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내 권속이 되어라 (78/241)



〈 78화 〉내 권속이 되어라

“아우우?”

존나귀엽네.
얘내 뭐냐?

수인은 처음 봤다.
전체적으로는 인간이랑 똑같지만 다르다.

뭐가 다르냐면 일단 엉덩이 쪽에 북슬북슬한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고 볼에는 세 갈래 수염이 양쪽으로 앙증맞게 나 있다.

무엇보다 말로만 듣던 수인족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뾰족 동물귀!
지금도 나를 보자 불안한 마음에 귀가 접혔다 펴지기를 반복한다.

“아우우우?”
“너희는 수인이래서 아우 밖에 말을 못하냐?”
“말할 줄 안다멍.”

마차의 구석에 조금은 성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보니 구석에 제일 키가 큰 여인 한 명이 쇠사슬에 주렁주렁 묶여 있었다.

“넌 누구지?”
“알면서 왜 묻냐멍.”
“처음 봤는데 내가 네 이름을 어떻게 알아?”
“…이것도 연극 같은 거냐멍.”

뭔가 대화의 핀트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이름을 댔다.

“난 데이몬이라고 한다.”
“…울프문 부족 링링이다멍.”

겨우 통성명을 했다.
그녀는 나를 유심히 보다가 내 뒤에 있는 트런들과 티모를 보며 기겁을 한다.

“끼이잉!”
“으응?”
“끼잉! 그건 뭐냐멍! 왜 트롤이랑 고블린이 네 뒤에 있는 거냐멍? 이제 인간들은 몬스터까지 조종하는 거냐멍!”

링링의 말을 듣고나에게만 시선이 꽂혀있던 다른 수인족 여인들도 깜짝 놀라서 낑낑댄다.

그런데 수인족 애들은 놀라는 것도 특이하네.

긴장하니까 자신도 모르게 동물 귀랑 꼬리가 삐죽 선다.
정말 감정과 반응을 알기 쉬운 녀석들이야.

“인사해. 내 휘하의 부하들이야. 큰놈은 트런들이고 작은놈은 티모야.”
“취익! 수인족 여자 건강한 고블린 새끼 낳을  같다. 취익!”
“쿠워어어어!”
“끼이이이잉!”

결국, 공포에 질린 몇몇 암컷 수인들이 울기 시작한다.
흠.
역효과였나 보네.
나름 소개팅이었는데 말이야.

“트런들 티모, 여자들이 너희 싫대. 그만 가라.”
“쿠워어…”
“취익! 보는 눈 없다! 나 정도면 좋은 남자다! 취익!”

티모와 트런들이 사라지자 한결 안심되는 표정으로 수인들이 날 본다.

“인간 도대체 뭐냐멍?  몬스터를 끌고 다녀? 마왕이라도 돼냐멍?”

솔직하게 말하면 난 마왕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내가 마왕이라면? 그러면 넌 어쩔 건데?”
“…끼잉!”

또 무서워한다.
수인족 맞아?

원래 울프문 부족은 되게 용맹한 부족이라고 들었는데.

애초에 늑대 수인들이니만큼 야생성과 사나움이 본능으로 내재되어 있다고들은 것 같다.

“마왕 무섭다멍. 난 늑대 아니고 암캐라서 마왕 무서워해. 히낑!”
“…너 암캐야?”
“응, 난 패배해서 꼬리 말린 암캐다멍.”

지금 약간 인지부조화 온다.
내가 생각한 울프문 부족 여전사들은 생으로 멧돼지를 씹어먹고 마음에 드는 남자 있으면 역으로 자기들이 강간하는 그런 강인한 여자를 생각했는데.

“링링이라고 했나?”
“맞다멍.”
“근데 너 전사 맞냐? 왜 이렇게 애가 약해 보이지?”

레벨을 잠깐 확인해보았다.
레벨 40.
셰릴과 동급 레벨이다.
저 정도면 절대 낮은 레벨이 아닌데.
어디 가서 목에 힘주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레벨이다.

“너희가 나보고 이렇게 하랬잖냐멍.”
“…내가 이렇게 하랬다고?”
“말  듣는 암캐처럼 굴어야 루나님 안 괴롭힌다고 들었다멍!”

아하.
그러니까 지금  여자는 일부러 약한 척을 하고 있는 거다.
이유는 루나라는 자기 윗대가리 지키려고 말이지.

“넌 마차 밖에서 무슨 소동이 일어났는지 몰라?”
“뭔 일 났냐멍?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멍.”

그러고 보니 마차가 바퀴만 나무재질이지, 통짜 쇠로 만들어져서 바깥에서  난리가 났는데도 전혀 몰랐나 보다.

“그래도 마차가 흔들렸을  아니야.”
“우리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었냐멍? 아우우…”

지금 얘는 나도 노예상인 패거리 중 한 명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심심해서 괴롭히러 온 사람으로 착각하나 보네.

“난 노예상인이 아니야.오히려 걔들을 처단한 사람이지.”
“…장난하지 마라멍. 인간에게 맨날 속아서 멍청하다고 놀림받는 것도 지긋지긋하다멍.”

저 언행만 보더라도 그동안 노예상인이랑 용병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수 있다.
아주 제대로 괴롭혔나 보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잔인하게 죽여줄 걸 그랬다.

“눈으로 보여주기 전에는 도저히 못 믿는군. 나와서 봐라.”

절그럭 절그럭

링링의 목에 달린 쇠사슬을 손으로 잡아채서 어두운 마차에서 끌어냈다.

쨍쨍

눈부시게 밝은 빛이 눈을 때리자 순간 눈을 뜨지 못하는 링링.
어느 정도 명순응이 되자, 바깥의 상황을 인지했다.

다 뒤집힌 땅.
여기저기 곤죽이 되어 쓰러져 있는 용병들.
눈을 까뒤집고 죽어있는 노예상인.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와 흑의무복을 입은 여자들.
예쁘장한 궁수와 정숙해 보이는 기사까지.

“대체…이게 어떻게  일이냐멍?”
“보다시피 거슬려서 모조리 치웠어.”
“인간 레벨 1인데멍?”

와, 수인도 레벨 만능주의였니?
억울하네.
까짓거 레벨 1이 좀 해치울 수도 있는  아니야?
그나마 정말로 내가 아니라 내 부하들이 처리한 거라서 덜 억울하네.

“크흠흠. 나 말고 다른 애들 레벨을 봐.”

그제야 여인과 몬스터들의 레벨을 감정하는 링링의 눈에 경악이 들어찬다.

“뭐, 뭐냐멍! 어디서 이런 전력이 나온 거냐멍? 대부분이 30대에 40 넘는 여자도 있다멍!”
“안녕? 나는 올리비아야. 직업은 마녀야.”

갑자기 링링의 뒤에서 불쑥 들려오는 목소리.

뒤를 돌아본 링링에게고깔모자를 쓰고 녹색 머리카락을 치렁치렁하게 풀어헤친 올리비아가 섬뜩하게 미소를 흘린다.

그런 올리비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레벨.

LEVEL: 54

“진짜…마녀…끼잉!”

털썩

흠.
기절했네.
이젠 정말로 저 여자가 늑대인지 강아지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이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놀랄 일이죠. 보통 마녀를 만나면 저런 반응이 정상이라고요.”
“저희도 올리비아를 저렇게 바로 뒤에서 만났으면 기절했을 걸요?”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녀석들과 올리비아의  만남은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였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녀가 나한테 엎드려서 궁둥짝을 맞는 모습을 보았으니 다들 올리비아를 무서워할 수가 없었겠구나.

“일단 남은 녀석들을 풀어주지.”

 명령에 육림대원들과 메이 셰릴은 일사불란하게 여자 수인들의 쇠사슬을 풀고 자유를 주었다.
수인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멍…”
“뭐긴. 노예 상인들은 응분의 대가를 치렀고 너희는 자유란 얘기지.”
“끼잉! 그게 정말이냐멍?”

링링아, 너 기절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일어나는 거냐?
벌떡 일어나서 상황을 파악하는 링링.
이내 분개해서 이미 죽은 놈들의 시체를 짓밟는다.

“크르르,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것들. 다 죽여버리겠다멍!”
“이미 죽었어, 걔내들.”

그런데도 수인 노예들의 시체화풀이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쌓인 게 많았나 보구나.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서 나랑 링링은 마주 보고 앉았다.

“그래서 링링. 다시내 소개를 하마. 나는 데이몬. 윌렛 왕국의 막내 공자다.”
“…마왕 아니고?”
“그렇게 보일 수 있음은 이해하마.”

지금 얘기하는 이 순간조차도 나는올리비아를 내 무릎에 앉혀놓고 온몸을 주무르고 있다.
내 품 안에서 절정하며 야릇한 신음을 흘리는 LV 54 올리비아.

“하으읏♥ 흐읏♥ 마왕님♥ 저를 더 갖고 놀아주세요♥ 장난감처럼 다뤄주세요♥”

야.
나 마왕 아니라니까.
링링의 표정에 점점  두려움이 깃든다.

“나 진짜 아니…”

잠깐.
굳이 내가 여기서 부정할 필요가 있나?
그냥 마왕이라고 하면  돼?

어차피 변명해도 저쪽은 의심할  같은데.
기왕 이렇게  것 아주 그냥 제대로 나가볼까?
수인 여자애들도 완전 단순해 보이는데 말이야.

“훗. 도저히 속일 수 없군. 그렇다. 내가 바로 마왕 데이몬이다.”
“끼이잉! 역시 그랬어! 레벨 50대 마녀를 다루는데 어떻게 인간일 수가 있냐멍!”
“낑! 끼잉!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마왕이다멍! 어머니 달의 이름으로 너희를 물리치겠다멍! 끼잉!”

흐음.
물리치겠다는 녀석들이  꼬리는 죄다 말려 들어가 있고 귀는 접혀있냐?
이 녀석들 다리도 덜덜덜 떤다.
진짜 수인들 원래 이렇게  많은 줄 오늘 처음 알았네.

“트런들, 티모.”
“쿠어어어엉!”
“취이익!”

 쿵 쿵

사방에서 늑대 수인들을 둘러싼 채 서서히 다가오는 95마리의 몬스터들.
이게 말로 해서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상상을 해보라.
실제 내가 수인이었으면 진작에 오줌 지리고도 남았다.

“끼이잉.”
“왜 두렵나?”
“아, 아니!  두렵다멍!”
“그래, 그래야지. 감히 나 마왕 데이몬을 대적하는 게 용감한 달의 전사들이 아닌 똥강아지라면 실망할 뻔했어.”
“…끼이잉.”

똥강아지 맞네.
그러면 슬슬 무대를 펼쳐볼까?

“나 마왕 데이몬의 이름으로 말한다. 내 충실한 권속들이여. 나에게 반기를 드는 저 무지몽매한 판타지아대륙의 수인들을 묶어서 내 앞에 갖다놔라.”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녀석 구속구를 풀어준 지 한 시간도 안 되었다.

묶었다 풀었다도 이 정도면 똥개훈련.

메이와 셰릴 포함 다른 녀석들도 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겠지.

하지만 내가 하는 기상천외한 짓에 놀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그러려니 하는게 우리 애들이다.

쿵 쿵 

“끼이잉! 오지 마! 끼잉!”
“마왕을 만나다니! 마녀의  무섭다멍! 끼이잉!”

어차피 오랜 노예생활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고생만 해서 지칠 대로 지친 녀석들.

제압은 영유아들 밥 먹이기보다 쉬웠다.

나름 전사들이라던 15마리의 늑대족 수인들은 제대로 된 반항도 못 하고, 밧줄에 꽁꽁 묶여서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링링?   쳐다보지?”
“끼이이잉…”

두려움에 가득한 눈이 나를 쳐다본다.
수인족이 용맹은 한데 마왕 앞에서 용맹한 건 아닌가 보네.

예전에 보니까 진돗개들은 호랑이 앞에서도 짓던데.
얘내들은 그 정도 깡다구는 없는 모양이다.

“내가 무서워?”
“히낑, 무섭지 않다멍…”
“내가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면서 링링의 부드러운 볼살을  손등으로 쓸어내린다.
내 차가운 손이 그녀의 피부에 닿자 소름이 돋았는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그녀.

“살, 살려달라멍…”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조용히 보내달라멍.절대 마녀의 숲에 마왕이 있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않겠다멍.”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응? 네가 나라면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큭큭큭.
링링 지가 생각하기에도절대 믿지 않겠지.
그냥 살인멸구 하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할 거다.

“이봐, 여자. 네가 여기서 살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야.”
“뭐, 뭐냐멍?  방법이 있다면 뭐든지 할겠다멍. 루나 족장님을 해치라는 말만 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멍.”

오우.
하도 비루한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이젠 늑대 같지도 않았는데 나름대로 충성심은 있구나.

“링링. 나 마왕 데이몬의 권속이 되어라. 그리한다면 살려주마.”

수인 여자를 포기할 수 없잖아?
너희도 내 여자로 만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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