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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형 어플-128화 (128/220)

제 128화

<제14장 : 나의 히어로>

슬슬 11월도 저물어 가고 있다.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바쁘게 사는 인간은 하루가 25시간이어도 부족하다.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고, 거리와 쏘다니며 바쁘게 계약을 긁어모은 태영은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시계를 확인했다.

오늘은 특히 바쁜 날이어서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겨울이 다가와서 그런지 아직 저녁때가 조금 일렀는데 해가 지고 있었다.

쌀쌀한 늦가을 공기가 어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영업은 밤낮이 없다.

그러나 능력 있는 영업사원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논다.

태영이 바로 그런 부류이다.

일하기 시작하면서 태영 내면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옷이나 신발에 관심갖게 된 것은 가장 작은 변화에 불과했다.

물질에 대한 갈망보다도, 태영은 사람 내면을 바라보는 안목이 더욱 커졌음을 느꼈다.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 보이는 기분이다.

이런 경험이 쌓여서 연륜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사람은 이야기할 때, 입 이외의 수단으로 계속해서 정보를 전달한다.

그것을 제대로 캐치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극소수의 단련된 인간은 그런 미세한 정보를 가지고 상대방의 심리를 예측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도 예측할 수 있다.

영업인은 여기서 말하는 훈련된 사람에 당연히 포함된다.

영업은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최면 라이트라는 사기적인 아이템으로 생태계 파괴 수준의 성과를 올리는 태영이라도, 무조건 아이템에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 아이템 없이 영업하기도 했고, 아주 제한된 상황에서만 아이템을 사용했다.

그 결과, 타인을 바라보는 눈이 더 날카롭게 성장했다.

미세한 눈동자의 움직임, 발의 위치, 몸의 들썩임 등으로 그 사람의 상태를 얼추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은 개인차가 매우 크고, 전적으로 경험에 의한 것이라 절대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없지만, 꽤 쓸만한 능력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는 것이 보람이 느껴질 정도다.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낸 태영은 집에 돌아왔다.

서연이는 잔업이 많아서 조금 늦게 퇴근할 것 같다는 카톡을 보냈다.

집과 회사는 그리 멀지 않으니 버스로 충분히 퇴근할 수 있기 때문에 태영은 혼자 집에 돌아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 올라가 집으로 도착했다.

이상하게 엘리베이터 안의 정적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원룸에 살 때는 느껴본 적 없는 기다림이었다.

문을 열자 황량한 거실이 자신을 반겼다.

태영은 아무도 없는 집에 구두를 벗고 들어갔다.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스위치를 더듬어 거실 조명을 켰다.

“역시 썰렁하네.”

소파 하나 들어있지 않은 거실은 이상하게 좁아 보였다.

집이란 생물은 신기하게 가구가 들어 있어야 넓어 보인다.

하루빨리 가구점에 가서 살림살이를 들여놓고 싶었다.

연희가 집에 남아 있기 때문에 혼자 쇼핑을 하고 주문을 할 수 있겠지만, 연희는 고집스럽게 세 사람이 모두 함께 가구를 고르는 것을 주장했다.

새로운 집에 자신만의 취향이 반영돼서는 안된다는 논리였다.

그 말이 썩 틀린 것은 아니라, 이번 주말 전까지는 조금 불편하게 지내기로 했다.

연희는 아마 쇼핑을 하러 간 것 같았다.

집에 식료품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장을 보기로 했다.

저녁으로 먹을 간단한 빵과 음료수만 사 오면 충분하다.

태영은 잠시 자리에 앉아 이마에 손을 얹고 머리를 식혔다.

오랜만의 고독이었다.

고독이라고 칭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애매한 상태이지만, 어쨌든 고독은 고독이었다.

지금은 그를 방해하는 일도 없었고, 다른 사람도 없었다.

그렇기에 오롯하게 혼자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떠올려 보았다.

해야 할 것이 아주 많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에 나타난 괴물을 처리하는 것이다.

태영의 예상이 맞는다면 한국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에 그들이 연루되어 있다.

그들을 해치우는 일은 평범한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태영은 간단한 은신과 염동력 만으로 복권을 조작했다.

이 능력을 부정한 방법에 사용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군인, 경찰이 그런 능력을 사용하는 괴물을 상대로 우위를 점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결국 같은 능력자인 자신이 나서야 한다.

두 번째로 첫 번째와 연계되는 이야기지만,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더 성장해야 한다.

태영은 지금까지 공포의 괴물, 광기의 괴물을 상대했다.

첫 번째 적인 공포의 괴물은 간단하게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적이었던 광기의 괴물은 상당히 고전했다.

자칫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아예 다른 괴물이니 기본적인 능력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두 괴물의 전투력 차이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전투력 차이라고 볼 수 있을까?

광기의 괴물이 사용한 디버프는 정신 공격에 대한 내성이 없는 자신에게는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이를테면 상성이 안 좋았던 것이다.

태영은 상성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었다.

이것은 전투에서 큰 차이를 만든다.

성장에서 크기와 방향이 있다고 하면, 힘의 세기, 강력한 전투력은 크기를 지양한 성장이라고 불 수 있을 것이다.

태영은 광기의 괴물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것이 완벽한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디버프를 경험하고 나서, 성장의 방향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단순화시키자면, 크기의 성장은 레벨업, 방향의 성장은 무상성(?)이 되는 것.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할까?

성장의 크기가 중요한가, 아니면 방향이 중요한가?

크기의 성장은 방향을 압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면 라이트는 자신보다 레벨이 같거나 높은 상대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시 크기가 우선시 되는가?

그러나 광기의 괴물의 디버프는 레벨차를 무시했다.

오히려 레벨이 더 높은 태영을 꼼짝달싹 못 하게 했다.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이야기다.

이런 고민에 대한 정답은 대게, 둘 다 골고루 성장하는 것이다.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나의 고민이 머릿속을 점유하자, 다른 고민이 떠올랐다.

태영은 지금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사고를 떠올렸다.

알 수 없는 붕괴, 화재 사건이 전국에서 들려오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어떤 악덕 건설회사에서 만든 불량 건축물이 수명을 다해서 일제히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아도 최근 건물 사고는 전년도의 몇 배를 초월했다.

만약 이것이 인위적인 조작에 의한 것이라면, 그런 조작을 하는 녀석의 전투력이 약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태영은 마나 유저급 능력자다.

마나를 수월하게 다루고 그 힘을 이끌어 내는 인간이다.

만약 다른 괴물의 능력이 마나 엑스퍼트, 마나 마스터의 수준이라면, 태영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지금 날뛰고 있는 괴물이 그 정도의 실력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언제나 허들을 높게 잡는 것이 좋다.

리스크에 관한 문제는 더더욱 그렇다.

태영은 자신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상대에게 당할 뻔했던 것을 상기했다.

전투는 카드 게임과 다르다.

전투원의 능력치가 싸움의 승패를 가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실력이 보장하는 것은 승리의 확률뿐이다.

태영은 기량을 높이는 동시에, 정신적인 무장태세를 갖추기도 해야 한다.

‘최근 퀘스트를 별로 안 했지?’

현실에 충실하다 보니, 최근 퀘스트 클리어가 뜸해졌다.

이제 태영의 현실은 비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어느 한 쪽에만 집중할 수는 없다.

이제부터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었다.

상념에 빠져 있던 태영을 깨운 것은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현관 밖에서 들려왔다.

태영은 고개를 들어 어서 오라는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연희였다.

양손에 슈퍼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간단한 저녁거리만 사 온다고 했었는데 이것저것 신을 낸 모양이다.

새로운 집에서의 첫날밤이니 이해가 갔다.

태영은 그녀가 사 온 요리 재료를 확인했다.

식빵 여러 개와 두툼한 안심살, 소금과 후추, 튀김가루와 식용유, 그리고 모짜렐라 치즈까지 사 왔다.

노골적으로 돈가스를 해달라는 무언의 외침이었다.

연희는 요리를 잘하지 못했다.

자취했다고 하나 바쁜 일정 때문에 거의 도시락을 사 먹었던 것 같다.

반면 태영은 요리는 그럭저럭했기 때문에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거의 태영의 몫이었다.

물론 연희도 옆에서 잘 도와주었고, 그 외에 잡다한 집안일은 모두 도맡아 했다.

신혼부부의 알콩달콩한 생활을 재현하는 것은 즐겁다.

태영은 두툼한 안심살을 이용해서 돈가스를 만들었다.

식빵을 직접 가루로 냈고, 양념한 안심살을 달걀물에 넣어 빵가루를 둗혔다.

튀김가루도 적당히 뿌리고 그대로 기름에 던지니 지글지글한 소리와 함께 돈가스가 익기 시작했다.

기름 요리는 이 자작자작하는 소리가 너무 좋다.

“맛있는 냄새~”

연희는 요리가 준비되는 동안 집안 청소를 했다.

아직 살림살이를 들여놓지 않아서 청소가 무척 간결했다.

걸레로 바닥을 쓱쓱 닦으면 끝이었다.

장애물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녀의 청소는 일사천리였다.

새로운 집은 방이 3개이다.

갑자기 집이 너무 넓어져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태영은 우선 1개를 침실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2개를 용도에 맞게 꾸미기로 결정했다.

세 사람이 워낙 끈적끈적한 사이라 굳이 개인 방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방 하나를 여자를 위한 화장, 드레스 룸으로 만들고 나머지 하나를 책과 컴퓨터를 두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다.

책장을 사서 거실에 두고, 텔레비전도 커다란 것을 하나 사야 한다.

냉장고도 가정용으로 사용하는 큰 것이 필요했다.

필요한 가구와 물건을 생각하면서 요리를 하니 시간이 빨리 갔다.

“다녀왔습니다.”

현관에서 서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영은 앞치마를 두른 채, 머리만 빼꼼 돌아보며 인사했다.

“어서 와라. 밥 먹게 손 씻어.”

“오늘은 튀김인가?”

따끈따끈한 밥과 돈가스가 작은 식탁에 올랐다.

주방이 원룸과 다른 ㄱ자 주방이었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 덕에 음식도 더 맛있게 나온 것 같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돈가스를 앞에 두고 서연이 입맛을 다셨다.

그녀에게 이렇게 짧은 출퇴근 거리도 신세계였고, 퇴근하자마자 먹을 수 있는 저녁 식사도 새로웠다.

“누나! 저녁 먹어.”

“금방 갈게.”

연희도 청소를 모두 마쳤는지 걸레를 빨고 베란다에 널어놓은 후 식탁으로 왔다.

그녀는 손뼉을 치며 훌륭한 저녁 식사에 감탄했다.

고소한 냄새가 집에 가득 찼다.

태영은 미지근한 생수를 컵에 따랐다.

“주말에 가구를 보러 가기로 했잖아. 미리미리 필요한 물건을 정해 두자고. 기본적인 가구를 제외하고 일단, 냉장고, 텔레비전, 컴퓨터랑.. 책장이면 충분할까?”

태영은 앞치마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

갓 튀긴 돈가스에 소스를 듬뿍 뿌려서 먹는 것은 매우 즐겁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봉밥을 후후 불어서 입에 넣었다.

“드레스룸은 안쪽 방에 일체형으로 하나 붙어있기는 하지만… 여자가 두 사람이니, 하나 더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내 옷이랑 연희 언니 옷이랑 섞이면 조금 그렇고.”

“그렇네. 그리고 세탁기랑 건조대도 필요해. 흐음… 주방 도구도 조금 샀으면 좋겠는데..”

“주방용품은 필수죠. 냄비, 프라이팬, 숟가락하고 젓가락도 더 필요하겠네요.”

부족한 것을 꼽으며 물건 구매 계획을 세우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태영과 연희, 서연은 식사하며 집을 채울 물건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면 이야기할수록, 태영은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물건이 필요한지 깨달았다.

원룸이라는 좁은 공간에서는 인연이 없는 물건도 이런 큰 집에서는 필요했다.

하나의 껍데기를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온 기분이었다.

“그렇지. 태영아. 혹시 집에 재산 관리를 내가 해도 될까?”

“그러세요.”

태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간단히 말했다.

자신의 노예인 연희는 태영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대기업에서 근무할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다.

오히려 복잡한 재산 관리를 대신해 준다면 고마울 정도이다.

“통장 드릴게요.”

“고마워. 앞으로 가계부 꼬박꼬박 써서 일주일마다 제출할게.”

“그렇게 할 것까지야..”

이야기를 나누니 식사 시간이 금방 끝났다.

설거지는 서연의 몫이었다.

태영은 발코니에 나가서 바깥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넓은 한강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몸에 닿았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내 집이구나. 이게 내 집이야.’

좋은 충족감이 들었다.

[작품 후기]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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