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43
에이린은 꿈에서도 평소처럼 메이드 복을 입고 있었다.
‘에이린이 어색함을 느끼면 안 돼.’
그녀의 꿈이 아니니까. 에이린이 내 꿈에 동화되도록 더 자연스러운 꿈을 연기해야 했다.
꿈의 지배력을 통해 공간을 슬쩍 여러 곳으로 바꾸어 보았다. 변경백의 저택. 판테온. 그리고 내 저택까지.
내 꿈이라 그녀의 감정이 더 강하게 전해져왔다. 의외로 에이린이 꿈으로 선택한 장소는 판테온이였다.
‘내 저택일 줄 알았는데.’
에이린이라면 단 둘이 조용히 있을 수 있는 내 방을 선호할 거라 생각했으니.
일단 나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에이린이 상상하는 대로 꿈이 흘러가게 놔두었다.
그러자 몽중몽의 형태로 에이린의 꿈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헤소스관이군.’
한 낮의 판테온이었다. 그래서 꿈이지만 헤소스관에는 생도들이 가득했다.
여느 판테온의 건물이 그렇듯, 본관이 되는 건물. 그 밖은 너른 뜰이 조성되어 있었다. 말이 뜰이지 공원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예술 종단답게 그 곳에서 생도들이 자유롭게 음악을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것도.’
에이린의 무의식이 최근 헤소스관의 풍경을 완벽히 재현해 놨다. 사방에는 생도, 특히 커플들이 가득했다.
“요즘에는 연인들이 정말 많네요. 그렇지 않나요, 율리안 경?”
순간, 에이린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율리안 경이라니?’
에이린은 언제나 딱딱한 말투로 도련님이라고 나를 불렀으니까. 호칭이 이상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마도 계절이 봄이니까... 그리고 다들 손을 잡고 있네요. 안 그래요?”
순간 에이린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배시시 웃었다. 평소의 에이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화사한 미소였다.
“흐흠... 제 한 쪽 손이 허전한데...”
에이린은 내 오른쪽에 서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왼손을 슬쩍 내게로 내밀었다. 그 약지에는 에르티와 같은 모양의 반지가 껴져 있었다.
하지만 에르티는 아니었다. 내 왼손에도 반지가 끼여져 있었으니까.
‘설마 커플링?’
약간은 당혹스러운 느낌을 감추며. 에이린이 내민 손을 잡았다.
“레이디를 에스코트하는 기사라니. 율리안 경과 잘 어울리네요.”
에이린이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그녀의 말처럼. 어느새 에이린의 복장은 메이드 복이 아닌 영애 드레스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고보니 내 옷차림도 판테온의 전투 예복이 아니었다. 익숙한 사자 문양. 백야 기사단의 정복이었다.
‘이러면 정말 내가 에스코트 하는 것 같잖아.’
에이린과 마주 잡은 손에, 그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에이린이 슬쩍 손깍지를 끼워왔다. 쇄골과 어깨의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연녹색의 영애 드레스. 에이린의 새하얀 목덜미가 붉게 물드는 게 보였다.
‘무슨 꿈인지 대충 알 것 같군.’
아무래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꿈같진 않았다. 에이린의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 꿈.
이 곳 판테온에서, 에이린은 신분이 높은 귀족가의 영애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호위하는 기사.
‘에이린에게 이런 판타지가 있었다니.’
생각해보면 에이린은 세실리아와 자주 음악극을 보러 다녔다. 그 음악극에서도 지체 높은 레이디와 충실한 호위 기사의 로맨스는 늘 인기가 많았으니.
‘이럴 때면 에이린도 평범한 여자 같군.’
아니, 평범하다기에는 지금의 에이린은 눈이 부셨다. 어찌된 영문인지 영애 드레스를 입고도 메이드 머리띠는 풀지 않긴 했지만.
두 사람이 뜰에 들어서자 생도들의 시선이 에이린에게로 몰렸다. 에이린이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어머. 혹시 제 볼에 뭐라도 묻은 건...”
“그렇지 않습니다. 아가씨께서 아름다워서 그렇겠지요.”
“율리안 경도 참...”
내가 내뱉고도 그 말에 놀랐다. 지금은 에이린의 욕망에 맞추어 꿈을 조정 중이라, 나도 그녀의 무의식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뭐. 예쁜 건 사실이지만.’
내 칭찬에 볼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에이린은. 평소에 무표정한 그녀와는 너무 달랐다. 아마도 보통의 남자라면 그대로 사랑에 빠져버릴 정도였다.
나는 그녀를 충실히 에스코트 했다. 두 사람은 적당한 그늘이 드리운 뜰의 한 곳에 자리 잡았다.
“율리안 경을 위해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했어요. 드셔주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에이린이 우아한 손놀림으로 빵을 잘라 포크에 끼웠다.
“드셔보세요. 아~앙!”
그 에이린의 애교에 말문이 막혔다. 현실에서였다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민망할 순간이었지만. 여긴 꿈이니 군말 없이 그녀가 주는 대로 음식을 받아먹었다.
“율리안 경은 언제나 제 말을 다 들어주셔서. 후후... 너무 좋아요!!”
이내 황홀한 눈빛이 되어버리는 에이린. 그녀가 내게 슬쩍 몸을 더 붙여왔다.
황도에 유행하는 양식의 드레스답게, 내게 가까이 오자 그녀의 가슴골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그리고 괜히 꿈이 아니랄까봐. 원래의 크기보다 가슴이 커져 있었다.
“봄이니까 이렇게 정오에 가까운 시간은 햇볕이 강하네요. 후우. 땀이 살짝 나는 것 같기도... 그렇지 않나요?”
그 노골적인 유혹 조차도. 평소의 에이린과 달랐다.
그렇게 몸을 밀착한 채로 에이린과 손을 꼭 잡고 있자. 나도 모르게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갔다.
원래라면 여자 손을 잡은 정도로 발기하진 않지만. 묘한 색기를 띤 에이린의 모습이 무심코 음심을 자극했다.
슬쩍 주변을 살폈다. 사실 꿈이라 이대로 에이린과 진한 스킨십을 나누어도 상관없겠지만.
비록 꿈이라도 내 여자의 야해진 모습을, 다른 녀석들에게 보이긴 싫었다. 물론 에이린은 눈치 보지 않고 은근슬쩍 내 몸을 더듬어왔지만.
“어머. 잠깐만요.”
바로 그 때였다. 한 생도가 우리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치잇. 방해꾼이.”
그리고 에이린이 깜짝 놀랄 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그 생도에게로 향했다.
수녀복을 입은 금발벽안의 생도. 릴리아였다.
***
릴리아가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공손히 인사했다.
“고귀하신 에이린 영애를 뵙습니다.”
그러자 에이린이 몹시 만족스럽다는 듯, 거만한 눈빛으로 릴리아의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릴리아 양. 굳이 이렇게 매번 공손한 인사를 할 필요는 없는 데. 그래도 예의 바르군요.”
“아, 아닙니다. 에이린 영애처럼 고귀하신 분께 제가 어찌...”
“흐흠. 여기는 황도라 할지라도 아카데미 안이니까. 신분은 그리 중요치 않죠. 학칙 상으로는 신분과 관계없이 모두 동기일 뿐이니까요. 저는 왕국 연합 출신의 왕족. 그리고 당신은 일개 평민일 지라도요.”
허나 전혀 에이린의 본심으로 들리진 않았다. 꿈속의 릴리아는 에이린에게 쩔쩔 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보니 저 릴리아, 어딘가 이상한데.’
마치 황금을 뿌려 놓은 듯한 밝은 금발도. 보석같은 푸른 눈도 모두 그 색을 잃었다.
무엇보다도 릴리아가 자랑하는 거유와 커다란 엉덩이. 그 몸매가 모두 형편없이 줄어들어있었다.
에이린이 그런 릴리아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
“아무튼 인사는 그쯤이면 됐어요. 용건은 더 없나요?”
“네...? 네! 그렇습니다. 제가 괜히 두 분의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해요... 약혼자끼리의 오붓한 시간을...”
“알면 됐어요. 바쁘실 텐데, 얼른 가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에이린 영애.”
그러자 릴리아가, 다시 한 번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릴리아는 에이린의 눈치가 무서운지 나와는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릴리아가 떠나자, 에이린이 무섭도록 차가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건방진 년. 이미 짝이 있는 남자에게 꼬리를 치려고 하다니. 언젠가 내가 저년의 버릇을...”
전혀 에이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단순한 말 뿐만이 아닌, 릴리아에 대한 적대감이 진하게 느껴졌다.
‘현실에서는 릴리아가 내 약혼녀니까.’
이 꿈에서는 그 현실이 정반대로 뒤바뀌어 에이린이 내 약혼녀가 된 셈이다.
현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그 모습에 내가 멀뚱히 있자. 이내 에이린이 표정을 바꾸어 활짝 웃었다.
“어머. 율리안 경. 갑자기 안 친한 사람이 말을 걸어와서 저도 모르게 놀랐네요.”
그리 말하고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어 내 귀에 속삭였다.
“여기 뜰도 분위기는 좋지만...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실래요? 이렇게 매번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둘 만의 시간을 보낼 수 없으니까요.”
에이린의 끈적하고도 달콤한 숨결이 귓가에 그대로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두 사람이 향한 곳은 헤소스관의 빈 강의실이었다.
에이린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면 내 아틀리에가 더 적격이었겠지만.
지금 이 꿈속에서 나는 율리안 백작이 아닌 에이린의 호위기사 율리안 경. 에이린의 무의식은 그런 설정을 철저히 지키는 지, 여기엔 내 아틀리에가 없었다.
“후훗. 여기라면 아무도 오지 않을거에요.”
에이린의 말대로 이 빈 강의실은 헤소스관에서도 제법 구석에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주변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을 살피는 걸 끝낸 에이린이, 그 순간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율리안 경... ♡”
그리고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에이린.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는 그 모습이 몹시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다 에이린이 두 눈을 감고,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그대로 내가 먼저 키스를 하려던 찰나.
에이린이 살짝 몸을 뒤로 물렸다.
“에이린님?”
“잠깐만요. 여기 보다는...”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경어가 나왔다. 아니, 지금은 그녀의 꿈 속이니. 그게 더 어울리는 말투였다.
에이린이 살며시 나를 강의실의 벽쪽으로 끌어 당겼다. 그리고 말했다.
“저... 율리안 경. 평소처럼 그렇게... 그렇게 키스해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물론 그 평소라는 건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굳이 이 벽까지 데려온 걸 보니 뭔지 알만했다.
나는 한쪽 손으로 벽을 짚었다. 그러자 에이린이 부끄러워하며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이내 조금처럼 다시 눈을 감더니, 살짝 고개를 들었다.
‘벽치기에 대한 로망이 있는 건가.’
역시 에이린은 상당히 로맨스 판타지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의외였다.
음악극을 보러 가는 것 말고는, 평소 그런 취향을 전혀 티내지 않는 에이린이니까. 내가 전혀 몰랐던 에이린의 비밀을 알아가는 것 같았다.
‘뭐, 그래도 이 꿈에서는 에이린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할테니.’
예상하지 못한 부끄러운 꿈에 당황은 했지만. 처음의 내 목적은 잊지 않았다. 이대로 에이린의 욕망을 한계까지 이끌어낸다.
그렇게 에이린에게도 음문, 자궁문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레메게톤을 개방할 수 있을 테니.
나는 에이린과 입술을 겹쳤다.
“으응... 우웃... 후웁...”
내가 리드하는 조금 거친 키스였다. 순식간에 에이린의 입속으로 파고드는 혀. 나는 그 혀에 힘을 주어 에이린의 혀를 마구 휘감았다.
이내 두 사람의 타액이 끈적하게 뒤섞이며,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 익숙한 에이린의 맛이었지만.
그녀가 욕망에 충실해져서인지 몰라도, 더 야릇하게 느껴졌다.
나는 거칠게 에이린의 양쪽 손목을 꽉 잡았다. 그리고 혀를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마치 에이린을 유린하듯 그 입술을 탐했다.
“우웁... 훕... 으응... 흐응...”
조금 당황한 듯, 에이린이 몸을 떨었지만. 이내 그녀가 더 흥분하는 게 느껴졌다.
아가씨에게 충성을 다하는 상냥한 호위 기사. 하지만 이렇게 사랑을 나눌 때는 거친 남자의 모습으로 돌변한다.
‘아마도 이 꿈 속에서 나는 그런 설정인 것 같으니까.’
역시 정답이었다. 에이린의 콧소리가, 점점 교성에 가깝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더 대담하게 움직여, 그녀의 가슴에 손을 올리려는 찰나.
갑자기 강의실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에이린도 그 목소리를 들은 듯 잠시 키스를 멈추었다.
“누... 누가 왔나봐요. 율리안님과 몸으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얼른 숨어야.”
사실 굳이 숨을 필요도 없었지만. 에이린이 그걸 원하는 것 같았다.
‘부끄러운건가?’
에이린이 서둘러 근처에 있는 강연대 안으로 몸을 숨겼다.
나는 바로 그 강연대 앞에 서서 에이린의 모습을 가렸다. 바로 그 순간 빈 강의실에 누군가 들어왔다.
“어머.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잠시 와봤더니. 율리안 경이었군요.”
익숙한 은발적안, 클로에였다. 그녀가 교탁 앞에선 내게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런데 왜 율리안 경 혼자서? 에이린님은 안계시나요? 에이린님께 전해드릴 말이 있어요.”
“무슨 일입니까. 아가씨 대신 저에게 말을... 으읏?”
“으흠? 왜 그러시죠, 율리안 경?”
클로에가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가까스로 신음이 새어나오는 걸 참았다.
‘에이린... 뭘 하고 있는 거야.’
강연대 안으로 몸은 숨긴 에이린. 아마도 그녀가 내 바지와 팬티를 아래로 내린 것 같다.
그리고 내 아랫도리에서, 자지가 녹아날 듯한 축축한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