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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화 〉 녀석은 좆밥이었다 (222/241)

〈 222화 〉 녀석은 좆밥이었다

* * *

루나는 나와 셰릴을 등에 태우고 높게 뛰어 구덩이를 탈출했다.

지반에 착지하자마자 공격받고 있는 귀녀대와 육림대를 보았다.

첫째 엄마와 그녀의 부하들이 쏘는 마법포격은 귀녀대원들이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말을 탄 데스나이트들의 진입은 육림대원들이 안간힘을 써가며 저지하고 있었다.

벌써 몇몇 귀녀대원은 죽었는지 정신을 잃었는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육림대원 중에도 옆구리가 크게 베이거나 다리를 절뚝이는 애들이 보였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정실과 측실 부인들이다.

빠르게 체크했더니.

올리비아는 마나를 과도하게 소비했는지 안색이 창백하긴 했지만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가장 높이 공중에 떠서 마법을 난사하는 레벨 55 마녀는 방어의 핵심축이었다.

메이도 괜찮아 보였다.

나름 정실부인이라고 다른 여인들이 최우선으로 보호한 듯하다.

땀으로 풍성한 금발 머리가 흠뻑 젖어있긴 했다만.

그건 내 자지를 제 보지에 끼우고 앙앙댈 때도 똑같았으니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본다.

근데 문제는 엘리샤였다.

엘리샤는 최선두에 나서서 기사들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그런 와중에도 나이 어린 동생들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절대 물러서지 않았으니.

그녀는 온몸에 피 칠갑이 되어있었고, 무엇보다 한쪽 눈에 눈알이 없이 텅 비어있었다.

피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반사적으로 쿠크리를 휘두르는 엘리샤를 본 나는 냉수마찰을 한 것마냥 정신이 번쩍 들었다.

“루나…달려.”

“아우우우!!!”

루나가 최고 속도로 평야를 가로질렀다.

태어나서 누구를 위해 진심으로 화내는 일 따윈 없을 줄 알았는데.

이변이 일어났고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정말로 화가 나면 목소리가 가라앉고 마음이 얼어붙는다.

놀라웠다.

송길준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여자 따위는 내 삶에서 작업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 마음이 정말로 엘리샤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아끼는 장난감이 망가진 것에 대한 분노인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아주 잠깐이지만 내가 평정심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났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인정한다.

옛날의 송길준과 지금의 데이몬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빛에 가까웠던 내 여인들은 나와 만난 후 아무 때나 보지를 벌리는 창녀가 되었고 악마와 손을 잡는 걸 주저하지 않을 만큼 타락했다.

그런 만큼 나도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만을 탐하던 지옥의 악귀에서 아끼는 것이 하나둘쯤은 있는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받았고 나 데이몬은 예전의 송길준과는 명백히 달라졌다.

이 변화가 나를 최후의 악인으로 만들어주는데 도움이 될 변화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눈앞에 엘리샤를 괴롭히는 마물들은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만큼은 확실할지니.

복잡한 생각일랑 머리 한구석에 치워두고 루나의 등에서 뛰어올라 흑색 철갑옷으로 꽁꽁 싸맨 놈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제임스의 하수인들.”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른 자유기사 출신의 데스나이트가 어둠마나를 줄기줄기 뿜어나오는 검을 휘두르자, 나는 손에 오러를 일으켜 이에 맞대응했다.

마나소드와 오러가 어떠한 기교 없이 정면으로 맞붙었으니 결과는 뻔하다.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공을 들여 만든 게 분명해 보이는 보검이 단숨에 두 동강이 났고.

나는 이미 데스나이트의 지척에 접근해서 녀석의 머리통을 두 손으로 덥석 잡았다.

“내 첩을 건드린 대가는 네 주인이 곧 치르게 될 거다.”

어차피 말도 못 알아먹는 녀석에게 뭐라고 더 하는 것도 웃긴 일이라 그대로 녀석의 투구를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우드드득!!

머리에서 척추뼈까지 한 번에 뜯겨나갔으니 데스나이트 할애비가 와도 이건 못 살아간다.

“주인님!”

엘리샤가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봤지만 대답해줄 시간이 없다.

또 다른 데스나이트가 나를 향해서 달려들었고, 내 몸을 절반으로 가를 의도로 떨어져 내리는 검을 양 손바닥을 맞부딪쳐 막았다.

드르르륵!!

손바닥과 칼이 마찰하자 용접 작업을 하는 것처럼 불꽃이 튀어나와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바로 허리를 돌리며 오른발로 상대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양손에 검을 잡은 녀석이라 당연히 내 발차기를 막지 못했고, 타격을 제대로 입었는지 검을 내리치는 힘이 확연히 약해졌다.

“하앗!”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비틀어서 부러트리고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일권(一?).

퍼억!

두개골이 부서지는 생생한 감촉과 함께 기습했던 녀석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엘리샤, 괜찮나?”

“네, 전 괜찮습니다. 그보다도 동생들이 많이 다쳤어요.”

“네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아. 여긴 내가 맡을 테니 메이에게 가서 포션을 받아.”

“하지만…”

“명령이다.”

엘리샤의 텅 빈 눈을 보았다.

포션이 저 눈까지 재생시켜줄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듯하지만 최대한 빨리 보내서 치료라도 받게 해본다.

“알겠습니다.”

엘리샤가 전장을 이탈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 부하 중에서도 수위권에 속하는 강자인 레벨 45 소드마스터 셰릴과 레벨 50대 루나, 그리고 가장 강한 내가 합류하자 전세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옆에서 셰릴이 꽃을 단 미친년처럼 칼을 휘둘러 데스나이트들을 절단했다.

그녀는 데스나이트를 볼때마다 명예까지 더럽혀진 채 마물이 된 제 아버지가 생각났는지 칼질에 자비가 없었다.

고유기술

일루젼 소드

소드마스터가 된 셰릴의 레이피어가 갑자기 수십 개의 잔상을 남기더니 보기도 힘들 속도로 데스나이트들을 향해 오러를 뿌려댔다.

무협지로 치면 강기탄이라고 해야 할까?

소드마스터가 되기 전에도 저 환상검(???)은 상대하기 까다롭고 헷갈리는 기술이었는데.

경지에 오르자 셰릴의 탄탄한 기본기와 더불어 거의 오러 폭격 수준의 중거리 기술로 변모했다.

퍽! 퍼퍽! 퍼퍼퍽!!

급소마다 정확히 꽂히는 오러탄에 통증을 못 느끼는 데스나이트들도 옴짝달싹을 못 했고.

이 틈을 타 소피아를 비롯한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퍼부었다.

“지금이야! 파이어월!”

“아이스 애로우!”

“썬더 체인!”

“다크 스피어!”

각자의 속성에 맞는 마법을 쏟아내자 평야가 황야가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수준 높은 화력을 감당하지 못한 데스나이트들은 썩은 시체가 되어 땅의 거름이 되어주었다.

결국, 제임스의 한 수를 이렇게 물리쳤다.

빠르게 사상자를 점검했다.

귀녀대원 15명 중의 5명이 중상을 입어서 메이가 포션으로 치료를 하고 있었다.

“안 돼, 죽으면 안 돼.”

같은 리만 표국 출신이자 아카데미 동기들의 부상에 소피아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메이의 옆에서 치료를 도왔다.

그런 그녀의 머리에서도 피가 주르륵 흘러서 얼굴의 반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육림대도 만만치 않았다.

중상자 7명.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팔이나 다리가 잘린 여자들이 신음을 흘리거나 고통에 울부짖고 있었다.

“아으…아아아아…”

“아파…”

“조금만 참아!”

이쪽은 엘리샤와 올리비아가 붙어서 떨어진 팔다리를 붙이고 포션을 퍼부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최근 크래스 폴리스에서 약제 사업을 벌이느라 포션은 넘쳐날 정도로 많았다.

“상대 마법 공격은?”

“링링네가 잘해주고 있는 모양이에요.”

성문 앞쪽도 난리 통이었다.

링링과 티모, 그리고 트런들이 성문 앞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성문이 금세 부서질 듯 위태롭게 흔들렸고, 그 바람에 첫째 엄마와 그녀를 따르는 마법사들이 귀녀대와 육림대에 쏴야 할 마법을 성문 쪽 수비에 쏟아붙고 있었다.

내공을 눈에 집중시켜 안력을 키웠는데, 놀랍게도 성문을 사수하는 수비병들은 인간과 언데드가 섞여 있었다.

보통 인간들은 언데드를 무서워하곤 하는데.

저 인간들은 무슨 정신머리로 제임스가 악마와 결탁한 걸 알면서도 마물들과 함께 베르너 성을 지키는 건지 이해가질 않았다.

뭐, 상관없다.

모르겠으면 직접 알아보면 될 일.

“링링, 퇴각해.”

목소리에 기운을 제법 실었기에 급박한 와중에서도 동물 귀를 삐죽인 링링이 즉시 손을 내저었다.

“물러나라멍! 공격은 끝났다멍! 철수하라멍!”

명령이 떨어지자 목숨 내놓고 싸우던 연놈들이 일사불란하게 내가 있는 쪽으로 넘어왔다.

성문 앞에는 죽은 고블린과 코볼트, 오크와 트롤 한 마리가 눈에 밟혔다.

물론 수비병들의 시체가 훨씬 더 많아 보이긴 했으나, 심기가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월랑대원들은? 죽거나 다친 사람 있나?”

“없다멍! 주인님 말대로 녹귀대랑 중갑대원들 뒤에 숨어 싸웠다멍!”

애초에 몬스터는 채워 넣을 수 있지만 월랑대 수인녀들은 채워넣기 힘들었기에 몸보신하라고 링링에게 미리 언질을 넣어뒀었다.

전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재정비 시간.

내 여자들은 부상자들을 돌봤고, 저쪽도 성문을 열고 시체들을 성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다음 공격 때는 저 시체들도 언데드로 거듭나서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특히나 건장한 체구의 트롤이나 오크들이 언데드가 되어 우리를 맞이할테니 공성 난이도는 더 어려워진 셈이다.

“호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네.”

무슨 수를 썼는지 저 멀리서 나한테까지 목소리를 생생히 전달한 제임스 녀석이 여유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난 전투가 싱겁게 끝날 줄 알았어. 그런데 너와 네 몇몇 부하들의 무력이 내 예상을 뛰어넘는군. 특히 셰릴은 언제 저렇게 강해진 거지? 저 정도면 기사단장이었던 제 아비보다 더 강하겠는데?”

이런, 제임스 저 녀석이 셰릴의 발작버튼을 눌러버렸다.

옆에 있던 셰릴이 핏발선 눈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개새끼야! 넌 내가 가만히 안 둬. 사지를 찢어서 네 팔다리가 몬스터에게 먹히는 꼴을 직접 관람하게 해주겠다.”

셰릴도 요년도 내 옆에 있더니 사람을 어떻게 해야 미치게 할 수 있는지 제법 알게 됐다.

하지만 상대가 안 좋았다.

썩어도 준치라고 제임스는 악마후보자다.

“네 아버지가 데스나이트가 될 때가 생각나는군. 체면도 자존심도 내던지고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엎드려 빌던데? 여태까지 이런 늙은이를 믿고 베르너 백작성에서 발 뻗고 잔 내가 참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싶었어.”

“넌 뒤졌어! 죽여버리게…”

“그만. 나대지 마, 셰릴.”

내 부하들은 분노 조절을 잘한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무형의 살기로 뿜어내던 셰릴도 내 한마디에 뭐라고 더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제법인데? 휘하의 계집들이 말을 잘 듣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야.”

“제임스, 솔직히 인정하마.”

“뭘 인정한다는 말이지?”

“네 녀석은 판타지아 대륙에서 날 가장 열받게 한 놈이다.”

이건 칭찬이다.

이곳 대륙에 거진 2년 가까이 있었는데 이 정도로 내 꼭지를 돌게 한 건 저 녀석이 나름의 능력이 있다는 말이니까.

“크큭, 열받으면 뭐 어쩌게?”

“인간수비병들 가운데에 언데드들이 섞여 있더군. 어떻게 그런 괴상한 조합이 가능했던 거지?”

“뭐야, 열받았다고 하더니 겨우 그런 질문을 하는 건가?”

어깨를 으쓱한 녀석이 대답했다.

“어려운 질문도 아니니까 말해주지. 내 뜻에 동조하는 놈은 살아서 움직이고 반대하는 놈은 죽어서 움직인다. 대답이 되었나?”

거슬린다. 짜증 난다.

나보다 사악한 거 같아서 말이다.

“카르마를 얼마나 모았지?”

“그런 질문을 하는 걸 보니 너도 악마후보자군. 너야말로 얼마나 모았느냐?”

양심도 없는 놈이 선제시를 하란다.

그래도 내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저 녀석은 끝까지 공개할 생각이 없어 보이길래 솔직히 말했다.

“3만.”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 허풍 떨지 마라.”

첫째 형은 내가 있던 곳으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안력을 키운 내 눈에는 그의 얼굴이 선명히 보였다.

몹시 놀란 표정.

하지만 특유의 여유는 아직 가시지 않았다.

“템프강 북부 전체를 몰살하지 않는 한 그런 카르마는 나오지 않아.”

“어째서지?”

내 질문을 들은 붉은 머리 소악마가 양팔을 벌리며 광소했다.

“크핫하하하!!”

미친놈은 맞는 거 같다.

한참을 웃던 녀석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날 보았다.

“난 성 하나를 몰살하고 본성의 절반가량을 언데드로 만들었다. 노예 사업도 활발히 했지. 이런 내 카르마는 얼마일 것 같은가?”

“내가 어떻게 알아. 씨발놈아.”

“1만. 1만이다. 그러니 3만인 네 녀석의 카르마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겨우 1만?

원래도 알았지만 더욱 확신했다.

제임스 베르너.

녀석은 좆밥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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