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6화
제17장 : 헌터의 날
아침을 막 넘긴 시간이었다.
아영의 전화가 울렸다.
스마트폰을 들어 수신자를 확인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수석인 정찬우였다.
아영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좋은 이유로 자신에게 전화했을 리가 없다.
아영은 한 번 심호흡했다.
고단수인 정 수석을 상대하려면 자기 페이스를 잘 유지해야 한다.
전화음이 다섯 번 정도 울렸을 때, 아영은 전화를 받았다.
“주아영입니다.”
[정찬우 수석입니다]
정 수석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아영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을 예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몬스터 출현입니다. 모든 헌터를 소집하겠습니다. 장소는 문자로 보내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아영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사안이 워낙 급박해서 그런 것인지, 대화다운 대화가 오고 가지도 못했다.
아영의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위치는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낚시터였다.
몬스터가 출현하면 즉시 출동해야 한다.
그러나 아영에게는 그곳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영은 아직 자가용이 없었다.
그녀는 툴툴거리면 정 수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제 있습니까?]
정 수석은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아영은 그의 빠른 반응에 놀라면서도, 노골적으로 불평했다.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저, 차가 없거든요.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요.”
[지난번에는 사건 현장까지 단독으로 이동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태영이 헌터들을 직접 불렀다.
아영은 한쪽 뺨에 전화기를 붙이며 말했다.
“그때는 선생.. 아니, 그분이 불러주셨어요. 이번에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렇습니까…?]
정 수석은 당황을 숨기지 않았다.
일 분 일 초가 급한 상황에서 헌터가 바로 현장에 도착할 수 없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그는 빠르게 판단했다.
“헬기를 보내겠습니다. 지금 아영 씨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 어디지요?”
“벼.. 병원이요?”
“일단 그곳으로 찾아가십시오. 한시가 급합니다.”
아영은 병원 이름을 가르쳐주고 바로 집에서 나왔다.
헌터 카톡방에 카톡이 엄청나게 올라왔다.
다른 동료들도 사건 발생을 전파받은 모양이었다.
[헬기로 데리러 온다는데]
[이번 몬스터는 어떨까요? 강할까요?]
[우리 무기 받아야 하지 않낭?]
[연희 언니, 그 사람한테 연락 가능해요?]
[잠깐 기다려 봐]
아영는 정 수석의 말대로 다짜고짜 병원에 찾아갔다.
놀랍게도 아영이 도착하자마자, 병원에서 사람이 나와 그를 안내해주었다.
“연락받았습니다. 따라오시죠!”
나라의 일 처리가 이렇게 빠를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깨달았다.
아영은 병원 직원을 따라 헬리포트가 있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10분 정도 기다리자 커다란 헬리콥터 날갯소리가 울려퍼졌다.
건너편 하늘에서 두 개의 날개를 단 CH-47 헬기가 병원 옥상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헬기라고 해서 방송국 헬기와 같은 귀여운 잠자리 모양을 상상한 아영은 깜짝 놀랐다.
보잉사가 개발한 대표적인 텐덤로터 수송 헬리콥터인 CH-47 치누크는 30인 이상의 중무장 병력을 수송할 수 있는 대용량 헬기이다.
공기를 찢는 프로펠러 소리가 아영의 귀를 난폭하게 두드렸다.
숙련된 헬기 조종사는 치누크를 신속하게 병원 옥상에 착륙시켰다.
헬기의 문이 열리고 정장 차림의 남성 한 명이 그곳에서 내렸다.
정 수석이었다.
그는 아영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시가 바쁩니다. 빨리 타세요.”
아영이 헬기에 올라타자마자 연희와 서연이 옥상에 도착했다.
두 사람도 치누크의 우람한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그녀들은 이런 헬기를 텔레비전에서나 보았다.
치누크 안에는 25명의 특수부대원이 탑승해 있었다.
대한민국 최정예 대테러 부대인 707특임대였다.
검은 전투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방탄모와 마스크로 얼굴을 꼼꼼히 가른 그들에게서 비장한 기운이 흘렀다.
아영은 FN SCAR(특수부대용 돌격소총)를 쥔 그들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죽을 수도 있는 임무에 투입되는 그들의 심정이 이해됐다.
“우와, 이게 헬리콥터야?”
치누크에 탑승한 서연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녀도 딱딱한 공기를 감지했는지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수진 씨와, 정화 씨가 오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정 수석은 시계를 확인했다.
헬리콥터를 이용하면 목적지까지 30분 안에 날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겐 그 시간도 길게 느껴졌다.
5분 정도 지나자 두 사람이 동시에 들어왔다.
“늦어서 미안해요!”
수진은 막 자다 일어나서 금방 씻었는지 부스스한 머리에 물기가 흘렀다.
다섯 사람이 모두 치누크에 탑승하자 정 수석이 조종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치누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았다.
아영은 자리에 앉아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전투에 앞서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가장 중요한 절차였다.
“우리 무기는 어쩌죠?”
수진이 작은 소리로 연희에게 말했다.
그녀는 주위에 있는 헌터들만 들을 수 있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있다가 나누어 준데.”
연희의 대답을 듣고도 수진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그녀의 근심스러운 얼굴을 본 아영은 등을 다독이며 그녀를 달랬다.
치누크는 280km의 속도로 창공을 날았다.
목적지인 의정부시의 낚시터가 아래쪽에 희미하게 보였다.
“일단 도로에 착륙하지.”
707 특임대의 현장 전투지휘를 맡은 장준구 대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해외 파병 경험이 있는 그도 목숨을 건 실전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목이 갈라져서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지만, 장 대위는 애써 침착함을 가장했다.
각 대원들은 소총을 손에 쥐고 심호흡을 했다.
대원들이 착용한 방검복이 작게 떨리는 게 보였다.
그들도 필사적으로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다.
치누크는 천천히 고도를 낮추며 낚시터 옆 도로에 안착했다.
서연은 갑자기 세상이 조각조각 나는 것을 느꼈다.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주변 환경이 빠르게 부서졌다.
그리고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다시 재조립됐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한 익숙한 느낌이었다.
헬리콥터 안의 환경은 정육면체 형태의 깔끔한 방으로 바뀌었다.
정신병원의 격리병동처럼 보이는 이 방은 태영의 홈그라운드인 욕먕의 방이다.
방의 한가운데에 가면을 쓴 태영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또 사건이군요.”
태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목소리는 성별조차 특정지을 수 없도록 기괴하게 들렸기 때문에 낮은 목소리를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바뀐 주변 환경을 신기한 듯 둘러보던 아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질문할 거 있어요!”
반의 우등생처럼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손을 드는 그녀를 바라보며 태영은 작게 웃었다.
아영의 최고 장점은 저 밝고 당당한 성격이었다.
목숨을 건 전투를 목전에 두고도 긴장하지 않는 정신력은 본받아야 마땅하였다.
아영 옆에 있는 수진은 긴장이 풀리지 않는 듯, 연신 팔을 어루만졌다.
“무엇이죠?”
“혹시 몬스터가 출현하면 저희를 그곳으로 보내주실 수 있나요?”
아영이 질문하는 것은 태영도 원하는 바였다.
상점을 둘러보면서 그런 일을 가능케 하는 아이템을 몇 개 찾았다.
그러나 아직은 포인트가 부족해서 살 수 없었다.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차후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태영은 짧게 말했다.
아영은 조금 실망의 기색을 내비쳤다.
빨리 현장에 도착할 수 있으면, 인명 피해나 건물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군용 헬리콥터를 타고 현장에 도착하는 색다른 경험도 좋지만, 그것은 한 번이면 족하다.
“그럼 우리가 따로 방법을 강구해야 하나요?”
“너무 심려치 마세요.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앞으로… 길어도 한 달 내에 가능하게 만들겠습니다.”
태영이 그렇게 단언하자 아영은 조금 기운을 차렸다.
태영은 우선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 그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서연은 자신의 무기인 믿음 결정체를 받았다.
묵직하고 두꺼운 방패다.
아영은 일변도를 조심스럽게 휘두르며 몸을 풀었다.
아영의 동작은 짧고 간결했으며, 빨랐다.
군더더기를 모두 뺀 담백한 움직임에는 창끝 같은 예리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일변도를 들고 전장 앞에 선다면 서연도 든든해졌다.
수진은 편궁을 어루만졌고, 정화도 지팡이와 반지를 착용했다.
연희는 옷을 입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아무래도 전신 타이즈기 때문에 간단히 착용할 수는 없었다.
연희가 수호자의 역설을 착용하고 꽃의 유희를 머리에 쓰자, 태영은 그녀들을 중앙에 모았다.
“오늘은 제가 지원을 가지 못합니다. 물론 여러분이 치명상을 입게 되었을 경우에 역소환이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곳으로 강제로 돌아오지요.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물론 역소환을 너무 믿어서는 안 되겠지요.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네에~ 선생님!”
아영이 우렁차게 외치자 서연이 배시시 웃었다.
태영은 그녀들의 컨디션을 일일이 확인하고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태영은 어플을 조작해서 그녀들을 다시 원래 세계로 돌려보냈다.
세상이 다시 산산이 조각나고 재결합했다.
서연은 헬리콥터 안에 있었다.
“앗!? 갑자기 복장이… 변했군요!”
정 수석은 연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다른 헌터를 둘러 보았다.
연희뿐만 아니라, 모두가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정 수석은 믿을 수 없었다.
마치 에니메이션의 프레임 하나를 뚝 잘라서 다른 장면을 덧댄것 같았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투 준비 만발이에요!”
아영이 자신 있게 외쳤다.
그녀의 무장을 보자 707 부대원들 사이에서 묘한 안도가 흘렀다.
헬리콥터의 문이 열렸다.
특수부대원들이 소총을 지향사격 자세로 하고 빠르게 헬리콥터에서 내렸다.
[작품 후기]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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