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성 아카데미의 망나니는 마왕 아들-178화 (178/595)

EP. 178

내가 날린 선공의 순간적인 빠르기는 루시아와 견줄 정도.

그녀와의 대련을 통해 유용한 선공기 하나를 만들어 두었다. 제국검의 검로가 빠르게 이젤티어의 목을 노렸다.

타앙-

이젤티어가 거대한 대검, 츠바이헨더의 검신으로 그 공격을 겨우 막아냈다.

‘반응했군. 역시 이젤티어인가.’

조금 아쉬웠지만. 사실 녀석을 도발하기 위한 첫타였으니 전력을 다하진 않았다.

허나 녀석의 반응은 달랐다. 눈빛이 진지해졌다.

“뭐야. 이 선공은?”

선공이 날아왔다는 분노가 아니었다. 당황. 그리고 놀라움.

“속검을 사용하는 녀석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이런 선공도 날릴 줄 아는 군. 아차하면 당할 뻔했다.”

그리 말하는 이젤티어의 기세가 달라졌다. 츠바이헨더를 비스듬하게 눕혀 쥐었다. 나도 롱소드를 쥐어 녀석과의 간격을 살핀다.

‘빈틈이 없군.’

2m에 가까운 거구. 거기에 녀석의 거구에 맞는 무식한 대검을 들고 있다. 조금 전처럼 녀석이 방심하지 않고서야 그 리치 안을 파고들어 유효타를 날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어설프게 들어가면 오히려 내가 당한다.’

그리고 이젤티어의 시선이 정면의 나를 향했다. 방금 전까지는 사방팔방으로 내뿜던 살기가 달라졌다.

“겁 없는 녀석이군. 건방지게 다짜고짜 검부터 날리다니. 평범하게 생긴 것치고는 제법 성깔 있는 데?”

그 살기가 이젠 오로지 나를 향해서만 집중됐다.

마수의 마혼력 같은 살기를 뿜어내는 남자. 아그네스의 로자리오가 명백히 저 남자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아그네스.’

하지만 엄마 말을 듣지 않는 한창 별난 때의 아이처럼. 라인하르트의 피는 이미 끓어올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다.

녀석과 제대로 붙어보고 싶다. 2부의 메인 빌런인 그와 미리 붙어보는 것만으로도. 검술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이젤티어가 외쳤다.

“그러면 이번엔 내가 들어가겠다!!”

“그러던지.”

보기보다 예의바른 녀석이다. 하지만 그 검은 주인을 닮아 포악했다.

그우우웅-

비스듬히 들었던 대검이 그대로 수직으로 나를 찍어내려 눌러온다.

‘무슨 기세가...’

마나를 담지 않았어도 커다란 바위도 쪼개버릴 만큼 거친 위력을 담은 강검이다.

무식한 대검에 저 정도의 힘이 실린 만큼 얼핏 느릿해 보이는 검격이지만.

‘체감하는 건 달라. 빠르다.’

무식한 완력을 실어, 위에서 아래로 내리 꽂히니. 느릴 수 없다. 그 위력도 분명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다.

쿠우웅-

그대로 나를 쪼개버리려는 듯한 일격. 하지만 이젤티어의 검은 내게 닿지 않고 바닥에 내리 꽂혔다.

“조지가 피했어!”

“바닥에 또 구덩이가 패였어! 무슨 저런 무식한 힘이...”

“하지만 위력이 센 만큼 느린 거 아냐? 저 조지가 피할 정도면?”

아니다. 위력이 강한 강검은 위력은 큰 대신 속도가 느릴 것 같다는 편견은 있지만. 즈바이핸더가 수직선을 그린 시간은 그야말로 일순.

무식하다 말하기에는 그 속도와 검로가 그리는 선이 너무 깔끔했다. 오히려 조금 전, 괴테라는 속검을 쓰는 녀석의 검격보다 훨씬 빨랐다.

‘그러니 피하는 건 불가능했어.’

하지만 그 검격의 끝에 닿은 건 내가 아닌 바닥이었다.

이내 이젤티어가 다시 한 번 놀랐다는 듯, 내게 말했다.

“호오. 피할 수 없으니 흘리다니. 그것도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내 검로를 살짝만 비틀었어. 아무나 할 수 없는 기술인데 그건.”

“알아보는 군. 네 말이 맞다.”

이젤티어의 말이 맞았다. 어설프게 몸을 틀어 피하려 했다간 오히려 내가 당했을 거다. 무식한 완력가 같지만 이젤티어는 닳고 닳은 용병이다.

‘어설프게 피하려하거나 물러서려 했다간. 저 괴력으로 검로를 순식간에 바꾸었겠지.’

그 검격의 위력과 가속이 끝에 다다른 지점에서도, 검로를 순식간에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괴력을 보유한 자니까.

수직으로 내리꽂는 척하며, 바로 내 옆구리를 노리는 건 예삿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피하지 않고 검을 맞부딪히는 척하며, 녀석의 검을 흘렸다.

“붙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놈이군. 크큭. 르네의 점괘가 맞았어. 오늘 아레나에서 재밌는 일이 있을 거라더니. 네 녀석을 두고 나온 점괘였나!”

그리고 조금 전의 일격은 예고에 불과했다. 내 실력을 확인한 이젤티어가 더 진심이 됐다.

“그러면 이것도 한 번 막아봐라!”

살의가 더욱 짙어졌다. 조금 전의 거짓 살의가 아니었다. 이젤티어의 의지를 담은 본연의 검격.

“네가 쓸 만한 놈이면 살고. 아니라면 죽겠지. 크큭. 그게 더 재밌지 않나? 지면 죽고. 이기면 사는 그런 피비린내 나는 대결이 말이야.”

녀석의 간격이 달라졌다. 직전까지 얇은 종이 한 장 들어갈 빈틈이 없던 녀석의 근처.

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빈틈투성이가 됐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츠바이헨더에 실린 기세는 배로 끌어 올랐다.

‘이젤티어의 검형(劍形). 알 것 같군.’

자신의 안전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승부에서 이긴다면 어차피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그 양극단을 나누는 건 결국에는 단 일합의 검.

‘몸을 사릴 필요는 없다는 거지. 자신이 죽어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아직 풋내기들인 판테온의 생도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다. 사람의 목숨을 끊어본 검과, 그렇지 않은 검. 그 예기와 각오가 달랐다.

목숨을 건 사선에서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실전이 숨 쉬는 것보다 익숙한 용병. 타고난 싸움꾼 이젤티어만이 내뿜을 수 있는 살기였다.

그우우웅-

주변의 공기가 파르르 떨릴 만큼의 강한 기세였다. 이젤티어의 검이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내게로 날아왔다.

‘그렇다면 나는!’

나 역시 녀석과의 전장에 서있다. 시간이 정지한 듯 내 오감은 극도로 민감해져있다.

온 몸이 파르르 떨릴 정도의 살기. 이젤티어는 전혀 봐줄 생각이 없다. 오히려 진심으로 나를 죽일 생각으로 살초를 내지르고 있으니까.

자연재해처럼 날아오는 녀석의 대검. 저걸 어찌 못하면 나는 죽는다. 마나가 담겨있지 않더라도. 나 역시 지금 마나를 쓸 수 없는 상태니까.

하지만 아직 이젤티어의 검격은 내게 닿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리는 경우의 수에 나의 죽음은 없었다.

‘해보자고!’

나는 제국검을 들어 내 검형의 의지로 녀석에게 답했다.

카캉-

두 사람의 검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

단 그 일합이 승부의 끝이었다.

“두 사람 모두 멈춰! 시합에서 말고는 선수들의 대결은 금지 되어 있다!! 뭐하는 짓이야!”

두 사람의 승부는 일단 멈췄다. 아레나의 경비원과 마법사들이 난동을 막기 위해 나와 이젤티어를 포위했던 것.

“칫. 방해꾼들이 왔나.”

이젤티어가 먼저 츠바이헨더를 내렸다. 나도 그의 검과 얽혀있던 내 제국검을 거두었다.

동시에 관중들이 외쳤다.

“저... 저 무식한 검을 조지가 막아냈어!”

“저 롱소드는... 이젤티어의 대검에 비하면 이쑤시개나 다름없는 데. 어떻게 된 일이야!”

“조지, 저자가 이젤티어 같은 괴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 말이 맞았다. 이젤티어의 대검은 나를 반토막 내지 못했으니까. 그의 살의를 담은 일격은 내 제국검에게 막혔다.

둘이 전력으로 내지른 검형이 허공에서 맞부딪힌 것. 이젤티어가 내게 말했다.

“장난이나 견제로 내지른 검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히려 내 검로에 네가 먼저 달려 들어와서 일격을 맞부딪힐 줄이야. 꽤나 쓸 만한 검형을 담을 줄 아는 놈이군.”

역시 강자답게 내가 그를 막았던 방법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녀석의 검형이 완성되기 전에. 2장의 1형이 먼저 닿았지.’

내 패검은 아직 녀석의 강검보다 위력이 덜하다. 허나 기술로 그걸 극복했다.

“내 검격의 위력이 정점에 오르는 것보다 먼저 네 검이 닿았지. 순간의 최대 가속으로 내지른 패검. 속검이 아닌 가속의 위력을 제대로 담은 패검이었으니 그 순간만큼은 내 검의 위력과 맞먹을 정도였다.”

이젤티어의 말 대로였다. 내 패검은 가장 최단의 검로로 내지르는 웅혼한 검격에, 순간적인 최대 가속을 붙인다.

‘그 가속이 검격의 속도와 위력을 더하지.’

그 가속을 통해 이젤티어의 검로를 먼저 잡았다. 그의 검격이 체 완성되기 전에 검이 맞부딪쳤으니. 저 무식한 대검을 막아내는 일이 가능했던 것.

내가 그의 검로를 선점한 셈이다.

빠지지직-

하지만 제국검이 망가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세실리아가 강화시켜준 검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철로 만든 검이었으니까.

‘세실리아를 다시 찾아가야겠군.’

그 사이 아레나의 관계자들이 몰린 관중들을 해산 시켰다. 이젤티어가 아쉬운 듯 말했다.

“칫. 너와 좀 더 검을 겨뤄보고 싶지만. 오늘은 무승부로군. 그래도 어느 정도 재미는 봤으니 물러나야겠지.”

무승부라. 사실 아레나의 직원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승부가 더 이어졌다면 사실 내 패배다.

저 검귀는 무수한 실전 경험으로. 내 검형과 패검에 맞대응할 방법을 금방 찾아냈을 거니까.

‘뭐, 그래도 이대로 끝나면 무승부는 맞지.’

사실 추살대의 행동 대장을 상대로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2부에서 대부분의 유저들은 이젤티어를 잡지 못하고 게임 오버를 당했으니까.

그리고 그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뭐, 그래도 오늘만 날이 아니지. 여기 아레나에도 재밌는 녀석이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수확은 충분하군. 너 정도의 실력있는 검사라면 토너먼트의 결승에 올라올 테니까. 크큭. 거기서는 제대로 목숨 걸고 승부를 겨뤄보자고.”

그리 말하며 돌아섰다. 이젤티어는 광견이라 불릴 정도로 싸움광이지만. 돌아설 때는 생각보다 쿨한 놈이었다.

‘결승이라.’

당장은 이젤티어와 붙지 않는 다는 말. 하지만 나 역시 지금의 승부로 만족할 수 없었다.

강자와 처음 대처해보는 건 아니다. 그랜드 마스터인 빌헬름과 마스터인 미하엘 단장. 그리고 판테온의 실력있는 교관들과도 만나보았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살의가 당긴 일합과 겨루어보는 건 처음이었지.’

내 실력에 맞춘 대련과 실전의 차이는. 체감하는 게 다르다.

역시 토너먼트에 참가하길 잘했다. 지금의 내 실력. 그리고 앞으로 상대해야할 자들의 강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지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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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의 후계자로 살아가는 일」

* 정식 후계자로서의 자격 증명

: 라인하르트의 이름에 걸맞은 상대를 만나 승부를 겨루었습니다. 당신의 호승심이 끓어올랐습니다.

* 획득 보상

+ 50GP / 150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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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스템 알림창이 말하는 대로. 내 안에 잠든 무언가가 눈을 뜬 느낌이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반드시 이겨주지. 이젤티어.’

나는 여전히 식지 않은 라인하르트의 피에 흥분했다. 내 옆에 있던 루시아에게 말했다.

“루시아. 이제 돌아가지. 그리고 괜찮다면 오늘 밤에는 내 저택에서 자고 가지 않겠나.”

“네에? 백작님... 자, 자고 가라는 말씀은!!”

순간, 루시아가 내 말의 의미를 착각한 것 같다.

“대련 상대가 되어달라는 말이다. 저자와 상대했던 감각을 잊고 싶지 않으니.”

“그, 그러셨군요. 제가 괜히 오해했습니다.”

어쩐지 아쉬워하는 루시아와 함께, 환락가를 떠나 저택으로 돌아갔다.

***

다음 날. 토요일.

루시아는 꽤 늦은 아침까지 내 저택에 남아 있었다.

‘너무 루시아를 괴롭혔나.’

이젤티어와의 일전. 그 후에 잔열처럼 끓어오른 고양감을 쉽게 가라앉힐 수 없었다. 루시아와 함께 저택의 연무장으로 향해 꽤 늦은 시간까지 검을 휘둘렀다.

지금은 나와 루시아. 그리고 에이린도 함께 아침을 먹는 중이었다.

에이린이 루시아에게 말했다.

“꽤 늦은 시간까지 대련이 이어졌습니다만. 루시아님의 컨디션이 좋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침소는 불편하시지 않았나요?”

“괘, 괜찮습니다. 근데 방이 조금 더웠는지 땀이 나서...”

“어머. 그러셨군요. 어쩐지 아침에 침대 시트를 갈 때 시트가 젖어있던 데. 다음에는 창문을 꼭 열어드리겠습니다. 땀을 그렇게 흘리실 줄은...”

“마... 맞아요. 땀이 맞아요. 제가 원래 땀이 많아서...”

루시아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루시아도 여자니. 땀을 많이 흘렀다는 걸 부끄러워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땀만은 아니겠지.’

사실 어젯밤. 그녀와의 대련을 마치고 몽마 특성으로 루시아의 꿈에 들어갔다.

그녀의 정기를 빼앗으려는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그녀에게 정기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대련을 하느라 너무 고생시켰으니 말이지.’

나는 르네의 정기를 제대로 빼앗은 덕에 꽤나 혈기 왕성했으니까. 루시아의 음몽 속에서 제대로 몸을 섞었다.

그러니 자고 일어났을 때 땀 말고 다른 즙이 흘렀을지도 모르지. 나는 두 사람이 일상 대화를 나누는 걸 들으며 아침 식사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저번에 세실리아님, 그리고 도련님과 함께 보았던 테리아의 연인이라는 음악극이...”

“아. 세실리아에게 들었습니다. 엄청 감동적이었다고...”

에이린이 세실리아와 사이가 좋아진 덕에. 저 두 사람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루시아와 몸을 섞은 걸 모르진 않을 텐데. 릴리아는 싫지만 루시아는 괜찮은 건가.’

작년의 망나니와는 전혀 달라졌을 나지만. 그래도 아랫도리만큼은 더 난봉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렇게 몸을 섞은 히로인들이 함께 있으면 내 기분이 별 수 없이 묘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잠시 티타임을 가지고 있을 때. 저택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북국의 삭풍도 잠재우는 사자의 용맹에 영광을! 저 클로에가 율리안 백작님께 인사드려요!”

한 손에 부채를 들고, 화려한 귀족 영애 드레스를 입은 여자. 또 다른 A+의 운명 등급을 가진 히로인, 클로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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