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0화
<제11장 : 보물선>
태영은 모든 감각을 집중시켰다.
재생의 핵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파장을 느끼기 위해서 노력했다.
몸의 솜털이 빳빳이 곤두설 정도로 힘을 느끼는 데 집중했다.
마나라는 에너지는 참으로 신비로웠다.
이것은 파동 같기도 하였고 입자 같기도 하였으며 힘 같기도 했다.
마나의 파동을 자세히 느끼는 것, 그것은 상당한 심력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태영은 정신을 집중해서 그것을 해냈다.
거대한 기운이 태영의 몸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태영은 강대한 마나를 느끼며 그것과 비슷한 파동의 마나를 발산했다.
마나는 같은 파장의 마나에 끌린다.
다소 관념적인 것 같던 말의 의미가 느껴진다.
재생의 핵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힘이 태영의 마나와 반응한다.
두 마나가 닮으면 닮을수록, 끌리는 마나는 더욱 커진다.
바닷속만 아니었다면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집중했다.
다른 마나의 파동을 흉내 내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은 타인의 행동을, 모공 하나하나까지 흉내 내는 것과 같았다.
다행인 것은 재생의 핵으로부터 공급받는 지속적인 마나 덕분에 마나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태영은 정신을 집중하고 이번에는 핵에서 나오는 마나와 반대 파동을 가진 마나를 생성했다.
전신의 근육을 혹사해 근력을 짜내듯, 핵과 반대 파장의 마나를 말 그대로 짜냈다.
태영으로부터 발산한 마나는 재생의 핵을 둘러쌓으며 둥그런 차폐막을 형성했다.
태영의 예상은 맞았다.
마나는 반대 파장의 마나를 밀어내는 힘이 있다.
재생의 핵에서 나오는 마나는 반대 파장을 가진 태영의 마나를 밀어냈다.
그리고 태영의 마나는 그에 반발하듯 재생의 핵에서 나오는 마나를 반대로 밀었다.
둘 사이에 마나적 척력이 발생한 것이다.
이 현상을 이용한다면, 거대한 수정이 공급하는 마나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력과 척력의 합력이 0이 되기 위해서는 두 힘이 같아야 한다.
즉, 태영이 소모하는 마나와 저 수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가 동등해야만 힘의 평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당장 자신 따위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마나를 뿜어내고 있는 물체를 어떤 방법으로 막는단 말인가
발전용 수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마나를 모두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태영이 소모하는 마나만큼, 수정에서 나오는 마나를 줄어들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벡터가 반대인 두 힘의 합력은 큰 힘에서 작은 힘을 뺀 값이다.
마나가 보여주는 특성을 보았을 때, 아마도 이 물리법칙이 적용될 가능성이 컸다.
태영에게는 재생의 핵이라는 마력원이 있다.
재생의 핵에서 마나를 받아들인 후, 그 마나를 수정의 마나와 반대 파장으로 만들어 차폐막을 만든다면, 재생의 핵이 가진 마나량 만큼 수정의 마나량을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수정도 그렇고 재생의 핵도 그렇고 굉장히 많은 마나를 보유한 동력원이다.
이 두 동력원이 발산하는 마나의 양은 일정한데 이를 일률로 비유해보면 수정이 약 1MW 정도라고 하면, 재생의 핵이 약 1GW 정도는 될 것이다.
즉, 재생의 핵으로 수정에 대한 반발을 만들어 내면 1GW의 출력을 999MW 정도로 낮출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눈물이 나올 만큼 적은 양이다.
이 정도의 마나 공급 방해로 보안장치를 해제할 수 있을까?
태영은 솔직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변수는 많다.
태영이 대략 추측한 수정의 마나 공급량이 생각보다 적을 수 있고, 반대로 핵의 마나 공급량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수정은 선체를 유지하기 위해 아슬아슬한 한계량만큼의 마나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조그마한 공급방해에도 민감할지 모른다.
어쨌든 태영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으니 불가능해 보여도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
태영은 매직 아이템을 확인했다.
보석이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제한시간이 임박했다는 표시였다.
태영은 일단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기로 했다.
재생의 핵을 마나를 받아들였다.
거대한 마나 수정에 대한 반대 파장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태영은 또다시 정신을 집중해서 피를 짜내듯 마나를 끌어 올려야 했다.
마나의 파장을 응용한 전투기술은 아무래도 만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섬세한 정신 집중이 필요하면, 급박한 전투에서 써먹기가 쉽지 않다.
간신히 수정의 엄청난 파동을 흉내 낸 태영은 만들어낸 마나로 수정을 감싸기 시작했다.
너무나 거대한 크기라 마나로 수정을 감싸는 것도 끔찍하게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태영이 마나의 막으로 수정을 감싸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위잉!
위잉!
위잉!
엄청난 사이렌 소리가 배에 울려 퍼졌다.
귀를 사정없이 찌르는 날카로운 경고음에 태영과 켈크는 거의 동시에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봤다.
만화나 영화에 등장하는, 폭발하기 1분 전 악당 기지처럼, 불길하고 요란한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그러면서 경고 방송이 나왔다.
[마나 발전로에 심각한 장애가 감지되었습니다. 발전로 보전을 위해 일시적으로 가동을 중단합니다. 예비 발전기가 가동됩니다. 예비 발전기의 손상이 감지되었습니다. 5분 후에 발전로가 다시 가동합니다. 발전로의 손상이 예상되니 모든 탑승객분들은 모두 비상대책부의 지시에 따라 탈출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엄청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던 수정이 그 찬란한 빛을 잃어버렸다.
순식간에 스위치가 나간 듯 빛을 잃은 수정은 조금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나의 가동이 끊기자 선체의 색이 조금 변했다.
희미한 변화였지만, 조금 빛이 바랜 것 같이 금속의 색이 변화했다.
코팅이 벗겨진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이 거대한 수정은 단순히 보안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선체 전체에 보호막을 걸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 이 배는 좌초한 지 수백 년이 흘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부분 부분에 보이는 조그마한 녹 말고는 전체적으로 외견이 깨끗하다.
이런 부분은 부지런한 동력원이 수백 년 동안 노동을 한 결과일 수도 있다.
보안 마법도 존재하는 판이니 부식 방지 마법 따위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태영은 켈크에게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보안 마법이 해제되었으니 이제 중요한 창고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태영의 수신호를 알아들은 켈크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안 그래도 어두운 난파선에는 기묘한 적막감이 돌았다.
한바탕 사이렌 소리가 난리를 친 후, 실이 툭 하고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배는 완전히 죽어버렸다.
바닷속에 수백 년간 갇혀 지내며, 엄청난 압력과 부식을 버텨온 기선은 드디어 완벽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죽음이라기 보다는 혼수상태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배의 전원은 5분 후에 다시 들어온다고 했으니
원자력 잠수함의 원자로에 해당하는 귀중한 동력원이 타격을 받았을 때, 혹은 그런 가능성에 노출되었을 때, 이 배는 동력원 보호를 위해서 일차적으로는 수정의 마나 공급을 완전히 중단하게 설계되었다.
그리고 예비 발전기가 가동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비 발전기조차 가동할 수 없으면, 결국 동력원 파손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정이 가동된다.
긴급 방송의 멘트를 듣고 추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공백은 약 5분이다.
동력이 완전히 중단되면, 선박의 의료 시스템이나 항해 시스템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배를 움직이는 것부터 해수를 담수하는 것까지, 동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5분 이상 선박에 동력 공급이 중단되는 것은 치명적인 상황일 것이다.
그렇기에 5분이 지나면 동력원의 손상을 감수하고서라도 다시 재가동되는 것이다.
태영은 서둘러 창고 앞으로 향했다.
지금이라면 복잡한 보안 시스템도 무력화되었을 것이다.
태영은 켈크와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자 둘의 주먹에서 강력한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태영의 손가락이 펴졌다.
‘3’
주먹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일격에 무쇠를 부순다는 일념으로 강력한 마나를 모았다.
‘2’
점점 색이 짙어진 마나의 주먹은 어마어마한 파동을 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1’
태영과 켈크의 눈빛이 다시 마주쳤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쿠웅!
호수에 거대한 바위가 떨어지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두 마나 유저의 주먹질은 마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연약한 문을 단숨에 구겨버렸다.
그 순간, 태영의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다.
‘위험..’
생각보다 먼저 몸이 반응했다.
전신의 힘을 끌어올려 마나의 막을 생성했다.
갑자기 바로 앞에서 폭탄이 터지는 느낌이 태영을 엄습했다.
태영과 켈크의 몸이 포탄처럼 쏘아지듯 창고 안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둘의 몸은 금속제 문을 그대로 부숴버렸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창고 안쪽으로 날아간 태영과 켈크는 딱딱한 창고 바닥에 형편없이 쓰러졌다.
쓰러지는 순간, 태영의 긴급 방어가 발동했다.
무시무시한 충돌의 충격이 바닥을 움푹하게 팰 정도로 강하게 작용했다.
다행히 켈크와 붙어있다시피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태영의 마나 보호막이 켈크도 보호할 수 있었다.
보호막이 없었다면, 아무리 마나 유저의 육체라도 완전히 곤죽이 되버릴만큼 위협적인 충격이었다.
“크흑… 갑자기 무슨.”
켈크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둘이 인간 탄환이 되어 문을 완전히 부숴버렸기 때문에 창고는 뻥 뚫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 뻥 뚫린 입구로 바닷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록 순식간에 물이 넘치기는 했지만, 이곳에는 공기가 남아 있었다.
놀랍게도 이 공간은 수백 년 동안 바깥과는 완전히 차폐된 상태였다.
중요한 귀중품을 보관하는 곳이다 보니, 단순히 보안 마법뿐만 아니라, 방 자체를 완전한 밀폐 상태로 유지하는 보존 마법도 걸려 있었던 모양이다.
태영은 그제야 두 사람을 강타한 엄청난 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기압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중학교 과학에서 배우는 상식인데, 밀폐된 방문을 열었을 때 바람이 방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이러한 현상 중 하나이다.
방금도 그것과 비슷했다.
오랫동안 밀폐된 창고는 대기압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창고는 이른바 잠수함과 같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문에 틈이 생기고 동시에 기압 차가 생긴 순간, 25기압에 가까운 엄청난 기압 차가 순간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인간이라면 보통 8기압 차에 노출돼도 시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편이 돼버린다.
25기압은 1제곱센치를 25kg으로 누르는 정도의 힘이며, 이런 기압 차에 갑자기 노출되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나마 태영이 순간적으로 예지에 가까운 감각을 발휘해서 마나의 보호막을 쳤기 때문에 둘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태영은 쑤시는 삭신을 매만지며 간신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상자가 적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상자는 전혀 투박해 보이지 않았으며, 검은 단색으로 무척이나 고급스러웠다.
고가의 금고를 보는 것 같았다.
태영은 물이 창고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그중 하나에 다가가 마나를 이용해서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태영이 자신이 정확한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이건!”
옆에 있던 켈크도 말을 잇지 못했다.
태영의 손에 쥐어진 것은 영롱한 황금빛이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은 금화였다.
태영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상자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아마 이곳은 상선의 현찰을 보관하는 공간이었을까?
한국의 금 보유량은 100t을 조금 넘는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상자가 모두 금화 상자라면, 그것에 필적할 것 같았다.
“맙소사.”
[작품 후기]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