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說 스타크래프트 ‘메딕 미스 리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3 부
********** 코프룰루 태양력 6월 8일 17시 00분
"이거 영 심상치 않은데…"
코사크 상사는 눈쌀을 찌푸렸다. 황량한 사구를 따라 행군한지 벌써 4 시간인데,
204연대 전진 베이스가 가까워짐에 따라 모래판을 울리는 둔한 굉음이 점차로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씨즈(Arclite Siege Tank) 포격 소리인데요. 베이스에서 전투가 벌어졌나 봅니다."
"고스트(Ghost, Sniper)의 현재 위치는 어디 쯤인가?"
"베이스 근처에 도착해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군요."
오하라가 '텔콤'을 켜고 고스트의 위치를 확인한 뒤 대답했다. 밀러는 잠시 생각
하더니, 곧 결단을 내렸다.
"베이스까지 일단 빨리 이동하자. 일단 상황을 지켜 본 후 다음 행동을 지시
하겠다. 신속 전개!"
모두 긴장을 하면서 이동 속도를 높였다. 베이스에 가까워질수록 씨즈 탱크의 포격
소리와 가우스 소총 소리가 크게 들려 왔다. 이윽고 베이스를 눈 아래 내려보는 언덕
까지 도착한 일행은 납작하게 엎드려 상황을 보았다.
"제길! 질럿(Zealot) 입니다. 엄청난데요."
코사크의 낮은 음성에 모두 아연 긴장했다. 언덕 아래 분지에는 한창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거의 두 중대는 됨직한 푸른 전투복의 프로토스 질럿들이 꾸역꾸역
베이스의 입구를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입구를 막고 있는 4개의 벙커에서는 엄청난
화력을 그들에게 쏟아 붓고 있지만 질럿들의 방어 실드는 워낙 알아주는 똥 맷집이라
벙커만으로는 깨기 힘들었다. 기지의 여러 곳에 씨즈 모드(Seige Mode)로 전환한 공성
탱크가 포신이 터져라 갈기는 위력적인 포격이 벙커의 화력과 어우러져 겨우 질럿을
쓰러트리긴 하지만, 워낙 질럿의 수가 많아 시체를 깔면서도 야금야금 기지를 먹어
가고 있었다.
"고전인데요. 저 병신같은 자식들은 벙커 앞을 서플라이(Supply Depot)로 막는 기본
방어진도 안 짜놨어."
오하라가 말한 순간 맨 앞의 벙커 뚜껑이 개 떼처럼 달라붙은 질럿의 플라즈마 검의
위력을 당하지 못하고 열리며 터져 버렸다. 그리고 벙커에 들어 있던 마린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학살 당했다. 하나의 벙커를 짓밟은 질럿은 다음 벙커를 향해
달렸다.
"저런 식이면 전멸 당합니다. 대장님."
코사크가 밀러를 쳐다보았으나 밀러도 이런 상황에서는 대책이 없었다. 벙커 보호를
받는 마린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양의 질럿 부대여서 밀러 부대가 끼어
들어봐야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한 것이다.
고스트는 클로킹(Cloaking)을 하여 눈에 띄지 않으므로 나름대로 질럿의 뒤에서
열심히 하나씩 조준 사격하고 있으나 고스트 혼자만의 화력으로 저 똥 맷집의 질럿을
다 해치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이었다. 더구나
고스트의 클로킹은 시간에 제한을 받기때문에아 곧 철수해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벙커는 한 개씩 차례대로 터져버려 마침내 입구의 방어선이 뚫리고 말았다.
질럿의 다음 목표는 공성 전차 였다.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일차 포격 후,
다음 포격을 준비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결점 뿐만 아니라, 근접 공격(Melee
Attack) 하는 적은 보이질 않아 눈 멀쩡히 뜨고 선채로 당한다는 치명적인 약점까지
가지고 있는 씨즈 탱크 인지라 적의 근접 공격을 차단해 줄 외곽의 방어선이 뚫려
버린 지금, 푸른 질럿의 떼가 몰려 가는 곳마다 탱크는 무력하게 박살나고 있었다.
팩토리(Factory) 건물이나 서플라이의 틈에 숨어 저항하는 마린들도 하나 씩 둘 씩
질럿의 밥이 되어 죽어 나갔다.
"끝났군. 가망 없어."
코사크가 한 숨을 쉬는 순간,
갑자기 그들의 귀에 쌔액 하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스쳐 갔다. 곧이어 204연대
전진 베이스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질럿 떼에게 달려들어 25미리 연발 레이져를 쏟아
붓는 전투기 한 편대가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대공전투
능력이 없는 질럿들은 공중에서의 공격엔 속수무책인지라 우왕 좌왕하며 숨고, 도망
가기에 바빴다.
"레이쓰(Wraith) 떴네요. 참 기가 막힌 시간에 도착했어요."
레이쓰의 25미리 연발 레이져는 경박한 소리만큼 파괴력은 볼품이 없었지만,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적도 못 죽일만큼 약한 무기는 아니었다. 계속 집중으로 하나씩 갈겨
대자 똥 맷집의 질럿도 결국 보호 실드가 다 벗겨지며, 그들의 사망 형태인 연기로
승화해 사라졌다.
기지 안으로 밀고 들어 온 질럿들이 다 쫓겨 갈 무렵, 기지 반대쪽 상공에서 푸른
빛의 납작한 모양의 전투기 편대가 나타났다. 그것은 프로토스의 커세어(Corsair)
편대 였다. 급한 연락을 받고 출동한 모양이었으나 그것은 안오는 것만 못한 출격
이었다. 커세어의 접근을 알아챈 순간 아군 레이쓰 편대는 커세어 쪽으로 방향을 전환
하며 바로 요격에 들어 갔다. 커세어와는 당연히 공중전을 해야 하므로 레이쓰는
일제히 클로킹 하였다. 레이쓰 한 편대의 주위 공간이 일렁거리며 순식간에 기체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테란군의 빛나는 과학이 이루어낸 클로킹 필드
(Cloaking Field) 였다. 고스트가 시전하는 것을 대형화 시킨 것 이었다. 그렇게
사라진 레이쓰는 바로 전에 질럿을 섬멸할 때 쓰던 대지상용 연발 레이져와는 비교
할 수 없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제미니 공대공 미사일을 프로토스의 커세어 편대에
퍼 부었다.
"병신들. 레이쓰 상대로 옵저버(Observer) 없이 온단 말이야? 프로토스 놈들도
개 떼로만 밀어 붙이는 무한 맵 스타일이구만. 유닛을 아낄 줄 몰라."
밀러가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적과 아군간의 공중전은 싱겁게 끝나 버렸다.
프로토스 족 답게 상당히 탄탄한 내구력을 지닌 커세어지만 보이지 않는 적에게서
쏟아지는 미사일을 감당 할 턱이 없었다. 순식간에 다 터지고 마지막 한대 남은
커세어가 도망치려고 기수를 돌렸으나 추적하는 20여발의 제미니 미사일은 그를
형체도 안남기고 박살 내 버렸다. 완벽히 적을 섬멸한 레이쓰 편대가 클로킹을 풀어
공간을 일그러트리며 그들의 자취를 드러냈다. 레이쓰는 살아남은 마린들의 환호에
보답하듯 기지를 한 바퀴 선회 한 다음 모래 언덕을 넘어 처음 그들이 나타났던 곳
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멋지구만. 자 들어가자. 상사. 고스트에게 진입 허가를 요청 하라고 해."
밀러 부대는 204연대 전진 팩토리 베이스로 진입했다. 터져 버린 벙커와 씨즈 탱크의
잔해가 군데 군데 널려 있고, 살아 남은 마린들이 어수선하게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기지는 거의 폐허를 방불케했으나, 다행히도 질럿의 공격에 무사한 두개의 팩토리가
있어 정신없이 불을 번쩍거리며 생산 라인을 돌리고 있었다. 기지 안 쪽의 깊은 곳에
위치한 벙커에서 마린 몇을 대동한 고급 장교가 나와 밀러를 맞아 주었다. 기름진
얼굴에 배가 나올만큼 나온 중령 이었다. 좀 전의 전투에 혼이 난 듯 얼굴 빛이 완전
똥색이었다.
"여! 이거 밀러 아닌가? 이 곳엔 왠 일이야?"
반가움을 표시하는 중령에 비해 밀러의 대답은 별로 우호적이진 않았다.
"대대장 부대에 라이언이란 일병이 있어 데리러 왔소."
"라이언? 음... 잘 모르겠는데... 부관! 찾아 봐."
얍삽하게 생긴 소위가 급히 중형 텔콤을 꺼내더니 라이언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금새
결과가 나왔다.
"대대장님. 라이언 일병은 지금 프로토스 2 공략 부대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코사크 상사가 소위의 말을 가로챘다.
"그건 우리도 알고 왔습니다. 지금 어디쯤 있는건지 그걸 몰라서 그러는거지요."
"2차 공략 부대는 잘 아다시피 소식이 끊겨서 우리도 위치 파악이 안됩니다. 어쩜
다 전사했을지도 모르죠. 워낙 무리한 작전을 하달받았는지라 병력 손실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대대장이 거들먹거리는 투로 말을 이었다.
"후방 것들은 도대체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 모르나 봐. 지금도 봐. 내가
기를 쓰고 레이쓰 지원을 요청 안했으면 여긴 그냥 초토화 되었을 걸. 음... 그나
저나 자네에게 도움이 못돼서 미안하구만. 아무래도 직접 찾아 봐야 할거야."
제니 중사가 영혜에게 속삭였다.
"한심해서... 원... 내가 전투 진형은 잘 모르지만 기본 벙커 넷에, 공성 전차
10여대가 수비하면 질럿따위는 대대 단위로 와도 못 뚫는 것은 알아요. 요는 기지
건설을 엉망으로 해 놓았다는 건데... 하여간 저 대대장 완전히 무능의 극치를
달리고 있어요. 거기다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영혜도 수긍이 갔다. 이 전진 베이스의 기지 형태는 군사 교본에서 보아 온 방어용
모범 베이스 건설과는 너무 차이가 났다. 기본적으로 벙커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완전
노출 되어 있어 공격을 받으면 쉽게 무너지도록 자리 잡고 있었다. 설마 베이스를
공격받겠냐고 안일하게 기지를 꾸려 놓은 것에 틀림이 없었다. 밀러의 대원들은 모두
같은 생각인 듯 대대장의 말을 들으며 혀를 찼다.
"하여간 대대장은 벙커나 씨즈는 깨져도 서플라이는 무사히 보호했으니 보급품은
확실히 지켰구료. 그나마 다행인 것 같소. 우리 대원 하나가 부상이고, 보급품을
보충해야 겠으니 협조를 부탁합니다. 특히 이번 작전엔 광학조명탄(Optic Flare)이
필요한테 여기서 보급 받을 수 있겠소? 저그 3 콜로니 전방에 설치한 4차 디포우에
준비는 해 놓았다고 하지만 여기 상태를 보니 거기도 무사하리란 보장이 없을 것
같구료."
"옵틱플레어... 옵틱플레어... 아하! 그거. 시제품 몇 개 가져 왔지. 아다시피
우린 메딕이 전부 전방 조이기 병력으로 같이 가는 바람에 그거 쓸 장교가 없어
고대로 다 있을거야. 뭐 그정도야 얼마든지 보충해 줄 수 있어."
밀러의 말에 가시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대대장은 여전히 거들먹거리며 제 딴에는
넉넉하게 보이는 미소까지 띄우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기지의 입구에서 다시
콩 볶는 듯한 가우스 소총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놀라서 그
쪽을 보는데 역시 전투 능력의 차이가 현저하게 드러난 것이 밀러의 대원은 벌써
산개하며 은폐와 동시에 사격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부상에서 겨우 회복되어 몸을
가누기 힘든 이스마엘조차 밀러의 뒤에 바싹 붙으며 프라즈마 화염 방사기의 안전
핀을 풀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게 뭔 소리야?"
당황한 대대장은 부관을 돌아보고 부관은 부관대로 헤메고 있는데, 입구에서 벌어진
소란은 금새 기지 안 쪽으로 밀려 들어 왔다. 푸른 색의 질럿 군대가 다시 습격을
해 온 것이다. 레이쓰가 거의 삼분의 이 가량을 섬멸하고 쫓아 냈지만 다시 모여
재 정비 한 뒤 한꺼번에 밀고 들어 온 질럿은 전의 공격에서 벙커나 씨즈의 저항을
다 없애 버렸기 때문에 수월하게 입구를 재 돌파 할 수 있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
라도 반드시 이 기지를 점령하겠다는 프로토스 쪽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이봐! 부관...... 레이쓰를..... 레이쓰 원조를 요청 해!"
대대장이 악을 썼다. 그러나 부관도 당황한지라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는 사이 질럿은
산발적인 마린의 저항을 무시하고 기지 한 가운데로 밀려 들어 왔다.
"대대장. 잠시 지휘권을 내게 주시오."
밀러는 대대장의 대답도 듣지 않고 예의 그 우렁찬 소리로 고함쳤다.
"나 밀러다! 지금부터 내가 지휘한다. 전 마린은 후퇴! 진을 짠 내 부대의 뒤로
정비하여 화망을 똑같이 구성한다. 빨리 뛰엇!"
그 시끄러운 속에서도 밀러의 워낙 큰 목소리는 제대로 전달 되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응사하던 마린은 밀러의 명에 따라 일제히 도망쳐 이미 반원형으로 진을 짠 밀러
부대의 뒤로 각각 뭉치더니 일제히 달려드는 질럿 떼에 집중 사격을 시작했다. 마린
하나 하나의 가우스 소총 파괴력은 약하지만 일단 수십명이 뭉쳐 한 점으로 집중하여
사격을 하니 그 화망에 걸리는 질럿들은 순식간에 실드를 날리고 연기로 사라졌다.
개중 외곽으로 치고 드는 질럿이 마린을 공격했으나 그들의 플라즈마 검은 두 번을
휘두를 틈이 없었다. 부상 당한 마린조차 비로서 할 일을 만난 제니와 실비아, 영혜의
치료(Healing)에 전투력을 쉽게 회복하여 전투의 양상은 금새 유리해졌다.
처음 이 기지를 습격했을 때의 대군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병력으로는 기지를 점령할
순 없었다. 질럿은 결국 많은 희생을 내고 가우스 소총의 사정거리 밖으로 물러 나
서로 팽팽히 대치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지 안 쪽에서 방어를
하는 통에 질럿이 뭉쳐 있는 가까운 곳에 아군의 팩토리가 있었던 것이다. 질럿 중
몇 명이 팩토리로 달려 들더니 플라즈마 검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이 전진 베이스는
팩토리를 설치하기 위한 기지였다. 팩토리의 외벽이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마린들은
조금씩 질럿을 밀어 붙일 뿐 대책이 없었다. 밀러의 표정이 변했다. 팩토리의 중요성
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밀러였다.
"이런 쓰팔! 벌쳐(Vulture)! 벌쳐는 없어? 이럴 때 뛰쳐 나가야 할 거 아냐!"
밀러가 대대장에게 악을 썼다. 대대장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고 부관에게 지시했다.
위잉....... 요란한 이온 추진기의 엔진 소리가 기지 안 쪽에서 들리며 세대의 벌쳐가
뛰쳐 나갔다. 엄청난 속력으로 달려나간 벌쳐는 팩토리를 부수고 있는 질럿들에게
총류탄을 쏘기 시작했다. 연사 속도는 느리지만 파괴력은 대단한 총류탄이 터지자
질럿 중 몇이 충격으로 쓰러졌다. 그리곤 간신히 비틀거리며 일어 섯다. 전투력의
상당량을 잃은 듯 했다. 벌쳐가 다시 두번째 총류탄을 쏠 때 주변의 질럿이 우 덤벼
들었다. 한대는 총류탄을 쏜 뒤 얼른 뒤로 튀었으나 두 대는 머뭇거리다 질럿에게
둘러 쌓이더니 그냥 순식간에 터져 버렸다. 그 꼴을 보고 대대장과 밀러의 안색이
동시에 벌겋게 달아 올랐다. 밀러가 대대장을 쳐다 보았다. 분노로 인해 머리칼이
곤두서고 있었다.
"쓰팔! 이 개새끼야! 벌쳐 콘트롤을 어떻게 가르쳐 놓은거야?"
계급이고 뭐고 없이 밀러의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도망쳐 나온 한 대의 벌쳐를
향해 밀러가 이리 오라고 고함을 쳤다.
그 때,
부관이 들고 있는 텔컴에서 또 다른 욕설이 들려 왔다.
"이 쉬팔! 아까부터 불러도 아무도 대답이 없어! 뭐하는 거야? 완전히 똥싸고
질러 앉았구만. 내가 내려 갈게!"
전투의 와중이라 알 수 없었는데 어느 틈에 기지 위에는 드롭십(Dropship)이 한 대
떠 있었다. 그 드롭십이 하강을 시작하더니 지상 20 미터쯤 내려 왔을 때 아랫 문이
열리며 벌쳐 한대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려왔다. 땅에 충돌하기 전에 이온 추진 엔진에
불이 들어 오더니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땅을 박차고 나간 주황 색의 벌쳐에는 검은
가죽 잠바에 선글라스를 쓴 턱수염이 지저분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새로 도착한
벌쳐는 쏜살같이 팩토리로 달리더니 질럿에게 총류탄을 갈겼다. 질럿 몇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며 벌쳐에게 달려 들었다. 그 질럿 사이를 절묘한 운전으로 누비며 빠져
돌아 나간 벌쳐는 질럿이 돌아서는 사이로 총류탄을 갈겼다. 다시 쓰러지는 질럿,
일부의 질럿이 팩토리에 붙어 부수려하나 벌쳐는 귀신같은 운전으로 그들 앞을 스치고
돌며 또 총류탄을 갈겼다.
"저런 콘트롤 하는 놈은 내가 딱 하나 알구 있지."
밀러가 중얼거렸다. 그의 앞에 도망쳐 나온 벌쳐가 서자 밀러는 사정없이 조종사를
끌어내리고 대신 올라탔다. 그리고 팩토리 앞에 뭉친 질럿 떼를 향해 돌진을 했다.
벌쳐 두 대가 종횡무진으로 질럿 떼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둘의 콘트롤은 그야말로
막상막하, 서로 손이 딱딱 맞아 들어 갔다. 하나가 후퇴하면 다른 하나가 앞서 나가며
총류탄을 쏘고, 그 쪽으로 질럿이 몰리면 순식간에 뒤로 돌며 치고, 벌쳐 조종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서로 경쟁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반 중대는 될 것 같았던
질럿이 누적된 총류탄의 타격으로 하나, 둘 씩 사라지고, 더불어 뒤 쪽에서 조여오는
마린의 총격에 죽어나가서 결국 질럿의 2 차 습격은 완전 무위로 돌아 가고 말았다.
단 한 명의 질럿도 살아서 기지를 빠져 나가지 못했다.
벌쳐 조종술이 어찌나 황홀한 예술이었는지 싸우는 마린들도 넋을 잃고 볼 정도였다.
신중한 코사크 상사조차 감탄하고 있었다.
"대장이 벌쳐 콘트롤 하는 걸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전에 딱 한 번 보고 어찌나
환상적 이었던지 내 평생 밀러 부대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 할 정도였어.
그나저나 대장과 저렇게 쌍벽으로 벌쳐를 조종할 정도의 사나이라면 누군지 말
할 필요도 없겠구만."
"누구에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실비아가 고개를 모로 꼬면서 질문했다. 그 대답은 제니가 했다.
"공화국의 영웅 '짐 레이너', 지금은 어느 부대에도 소속이 안 된 프리이지만
밀러 대위와는 사관학교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였지. 오늘 우린 정말 대단한 전쟁
예술을 본거야."
마린들이 가우스 소총을 하늘로 조준하고 마구 쏴대며 환호하는 앞으로 두 대의
벌쳐가 나란히 섯다. 그리고 비슷하게 생긴 두 남자가 각각의 벌쳐에서 내렸다. 짐
레이너와 밀러 대위는 지저분한 수염이 온 얼굴을 덮었다는 점에서 아주 비슷하게
보였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밀러는 눈이 뱁새처럼 작았고, 짐 레이너는 왕방울처럼
퉁퉁거리는 눈 이었다는 점이다.
"자네 녹슬진 않았구만. 여전해."
짐 레이너가 웃으면서 밀러에게 악수를 했다.
"자네 또한 그래. 근데 여긴 왠 일인가?"
실눈을 더 가늘게 뜨며 밀러가 답했다.
"아다시피 내가 좀 그런 친구가 있지 않은가? 페닉스(Phenix)라고... 전쟁을 좀
끝내 볼라고 애 쓰는데 영 말들을 들어 먹어야지. 프로토스 어둠의 기사단과
선을 이어 주겠다고 해서 가는 길인데 이 눔들이 원래 안 보이는 놈들이니
찾을 길이 있나. 이리 저리 헤메다보니 드롭 십의 연료가 거의 바닥이 나서
보충하려고 찾아 왔는데 위에서 보니 영 똥을 싸서 뭉개고 있는 꼴이 답답해서.
일단 설치긴 했는데... 근데 저 위에 페닉스가 있어. 걔가 영 맘이 불편할거야.
어쨌건 프로토스 족 이니까....."
밀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호하는 마린의 가운데로 둘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 갔다.
"어서 오게. 레이너, 밀러 수고 많았어. 역시 자네들은 대단한 실력이야.
사관학교 수석을 누가 하느냐가 우리 동기들의 최대 관심사였지."
"뭐 그래도 나야 일찌감치 프리로 돌았고, 밀러는 아직도 대윈데 자넨 벌써
중령으로 대대장 아닌가? 역시 자네가 우수한거지."
짐 레이너가 예의삼아 대대장에게 답했다. 그 말이 맘에 들은 듯 대대장은 연신 싱글
거렸다. 밀러는 일단 이스마엘을 야전 병원으로 보내 정밀 검사를 받게 하고, 부대원
들에게 장비 점검과 보급품 수령을 지시하고 5시간 후 집결을 명령하고 짐 레이너와
함께 대대장의 뒤를 따라 벙커로 들어 갔다. 실비아는 이스마엘을 쫓아 야전 병원으로
갔고, 눈웃음을 요염하게 흘기던 제니는 오하라에게 눈을 찡긋하고는 전방의 반 쯤
무너진 막사로 앞서 갔다. 오하라 역시 실실거리며 쫓아가는데 제레미가 투덜거렸다.
"이 씨~ 분대장만 독차지 할거요?"
오하라가 겸연쩍은 듯 더듬거렸다.
"야! 한번만 봐주라. 요번까지만이다. 아마 담부터는 제니 중사가 직접 니들 찾을
거야. 저 여자가 원래 그래. 워낙 이게 세거든....."
오하라는 손가락으로 묘한 사인을 하면서 제니가 사라진 막사로 들어 갔다. 대원들은
휘파람을 한 번 불어서 운 좋은 오하라를 격려해 주었다. 메딕 중 혼자 남은 영혜는
지금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샤워장이 있기야
있겠지만 이 폐허의 와중에 그것을 물어 볼 용기가 없었다. 어쨌건 지금 팬티를 갈아
입어야 했다. 저글링과의 전투에서 놀라 오줌을 쌌기 때문에 강화복 안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영혜는 두리번거리며 몸을 가릴 곳을 찾았다. 무너진 벙커 중 한 개가
그래도 형체가 조금은 남아 있었다. 그곳을 향해 갔다.
메딕 강화복은 무겁진 않았지만 부피가 상당히 커서 움직임에 적잖은 지장이 있었다.
그것을 벗어 던지니 살 것 같았다. 강화복에서 브래지어와 팬티만의 상태로 빠져나온
영혜는 순간 서늘한 바람이 몸에 느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밀폐된 옷이라
답답하게 갇혀있던 육체가 밖으로 나오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시원함을 느꼈던 것이다.
벗은 강화복에서 야릇한 냄새가 스며 나왔다. 보는 사람이 없건만 영혜는 얼굴이 빨개
졌다. 이 강화복을 다시 입기는 꺼림칙했다. 어차피 여기서 새로 보급을 받을 예정
이므로 강화복도 한 벌 요청해야겠다고 생각 했다. 이 강화복은 소각을 해서 절대로
남이 못 보게 해야 할 것이다. 문득 하체를 내려보니 팬티에 얼룩이 배어 있었다.
다시 부끄러워진 영혜는 악몽을 떨치듯 부르르 몸을 한번 떨더니 얼른 팬티를 벗어
내렸다. 찝찝한 이 기분을 없애려면 샤워를 하면 좋으련만......
강화복의 보조 주머니에서 새 팬티를 꺼내 막 입으려는 순간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영혜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헤이 소대장 언니. 죽이는 몸매구만. 끝내 줘! 엉덩이가 삼삼한데..."
'콜린 주니어'였다. 영혜가 허물어진 벙커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어느 틈엔가
뒤 쫓아 온 것이다. 얼굴의 흉터가 그의 음흉한 웃음에 따라 실룩거려 소름 끼쳤다.
"너! 뭐하는 짓이야. 빨리 못 나가?"
급한대로 새 팬티로 아래를 가리고 영혜는 호통 쳤다. 그러나 콜린은 느물느물한
웃음을 지으며 오히려 영혜에게로 접근해 왔다.
"킬킬... 인형 같은 년은 막내랑 같이 있어 형된 입장에 먹기가 좀 그렇구,
걸레는 내 차례 기다릴라니 한 참 있어야 할 것 같구, 좆은 꼴리는데 견딜
수 있나? 소대장 언니한테 기대봐야지. 킬킬.. 킬킬.."
걸어오면서 콜린은 바지의 앞 섬을 천천히 풀고 있었다. 열린 틈으로 흉측한 그의
물건이 삐져 나왔다. 파랗게 질린 영혜는 주춤 주춤 뒤로 물러섰다. 콜린은 축
늘어진 물건을 주물러 그 크기를 키우며 연신 소름끼치게 킬킬거렸다.
"너! 이 자식! 안 나가면..... 소리 칠거야!"
구석까지 밀려난 영혜는 몸을 웅크리며 이를 악물었다.
"킬킬킬..... 소리 질러! 괜찮아 크게 질러 봐. 여기 주변엔 마린 밖에 없어.
들어 오면 같이 하는 거지. 언니 사실은 여럿 불러다 떼로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킬킬킬..... 그것도 좋겠다. 불쌍한 놈들 전방에 나와서 어디 여자
구경 해 봤겠어? 킬킬... 킬킬..."
콜린의 성기가 꿈틀거리며 빳빳이 일어 서는 것이 눈에 보였다. 영혜는 이 위기를
어떻게 탈출해야 좋을지 전혀 대책이 안섰다. 일미터 앞까지 다가 온 콜린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팬티를 보고 멈추더니 그것을 주워 들었다. 좀 전에 벗은 팬티였다.
그는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팬티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는 것 이었다. 영혜는
순간 분노에 부끄러움까지 겹쳐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흐으으으..... 죽이는 냄새다. 근데 언니. 많이 찌렷나 보네? 색깔이 아주 보기
좋아... 흐흐흐..."
콜린이 영혜의 팬티에 취해 있는 지금이 기회다 싶어 그녀는 콜린의 사타구니를 발로
힘껏 걷어찻다. 놀란 콜린이 몸을 움츠리며 겨우 피하는 사이에 입구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콜린은 잽싸게 그녀의 앞을 막아섯다. 영혜는 손과 발을 마구 휘두르며 콜린을
때렸으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킬킬거리며 콜린은 그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야아! 언니 독한데. 그렇게 팔닥거리니 정말 더 쏠린다. 맘에 쏙 들어!"
넘어진 영혜의 몸 위로 콜린이 올라타더니 양 무릎으로 그녀의 어깨를 내리 눌러 꼼짝
못하게 구속했다. 자연히 콜린의 거대한 성기가 그녀의 턱 아래에 자리 잡고 걸떡 거
리기 시작했다. 묘한 냄새가 성기에서 폴폴 풍겨 올랐다. 영혜는 바둥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콜린의 몸은 철석같이 그녀를 누르고 있었다. 손으로 성기를 움켜 쥔
콜린은 그것을 영혜의 볼에 마구 비벼댔다. 볼에 닿는 남자의 뭉클거리는 살 감촉이
너무 진절머리나서 영혜는 고개를 마구 도리질 쳤다. 콜린의 기분나쁜 웃음이 계속 벙
커에 울려 아프게 귀속으로 파고 들었다.
마구 영혜의 얼굴에 성기를 마찰시키던 콜린은 영혜의 입 속에 그것을 넣으려는 듯,
그녀의 입술에 가져갔다. 진한 남자의 냄새가 코 끝을 찌르며 입술에 닿는 이물질의
감촉에 영혜는 질색을 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쓰발 좋으면서 뭘 그래. 한번 대차게 빨아 줘. 언니"
콜린은 비양거리면서 영혜의 턱을 잡더니 손가락으로 입 술 아래를 꾹 눌렀다. 영혜의
입이 조금 열리자 콜린은 얼른 성기를 가져댔다. 영혜는 더듬거리며 간신히 소리쳤다.
"개 자식!..... 대가리 짤라져서..... 평생 불구로..... 살고 ..... 싶으면.....
니..... 맘대로..... 해 봐!"
워낙 서슬이 시퍼런 말인지라 콜린은 순간 동작을 멈추었다. 영혜의 눈을 보니 정말
입에 성기를 물렸다가는 잘릴 것 같았다. 그녀의 눈에는 핏 빛의 살기가 번뜩이고 있
었다. 콜린은 영혜의 입 공략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헤이. 언니. 진짜 독하다. 뭐 할 수 없지. 언니 입은 아래에도 하나 있잖아? 고긴
이빨이 없으니 내 거 자를 수야 없겠지. 음... 좋구만. 내 좆을 아랫 입에 물려
줄게 한 번 힘껏 잘라 봐."
콜린은 자세를 바꾸어 영혜의 몸 위에 엎드렸다. 브래지어를 한 순간에 잡아 뜯더니
탄력있는 유방을 두 손으로 거머쥐며 얼굴을 묻어 버리는 것 이었다.
"헉!"
유방을 먹어 치우는 콜린의 입을 느끼고 영혜는 비명을 질렀다. 손과 발을 버둥거리며
콜린을 떼어내려 애썼다. 콜린은 그녀의 저항은 무시하고 거칠게 유방을 주물렀다. 발
버둥치는 두 다리가 헛되게 허공을 찻다. 아무리 뒷통수를 두들겨도 유방을 빠는 그의
입을 떼어낼 수 없었다. 힘의 강약이 완연한지라 꼭 오무리고 있던 두 다리 사이로
점차 콜린의 하체가 밀려 들기 시작했다. 단단하게 일어선 남자의 성기가 아랫배를
거칠게 찔렀다. 애무고 뭐고 없는 난폭한 강간 이었다.
"너!.... 너!..... 죽어! 이 새끼야!..... 비켜!....."
울음마저 섞인 영혜의 비명이 연신 터지건만 그것마저 즐거운 듯 콜린은 실실거리며
엉덩이를 쿡쿡 내리 꽂았다. 그 때마다 영혜는 하체를 이리 저리 틀며 간신히 피해
가곤 있었지만 곧 허물어 질 것은 너무도 뻔했다.
거칠게 찍어 누르는 콜린과의 사투는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영혜는 버티지 못하게 되었다. 전혀 느낌은 없었지만 연신 주무르며 빠는
콜린의 거친 애무에 그의 입 속에 담긴 젖꼭지가 팽팽하게 일어 섯고, 계속되는
성기의 마찰에 의해 음부에서도 어느 정도 미끈거리는 애액이 스며 나왔다.
"헤이. 언니. 역시 언니도 좋아하는구만. 이봐! 결국은 젖었잖아."
승리의 표정을 짓는 콜린의 손가락에 영혜의 음부에서 배어나온 애액이 번들거렸다.
영혜의 눈 앞에 손가락을 흔들며 예의 그 소름끼치는 웃음을 잔인하게 흘렸다. 손가락
에 투명하게 흐르는 자신의 분비물을 보며 영혜는 힘이 탁 풀리며 눈이 감겨졌다.
그리고 저항이 멈추어졌다. 힘이 다 한지라 어쩔 수 없었다. 가쁜 숨 때문에 유방의
흔들림이 매우 빨랐다. 콜린은 축 늘어진 영혜의 모습을 의기양양하게 바라 보았다.
이젠 다 된 밥인지라 그는 서둘지 않았다.
"언니야. 너무 서글퍼 하지마. 내 좆 맛을 보면 언니도 너무 좋아서 뿅갈거야.
내 힘껏 박아 줄게 기대 해 봐."
수치스런 말을 계속 듣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사단 정보처 유 재인의 얼굴이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의 말을 듣는 것 이었는데, 이런 거지 같은 일에 쫓아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가슴이 아파왔다.
"허억!"
다리 사이의 가장 연한 살에 뜨거운 감촉이 느껴졌다. 어느틈에 영혜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은 콜린이 혀로 그녀의 민감한 부분을 핥기 시작한 것 이었다.
"으와! 이 냄새! 맛! 죽인다. 죽여!"
단 한마디의 말도 여자의 수치를 자극하지 않는 말이 없었다. 콜린은 입을 바싹
영혜의 음부에 붙이고 그녀를 확실하게 먹어 갔다.
열기가 조금씩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이었다. 저항을 포기
한 순간부터 예정된 수순이라 조금씩 영혜의 몸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콜린은
능숙하게 그 불길을 지펴 나갔다. 그의 혀가 움직이는 부분마다 일어서는 영혜의
속 살들이 애액을 분비하며 촉촉해졌다. 간질거리는 짜릿한 자극이 하체에서 조금씩
일어나는지라 영혜는 이래선 안된다 생각하면서도 몸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윽고 콜린은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 순간이 된 것이다. 영혜도 그 순간이 된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머리 속에 맴돌던 재인의 얼굴이 허물어지며 사라졌다. 콜린의
손이 그녀의 두 다리를 잡더니 양 쪽으로 활짝 열었다. 이슬이 맺혀 있는 그녀의 작은
꽃 잎이 살짝 열리며 안 쪽의 연한 살을 드러냈다. 손가락으로 조금 더 입구를 벌린
뒤 콜린의 성기가 힘찬 돌기를 파 묻기 위해 접근했다. 뜨거운 남성이 은밀한 곳에
닿자 영혜는 저도 모르게 몸을 퍼득거렸다.
"이제 그만 하쇼! 고기까지만!"
영혜도 콜린도 깜짝 놀라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벙커 입구의 무너진 벽 사이로
새미 존슨과 퐁 수린이 서 있었다. 그 소리는 퐁 수린이 낸 것 이었다. 콜린은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그들을 쳐다 보았다. 영혜는 이런 모습을 남에게 보인 것이 또 챙피해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니들... 왔냐? 다 보고 있었어?"
새미 존슨이 픽 웃었다.
"하도 신나는 구경인지라 넋을 잃고 봤지. 헐헐헐....."
"마! 그럼 좀 기다려. 내 빨리 한 탕 뛰고 넘겨 줄게. 차슥들. 형님이 아무렴
니들을 버려 두겄냐?"
먹통처럼 검은 얼굴에 하얀 이만 드러낸 새미 존슨은 콜린의 말을 듣고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벌써 영혜의 알몸을 탐욕스럽게 훑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 명의 상병인 퐁수린은 전혀 웃는 기색이 없었다. 여전히 어두운 낯 빛의 그가
또박또박 끊어지는 말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난 그러고 싶은 생각 없어. 콜린 상병. 거기서 그만두라는 것이 내 생각
이야."
순간 콜린의 얼굴 빛이 확 변했다. 새미 존슨이 난처하다는 듯 퐁수린을 쳐다 보며
설득하려 하였다.
"헤이 퐁수린. 뭐 그냥 좋고 좋은게 역시 좋은거야.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우리도 한번 즐기면 되는 거 아닌가? 저 여자도 이미 갈만큼 갔는데 뭘 그래.
봐 지가 다리 쫙 벌리고 가만히 있잖아?"
그 말을 듣고 영혜는 죽고 싶을 정도의 모멸감을 느꼈다.
"난 그렇게 생각 안한다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만 두라는 게 내 생각이야.
계속 이러면 대장에게 보고 할거야."
"이 씨발 놈. 같은 동양계라 끌린다 이거지? 너 죽을래!"
콜린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바지 주머니에서 짧은 칼을 꺼내어 퐁수린에게 겨누었다.
퐁수린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천천히 가우스 소총을 끌어 올리며 콜린에게 조준했다.
나직한 그의 목소리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니들 나 잘 모르냐? 아무 생각없이 난 이 총 방아쇠 당길 수 있어. 잘 알텐데."
말을 끝내자마자 퐁수린은 콜린의 발 아래로 사격을 했다. 요란한 총성이 벙커 안에
울리며 화들짝 놀란 콜린이 춤을 췄다. 새미 존슨이 얼른 퐁수린을 막아서며 당황한
말투로 말렸다.
"우이~ 씨. 진짜로 쏘냐. 야 콜린. 곤도라. 이 새끼 한번 한다면 하는 또라인 거
잘 알잖아? 우와 일 나겠다 일 나겠어."
일은 딴 곳에서 터졌다. 콜린이 갑자기 죽는 소리를 지르며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몸의 자유를 찾은 영혜가 제대로 콜린을 걷어 찬 것이다.
"우아악! 아구! 좆 같애. 이런 개 같은 일이!!!!"
"어서 나가는 게 좋을 거야. 총소리가 났으니 다들 올텐데....."
여전히 변화가 없는 퐁수린의 음성 이었다. 이젠 어쩔 수 없게 된 콜린은 이를 바득
갈았다.
"너 이시끼 오늘 빚은 내 꼭 갚아 주마. 각오 단단히 해."
"언제라도 자신 있으면 덤벼. 사양 안하니까."
퐁수린은 콜린의 협박 자체를 비웃고 있었다. 새미 존슨의 부축을 받고 엉거주춤하게
벙커를 나가던 콜린이 입구에서 갑자기 영혜를 돌아 보았다. 사타구니가 아직 아픈지
그의 손은 다리 사이를 계속 문지르고 있었다. 아픔을 참고 씨익 웃는 모습이 여전히
징그러웠다.
"소대장 언니. 오늘은 그냥 끝났지만 우리 작전 끝나기 전에 꼭 한번 잘 해 보자구.
훼방꾼 없는 곳에서 말야. 어쨌건 언니 오늘은 끝내 줬어. 킬킬킬......"
둘이 나가자 퐁수린도 몸을 돌려 나갔다. 팬티를 입어 부끄러운 곳을 가린 영혜가
급히 말했다.
"저... 잠깐!"
입구에서 잠깐 멈춘 퐁수린은 여전히 변화가 없는 어조로 말했다.
"아무 말 안하셔도 됩니다. 우리가 죄송하지요. 콜린이 행동은 좀 그랬지만 아주
나쁜 놈은 아닙니다. 눈이 뒤집힌 거지요. 소대장님이 워낙 미모라서....."
"아무튼 고마워요. 절 구해주셔서....."
퐁수린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살짝 내비쳤다. 그는 고개를 한번 끄덕여
인사하더니 바로 벙커를 나갔다. 벙커 밖에서 이게 왠 총소리냐고 수런거리는 소리가
났다.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며 가까워 지는지라 영혜는 놀라서 얼른 강화복을
주워 입었다.
따로 갈 곳을 못 찾은 영혜는 야전 병원으로 갔다. 마린들이 영혜를 보며 수근댔지만
영혜는 애써 무시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야전 병원도 한 귀퉁이가 무너져 있었다. 많은 마린들이 신음을 내지르고 있는데
그들을 치료해 줄 군의관이 택없이 부족했다. 메딕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되련만 이
부대의 메딕은 전부 작전지역에 나가 있는지라 군의관 몇이서 땀 뻘뻘 흘리며 급히
뛰고 있었다.
이스마엘이 쉬고 있는 방을 겨우 알아 내었다. 야전 병원 지하의 모퉁이를 돌아 두
번째 방 이었다. 이미 죽을 마린들은 다 죽은지라 소란 떨 이유가 없었다.
문을 열려하는데 깔깔거리는 실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조금 열었던지라 방안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실비아는 이스마엘의 침상에 같이 누워서 깔깔거리며
재잘대고 있었다.
"요거 무지 귀엽다. 킥킥"
하얀 모포 안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위치는 이스마엘의 다리 어림이었다.
이스마엘은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더듬고 있었다.
"저..... 하사님!"
"그냥 실비아라고 불러. 실비아 누나. 너 열 여덟이라며? 난 스물이야."
이스마엘을 바라보는 실비아의 눈 빛이 무척 따스했다. 서로 목숨을 구해 준 사이라
정이 듬뿍 든 그런 눈 이었다. 이스마엘도 귀여운 모습의 실비아가 적극적으로 몸에
감겨오자 어쩔줄 몰라하며 얼굴이 발개져서 그 답지 않게 자꾸 몸을 사렸다. 귀엽게
노는 그 모습을 보는 영혜의 입가에도 미소가 흘렀다. 방금 전의 그 끔찍했던 사건이
머리 속에서 사라져 갔다.
"너가 아무 이상 없다니 너무 기뻐. 만약 잘못 되기라도 했으면 무척 슬펏을거야.
근데 죽어가면서 갑자기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어?"
실비아가 제법 노련한 척하며 이스마엘의 얼굴을 쓸어 주었다. 이스마엘이 부끄러워
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머.... 먼저 실비아가 자기 죽을 것도 모르고 날 구해 주었잖아? 그래서 내가
죽더라도 실비아를 살리고 싶었지."
"호호호. 너 그제 첨 만났을 때는 꽤나 표독하더니 이제 보니 아주 순진한 애네.
꼭 내 막내 동생 같아."
"그런 말을.... 난 실비아 하사를 누나로 생각치 않아."
실비아가 빤히 이스마엘을 쳐다 보았다.
"오호라! 그럼 뭐로 생각하는데....?"
이스마엘은 대답도 못하고 실비아의 눈길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고개를 돌렸다. 모포
속에서 꿈틀거리던 실비아의 손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이스마엘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몸을 틀었다. 그 유치한 장난을 지켜보는 영혜는 웃음이 나왔다.
"악! 그렇게 꽉 쥐면...."
이스마엘이 벌개진 얼굴로 실비아를 쳐다보더니 확 끌어 안았다. 실비아는 가볍게
이스마엘의 손을 뿌리치더니 모포를 확 들쳤다. 순간 드러나는 모포 안의 모습은....
둘 다 하반신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알 몸 이었다. 조것들 봐라. 영혜는 조금
놀랐다. 실비아는 그녀와 동갑이지만 하는 행동은 항상 어려 보였다. 그런데 지금
보는 모습은 그녀에 대한 그런 인식을 완전히 바꿀 정도로 다른 양상이었다. 근육질의
이스마엘의 다리 사이에 힘차게 솟아 오른 성기를 실비아의 손이 움켜 쥐고 있었다.
이스마엘은 그냥 실비아의 가는 허리를 둘러 않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녀의 손은 연신
위 아래로 움직이며 그의 성기를 한층 더 힘차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실비아의 몸은 영혜가 상상한 이상 이었다. 유럽 계통이니 영혜보다야 그 굴곡이
현란 할 것으로 예측이야 하였지만 저렇게 세세하면서 풍요로울 줄은 몰랐다. 머리
색과 똑 같은 금빛의 방초가 너무도 귀엽게 자리 잡은 아래에는 나이보다 훨씬
성숙한 여자가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말없이 서로를 빤히 쳐다 보고만 있어 숨어 보는 영혜를 감질나게 하더니 마침내
실비아가 몸을 일으켜 이스마엘의 다리 사이로 고개를 묻었다. 작은 입술이 활짝
열리며 이스마엘의 성기를 덥석 물어 버렸다. 노련한 여자처럼 입을 움직여 성기를
애무하지만 이스마엘은 가끔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 소리를 냈다. 영혜도 경험이
없는지라 이스마엘이 아파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노련한 제니라면 결코 이빨로
남자의 가장 민감한 부위를 건드리지 않을텐데 실비아는 결코 제니가 아니어서
가끔씩 이스마엘을 고통스럽게 했다. 기특하게도 이스마엘은 몸을 찔끔거리면서도
잘 참아냈다.
어쨌건 서로를 생각하는 행위에는 사랑이 깃들게 마련이었다. 이스마엘의 한 손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실비아의 금발을 부드럽게 쓸고 다른 한 손은 풍요롭게 발육한
유방을 어루 만졌다. 이스마엘의 성기를 입에 가득 물고 실비아는 스스로 웃 옷을
벗었다. 브래지어는 이스마엘이 풀었다. 그야말로 하얀 백인인 그녀가 알몸이 되자
방안이 환해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스마엘에게서 고개를 치켜드는 실비아의 입가로 연한 물기가 흘렀다. 실비아는
이스마엘의 고개를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 당겼다. 이젠 이스마엘의 차례였다. 힘껏
실비아를 끌어 안은 이스마엘은 곧바로 그녀의 탐스런 유방에 깊이 고개를 파 묻고
빨아 들였다.
"하아...."
숨찬 실비아의 신음이 방에 울렸다. 영혜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만
보는게 나을 것 같은데 왠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실비아...."
이스마엘이 중얼거렸다. 그답지 않게 상당히 부드러운 동작으로 실비아의 유방을
애무했다. 실비아는 금새 달아오르는 타입인 듯 이스마엘의 혀가 도드라진 유실을
핥을 때부터 벌써 콧소리 섞인 신음을 내고 있었다.
실비아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이스마엘의 입에서 가슴을 빼내더니 거꾸로 그의
몸에 올라타고 다시 꼿꼿이 부푼 성기를 한껏 물었다. 자연히 실비아의 아랫배를
얼굴에 댄 이스마엘도 거리낌없이 혀를 내밀어 실비아의 다리 사이를 공략했다.
가끔씩 실비아는 애무를 멈추고 고개를 치켜든 자세로 눈을 지긋이 감고 자신의
음부를 자극하는 이스마엘의 애무를 황홀한 표정으로 느끼곤 하였다. 지켜보는
영혜가 다 부끄러워질 정도로 둘이 나누는 사랑의 행위는 적나라하였다. 영혜는
자신의 두 다리 사이로 무엇인가 흐르는 것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 손을 강화복
안으로 넣어보니 어느틈엔가 다리 사이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씁쓸한 미소가
영혜의 입가에 감 돌았다. 자신의 손이 새로 갈아입은 팬티위에 닿자 짜릿한
감촉이 하반신에서 울려 퍼졌다. 이렇게 자위를 배우는구나. 영혜는 새로운 것을
하나 깨달았다. 그리 부끄럽다 생각 안했기 때문에 방안의 열기를 지켜보며 그녀는
천천히 손가락으로 다리 사이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서로의 음부를 자극하는 둘은 이젠 완전히 걸신들린 것처럼 요란한 소리마저 내며
핥고 빨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윽고 때가 무르 익은 듯 몸을 벌떡 일으킨 이스마엘이
실비아를 아래에 눕히고 그녀의 몸에 올라탔다. 실비아는 긴 다리를 뻗어 이스마엘의
허리에 감았다. 그의 굳센 성기가 거침없이 실비아의 꽃 잎을 벌리더니 파고 들었다.
"하악! 좋아!"
실비아의 교성이 터져 나왔다. 이스마엘은 힘차게 하체를 내리 찍었다. 실비아도 뒤질
새라 이스마엘을 끌어 안고 박자를 맞추어 엉덩이를 흔들었다. 서툴어 가끔씩 방향을
놓치고 빠져 나오는 이스마엘의 성기 때문에 지켜보는 영혜는 웃을 뻔 해서 급히 입을
막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강철이라도 꿰뚫을 나이인지라 이스마엘의 성기는
그야말로 송곳같은 강인함으로 실비아의 몸 깊은 곳까지 한번에 관통해 나갔다. 묘한
신음 소리가 점점 고조되는 만큼 실비아의 몸놀림과 이스마엘의 동작이 빨라졌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행위가 조급해질수록 다리 사이를 문지르는 영혜의 손 놀림도
똑같이 조급해 졌다. 이미 팬티를 내리고 아예 맨 살을 문지르는 영헤는 전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부끄럼이 없었다.
드디어 이스마엘이 신호가 온 듯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짐승같은 신음 소리가 튀어
나왔다. 실비아의 높은 교성이 그에 박자를 맞추며 터졌다. 그리고 지금까지보다 훨씬
거세고 빠른 움직임으로 이스마엘의 성기가 실비아의 하체를 공격했다. 굳센 남자의
성기가 실비아의 몸 속을 거침없이 드나들었다. 영혜의 머리 속이 아득해지며 다리
사이에서 생긴 짜릿한 쾌감이 몸 전신을 감싸고 불꽃처럼 기분좋게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리가 떨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어 영혜는 문 옆의 벽에 기댔다.
이스마엘이 실비아의 몸 위로 엎어지며 둘의 신음은 끌리는 듯 자지러져 갔다. 영혜의
눈에는 더 이상 둘의 모습이 들어오지 않았다. 감은 눈 앞으로 폭죽처럼 불꽃이 화려
하게 터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때? 이스마엘. 누나 잘 하지?"
영혜는 실비아의 방울 굴러가는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환몽에서 벗어났다. 짜릿한
감촉이 아직도 다리 사이를 감돌고 있었다. 휴우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한 숨을
내쉬며 그녀는 문을 살짝 밀어 닫았다. 둘의 재잘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래도 실비아 하사! 무지 서툴어. 노력은 인정하지만. 자 이리 와 봐. 다시
해보자구."
"아쭈! 넌 잘해서? 좋아 다시 해 보자구....."
모퉁이를 돌며 영혜는 수년 내에 실비아가 제니 뺨치는 기가 막힌 메딕이 될 것이란
확신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실비아의 장래보다 엉망으로 젖어 있는 자신의 하체를
씻을 곳이 필요했다. 화장실이라도 찾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영혜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 코르룰루 섹터 6월 9일 04시 40 분
"저그 3 콜로니(Colony) 돌파의 개요는 이렇다. 정찰에 의하면 이곳은 협곡
사이 지형이므로 돌아 나갈 다른 길이 없다. 정면 돌파 밖에 없는데 적의
예상 병력은 저글링과 히드라(Hydralisk)가 섞여서 두 중대가 넘는 것 같다.
이들보다 골치 아픈 것은 가드 타워(Guard Tower)가 구축 돼어 있다는 점이다.
적절한 위치에 성큰 콜로니(Sunken Colony)가 박혀 있는데, 이것과 병력이
합쳐지면 거의 난공 불락이다."
벌써 발 밑은 저그 족의 콜로니에서 뻗어 나온 축축한 초록색의 융모로 덮여 있었다.
적의 기지가 근방에 있다는 표시였다. 협곡의 입구에서부터 펼쳐 진 저그 3 콜로니는
과연 빠져 나갈 길 없게 빽빽하게 좁은 골짜기 안 쪽을 점유하고 있었다. 적어도 대대
병력이 지키는 곳을 아무리 역전의 용사로 구성된 밀러 부대라지만 과연 돌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런 회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밀러가 된다면 되는 것이라 단단히 믿고 있는 부대원들이라 조금이라도 밀러의 말을
놓지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 이었다. 그들 사이의 견고한 신뢰에 메딕들은
새삼 놀랄 뿐 이었다.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먼저 가드 타워부터 부숴야 된다. 이것은
고스트가 할 일이다. 클로킹하고 들어가 이 지도 상의 3, 8, 13, 15 위치의
성큰 콜로니를 처치 한다. 정보에 의하면 이곳에는 오버로드(Overlord)가
셋 있다고 한다. 고스트가 접근하면 분명히 오버로드가 나타날텐데 이들을
처리하는 것이 이 소위가 해야 할 일이다."
영혜는 아직 밀러의 작전이 이해가 안 되어서 뻔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 보았다.
오버로드가 있으면 그 관측 능력으로 인해 고스트가 클로킹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간호 장교인 자기가 어떻게 오버로드를 맡아 처리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영혜의 고민을 알아차린 밀러가 곧 말을 이었다.
"광학 조명탄은 원래 야간 전투에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 되었지만 연구가 진행
됨에 따라 기막힌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옵틱 플레어의 많은 양이 2 클릭
앞에서 터지면 시야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소위는 고스트와
같이 침투해서 오버로드의 시야를 완전히 죽여 버리는 것이 그 임무다. 그러면
고스트가 아무 방해 없이 성큰 콜로니를 파괴할 수 있다. 다른 대원들은 이들이
침투할 수 있도록 입구에서 소란을 떨며 적의 시선을 끌어 들이는 역할을 한다."
비로서 영혜는 밀러의 작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옵틱 플레어는 강한 조명탄이고
일반 하사관 급 메딕은 직접 마린을 서포트하기 때문에 사용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일반 병사의 치료에 힘을 안써도 되는 장교급의 메딕이 옵틱 플레어의 사용법을 익히
게 된 것 이었다. 그러므로 이 무리에서 옵틱 플레어의 조합과, 작동법을 아는 것은
영혜 밖에 없었다. 상당히 위험이 많은 밀러의 작전이지만 어느 틈에 밀러의 부대원과
같은 눈으로 밀러를 바라보게 된 영혜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임무를 받아 들였다.
오히려 제니와 실비아가 걱정 된다는 듯 영혜를 근심 어린 눈으로 보았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작전은 저그 3 콜로니 전초 기지의 파괴가 아니다. 가장
빠른 코스로 돌파해 빠져 나가는 것이 최선의 목표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하지 말도록."
밀러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은 각자 맡은 지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화이어 뱃 둘을
전열에 세우고 메딕 둘이 중간 열에 서고, 밀러를 포함한 마린들이 뒷 열에 섯다.
가장 확실하게 일점사를 할 수 있는 학익진을 구축한 채 그들은 서서히 협곡으로 들어
섯다.
영혜는 옵틱 플레어의 큰 통을 짊어지고 고스트의 뒤를 따랐다. 여러 장비를 부착한
고스트와 영혜는 밀러 부대의 옆으로 협곡의 벽을 따라 들어 갔다. 질척한 저그 족의
콜로니가 발에 척척 감겨 들어와 걷는데 힘이 들었으나 긴장된지라 그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방에 세개의 흉측한 모습의 성큰 콜로니가 보였다. 일정 거리를 두고 땅에 박혀
있는 그 모습에 영혜는 겁이 덜컥 났다. 고스트는 아무렇지도 않게 클로킹을 걸어
몸을 숨기더니 바로 가장 왼 쪽의 성큰에 다가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40 미리 산탄
총을 갈기기 시작했다. 보통 고스트가 쓰는 25미리 산탄총에 비해 파괴력이 월등
하지만 그래도 혼자 쏘는지라 그 파괴력은 성큰 콜로니에 험짓을 낼 정도로 미약할 뿐
이었다. 한 참 동안 쏘아서 산탄 총알의 파괴력이 누적되자 비로서 성큰에서는 초록색
피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시야에 보이지 않는 적인지라 성큰 콜로니는 속수무책
으로 고스트의 총알을 고스란히 다 맞았다.
이윽고 계곡 안 쪽에서 소식을 들은 듯 저글링이 예의 그 악귀 같은 모습으로 뛰쳐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저글링과 비슷한 모양새이면서 거의 두 배 쯤
큰 덩치를 가진 히드라가 쫓고 있었다. 수십마리의 그들은 일단 파괴 당하고 있는
성큰의 주변에 모였으나 역시 고스트의 흔적을 잡을 길이 없었으므로 두리번거리며
목표물을 찾다가 결국 돌 틈 사이에 숨어 있는 영혜의 모습을 발견했다. 히드라와
저글링이 요란한 소리를 내지르며 영혜에게 달려 드는데 그들을 향해 가우스 소총의
엄청난 화력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피 떡이 되어 몇 마리의 저글링이 날아가고, 공격
우선 순위에서 벗어나는 영혜를 버려두고 히드라와 저글링은 밀러의 부대로 돌진
하였다.
지형의 우위를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저그 족의 병력도 전처럼 많은 것이 아니어서
적절한 엄폐와 메딕의 도움을 받은 밀러 부대는 아주 조금씩 저그를 밀어 부치기 시작
했다. 히드라의 니들 스파인(Needle Spine)이 비록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지만 노련한
밀러 대원의 집중사를 견딜 수 없었다. 달라 붙어야만 싸울 수 있는 멜리(Melee)공격
유닛인 저글링은 이미 그들 잡는데는 도가 튼 두 화이어 뱃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 두
메딕의 서포트를 감당하지 못하고 연신 죽어 나갔다. 넓은 지형이라면 수가 엄청 적은
밀러 부대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싸움이겠지만 협곡의 좁은 병목 지역에서는 오히려
히드라와 저글링이 우왕좌왕하며 한 열씩 차례대로 공격을 받아 수의 유리가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오로지 성큰 콜로니만이 막강한 파괴력으로 저그 족에 힘을 더할
수 있건만 밀러 부대는 성큰의 사정거리 밖에서 저그를 상대하며 고스트가 성큰을
파괴하기만 기다리는 것 이었다.
피를 철철 흘리던 성큰이 기어코 철버덕하면서 내장을 까 뒤집으며 죽어 버렸다. 때를
놓칠세라 밀러 부대는 죽은 성큰이 있는 쪽으로 옆의 성큰의 사정거리를 재며 전진
했다. 히드라와 저글링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 섰다. 이렇게 조직적으로 잘 통제되는
군은 처음 겪는지라 맞짱을 떠서는 피해가 엄청 클 것임을 느낀 모양 이었다. 계곡
안에서 둥둥거리며 풍선 같은 것이 떠오기 시작했다. 개 떼처럼 달려 붙는 방법으로는
밀러 부대를 처치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저그 쪽에서 전투를 지휘하기 위해 오버로드가
급히 나온 것 이었다. 오버로드의 시야 안으로 들어 오면 고스트의 클로킹이 아무
소용이 없어지므로 고스트가 집중 공격을 받아 위험해 진다.
영혜는 지금이 자신이 나갈 때라는 것을 느꼈다. 이를 악물고 무거운 옵틱 플레어
통을 지고 뛰쳐 나갔다. 여전히 저글링과 히드라는 그녀에겐 무관했다. 악귀같은 저그
무리의 가운데를 뚫고 지나 고스트의 옆으로 다가 갔다. 거대한 풍선 같은 오버로드가
다가옴에 따라 고스트의 클로킹이 벗겨지며 희미하게 그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적군 한 가운데서 공격 우선 순위 제 일번인 고스트가 자취를 드러내면 바로 집중타를
맞고 죽는 길 밖에 없었다.
영혜는 플레어의 발사구를 오버로드에 조준한 뒤 교범에서 배운대로 양을 조절했다.
섬광 발생을 최대로 맞추고 화망은 최대로 좁게 했다. 고스트의 모습이 거의 보이게
되자 저글링과 히드라의 시선이 고스트에게 향했다. 순간 영혜의 손에서 한 줄기
붉은 광선이 뻗어 나가 오버로드를 적중 시켰다. 굉음이 사방으로 울리며 밝은 빛이
오버로드의 앞에서 짧게 터졌다가 금새 사라졌다. 오버로드가 갑자기 공중에서 뒤뚱
거리며 방향을 못 잡더니 계곡 오른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보일듯 하던 고스트의
몸이 안개에 휩싸인듯 다시 사라져 버렸다. 성공 이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오버로드는 오른 쪽 절벽에 부딛혀 피를 흘리며 떨어졌다. 밀러
부대의 화력이 한층 치열해졌다. 히드라와 저글링은 꼼짝 못하고 뒤로 후퇴했다.
협곡의 중앙까지 밀고 들어가며 같은 방법으로 고스트와 영혜는 성큰과 오버로드를
제거 했다. 다른 성큰의 공격 거리를 교묘하게 벗어나면서 밀러 부대는 그들의 뒤를
따라 깊이 협곡 안으로 발을 디뎠다. 이미 이 지역에 있다는 세 오버로드는 전부
옵틱 플레어를 제대로 맞고 눈이 멀어 절벽에 부딛히거나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
가 버렸다. 고스트의 클로킹을 알 수 있는 디텍터(Detecter)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성큰 콜로니들은 지니고 있는 그 막강한 파괴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하나씩
고스트의 총알에 맞아 터져 나갔다.
드디어 전방에 부수어야 할 마지막 성큰 무리가 보였다. 그 중 15 번으로 찍어 놓은
것만 파괴하면 길이 열리는 것 이었다. 저그 3 콜로니의 본 지역으로 들어 가는 넓은
계곡 길 옆으로 모래 언덕으로 빠져나가는 샛길이 보였다. 이젠 다 되었구나 싶어
영혜는 한 숨을 몰아 쉬었다. 저글링과 히드라는 적이 본진을 침입하는 것을 막으려고
본 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잔뜩 웅크리고 노려보고 있었다.
같은 방법으로 고스트가 먼저 접근하여 성큰에 산탄총을 퍼 부었다. 히드라들이 마구
이동하며 적의 흔적을 찾으려 애 썼으나 조금이라도 접근하면 뒤에서 집중되는 일점사
를 맞아 하나 둘 씩 죽으니까 으르렁 거릴 뿐 함부로 앞으로 나오진 못했다. 성큰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고스트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스트의 흔적을 찾게 되자 성큰의 긴
촉수가 땅에서 뻗어 나오며 고스트를 공격했다. 고스트가 몸을 돌리더니 뒤로 도망을
쳤다. 성큰의 촉수가 다시 고스트를 찔렀다. 히드라와 저글링이 고스트의 모습을 보고
마구 덤벼 들었다. 다급해 진 밀러 대원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스팀 팩(Steam Pack)
을 써서 화력을 높이더니 덤벼드는 히드라와 저글링에게 미친듯이 총을 난사했다.
엄청 바빠진 제니와 실비아가 스팀 팩 사용시 생기는 신경 조직의 충격을 완충시키기
위해 마린들 사이를 정신 없이 뛰어 다녔다.
영혜는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알 수 없었다. 밀러 부대를 보니 밀러가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공중을 보니 거대한 풍선, 오버로드가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앞서 처치한
오버로드에 비해 크기가 더 컸다. 고스트는 간신히 성큰의 촉수를 벗어 났지만 이미
클로킹이 벗겨 진지라 히드라와 저글링의 일차 타겟이 되어 도망치기에 바빴다.
저 놈 때문이구나. 한 놈이 더 있었구나. 영혜는 다시 이를 악물고 달려 나갔다. 정신
없이 플레어를 조준 한 뒤 쏘아 버렸다. 그런데 이번 오버로드는 좀 달랐다. 옵틱
플레어가 한 줄기 빛으로 올라 오는 것을 보더니 뒤로 물러서는데 속도가 전의 것들
하고는 비교가 안 되었다. 옵틱 플레어는 공중에서 터졌지만 오버로드는 벌써 사정
거리 밖으로 벗어 나 있었다.
속도가 업그레이드 된 지대장 이상 급의 오버로드 였다. 영혜는 약이 바짝 올랐다.
앞 서 세 번의 성공으로 드디어 나도 전투에서 한 몫을 했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격을 피하는 오버로드를 보니 오냐 한 번 해 보자라는 오기가 생겨 버렸다. 어차피
옵틱 플레어는 이제 한 번 밖에 더 쓸 수가 없었다. 영혜는 아무 생각 없이 저만큼
물러선 오버로드를 향해 달려 갔다. 히드라와 저글링이 옆에 있었지만 고스트를 쫓고,
나머지 대원과 전투하느라 영혜에겐 신경 안 쓴다는 것을 이젠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번엔 실수를 않기 위해서 영혜는 오버로드의 뒤 쪽으로 접근해서 사선으로 비스듬히
옵틱 플레어를 조준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방의 플레어를 쏘아 올렸다. 지금까지의
어떤 것 보다도 화려하게 붉은 선을 그리며 올라간 플레어는 보기 좋게 오버로드의
정면에서 터졌다. 하늘을 찢는 오버로드의 비명 소리와 함께 쫓기던 고스트의 몸에
안개 같은 것이 스르르 감기며 클로킹의 효과가 다시 생겼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려는 영혜는 순간 땅에서부터 거대한 촉수가 뻗어나오며
엄청난 충격으로 몸을 때리는 지라 휘청하며 쓰러졌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데 강화복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주위를 보니 그녀는 15번 콜로니 촉수의 사정거리에 들어
와 있었다. 오버로드를 쫓느라고 거리를 잴 틈이 없었던 것이다. 공격 우선 순위에선
제외되는 메딕이지만 다른 공격 대상이 없으면 당연히 공격을 시작하는 성큰인지라
촉수를 뻗어 영혜를 공격했던 것이다. 이젠 쓸모가 없어진 옵틱 플레어 합성 통을
팽개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그족 콜로니의 끈끈한 점액이 자꾸 발에 걸려 거추장
스러웠다.
뜨끔한 충격이 다시 땅에서 터져나와 영혜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두 번째
공격을 받은 것이다. 성큰에서 피가 튀고 있었다. 돌아 온 고스트가 성큰을 다시 공격
하기 시작했다. 성큰은 고스트는 보이지 않으므로 긴 촉수를 뻗어 영혜를 추격하고
있었다. 영혜는 바닥을 뒹굴며 울부짖었다. 이렇게 아픈 충격은 처음 겪는 일 이었다.
터져 버린 강화복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며 거의 알몸처럼 되어 버렸다. 가슴에 달려
있는 생명 게이지의 눈금이 삼분의 이나 떨어져 버렸다. 두 번 더 맞으면 죽을 것이다.
아니 강화복이 다 터져 나갔으므로 한 번이나 더 버틸 수 있을 지 그게 의문이었다.
"소대장님!!! 빨리!!!"
실비아의 절규 소리가 귀에서 아롱지는데 의식이 자꾸 흐려 졌다. 그래도 억지로 비틀
거리며 일어서는데 몸을 갈갈이 찢는 듯한 세 번째 촉수 공격이 땅에서 솟아 올랐다.
그대로 공중으로 튕겨 오르며 영혜는 무참하게 나뒹그러졌다. 이젠 끝이구나 싶었다.
전 부대원의 얼굴 빛이 확 변했다. 그런데 앞에서 덤벼드는 저글링과 히드라 때문에
손을 뺄 수가 없었다. 제니가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실비아는 비명과도 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영혜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콜린 주니어가 영혜의 쓰러지는 모습을 보더니,
앞에서 덤비는 저글링을 일단 사살하고 다시 영혜를 보았다. 거의 알몸으로 쓰러져
부들거리며 떠는 영혜를 향해 성큰이 끝을 내려는 듯 촉수를 땅으로 박는 것이 보였다.
"이런 씨발! 좆 같네. 우와아아아아아아!!!!! 이 씨발아!!!!!!!!!!!"
콜린은 자동화기를 걷어 들더니 성큰을 향해 달렸다. 성큰의 공격 사정거리가 마린의
자동화기 사정거리보다 더 긴지라 콜린은 안 쪽으로 깊이 들어 갔다. 땅에 자동화기를
내리 박는 순간 공격 순위가 메딕보다 높은 마린이므로 영혜를 찌르려던 성큰이 땅을
가르면서 콜린을 향해 찔러 왔다.
"우와아아아아!!!! 이 씨발아!!!! "
콜린의 욕설과 자동화기의 불꽃이 같이 터졌다. 고스트의 산탄총이 한발, 한발 성큰을
때리는 가운데 콜린의 자동화기와 성큰의 맞대결이 벌어졌다. 체력이 열 배 가까이
우세한 성큰을 마린이 상대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지만 이미 고스트에게 당할만큼
당해 피를 철철 흘리는 성큰과 스팀 팩을 사용하는 콜린의 싸움은 백중지세였다.
영혜의 감겨지는 눈으로 성큰이 피를 공중으로 뿜으며 내장을 벌리고 터지는 모습이
들어 왔다. 그리고 맞대결하던 콜린이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병기인 자동 화기 위로
고개를 푹 숙이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의식이 드는데 몸 전체가 쇠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뻐근했다. 이미 날이 밝아 오는 듯
사방이 훤했다. 실비아가 마구 울며 그녀를 끌어 안았다. 손을 치켜 들 힘이 없었다.
흔들리던 시야가 차츰 고정되며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제니가 다정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수고 했소. 업된 오버로드가 있을 줄은 몰랐소. 소위 덕에 무사히 적진 돌파를
할 수 있었소."
밀러는 여전히 무뚝뚝하게 말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칭찬이었다. 비로서 영혜
는 자신이 한 몫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은 깨어질 듯 아프지만 자랑스러움이
가슴에서 번져 나왔다. 입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감돌았다. 그런데 모두의 얼굴이
침울했다. 문득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마지막 장면이 생각 났다. 성큰이 터지고,
콜린이 자동화기 위로 고개를 떨구던 모습이 머리 속을 스쳤다. 불안했다.
"저기..... 콜린 상병은.....?"
영혜를 끌어 안고 흐느끼던 실비아가 흠칫 놀라며 몸을 일으켜 비켜 주었다. 아직까지
몰랐던 숨고르는 격한 소리가 들렸다. 응급 산소 마스크를 덮어 쓴 콜린이 격하게 숨
쉬고 있었다. 그의 몸위로 주기적으로 경련이 스쳐 지나갔다. 영혜는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고 가장 비열한 방법으로 범하려던 놈 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고 대신 쓰러진 것이다.
"늦었어요. 바이탈 메타가 0 입니다. 회생 못 시켜요."
제니의 침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영혜는 간신히 콜린의 옆으로 비척거리며 걸어 갔다.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친 몸이지만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이 안 써졌다. 영혜가 다가오는
것을 실눈으로 보던 콜린이 몸을 다시 크게 뒤 틀었다. 체내의 신경 조직이 완전히
망가진 듯 그의 뒤틀림은 몸 부위별로 각양 각색 이었다.
한 쪽 눈을 간신히 뜬 콜린은 손을 들더니 마스크를 떼어 내었다.
"이..... 씨발!... 좆같이..... 헉! 헉! 내가..... 왜..... 왜 그랬나.....
모르겠어..... 씨발!..... 언니..... 죽건.. 말건.. 내... 헉! 헉! 상관.. 할 거
없는데......"
영혜는 뭐라 말을 해야 좋을 지 몰랐다. 캑캑거리던 콜린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씨발.... 그런.... 모습 ... 보니.... 못.... 따먹은 게.... 한이네......
저.... 씁새끼.... 땜에.... 완죤히.... 좆 됐어!.... 흐으으윽! 허억!......"
떨리는 영혜의 손이 콜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됐어! 씨발.... 맘에도.... 없는 짓.... 하지 마.... 난 이게.... 더... 좋아."
콜린은 몸을 뒤틀며 전투복 바지에서 천 쪼가리를 하나 꺼내더니 얼굴에 덮어 버렸다.
그것은 벙커 안에서 그가 나꾸어챘던 영혜의 팬티였다. 약간 얼룩이 진 그 팬티를
얼굴에 쓴 콜린의 숨가쁜 소리가 점점 작아 졌다. 자신의 팬티를 뒤집어 쓴 그 모습에
영혜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고, 그의 지난 행위에 대한 증오도 뒤로 숨었다. 그냥
자신을 구해주고 대신 죽음을 맞은 마린에 대한 안타까움만이 있을 뿐 이었다.
"씨발!..... 좋은.... 냄새다."
콜린의 시신을 모래 언덕에 묻은 대원은 이제 거의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옷이
없는 영혜는 콜린의 전투복을 착용했다. 커서 헐렁거리지만 다음 보급소까지는 그럭
저럭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에 대해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팬티를 물고 죽은 콜린과 그의 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어쨌건 우주의 여러
인과법칙 중 짧게 스쳐 지나간 덧없는 인연 이었을 뿐이다.
모두들 침울해져서 아무 말 없이 다음 좌표 지점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3 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