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8)

사랑의 벽 - 완결

그녀들의 코끝은 벌써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그녀들은 가면처럼 덕지덕지 화장을 온 얼굴에 발라놓고 있었다. 입는둥 마는둥 퇴폐적이라 할 옷을  입고서 매쾌한 향수 냄새를 온 방안에 뿌려 대고 있었다.형형 색색의 염색머리를 치렁치렁 어깨너머로 넘기며,팬티가 다 보이듯 다리를 쫙 펴고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시골뜨기 소년의 눈에도 그녀들은 예사의 여자들이 아니었다.왁자지껄한 그녀들이 소년을 보자 잠시 조용해 졌다.그리고 소년을 쳐다 보았다.

[야.제가 니 도련님이니?]

역시 벌겋게 물이든 얼굴을 소년에게 들이대고서 소년의 그녀는 소년의 손을 잡았다.

[도련님...친구들이 놀러 왔어요.처음으로요,하하하]

[하이,도련님 이리와서 좀 앉아 봐.하하하]

갈색 머리 한 여자가 소년에게 호기있게 소리쳤다.소년은 어정쩡한 자세로 그녀들 틈에 앉았다.

[어이,도련님.술한잔 해 보시지..]

노랑머리 한 여자가 소년에게 술잔을 건넸다.소년은 주눅둔 얼굴로 방바닥을 긁었다.

[해해해...고얀 도련님, 형수 말이 이제 어른이라고 하던데...한잔해봐.]

[야!뭔 소리야.그런말 하지마!]

[어머,얘는 지가 아까 그렇게 재밌게 우리한테 얘기하고선..]

[그래도..도련님이 민망해 하쟎아.]

소년은 부끄러움과 민망스러움과 배신감에 몸을 떨며 조용히 다락방으로 올라갔다.그녀들의 웃음소리가 사다리를 따라 올라왔다. 그녀에 대한 원망이 북바쳐 올랐다. 아랫방에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야,니 도련님 탱탱한 영계네. 넌 취향도 다양하다. 아직 영글지도 않은 뼝아리 같구만....하하]

[그래...어떠데. 맛이?]

[뭐야?]

그리고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소년은 이 모든 소리를 한웅큼 주먹속에 잡아 두었다.주먹이 방바닥에서 부르르 떨렸다.

[얘.그런말 하지마,난 단지 시동생하고도 그런 일이 있을수 있다는 것을  너희한테 말 한것 뿐이야. 그런식으로 음탕하게 말하지 말아줘!]

[누구 뭐래?]

그리고 잠시 술잔만 기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귀를 막았지만 그녀들은 그런 소년의 귀를 더욱 쥐어 뚫었다. 더크게,더 과장되게...

[야.김사장,거 있쟎아,대머리..]

[...아.그 한국관 주인?]

[그래! 그 영감탱이,아직 널 못잊는데...벌써 1년이나 지났는데 말이야. 내가 그렇게 꼬셔도 안돼. 돈 좀 후려낼까 했는데...니 것이 긴자꼬는 긴자꼰가봐.하하하]

[얘! 도련님 들어!]

[어때? 니꺼 다 맛 봤다며...킥킥...]

그때 그녀들의 눈이 한순간 멎었다. 벌건 얼굴로 분노에 차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그래서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이성을 잃은 소년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비록 어린 소년의 분노이지만,그만 그녀들은 싸늘한 기분에 휩싸였다.소년의 눈빛이 너무나 강렬히 이글거리기에 그녀들은 더 이상 소년을 바라볼수가 없었다.그녀들은 스멀스멀 자리들 뜨기 시작했다. 소년의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다,그녀들과 같이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늦게 까지 들어 오지 않았다. 소년은 불도 켜지 않은 방안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머리속은 텅 빈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직 그녀에 대한 심한 배신감만이 온 몸을 휘감고 있었다.사춘기 소년에 있어 더 할수 없는 충격이었다.한 밤 형이 얼큰히 취해 들어왔다.그리고 컴컴한 방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동생을 보았다.

[니,뭐하노?]

[.....]

[니 형수는 어디 갔노?]

[...친구들이 왔었어...]

[뭐라? 이 미친년이 기어이 버릇을 개 못줬구나!]

[.........]

형은 동생의 온 얼굴에 눈물이 가득 흐르는 것을 보았다.그리고 조용히 담배를 물었다. 한동안 두사람은 그대로 침묵을 지켰다.

[내 말 잘 들으라잉....]

[.......]

[으음.니도 이제 알 나이제..니,니 형수는 말이다...다방출신인기라...]

소년은 정말 소년은 자신의 짐작이 맞지 않기를 바랐다.그녀가 천한 여자가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자신의 여자가 그런 여자가 아니길 바랐다.

[내가 미쳤지.뭐 좋타꼬...그런년을...]

소년은 조용히 집을 나왔다.딱히 갈곳은 없었다. 그냥 걸었다.발길이 가자는 곳으로 자신의 몸을 맡겼다.무(無)생각의 생각이 온 감각을 마비 시켰다.그리고 어느새 육교에 서 있는 자신을 보았다. 기차가 긴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 가고 있었다. 바삐 사람들이 소년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육교 철 조망에 기대여 소년은 끝도 없는 철길을 보았다.애잔한 감각이 콧끝을 아리게 했다.흥! 풀었다.시원하지 않았다. 

듬성듬성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멀리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머리를 무릎에 박고서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엇다. 처량한 기운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불쌍하다 못해 애절해 보였다.소년은 조용히 그녀옆에 앉았다. 그녀가 소년을 쳐다 보았다. 그녀의 눈가가 얼룩져 있었다. 그냥 그대로 그들은 거기 한참을 앉아 있었다. 기차가 긴 경적을 울리며 수원쪽으로 내달렸다.

[혹시.......알아요? ]

오랜 침묵을 깨고 그녀가 허공을 가르는 한숨을 토해냈다.

[나.... 옛 버릇 못 버렸나 봐요...끼 있는 여자,알죠? 난 평범한 삶은 어울리지 않나 봐요.]

[뭔 소린데.. 형수는 이미 평범한긴데]

[...아니예요.도련님도 유혹했쟎아요...어떤 형수도 시동생을 유혹하진...]

[아니라에.우린 사랑해서 그런거라고.형수! 나 사랑하쟎아!]

소년은 벅찬 감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그녀는 한동안 소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계단 끝자락을 응시했다.잠시의 침묵끝에 그녀가 말했다.

[도련님은 아직 어리고 순진했어요.난,난 그런 도련님을 유혹한 거예요...]

[아니라에.내가 내가 형수를 타락시킨거라에.내가,아,내가 쥑일 놈이야.평범하게 살려는 형수를 또다시 타락시켰으니...]

영롱한 소년의 눈에서 뭉클한 눈물이 뚝 떨어졌다.그녀가 한없이 가련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소년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사나이가 왜 눈물을 흘리고 그래요? 도련님은 이제 장한 어른이 된거예요....미안해요.형수가 순결한 여자가 아니라서...하지만,도련님을 사랑한 것,그것은 진실이예요.비록 끼가 도련님을 망쳤지만,마음속 순결은 아직 남아 있답니다.믿죠?]

소년은 연신 그녀의 손수건에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도련님과 내가 사랑하지만,세상사람들은 나에게 돌을 던질 거예요.천한 계집이라고요....우리 사이엔 벽이 없지만,세상은 우리 사이에 엄청나게 큰 벽을 쳐 놓았죠..윤리라는 보이지 않는 벽을요...우린 그 벽을 넘은 거구요...이제,우리 서로 잊기로 해요...더 이상 도련님을 타락시킬 수는 없어요....]

[.....]

지금 이순간 그들사이의 벽은 없었다.잠시동안 그녀가 천한 여자라고 원망한 자신이 소년은 미웠다.그녀는 비록 자신과 몸은 섞었지만,여전히 마음속의 천사였다.그녀가 비록 천한 여자일지라도 소년과의 관계는 순수한 사랑이리라.소년은 마음속에 아직 그녀에 대한 사랑이 변함없이 자리함을 느꼈다. 그녀의 사랑이 비록 시동생으로서의 사랑일지라도, 그래서 소년이 생각하는 남녀의 그것은 아닐지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년과 그녀는 한동안 끌어 안고 서로 눈물을 흘렸다.온 세상이 자기들만 있는양 그들은 원없이 눈물을 흘리며,눈물을 닦아 주며,그렇게 거기 앉아 있었다. 참담한 아름다움이 그들을 에워쌌다.그리고 그렇게 소년의 시린 사춘기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이미 어두워 질때로 어두워진,그래서 행인의 발걸음도 뜸한 영등포역 육교밑으로 마지막 기차가 긴 여운을 남기며,사라져 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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