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說 스타 크래프트 메딕 미스 리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2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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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지명 및 시기를 미리 밝혀 드리겠습니다. 등장 인물의 구성
으로 메딕(Medic)과, 어둠의 기사단(Dark Templer), 럴커(Lurker) 등이 나오므로
종족 전쟁(Brood War) 초기 입니다. 이 세 종족이 조우를 하여 혼잡하게 어울리는
장소는 테란 연방의 최 외곽 식민지인 '차우 사라' 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오리지날 스타크에서 '차우 사라'는 저그 족에 의해 처음 오염되고, 프로토스 족이
저그의 그림자를 알게 되어 깡그리 몰살시킨 곳 입니다. 놀란 테란은 두 번째 행성인
'마 사라'로부터 함대를 급파하는데 프로토스는 잠시 물러가고, 저그와 조우를 하게
되지요. 이런 과정으로 오리지날 스토리가 연결 되는데, 이 '차우 사라'에서 다시
세 종족이 모여 이전 투구의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기본 설정으로 했습니다.
'차우 사라'의 테란 군은 원래 '알파 전대'로서 '블러드 호크'라 불리죠. 사령관은
'에드몬드 듀크' 였는데 뒤에 '캐리건'에게 죽음을 당합니다. 이 이야기는 '에드몬드
듀크'가 아직 살아 있는 시점에서 '차우 사라'에서 벌어진 세 종족간의 1:1:1 전투
상황을 배경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외에 원작에서 등장하는 영웅들이나 기타의
것들은 일부를 제외하곤 이 이야기에서는 전혀 쓸모 없는 것 입니다. 이 이야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그 주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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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프룰루 태양력 6월 7일 17시 10 분
"근데. 소대장님 우린 어디로 가는거죠?"
'실비아 그랑드류 마아치' 하사의 가뜩이나 큰 눈이 더욱 동그랗게 커져서 마치
놀란 토끼처럼 보였다. 언제봐도 귀여운 실비아였다. 하지만 얼굴은 귀여운 소녀
스타일이지만 유럽계인 실비아는 동갑내기 영혜보다 신체적 성숙도에 있어서는 훨씬
우월했다. 제니 중사는 이미 완전한 여성이니 더 말 할 나위도 없지만......
실비아의 질문에 영혜는 한번 어깨를 으쓱 치켜 올리며 나도 몰라라고 시늉한 뒤 앞
좌석에 마주 앉은 밀러 대위를 바라 보았다. 가르쳐 주겠지하는 영혜의 기대를 보기
좋게 저버리고 밀러 대위는 예의 그 흐리멍텅한 시선으로 드롭십(Dropship) 창 밖으로
펼쳐지는 '차우 사라'의 황량한 모래 밭만 무심히 보고 있을 뿐 말이 없었다.
머쓱해진 영혜는 실비아에게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원래
명랑한 실비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제니 중사와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가끔씩
까르르 웃는 실비아의 소리가 들렸다. 드롭십 창으로 바람에 날린 모래들이 부딪혀
부서져 내렸다. 한 때 이 땅은 테란 연방 식민지였다. 자원이 많고, 경관이 빼어낫던
이 행성에서 어느 때부터인가 외계 종족과 전쟁이 벌어지더니 지금은 각 종족의 군사
기지를 제외하곤 그저 황폐한 폐허만 여기저기 널려 있을 뿐 생물체의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2 분 뒤 '카탄' 에리어에 도착합니다. 전 대원은 적색 경보가 꺼질 때까지 이동을
금합니다."
기내 스피커에서 착륙 사인이 들려 왔다. 황량한 사막에 또아리를 튼 뱀처럼 201연대
전진 기지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드롭십 창을 통해 보였다. 세 메딕의 머리 속에는
동시에 이제부터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두 눈에 긴장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드롭십은 서플라이 데팟(Supply Depot)이 뭉쳐 있는 지역을 날아 지나서 기지 끝에
위치한 허름한 막사 앞에 이들을 내려 주었다. 드롭십에서 내리는 영혜의 귀에 문득
앞 서 걷는 밀러 대위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친 새끼들. 연대 참모라는 것들이 전진 베이스를 이 따위로 지어 놔? 한번에 다
날리면 어떻게 할려구. 하여간 책상 머리에 앉은 놈들이 하는 짓이라군....."
전투 경험이 없는 영혜는 가지런히 뭉쳐 지은 데팟이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그냥 묵묵히 밀러를 쫓아 허름한 막사로 들어 갔다.
"다녀 오셨습니까? 중대장님"
약간 살이 찐 상사가 급히 일어나며 경례를 붙였다. 막사 안의 마린(Marine) 들이
전부 일어서며 거수 경례를 붙였다. 밀러는 편히 쉬라는 듯 손을 허공에 한 번 저었다.
막사 안에는 상사를 포함한 6명의 마린이 있었다.
"전부 모여 봐. 작전 브리핑 할테니....."
밀러가 막사 중앙의 긴 테이블 정면에 서자 마린들이 주변으로 모였다. 세 메딕이
밀러 뒤를 쫓아 막사로 들어섰을 때, 그들은 한 번 흘낏 쳐다 보았을 뿐 그녀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마린은 하나도 없었다. 이 병사들은 사령부에서 흔히 보던 마린들하고
전혀 다른 느낌 이었다. 그들에겐 피 냄새 같은 것이 나고 있었다. 메딕들은 꿔다 논
보리 자루 모양 적절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와 같이 나갈 메딕 들이다. 소위가 직접 소개하도록 해."
밀러의 말에 영혜는 화가 치솟았다. 세상 어디에 병사들한테 장교와 하사관이 먼저
인사를 하는가? 막사에 들어 올 때부터 무시당하고 있는 것 같아 불쾌하던 참 이었다.
"분위기 철철 넘치는 대위님의 병사들을 먼저 소개시켜 주시죠."
불쾌한 감정을 실었는지라 영혜의 말투는 비양거리는 투였다. 그런데 밀러는 영혜의
볼멘 소리를 여전히 무표정, 무응답으로 받을 뿐 이었다. 한번 입 밖에 내어놓은 말은
절대 철회하지 않는 스타일의 남자가 밀러 대위였던 것이다. 오히려 부하 마린들이
영혜의 당찬 반응에 수근거리기 시작 했다.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막사에 울렸다.
머리를 박박 밀어 붙인 흑인 상병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누르며 기분나쁜 휘파람을
계속 불고 있었다.
"헤이! 메딕 언니! 대차구만. 대장님께 말 대꾸 하는거 보는게 딱 일년 반 만이야."
"얼굴 값 하네. 헤헤헤..... 우리 메딕들보단 확실히 상판은 좋구만. 우리 애들이야
지금도 죽을 지 살 지 모르고 아둥거리니까 세수 한 번 제대로 할 틈 없이 맨날 죽상
이라 벗겨 놔도 이게 영 스질 않는데 언니들은 그냥 보자마자 신호가 오네."
"후방 메딕들 하는 짓이야 뻔하지 않아? 장교들하고 뒹구느라 기본 구호법이나 알고
있을까 모르겠어..."
세상에 뭐 이런 막 되먹은 병사들이 다 있을까 싶어 영혜는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왔다.
실비아도 분해서 얼굴이 빨개진 채 발을 동동 굴렀다. 노련한 제니마저도 화가 치밀어
입을 앙다물고 앞에서 비양거리는 마린들을 노려 보았다. 분위기가 아주 엉망이 되자
그래도 나이 많은 상사가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짜식들아. 그만 해! 같이 작전 뛰어야 하는데 시작부터 삐그덕 거리면 어떡해?"
"선임 하사님. 난 저런 배리 배리한 메딕들한테 내 목숨 지켜 달라고 못하겠수. 우리
대대 메딕 붙여 주슈. 상판은 엉망이어도 걔들하고 같이 가야 안심이 되요."
아직 앳되 보이는 얼굴의 일병이 이죽거렸다.
"야 이 개새끼야! 새까만 일병 놈이 어디서 장교한테 지랄이야!"
순간 제니가 제니답게 호통을 치며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욕을 먹은 일병의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제니는 사정없이 일병의 뺨을 갈겼다. 찰싹 소리와 함께 일병의 얼굴
이 충격으로 인해 왼쪽으로 홱 돌아 갔다. 일병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며, 욕설을
퍼부으려고 입을 여는데, 기관총같은 제니의 호통이 먼저 터졌다.
"이 씨발 놈들아! 이 제니 플라잉은 타클라칸에서 마린 삼개 대대가 몰살하던 곳에
피 뒤집어 쓰고 서 있었어! 니들은 그 때 뭐하고 있었어? 뭣도 아닌 것들이 자기
동네라고 왈왈거리는거야? 니들 다 똥개냐?"
마린들은 제니의 기세가 너무 등등한지라 일순 조용해 졌는데, 갑자기 큰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니? 제니 플라잉 하사? 당신 진짜 제니야?"
금발의 스포티한 머리를 한 병장이 앞으로 뛰쳐 나오며 소리를 지른 것 이었다. 뺨을
맞은 일병도, 노기등등해서 옆구리에 팔을 걷어 올린 제니도 순간적으로 그 병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 오하라야. 기억 해요? 타클라칸 일차 공방전의 스미스 부대 오하라!"
제니의 눈이 놀라움으로 둥그렇게 커졌다. 그리고 곧 그녀의 입이 함빡 웃음으로 크게
열렸다.
"야! 너 그 때 오하라 일병! 우와! 반갑다. 짜식 살아 있었네."
제니와 오하라 병장은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와락 얼싸 안더니 빙빙 돌았다.
그것으로 긴장이 풀려 버렸다. 오하라 병장이 제니를 가리키며 마린들에게 소개 했다.
"야! 다들 잘 들어 둬. 이 언니 진짜 프로야! 믿을 수 있어. 내가 말했던 그 메딕
이야. 스미스 부대 자동 화기 분대 12 명이 이 언니 하나 믿고 저글링 반 중대하고
맞짱 떳어. 그 괴물들 다 작살 내고 보니 7명이나 살아 남아 있더라구. 기가 막힌
솜씨였지. 야!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 언니가 피를 폭포처럼 뒤집어 쓴 채 서포트
해주던 거. 그 귀신 같은 손 놀림 못 본 사람은 정말 몰라."
제니가 이렇게까지 유명한 메딕인지는 처음 알게 된 사실 이었다. 그냥 어느 정도
전과를 올려 일급 무공 훈장을 받은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뿐 이었다. 오히려 제니의
성가는 전투의 일선에 선 마린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떠돌고 있는 것 이었다. 병기의
성능 향상보다 우수한 메딕 하나가 마린의 생존에 얼마나 절실히 도움이 되는 것
인가는 직접 전선에 서보지 않은 병사는 알 수 없는 일 이었다.
별 거 아닌 메딕들이라 보고 업신 여긴 밀러 대위의 특공 대원들은 제니 플라잉이란
걸출한 메딕을 대하고는 비양거리던 눈 빛이 금새 사라졌다. 선임 하사가 빙글거리며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자...! 자! 메딕 소대장님 말이 맞다. 소위님. 실은 그제 분대원 둘과, 우리 배속
메딕 둘이 전사 하는 바람에 애들이 신경이 날카로와져서 그런 거니 이해 해 주쇼.
야! 우리가 먼저 소개 하자. 난 주임상사 '코사크' 요. 순수 해병으로 짬 밥 22년
째 인거라...."
"분대장 '오하라' 병장 임다. 직책은 자동 화기 사수고요."
오하라는 제니 플라잉을 만난 기쁨에 연신 싱글거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좋아 진 탓에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는 마린들의 표정이 훨씬 온순해졌다. 단지 뺨을 얻어 맞은
일병만 조금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대세를 파악한 듯 말은 고분고분하게 했다.
"기갑 돌격병(Fire Bat) '이스마엘' 일병 임다. 여기선 막내라요. 하지만 전투에선
최고참으로 봐주셔야 할거요."
성질 깨나 급해 보이는 일병은 과연 돌격 첨병인 화이어 뱃 이었다.
"일번 소총수 '새미 존슨' 임다. 계급은 상병임다."
"자동 화기 부사수 '콜린 주니어' 임다. 계급은 역시 상병이고요."
콜린의 얼굴에는 섬뜩한 느낌을 주는 상처가 길게 나 있었다. 메딕의 시선이 상처에
집중되자 묻지도 않았는데, 킬킬거리며 설명을 하였다.
"요건 저글링 발이 스치고 지나간 자욱이라요. 고 놈은 내 얼굴을 그냥 스쳤지만 난
고놈을 백만 조각도 넘게 갈갈이 찢어 놓았다구요. 크크큭....."
꽤나 가학적인 잔인한 성품을 지닌 것 같아 보였다. 마지막으로 어두운 낯 빛의 동양
계 마린이 자기 소개를 했다.
"삼번 소총수 '퐁 수린' 입니다. 상병 입니다."
마린들이 자기 소개를 끝내자 메딕의 순서였다. 제니가 먼저 나섯다. 역시 역전의
메딕답게 호탕하게 입을 열었다.
"나 잘 알다시피 '제니 플라잉'이야. 니들 지금 보니 나보다 짬 밥 많은 사람은
선임 하사님 밖에 없는 거 같아. 그러니 다 내 아새끼들로 생각하겠어. 우리만
콱 믿으라구. 이 제니 손바닥이 다 닳아 없어지는 날까지 니들 지켜 줄 테니..."
실비아는 여전히 귀여운 표정으로 생긋 미소까지 지으며 애교스럽게 소개했다.
"'실비아 그랑드류 마아치' 하사에요. 학교 나온지 얼마 안 됐고, 참전도 한번
밖에 못했지만 열심히 할께요."
영혜는 어떻게 자신을 말해야 좋을 지 몰랐다. 자신은 한 번도 참전한 적이 없는
햇병아리 소위 아닌가? 그리고 비록 지금 분위기가 좋아졌다 해도 방금 전까지
받은 모욕을 쉽게 잊고 헤헤 거리면서 소개한다는 것은 영혜의 자존심이 용납
할 수 없는 일 이었다. 그래서 그냥 무뚝뚝하게 말을 했다.
"소위 이 영혜 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작전을 하게 되어서 기쁘군요. 잘 해봅시다."
영혜까지 인사를 마치자 밀러 대위는 지루했다는 듯 하품을 크게 한번 하고 테이블을
짚으며 앞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
"이제 끝났어? 그럼 작전 설명해도 되겠구만. 자 다들 주목해. 상사 도면 펼쳐 봐."
코사크 상사는 전황 배치도를 테이블 위에 깔았다. 밀러가 지휘봉으로 짚어 나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 현재 위치는 카탄 에리어 27, 42 지점이다. 작전 투입 지역은 스와핑 에리어
35, 72 지점으로 예상 된다. 작전 목표물은 '라이언' 이라는 이름의 일병 놈을
모셔 오는 것이다. 이 놈은 프로토스 사르가스(Sargas)족이 장악한 지역에 202연대의
조이기 병력으로 들어 갔는데, 병신같은 놈들이 조일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오히려
겹겹이 포위 되어 버렸다."
순간 모두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일병 하나를 데려 오기 위해 정예 특공대가
출동하다니..... 모두의 표정에서 나타난 놀라움은 금새 비난으로 바뀌었다. 역시
삐져 나오기 잘하는 이스마엘 일병이 금새 이죽거렸다.
"쓰팔. 또 어디서 높은 놈 자식이 하나 최 전선으로 나갔나부다. 젠장....."
"조용히 해. 이스마엘. 군 사령부에서 직접 내려온 작전이니 토를 달지 말도록! 목표
점까진 세 갈래 길이 있는데, 가는 방법은 그 때 상황을 봐서 결정한다. 중간에 저그
족의 발로그(Baelrog) 부르드 소속 3 콜로니가 장악한 지역은 어찌해도 피해 갈 길이
없다. 그곳을 돌파할 때는 이 소위가 수고해 주길 바란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영혜는 밀러의 말이 잘 이해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특공 부대
는 밀러 대위의 말에 전혀 질문이나 의견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그냥 고개만 끄덕
거리고 있는 모습에서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묵계가 느껴져 영혜는 도저히 질문을
할 용기가 안 났다. 영혜는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계속 밀러의 말에 귀
기울였다.
"지금 시간 20 시 14 분이다. 22시까지 군사령부의 스나이퍼(Sniper, Ghost:탐색,
저격수)와 화뱃 한 명이 보충되어 올 것이다. 출발은 내일 새벽 04 시. 저그 콜로니
전방 88에리어까지는 드롭십으로 수송 된다. 출발까진 자유니 각자 장비를 챙기고
쉬도록. 이상 뭐 다른 질문 있나?"
질문은 없었다. 단지 코사크 상사가 걱정된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젠장. 완전히 적진 속으로 배째고 들어가는 거구만. 먼저 조이기 들어 간 놈
들도 배째고 들어가는 것 같아 영 찜찜하더니, 시펄! 우린 내장까지 째네."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공성전차(Arclite Siege Tank:씨즈 탱크)나 레이스(Wraith)의 지원 없이 우리만
들어 가는 겁니까?"
순간 마린들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아까 처음 만났을 때처럼 비양거리는 웃음은 아니
었다. 분대장 오하라가 설명을 해 주었다.
"하사님. 씨즈 달고 다니면 그거 지키느라고 우린 아무 것도 못해요. 또 레이스가
미쳤다고 우릴 지원해 주겠어요? 걔들 필요로 하는 곳이 '차우 사라'에 얼마나 널려
있는데, 우리 차례 오려면 아마 일 년은 기다려야 할 거요."
실비아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쟨 천성적으로 남자들 눈길 끄는
덴 뭐가 있구만, 실비아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조차 귀여운지라 영혜는 한 숨 쉬었다.
이번 작전의 절박성이나 위기감 같은 것은 아직 전투를 못 겪어 본 영혜인지라 실감
나진 않았지만 실비아가 이번 출전에서 상당히 마린들과 시끄러워 질 것이라는 것은
확실히 예감 할 수 있었다.
"그럼 제군들. 새벽에 보자."
간단한 브리핑을 마친 밀러는 출구를 향해 걸었다.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던 밀러는
깜빡 잊었다는 듯 말했다.
"근데. 제군들. 이번 작전에서 나 밀러 부대원의 목표는 뭔가?"
잠시 침묵하던 마린들은 이구 동성으로 크게 외쳤다.
"옙! 대장님. 살아 돌아 오는 겁니다."
밀러는 만족한 듯 뒤를 보인 자세에서 손을 한 번 쳐들어 흔든 뒤 막사를 나갔다.
마린들 대답하는 꼴을 보느라 밀러를 따라가지 못한 영혜는 처신이 곤란했다. 일단
들고 온 장비들을 주섬주섬 챙겨 들었는데, 그러고 나니까 나가야 좋을지 이대로
있어야 좋을지 행동의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마린들도 지금까지 보아 온 메딕
과는 전혀 미모의 수준이 다른 메딕을 셋이나 앞에 놓고 뭐라 말을 못하고 멀뚱 쳐다
보고 있을 뿐이라 어색한 분위기가 금새 막사를 뒤덮어 버렸다.
역시 제니 플라잉 하사가 노련하게 분위기를 확 틀어잡았다. 그녀는 갑자기 오하라
병장의 사타구니를 툭 건드렸다.
"어때? 그 동안 요거 좀 컷냐? 타클라칸 땐 완전히 애기 였는데....."
뒤로 급히 물러나는 오하라의 얼굴이 금새 빨개졌다.
"우이~ 씨! 그런 말을! 제니 중사. 그 때 내가 제니 중사 완전히 기절 시킨 거
벌써 잊은거야?"
"놀고 있네. 담 날 아침까지 뻗어 있던 게 누구였어?"
둘 사이의 걸직한 농지거리가 흐르자 어색했던 분위기에서 다들 벗어 날 수 있었다.
"이~ 씨! 나가자구. 내 당장 그 거짓말을 응징해 줄 테니....."
오하라가 식식 거렸다. 제니가 영혜를 쳐다 보았다. 개인의 자유까지 간섭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 영혜인지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혜의 허가가 떨어지자 제니는
오하라를 보며 씩 웃었다.
"오케. 나가자구. 누나가 한 수 가르쳐 줄 테니....."
오하라가 벌개진 얼굴로 빙글빙글 웃음을 흘리며 제니에게 다가섯다.
"가긴 어딜 가? 이 부대에서 지금 둘이 노닥거릴 곳이 어디 있어? 내가 나가지.
도저히 눈 꼴 시어 못 보겠구만."
코사크 상사가 몸을 일으켜 먼저 나가며 오하라에게 눈을 찡긋했다. 곧 이스마엘이
뒤를 따랐다.
"분대장님과 전설의 메딕이 공연하는 훌러덩 쑈를 공짜로 구경하고 싶지만 플라즈마
화염 방사기 연료 체크 땜에 아쉽지만 가봐야 겠네요."
연이어 전부 각각 희한한 이유를 대면서 하나씩 둘씩 막사를 빠져 나갔다. 영헤가 난
무슨 핑계를 대야 하나 고민하는 데 실비아가 영혜의 팔을 끌어 당기며 가만히 웃었다.
실비아를 따라 영혜도 막사를 나가니 순식간에 텅 비어 버린 실내에 둘만 남은 제니와
오하라는 멀뚱한 표정으로 한 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그 때 너무 고마웠어. 제니 중사가 없었다면 아마 난 죽었을 거야."
침묵을 깨고 오하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니는 싱긋 웃었다.
"차식! 메딕이 하는 일이 마린 구하는 건데, 당연한 거 한 거 갖구 뭘 그래."
"그래도 도움 받은 입장에서는 평생 잊지 못하는 거야."
"야! 야! 떠들 시간이 아깝다. 어디 요거 검사나 한 번 해보자. 진짜 좀 컷나."
대담한 제니의 손이 바로 오하라의 사타구니로 접근하더니 움켜 쥐었다. 오하라는
어이가 없어서 픽 웃었다.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완전 여장부야. 제니 중사는 남자로 태어 났으면 공화국
장군까지 갔을거야."
"그만 떠들라니까. 후방에서는 영 비리비리한 놈들만 있어가지고 사내 같은 놈
맛 본지 한 참 됐다. 일선 마린은 힘이 넘친다니 어디 확실히 테스트 해 보자구."
오하라보다 제니가 더 적극적 이었다.
"오케이. 내 진짜 남자의 힘을 한번 보여주지. 얼른 탈피하고 침상으로 Come!!!"
"나두 오케이! 너두 얼른 벗고, 발딱 세우고 기다려!"
말과는 달리 제니는 작은 순간까지도 음미하려는 듯 천천히 옷을 벗어 내렸다. 먼저
옷을 벗은 오하라가 침상에 눕자 다리 사이에 정말 그의 말대로 거대한 남성이 불끈
거리며 천장을 향해 굳게 일어 섰다. 오하라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천천히 드러
나는 제니의 농염한 알몸을 감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제니의 젖가슴은 상당히 풍만했다. 큼직한 유륜이 원을 그린 사이에 농익은 유두도
작은 편은 아니었다. 잘록한 허리며, 펑퍼짐하게 퍼졌다 급히 오무라 든 하체 곡선과
큰 키에 어울리는 탄탄하면서도 긴 다리가 잘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동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으와! 그 때보다 더 끝내주는 거 같아. 제니 중사는....."
"너도 좀 크긴 컷구나. 역시 시간이란게 좋은 거네. 그 때 애기가 이렇게 성장해서
발딱 세우고 누님을 기다리다니....."
"또. 그 따위 얘기!"
그러면서도 오하라는 제니의 농익은 언어가 싫지 않은 표정 이었다. 제니는 남자를
편하게 해주는 타입의 여자였다. 침상에 누운 오하라에게 다가 간 제니는 바로
손을 뻗어 오하라를 움켜 쥐었다. 그녀의 손에 잡히고도 남아 반쯤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오하라의 남성이 힘차게 반응해서 꿈틀거렸다. 제니는 손에 쥔 남성을 부드럽게
위 아래로 몇 번 쓸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 제니의 머리가 오하라의 아랫배를 가리더니 뜨거운 입 속으로
오하라의 남성은 한 순간에 먹혀 버렸다. 오하라는 숨을 한 번 몰아 쉬더니 제니의
금발을 양 손으로 움켜 쥐며 자신에게로 당겼다. 제니의 혀가 구르며 오하라에게
큰 기쁨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핥고 빠는 행위를 반복하며 제니는 묘한 음향이 생기도록 애무를 하여 막사 안에
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하라는 자신의 분신에서 느껴지는 감미로운 혀의
터치에 의해 머리 속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제니의 머리를 움켜 쥔 손에 점점
힘이 더 들어가기 시작했다.
전선에서 매일 생사가 오고가는 그런 생활인지라 여자들과의 접촉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원래의 능력보다 훨씬 예민해진 오하라의 남성은 오랜만에
접하는 여성에게 쉽게 견딜 수 없었다. 더구나 그 여성이 상당히 능란한 테크닉을
지닌 제니이기 때문에 금새 아랫배로 흥분의 줄기가 뻗치기 시작했다.
제니의 혀는 거침없이 오하라의 모든 것을 애무하였다. 그 혀가 미치는 길마다
오하라의 성감이 하나 하나 일어나면서 전기에 감전된 듯한 그런 전율을 느끼게 해
주는 것 이었다. 그래서 너무도 싱겁게 오하라는 절정에 올라 버렸다.
"윽! 이... 이런!....."
오 분도 안 돼어 오하라가 몸을 쭉 펴는 순간 그의 남성이 경련을 일으키면서 뜨거운
분신을 제니의 입 안에 퍼 붓기 시작했다. 제니의 눈이 웃는 듯 하였으나 오하라는
그런 것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짜릿한 황홀이 몸을 감싸 돌아 부르르 떨면서 두 번
세 번 뜨거운 열기를 사출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뭐 그 때나 지금이나 똑 같구만. 물건만 좀 커졌지. 어린애야."
제니가 오하라의 다리 사이에서 고개를 쳐 들었다. 그녀는 입 가에 흐르는 탁한 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 등으로 슥 닦아 내었다. 오하라는 창피해서 얼굴이 벌개졌다.
그는 항변을 했지만 아무래도 목소리가 조금은 기가 죽은 듯 작았다.
"그 때도 그랬지만 내 진가는 두 번째에 나타난다구. 기다려 봐."
제니는 오하라의 말에 킥 웃었다.
"오케이. 두 번째는 더 빨리 끝나게 해 줄게. 호호호..... 다시 한 번 세워 봐.
일선엔 좀 괜찮은 사내가 있을 줄 알았더니 이거 여기나 거기나 다를 게 없구만.
어디 나 확 터트려 줄 근사한 놈 없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제니의 손은 부드럽게 오하라의 몸을 계속 어루만지고 있었다.
한번의 사정을 마치고 크기를 줄인 남성을 다시 움켜쥐고 생기를 회복하려고 애쓰는
오하라의 노력을 도와 주는 것 이었다.
오하라의 눈이 제니의 온 몸 구석 구석을 샅샅이 훑었다. 건강하게 보이는 긴 다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특히 오래 머물었다. 머리 색과 똑같은 옅은 금발의 무성한 체모가
너무 신비하게 보이는지라 절로 침이 꿀떡 삼켜졌다. 펑퍼짐하게 한껏 퍼진 엉덩이로
오하라의 손이 뻗쳐 갔다. 그 부드럽고 풍요로운 굴곡을 쓰다듬던 그의 손은 동그랗게
솟아 오른 엉덩이를 한껏 움켜 쥐었다. 제니는 살짝 몸을 움츠리며 놀라는 시늉을
해서 오하라에게 즐거운 느낌을 주었다. 오하라의 손길이 두 언덕 사이의 골짜기로
거침없이 파고 들어 갔다.
뭔가를 느끼는 듯 제니의 숨가쁜 탄식이 새어 나왔다.
"흑!......"
오하라의 손은 제니의 은밀한 부분을 사정없이 헤집고 다녔다. 사내에게 적절히 반응
할 줄 아는 제니는 손이 자극적인 부분을 건드릴 때마다 몸을 들썩거리며 사내에게
호응 했다. 실제 오하라의 손길에서 나른한 쾌감이 전파 되므로 제니처럼 성에 대해
솔직한 여자가 그 감흥을 숨길 리가 없었다. 그녀의 애액이 숨차게 스며나오면서
오하라의 손 놀림은 더욱 가빠졌다.
기어코 오하라의 손가락이 벌써 흠뻑 젖은 제니의 몸 속으로 파고 들었다. 제니의
엉덩이가 주기적으로 움찔거렸다. 이 정도 되자 오하라의 남성은 다시 불끈거리며
힘을 쓰기 시작했다. 오하라는 괴물처럼 솟아 오른 자신을 확인 한 뒤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이젠 제니를 침상으로 이끌어 엎드리게 하였다. 제니는 기대가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이끄는 대로 침상에 올라 엉덩이를 높이 치켜 올렸다.
오하라의 손은 두 개의 보름달 같은 제니의 엉덩이를 쥐고 양 쪽으로 벌려 길을
열었다.꽃 잎처럼 예쁜 여인의 비문이 흥분에 의해 살짝 벌어진 채 애액을 퐁퐁
샘 솟듯 분비하는 그 모습은 너무 황홀한 정경이었다. 지금까지의 제니의 행위에
보답하려는 듯 오하라는 활짝 드러난 제니의 비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곧바로 혀로 핥기도 하고 빨기도 하며 제니의 향기를 머리 속에
깊이 새겨 넣는 작업을 쉼 없이 반복 하였다. 등 뒤로부터 제니의 팔 사이로 파고
들어간 손으로 그녀의 풍만한 유방을 움켜 쥐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한참을 씨름
하는 동안 그의 다리 사이에서 폭발할 곳을 찾고 있는 남성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올라 불쌍하게 보일 정도로 덜덜 떨며 목적지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드디어 때가 된지라 오하라는 번들거리는 자신의 단단한 남성을 움켜 쥐고 천천히
제니에게로 이끌었다. 살짝 꽃 잎을 벌리고 위치를 잘 고정 시킨 뒤 그대로 한번에
밀어 넣었다. 포근한 속 살의 감촉에 더하여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제니의 몸은
말 그대로 타오르는 용광로 였다. 긴박한 압축감도 있고, 편안하게 해주는 나른한
여유도 있는 그런 환희의 장소에 오하라는 뿌리 끝까지 깊이 자신을 파 묻었다.
그의 몸이 힘차게 반복적으로 왕복하는 동안 제니는 적절하게 반응을 하며 콧소리
섞인 신음을 내 질렀다. 그녀의 허리가 멋진 리듬을 타며 앞 뒤로 움직였다. 역시
제니의 호언한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오하라는 그녀의 상대로 부족해 보였다.
금새 오하라는 자신이 또 다시 함몰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끄
럽지는 않았다. 누구라도 제니와 상대하면 똑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짐승 같은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흐윽!... 나! 갈 거 같아."
"조금만..... 조금만.... 더!"
제니의 신음 소리가 애원하는 듯한 그런 소리로 바뀌었다. 황홀한 쾌감이 몸의 끝
말단을 향해 폭포처럼 터져 나가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기란 너무나 큰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 이었지만 그래도 용케 겨우 겨우 버티며 제니도 같이 절정으로 이끌려고 애
쓰는 오하라의 노력은 가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우는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어쩔수 없는 충동을 해방 시킨 순간 그의 남성이 또다시 불끈 팽창하며 분수가 터지듯
제니의 몸 안 깊숙한 곳에 힘껏 자신을 쏟아 부었다. 제니도 억지로 누르고 있던
감흥을 오하라의 절정에 맞추어 풀어 주자 버티고 있던 팔이 허물어지며 앞으로
무너져 버렸다. 그녀의 몸으로 가느다란 떨림이 파도치듯 연신 흘러 갔다. 그렇게 두
남녀는 같은 시간에 동일한 쾌감을 서로 주고 받으며 끝이 없는 늪 같은 아늑함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며 덧붙여진 나른함 때문에 눈을 감고 한참 동안을 미동도 없이
육체의 열락을 느끼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 코프룰루 태양력 6월 8일 11시 20 분
"근데 말이죠. 난 정말 모르겠어요. 일병 놈 하나 데리러 도합 12 명의 정예 병력이
사지로 뛰어 드는 것을 어떻게 이해 하란 겁니까?"
보충 된 '제레미 안드레키스'라는 화이어 뱃은 말이 무척 많아서 드롭십을 타고 오는
도중에도 계속 시끄럽게 하더니만 이 열 종대로 행군하는 도중에도 연신 씨부렁거려
귀를 피곤하게 했다.
"내 말이죠. 평소 존경하는 밀러 대위님 부대에 배속 된 것은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개 같은 작전에 왜 나가야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구요."
"자넨 정말 말이 많구만. 대장님. 이런 입 잰 놈을 왜 받으셨어요. 골치 아프게
시리......"
코사크 상사가 한심하다는 듯 밀러를 쳐다 보았다. 필요한 말을 할 때는 왕왕거리는
엄청 큰 소리로 떠들지만, 그 외에는 거의 말이 없는 밀러 대위의 입가에 웃음이 잠시
스쳐 지났다.
"어휴. 선임 하사님. 제가 이 부대에 낄 자격이 없는 줄 아세요? 제 강화복 어깨의
견장 안 보입니까? 저도 역전의 용사라구요."
두 줄의 행열 가운데로 밀러의 뒤를 따라 걷던 영혜는 제레미의 어깨의 견장을
보았다. 그것은 골드 마크로 'Blizzard'라 쓰여진 찬연히 빛나는 견장이었다. 10 회
이상의 승전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병사에게만 수여하는 테란 족 병사의 영광의 상징
이었다. 테란 연합 초기 '코랄의 난'에서 위명을 떨치고 전장터에서 죽은 블리자드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서훈 제도가 'Blizzard' 골드 마크로 역시 일급 무공
훈장에 속하는 것 이었다.
"짜식아. 여기서 그거 없는 애는 이스마엘 밖에 없어. 이스마엘도 아직 전투 참가가
10번이 안 되서 그렇지. 지금까지 8번 작전 뛰어서 전승이야. 우린 그런 거 달고
다니지도 않아. 쪽팔려서. 차식 깝죽거리긴...."
오하라가 제레미의 기를 팍 죽이려는 듯 말 했으나 제레미는 그 정도에 기가 죽지
않았다.
"어! 씨~ 분대장님. 만난지 하루도 안됐는데 갈궈요? 분대장님 담엔 내가 짬밥이
젤 높은데.... 이렇게 기 죽여도 되요?"
모두들 제레미 병장과 말 상대를 하기가 피곤했다. 그래서 넌 떠들어라. 난 갈 길
가련다 하는 표정으로 모래 언덕을 넘어 갔다. 제니와 실비아는 양 열의 가운데에
묻혀 연신 앞 뒤의 마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적진으로 침투한 특공대가 이렇게
한가하고 여유롭게 행군을 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저 밀러 대위와 영혜만이
처음과 끝이 똑같게 조용히 걸을 뿐 이었다.
"이봐. 신참. 이 누나가 자네라면 이렇게 말하겠어. 존경하는 사령관님. 저에게
무훈을 세울 기회를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꼭 라이언
일병을 구출해서 사령부로 보내겠습니다."
제니의 농담에 제레미가 부러 화가 난 듯 식식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
"산개!"
밀러 대위의 나지막한 명령이 떨어졌다. 이들을 지금까지 한가롭게 행군하던 부대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순식간에 원형으로 흩어지며 엎드리는 대원들의 동작엔 조금의
지체가 없었다. 맨 앞 열의 이스마엘과, 갓 합류된 제레미는 적당한 거리를 벌리며
사주경계의 자세로 들어 갔고, 자동 화기 사수와 부사수의 16 mm 가우스 기관총은
서로 보완하는 위치에 화망을 그릴 수 있도록 꼭 알맞은 거리로 모래 땅에 박혔다.
선임 하사를 포함한 세 명의 소총수가 양 옆과 뒤를 경계하며 밀러 대위의 주변에
엎드렸고, 제니는 어느새 화이어 뱃의 뒤로 달려 나가 적절한 위치를 잡았고, 조금
늦었지만 실비아도 이스마엘의 뒷 쪽으로 달렸다. 단지 경험이 없는 영혜만이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꾸물거리다가 밀러 대위 옆에 늦게 왔을 뿐이었다. 선임 하사가
안스럽다는 눈으로 영혜를 바라보았고, 영혜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전방의 모래 언덕에서 탐색병(Ghost, Sniper)이 엎드린 자세로 한 손을 하늘로 치켜
올리고 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선임 하사가 그 손 동작을 보면서 해독 하였다.
"전방 13 시 방향. 언덕 아래 저글링(Zergling) 10 분대. 약 120 마리. 오바로드의
지휘를 받고 있으므로 스나이퍼는 접근 불가. 하이드럴리스크(Hydralisk) 흔적은 없음.
아드레 날린 강화는 안 이루어진 것으로 보임. 명령 기다림."
"고스트는 일단 대기. 나머진 집결."
밀러의 나직한 명령이 떨어지자 선임하사는 고스트에게 사인 했다. 대원이 순식간에
모이자 밀러 대위는 지형을 살피기 위해 주변을 돌아 보았다. 곧 적당한 위치가 나타
났다. 남서쪽의 언덕 지형 이었다.
"스팀팩 준비하고 이스마엘 좌측. 제레미 우측. 메딕은 이스마엘과 제레미의 전열에
선다. 소위는 중앙 접근로 차단 할 것. 자동 화기는 화망 구성을 이스마엘과 제레미
앞 15 도 지점에 구축한다. 나머지는 2.4, 4.8, 8.16 방향으로 선다. 화뱃 외엔 스팀
팩은 사용 안해도 좋다. 내 위치는 6.12 점이다. 전원 화망을 자동화기와 일치 시킨다.
고스트는 사선까지 저글링을 유인 한 뒤 전열 뒤로 빠져 돌아 나가서 오바로드 사냥을
한다. 선임하사! 고스트에게 전달! 각자 위치로!"
모두 급하면서도 일사불란하게 남 서쪽의 언덕으로 뛰어 올라갔다. 고스트에게 연락을
마친 선임 하사가 자리를 잡자 화이어 뱃 둘을 가운데에 놓은 완벽한 학익진이 구축
되었다.
적은 아군의 열 배의 병력이었다. 영혜는 가슴이 마구 고동치며 다리가 떨리기 시작
했다. 실비아도 두려운 듯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제니마저 긴장된 표정으로 연신
실비아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너! 잘 알고 있겠지만 이스마엘이 죽으면 너도 죽는거야. 이스마엘이 살아 있어야
네가 공격을 안 받아. 오버로드가 와서 직접 지휘를 한다면 그 땐 위험할지 모르지만
그 놈 오는 속도가 느려서 우리 저격수를 벗어날 수 없을거야.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이스마엘 하나만 지킨다고 생각하면 돼! 알았지?"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를 악물어 결심을 나타내곤 플라즈마 화염 방사기를
잔뜩 꼬나 쥐고 언덕 아래를 노려보는 화이어 뱃 이스마엘의 앞으로 달려 갔다.
제니는 다음에 영혜를 쳐다 보았다.
"소대장님! 잘 아시겠지만 두 화이어 뱃의 사이에 저글링이 못 들어 오게 차단하는
것이 소대장님의 역할입니다. 저글링이 워낙 머리가 나빠서 소대장님은 비 전투
병력으로 인식하니까 우선 공격은 절대로 받지 않습니다. 땅에 추를 박고 부서져라
꼬나 잡고 버티세요. 이런 전투는 금새 끝납니다. 언덕 위에서 아랫 쪽 저글링 상대
하는 것을 제가 여러 번 봤는데 정말 식은 죽 먹기예요. 걱정마시고 자리 지키세요."
영혜도 정신 없이 머리를 끄덕이고 이스마엘과 제레미의 가운데로 이동했다. 추를
땅에 박고 로프를 강화복 허리의 고리에 단단히 고정 시킨 뒤 손으로 두 번 비틀어
잡았다. 처음 실전을 접하는 영혜의 머리 속은 텅 비어 버리고, 주변의 모든 사물이
눈 앞에서 의미 없는 파노라마처럼 소용돌이 쳐 흘러 갔다.
언덕 저 너머에서 한 발의 묵직한 총성이 울렸다. 고스트의 25 미리 C-10 산탄 총
소리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언덕을 넘어 고스트가 미친 듯이 도망 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뒤엔 엄청나게 큰 모래 먼지가 일고 있었다. 고스트는 전속력으로 언덕을 향해
달리는데 뒤 쫓는 모래 먼지가 점점 고스트와 가까워졌다. 먼지 사이로 잠깐 잠깐
흉측한 초록 색 저글링의 모습이 나타났다. 입을 쩍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칼날 같은 양 팔을 휘두르며 쫓아오는 저글링의 모습은 악귀와 같았다. 속도가 빠른
저글링 개 떼가 바로 고스트를 덮치며 날카로운 앞 발로 긁으려는 순간, 고스트의
모습이 순식간에 일렁거리며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클로킹(Cloaking) 이었다.
순간 목표물을 잃어 버린 저글링들은 당황한 듯 우왕 좌왕 거렸다.
그 다음 순간 플라즈마 화염 방사기가 마치 지옥의 불꽃처럼 사라진 고스트 때문에
진형이 흐트러진 저글링 개 떼의 전열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뻗어 나갔다. 앞 줄의
저글링 몇 마리가 순식간에 타오르며 조각 조각 부서지고 귀를 찢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동료가 죽어 나감으로써 새로운 목표를 포착한 저글링은 곧 바로 화이어 뱃을
향해 돌진하여 언덕으로 꾸역꾸역 올라 왔다. 화뱃의 화력이 비록 엄청나지만 시체를
쌓으면서 올라오는 저글링을 완전히 제압 할 수는 없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이스마엘과 제레미는 강화복 오른 쪽 어깨에 솟아 있는 작은 돌기를
사정없이 눌렀다. 치익하는 약물 주입 소리가 짧게 나면서 몸에 들어간 수퍼 교감신경
자극제는 대뇌에 반응하며 순식간에 화학 작용을 일으켜 에피네프린 분비를 최대로
올려 버렸다. 이스마엘과 제레미의 눈이 허옇게 뒤집히며 플라즈마 화염 방사기를
수동으로 조준하기 시작했는데 자동으로 적을 조준 할 때보다 거의 한배 반이나 빠른
속도로 저글링을 향해 불꽃을 뿜어 내는 것 이었다. 불꽃이 튕기는 지점마다 저글링이
떼로 흩어졌다. 두 개의 화염방사기의 화망이 겹치는 지점의 저글링은 순식간에 확
증발해 버렸다.
스팀팩은 원래 한 번 이상 연속으로 쓰면 신경 조직이 버텨 나지 못해서 죽음으로
몰고 가기 십상인데 지구집정연합(UED)에서 메딕을 양성하면서부터 스팀 팩의 충격을
완충시키는 방법을 연구 해 낸 덕에 이전처럼 스팀팩 쓰고나서 체력이 소진해 죽어
버리는 마린과 화이어뱃의 숫자는 현저히 줄었다. 그러므로 연속으로 스팀팩을 쓰는
기술이 연구 되었고, 무한 스팀팩이라 명명한 그 효과는 전투력을 상상할 수 없는
수치까지 올려 주게 되었다.
여기서도 무한 스팀 팩이 시작되자 제니와 실비아는 화뱃의 옆에 꼭 붙어서 CMC/660
중전투복의 뒤에 난 구멍에 두 손을 집어 넣고 이스마엘과 제레미의 중추 신경조직에
꽂은 힐링 포션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며 신경 폭주를 막아 주기에 바빴다. 너무 많은
힐링 포션을 넣으면 신경 반응이 급격히 느려지고, 적게 넣으면 폭주로 인해 마린은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해 죽음으로 빠져 들게 된다.
왠만큼 노련하지 못하면 양의 조절과 타이밍을 놓치기 때문에 화이어 뱃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 위험한 힐링이지만 제니와 실비아는 조금의 헛점도 없이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화이어뱃의 신경 조직을 보호해 주었다.
무한 스팀 팩을 쓴 화이어 뱃의 화력이 막강하여도 밀고 올라 오는 저글링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시체의 산을 쌓으면서도 기어코 언덕까지 올라오는 놈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레미의 앞까지 올라온 저글링 한 마리가 뒷 줄의 저글링을 쏘느라 미처 조준을 못
한 제레메에게 발을 치켜 올려 그으려는 순간!,
"발사!"
밀러 대위의 명령이 떨어지고 갑자기 온 사방에 귀를 찢는 가우스 소총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자동 화기에서 퍼런 불꽃이 피어 오르며 16미리 총탄에 순식간에 수십 조각
으로 갈갈이 찢어진 저글링의 갑옷 같은 살점과 푸른 점액이 허공으로 흩 뿌려졌다.
그리곤 지옥 같은 광경이 언덕에 펼쳐 졌다. 고막을 찢는 듯한 가우스 소총 소리와
플라즈마 화염 방사기의 쉭쉭거리는 소리, 저글링의 째지는 비명 소리가 어우러지며
천지 사방으로 저글링의 살더미와 점액이 튀어 올랐다. 그것은 일방적인 학살 이었다.
영혜는 눈 앞의 처참한 광경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눈을 꼭 감았다. 저글링의 파괴된
살덩이가 투둑거리며 영혜의 강화복을 때려왔다. 이미 헤드의 보호경은 저글링의 점액
으로 덮여 초록색으로 변질 되어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처참한 살륙 장면은
처음 보는 것 이었다.
단 한 마리의 저글링도 언덕 위를 뚫지 못하고 시체의 산을 쌓던 상황이 바뀐 것은
거의 절반 가까운 저글링이 피범벅이 된 후 였다. 북동 방향에서부터 초록색 피를
철철 흘리며 공중을 천천히 날아오는 거대한 물질이 있었다. 둥근 풍선처럼 생긴 그
괴물체는 바로 저그 족의 지상군을 통솔하는 지대장 오바로드 였다.
저격수의 총탄을 계속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불리한 전황을 지휘하러 오는 것
이었다. 머리 나쁜 저글링과는 달리 오버로드는 금새 상황을 판단하고 옆으로 돌아
후면을 우회 공격하는 것이 현재로서 최선의 방법 임을 알아채고 그 명령을 전달
하였다. 그러나 전달이 끝나자 마자 스나이퍼의 마지막 한 발의 총알을 맞고 그대로
공중에서 터지며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버렸다.
오버로드의 명령을 받은 저글링의 공격 방법이 달라졌다. 무식하게 화뱃만을 향해
돌격하던 놈들이 옆으로 돌기 시작한 것 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이렇게 공격했다면
밀러 대위의 부대는 적잖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밀러의 특공대는 적의
공격 패턴이 바뀌었어도 당황하지않고 침착하게 바로 앞으로 뛰어 드는 저글링을 하나
씩 일점사하여 박살을 내기 시작했다. 앞에서 밀려드는 저글링은 화이어 뱃과 자동
화기가 상대하고 뚫고 들어 오는 저글링은 일단 길목을 막고 있는 영혜에게 걸려서
잠시 주춤하는 사이 이젠 고스트까지 포함 된 다섯 명의 집중 사격을 받고 처참하게
터져 나갔다.
영혜의 주변에 저글링의 부서진 살덩이가 쌓여 갔다. 승리가 눈 앞에 다가 왔는데
막상 길을 막고 있는 당사자인 영혜는 거의 실신할 지경 이었다. 처절하게 부서지는
살 덩어리와 초록 색 피가 사방으로 튀어 날았고, 그 파편이 영혜의 강화복 위로
부딛히며 흩어졌다. 미처 죽지 않은 저글링은 공격 본능 밖에 없는지 영혜를 스치며
뛰어 들어갔고, 그들과 스쳐 부딛힐 때마다 그녀는 몸서리를 치며 조금씩 물러서며
주저 앉기 시작했다.
영혜의 상태를 지켜보던 코사크 상사가 고함을 쳤다.
"버티쇼! 얼마 안 남았어요. 거기서 무너지면 여기도 위험해!"
이를 악물고 로프를 움켜 쥐었지만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다.
부끄럽게도 강화복 안의 하체가 축축하였다.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싸 버린 것 이었다.
챙피해 할 여유도 없이 손에서 자꾸 빗겨 벗어나려는 로프를 한번 더 부여 잡는 순간,
몸체가 없는 저글링의 커다란 대가리가 퍼런 피를 흩뿌리며 공중을 빙글빙글 돌면서
영혜에게로 날아 왔다. 그 처참한 악귀의 모습에 질려서 눈을 감으며 피하려는 순간
주변에 흘러넘치는 저글링의 점액에 미끄러져 영혜는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쓰러지자마자 대 여섯 마리의 저글링이 그녀를 타고 넘으면서 방어선을 뚫고 뛰쳐
들었다. 저글링이 학익진 안으로 뛰어 들자 상황이 급변해 버렸다. 코 앞에까지 다가
온 위기에 조금의 망설임 없이 '새미 존슨'과 '퐁 수린'은 메딕의 서포트없이 스팀
팩을 사용 했다. 자동 화기 사수는 아군도 살상할 위험이 있으므로 총구를 못돌렸지만
이스마엘과 제레미, 두 화이어 뱃은 뚫고 들어 온 저글링에게 프라즈마 화염을 쏟아
부었다.
뚫고 들어 온 저글링은 순식간에 다 박살이 났지만 화이어 뱃이 돌아 선 사이 다가선
저글링이 화이어 뱃을 습격했다. 노련한 제니의 서포트를 받고 있는 제레미는 방향을
바로 바꾸며 아슬아슬한 간발의 차이로 저글링에게 화염을 퍼 부었지만 이스마엘 쪽은
서로 방향이 꼬이는 바람에 실비아의 손이 강화복에서 떨어지며 힐링 포션 주입기가
떨어져 나갔다. 한 마리의 저글링을 태운 순간 옆에서 뛰어 든 저글링의 앞 발에
이스마엘이 찍히며 강화복이 터지고, 이스마엘의 붉은 피가 튀어 나왔다.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이스마엘의 노력도 헛되이 두 마리의 저글링이 덤벼 들어 이스마엘을
마구 찍기 시작했다.
밀러 대원들은 이스마엘과 저글링이 범벅이 되어 뒹굴고 있기 때문에 도울 방법이
없는지라 안타깝게 발만 구르며 다른 저글링을 학살 할 뿐 이었다. 이스마엘 강화복
가슴에 붙은 생명 지수판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급히 떨어져 내려 갔다. 생명이 끊어
질 것 같은 순간 벼락처럼 실비아가 뛰어 들며 이스마엘을 감싸 안았다. 원래 공격
우선 순위에서 제외 된 메딕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스마엘을 공격하던
저글링의 타격이 그대로 실비아에게 내리 꽂혀 장갑이 약한 메딕 강화복은 순식간에
걸레처럼 헤지면서 실비아의 고통스런 비명이 절절이 울렸다.
실비아가 두바퀴 뒹굴며 나자빠지는데 이미 사경에 빠진 이스마엘 주변의 유일한 공격
대상인지라 한마리의 저글링이 쫓아 붙으며 앞 발로 찍어 내렸다. 이스마엘 때와 같은
이유로 실비아를 공격하는 저글링을 물리 칠 방법이 없었다. 실비아마저 당할 위기
였다. 밀러 대원 모두의 안색이 잿 빛으로 변했다. 이미 저글링 10 분대를 거의 다
해 치웠는데, 살아 남은 한 두 마리로 인해 메딕이 죽을 위기에 빠진 것 이었다.
이 위기의 순간에 쉬익하는 화염 방사기 소리가 울리며 실비아를 찍으려던 저글링이
불꽃에 휩싸여 튕겨 날아 갔다. 쓰러져 있던 이스마엘이 간신히 무릎 꿇은 자세로
저글링과 실비아 사이의 틈을 노려 플라즈마 화염을 쏜 것 이었다. 이스마엘은 마지막
한 방을 쏜 뒤 천천히 쓰러졌다. 그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고 있었다.
제니가 미친 듯이 달려가더니 이스마엘의 등에 손을 집어 넣고 번개같은 손 놀림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실비아의 연약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상황 판단이 정확한 제니이기
때문에 실비아보다 이스마엘의 치료가 우선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짚었다. 한 참 치료
하던 제니가 고개를 들며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생명 지수가 딱 2 남았었어요. 한 번 스치기만 해도 죽을 뻔 했는데... 근데 상처
보다 스팀 팩 조절을 못 한 것이 더 충격이 크네요. 잘못하면 이상을 남기게 될
지도......"
제니는 일단 이스마엘을 살려 놓고 실비아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고통과 두려움으로
흐느끼는 실비아의 신음이 너무 애처로왔다. 실비아는 다행히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어서 힐링 팩의 도움으로 곧 절뚝거리며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갈갈이 찢어진 강화복 땜에 맨 살이 드러난 곳이 많아 그것을
가리려고 애쓰는 실비아 하사는 천상 여자다운 여자였다.
밀러 대위가 침중한 표정으로 다가 왔다. 대원들 모두가 이스마엘과 실비아를 빙 둘러
쌌다. 그 무리에서 영혜 혼자 동떨어져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부들거리고 있었다.
"괜찮겠나?"
밀러가 제니에게 묻자, 제니는 자신 있다는 듯 대답하였다.
"예. 실비아는 곧 회복 될 거고, 이스마엘은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괜찮을 겁니다.
그러나 방금 얘기 했듯이 스팀 팩 과사용의 후유증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좋아. 저그 3 콜로니 뚫기 전에 202 연대 전진 베이스가 있는 쪽으로 우회한다.
거기서 장비를 보급 받자. 퐁 수린과 오하라가 이스마엘을 맡아라."
상황이 종료되자 그제서야 모두가 영혜를 의식하고 고개를 돌렸다. 영혜는 이를
악물고 버티고 섯지만 온 세상에 자기 혼자 외로이 서 있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이 씨발! 내 이래서 햇 병아리랑은 전투 나가기 싫은거야!"
'콜린 주니어'가 갑자기 헬멧을 바닥에 팽개치면서 욕설을 퍼 부었다. 다른 부대원도
같은 심정인지 영혜를 바라 보는 시선이 곱진 않았다.
"이런 좆같은 일이 어디 있어? 돌대가리 저글링 상대로 지형 이득을 누리며
이런 위기에 빠진 적이 언제 있었어? 하마터면 막내가 죽을 뻔 했잖아?"
길길이 날뛰는 콜린이 쉽게 진정할 것 같진 않았다. 치욕스런 이 순간이 너무도
가슴 아파서 영혜의 깨문 입술에선 피까지 배어 나왔다.
"그만 해라! 소위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잖아? 미끄러진건데, 할 수
없어. 그 전까진 잘 했잖아. 다행히 다 살았고... 자 그만 출발하자."
결국 밀러가 한마디해서 콜린을 진정 시켰다. 이스마엘을 부축하며 새로 진형을
짠 밀러 부대가 모래 언덕을 넘어 가는데 영혜는 움직이질 못했다. 걱정이 되어
남아 있던 제니가 위로해 주었다.
"소대장님. 쟤들 흥분해서 그런 소리 한 거니 신경 끄세요. 사실 소대장님 무지
잘 한 거 다들 알아요. 난 첨에 그런 길목 방어 맡았을 때 오줌까지 질질 싼걸요.
그거 엄청 어려운 거예요. 자 갑시다. 담엔 실수 안하면 되는 거예요."
"나도 쌌어. 엉엉엉....."
다정한 제니의 말에 간신히 참고 있던 눈물이 기어코 영혜의 눈에서 흘러 내렸다.
언니같은 제니 중사는 영혜를 끌어 안고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메딕 소대장
이 영혜 소위는 어깨까지 부들 부들 떨며 제니 중사의 품 안에서 한 참 동안을
목 놓아 서럽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