는 다른 그녀의 모습에 소년은  당황하기 시작했다.황망히 치마밑을 더듬던 손을 빼내었다.

[도련님.나는 이 한 지붕 아래에서 두 형제의 노리개가 되고싶지 않아요.난 형의 아내이지,도련님의 정부(情婦)는 아니라는 말이예요,알겠어요?]

[...하...하지만 지금까지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소년의 척추에 한기가 싸늘히 지나갔다.

[지금까지고 뭐고,앞으로 다시는 나한테 이러지 마세요.난 도련님 형수에요! 그걸 기억해 주세요!]

그녀는 벌개진 얼굴로 치마를 휘 날리며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순간적인 황망함으로 멍해있던  소년은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신의 다락방으로 기어올라갔다. 그녀에 대한 배신감이 온 몸을 휘감아 돌았다. 방금전 그녀의 모습에서 소년은 형수를 범한 부끄러운 아이가 되어버렸다. 소년의 당초 기대는 원래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나의 천사 그녀가,나의 여인 그녀가 나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다니...소년은 심한 상처가 자신의 가슴을 할퀴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괜한 눈물이 뜨겁게 소년의 볼에 흘러 내렸다.어둑한 다락방에서 소년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얼마나 졸았을까... 

한밤중 아래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소년의 어렴풋한 잠길을 가로 막았다. 형과 그녀의 소곤거림을 애써 외면하며 눈꺼풀을 내렸지만, 더 이상 잠이 올것 같지 않았다. 아랫방에서 올라오는 한줄기 조명빛이 소년의 뺨을 스치며 천장에 긴 실선을 만들어 놓았다. 그녀를 생각했다. 형에게 도란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포근하다. 싸늘하게 돌아서 버리던 그녀의 매서움이 생각났다.  소년은 가슴에 쓰린 아픔을 느끼며 이불을 뒤집어 썼다.

[쟤는 벌써 자나?]

[예....그러나...봐요.]

[저녁은 묵었나?]

[.....]

형이 씻고 들어오자 방에 불이 꺼졌다.그리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스멀스멀 소년의 다락방으로 올라왔다. 도련님 아직 안 잘지 몰라요 하는 그녀의 속삭이는 소리,가만 있으라는 형의 말투,약간의 신음소리, 한참동안의 조용하지만 음란한 소음,그리고 좋았냐는 형의 말...소년은 그녀에 대한  배신감이 자신을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나의 천사는 이제 더이상 나의 천사가 되지 않았다.아직 순수한 소년의 가슴은 그녀의 원망으로 찢어질듯 아파 왔다.그리고 그 가슴 앓이로 소년은 정말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다음날 아침 아침 먹고 가라는 그녀에게 눈길 한번 주지않고 황망히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런 소년을 그녀는 쭈빗쭈빗 따라 나섰다.그리고 골목 어귀에 서서 털래 털래 걸어가는 소년을 말없이 바라 보았다.당연한  처신이었는데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소년이 야속했다.이제 자신이 맡은 이상 시어머니 시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청년으로 키우고 싶은 그녀의 생각이 소년에게는 큰 아픔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엇다.소년의 생각을 모르는 그녀는 아니었을 것이다. 성적 호기심으로 충만해 있을 소년에게 그녀가 해줄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지금까지의 관계가 어색하고 불건전했다면 이제 한집에 사는 이상 정상적인 가족관계로 바꾸어야 할 의무가 그녀에게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마음 한 구석이 뻥하고 뚫린 기분이었다.그렇게 가깝게 지냈던 소년과의 관계가 아니었던가? 싸늘하게 식어버린 관계...그녀는 앞으로 소년과의 생활이 걱정되었다.이것은 당초 예상한 일이었지만,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더 크게 느껴졌다.

항상 6시 이전에 돌아오던 소년이 9시가 되서도 돌아오지 않앗다. 그녀는 걱정이 되어 그냥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엇다.남편은 오늘도 새벽이 되서야 술에 찌들어 들어올 것이다.그녀는 소년의 학교에 가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듯 굳게 닫힌 교문이 버티고 서있었다.학교앞 문방구에서는 소년만한 아이들이 열심히 오락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 보앗지만,소년은 아니었다.동네 만화 방에도 가보았지만 짙푸른 담배연기에 그녀의 출현을 재미 있어하는 동네불량배들 눈빛이 그녀를 들어서지도 못하게 했다.어쩔 수 없이 그녀는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갑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이 관자놀이를 찔러왔다. 왜 그렇게 밖에 타일으지 못했을까? 조금 더 부드럽게 섬세하게 할 수도 있었을텐데....아직 어린 소년에게 그 것은 큰 충격이었을 것을....

그녀의 발 걸음이 어둑한 골목에 다다르자 저기 가로등 밑에  소년이 희미하게 서 있었다. 그토록 걱정으로 찾아 다녔던 소년을 보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아직 이 거친 서울을 알기에 소년은 어렸고 어리숙한 시골아이였다.혹시나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했던 그녀였을 것이다. 돌아 와 준 소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북박쳐 올라왔다.그리고 그녀를 애써 외면하며  땅을 쳐다보고 서있는  소년을 와락 끌어 안았다.동생을 위로하는 누나의 마음으로...

[어디있다 이제 왔어요? 걱정했쟎아요.]

[.....]

[그래 왜 이제 왔어요?]

[...증말 내 걱정....했나요?  나 같은거 싫어 하믄서...]

[도련님,그게 무슨 말이예요? 내가 왜 도련님을 싫어해요?]

[...]

[자 들어가요.배 고프죠?]

그녀를 바라보며 소년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년은 오래 굶은 사람처럼 정말 맛나게 밥을 먹었다. 그런 소년을 그녀는 말없이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 칠때마다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소년에게 지어 보였다.그런 그녀가 소년은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어린 시동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이,그녀의 미소가 소년의 마음을 애잔하게 했다. 그리고 정말로 다시 그녀가 자신의 천사가 됨을 마음속으로 느꼈다.나의 천사를 나는 한순간의 미움으로 가슴아프게 했다는 자책이 소년의 가슴속을 맴돌았다.아직 어린 소년이었기에 한순간의 그녀의 행동이 소년을 천국으로도,나락으로도 빠지게 할 수 있었으리라...

배고픔에 떨던 소년에게 갑작스러운 포식은 졸음을 몰고 왔다.그리고 소년은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뜬눈으로 지샌 어젯밤을 보상받으려는 듯 금방 잠에 빠졌다.

몇시나 됐는지는 알수 없었다. 아직 모두가 잠든 시간 소년은 엄청나게 아픈 배을 부여잡고 잠에서 깨어났다. 아래 형과 그녀를 깨울까 봐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신음소리를 뱉지 않았다.어젯밤 다급한 저녁식사가 탈을 낸 모양이었다.소년은 배를 부여잡고 뒹글기 시작했다. 몰려오는 고통으로 소년은 벌써 온몸을 땀으로 흥건히 적시었다.그리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어렴풋이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그리고 당황하여 내려가는 소리,조금있다 다시 올라와 물소건을 소년의 이마에 올렸다.얼마쯤 지나 소년의 고통이 극으로 몰려갈 때,의사가  왔고 의사의 처방으로 소년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정말 언제 아팠냐는 듯 소년은 잠에서 깨어났다.아직 어스룩한 새벽쯤으로 짐작되었다.소년은 자신의 머리를 이르켰다.젖은 수건이 이마에서 툭 떨어졌다.그리고,바로 옆에 그녀가 고꾸라져 잠들어 있었다.쥐어 짠 수건을 손에 쥐고서 그녀는 웅크리며 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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