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14
“율리안님...”
그렇게 감정이 가득 담긴 말로 루시아가 내게 속삭였다.
이내 등 뒤에서 루시아의 향이 번져왔다. 평소라면 향수도 잘 뿌리고 다니지 않는 루시아지만. 오늘은 은은한 향이 번져 나왔다.
평소의 무표정한 모습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여성스러운 향의 향수를 뿌린 것 같다.
“너무... 율리안님께 너무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리고 갑작스러운 기습 포옹을 루시아가 해명했다.
“저... 율리안님께서 신경써주지 않으셨다면. 제 부모님도 무슨 일이 생기셨을지 모릅니다.”
루시아는 내게, 그 출생의 비밀을 먼저 말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연전에서 추살대장, 크리스가 그 사실을 언급해버리고 말았다.
‘루시아가 페드로 공작의 혈연이라고 말해버렸으니.’
사실 이미 어머니의 미래 예지로 알고 있었지만. 루시아로서는 그 사실을 제일 들키고 싶지 않은 상대에게 들켜버린 셈이다.
공식적으로 페드로 공작에게는 루시아라는 딸이 없었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 루시아가 사생아라는 걸 눈치 못 챌 리 없다.
“그 뿐만 아니라... 사생아인 저를 아내로... 아니... 혹시나 마음이 변하셨다 해도... 저는... 율리안님은 라인하르트 가문의 적자시니...”
루시아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만했다. 나는 이미 루시아에게 그녀를 아내로 맞을 거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 시기가 미묘했지.’
루시아가 생각하기에는. 그 약속 이후 뒤늦게 루시아가 사생아라는 걸 내가 알게 된 셈이니까.
귀족은 명예를 몹시 중요시한다. 그러니 허락되지 못한 핏줄인 사생아가 평민보다 오히려 더 불쾌한 존재.
하필 내 신분은 그 명예의 정점에 서있는 대공가의 후계자다.
‘그러니 내가 그 약속을 파기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물론 루시아의 사생아 신분은, 메이 남작가의 양녀가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오히려 루시아는 지금 귀족 영애이기 때문에, 그 핏줄이 더 신경 쓰일 거다.
‘감사도 감사지만. 그 쪽이 걱정되겠지.’
감사라는 핑계로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지만. 사실은 내 진심이 몹시 궁금할 테니까.
나는 몸을 돌렸다.
“율, 율리안님?”
그리고 당황하는 루시아를 내 품에 끌어안았다. 루시아는 보통 키보다 큰 편이지만. 나도 키가 있는 편이라, 내 품안에 그녀가 쏘옥 들어왔다.
그녀의 분홍 눈이 동그래졌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군. 널 아내로 맞겠다는 내 생각은 변한 적 없다. 내 혈통이 어떻던. 지금의 너는 오르하인가의 루시아가 아닌. 메이 가문의 루시아니까.”
“그, 그래도... 더러운 사생아가 어떻게... 율리안님처럼 고귀하신 분과...”
물론 지금의 나는 모든 기억을 되찾은 대공가의 소가주. 그리고 귀족으로서의 내 신분 또한 온전히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인간의 관습일 뿐이지.’
이미 용인화가 되어버린 이상, 내 몸은 마룡에 더 가깝다. 오만한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대단한 인간이든 그저 인간일 뿐.
루시아의 걱정은 나에게는 너무도 사소한 문제였다.
“만약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다면 네 양부를 내가 에센문트로 데려오지도 않았겠지. 쓸데없는 걱정이다.”
“정말... 인가요? 그래도...”
“내 어머니께서도 마족과 연을 맺었지. 아무래도 피는 못 속이는 것 같군. 그런 인간의 규율은 나도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제야 루시아는 안심한 것 같다. 그 분홍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괘, 괜한 일로 율리안님을 의심... 아니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나는 그녀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네 불안이 덜어졌다면 그걸로 충분하겠지. 앞으로는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러자 루시아가 다시 내 품에 안겼다. 조금 전의 불안했던 포옹과는 달리. 그녀의 감정이 가득 느껴지는 진한 포옹이었다.
‘정말... 나에게 푹 빠진 것 같다니까. 루시아는.’
이미 정실부인이 있는 페드로 공작에게 푹 빠져버린 루시아의 어머니처럼.
아마도 루시아는 사랑에 빠지면 오직 그 사람 밖에 보지 못하는 성격인 것 같다. 그녀의 실력이 전투 종단의 생도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발전한 것도.
유리엘을 대신해 들어간 대련 상대의 자리. 그 자리를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일념이었을 테니까.
‘루시아는 남성 기피증이 있는데도 말이지.’
그리고 유일한 그 예외의 상대가 바로 나다.
마연전 이후 전투 종단의 생도들은 결속력이 남녀 생도 가리지 않고 더욱 단단해졌지만. 여전히 루시아는 파비안이나 리프, 에릭 같은 남자 생도와는 조금의 말도 섞지 않으니까.
그렇게 고양이처럼 도도한 루시아가. 이렇게 나 앞에서만 충실한 강아지처럼 안겨 오는 모습은. 언제 봐도 사랑스럽다.
‘키스 해달라는 건가.’
그리고 루시아는 두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살짝 들고 있다. 나는 그녀와 입술을 겹쳤다.
***
“우웁... 츄릇...”
그렇게 으슥한 복도에서,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
저녁이 되어 어둑한 복도.
원래 헤소스관은 밤에도 예술 작업을 하고 있는 생도들이 많지만. 내 아틀리에는 다른 생도들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제법 구석에 있다.
멀리서 생도의 목소리가 얼핏 들려오지만. 이 복도는 다행히도 사각이다. 그래서 루시아의 몸을 벽으로 바짝 붙인 채. 그녀와 몹시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으응... 하아... 하아...”
내가 혀를 그녀의 입 안에서 빼내자. 그녀가 아쉽다는 듯 콧소리를 내었다. 두 사람의 혀 사이에서 뒤섞인 타액이, 실타래처럼 이어져 축 늘어졌다.
‘루시아. 너무 적극적이야.’
내 마음을 확인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녀의 키스가 평소와 달랐다.
적극적으로 내 입 안을 파고든 루시아의 혀가. 내 혀뿐만 아니라 입안의 민감한 속살들을 마구 비벼왔다.
입술이 타액으로 범벅이 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농밀한 키스. 이미 키스 정도로는 반응하지 않는 나지만.
조금 전의 키스만큼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발기해버리고 말았다.
“으흥...? 율리안님... 여기가...”
그리고 아랫도리가 밀착한 루시아도. 그 반응을 눈치 챈 것 같았다. 그녀가 끈적한 숨소리를 내뱉으며, 내게 말했다.
“저 때문에... 이렇게 되신 건가요?”
그렇게 말하며, 허벅지를 살짝 움직이며 아랫도리를 자극해왔다. 키스만으로 끝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노골적인 유혹에 순간 내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까치발을 들어 내 귀에 얼굴을 댄 루시아가. 속삭였다.
“어차피 대련한다고 나왔으니까... 아틀리에에 모인 사람들은 바빠서... 저희가 약간 늦게 들어와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거에요. 참지 않으셔도 돼요.”
나는 그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소라면 아틀리에로 루시아를 당장 데려가 몸을 섞겠지만. 지금 아틀리에는 다른 히로인들이 가득했다.
‘하고 싶지만... 어디서...’
순간, 마연전 회의 때 릴리아와 밀회를 즐겼던 내 전용 마차가 생각났다.
하지만 마차는 지금, 하필 아틀리에 창문 바로 바깥에 주차되어 있다. 루시아가 다급한 내 심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먼저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두 사람이 잠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면... 여기라도...”
그리고 이엘른관에서 루시아와 밀회를 했던 것처럼. 헤소스관의 비품 창고의 문을 열어보았다.
“전부 닫혀있군.”
여러 곳을 찾아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마연전이 벌어진지 얼마 안 됐으니. 판테온의 보안이 더 철저해진 것 같다. 이렇게 되자 오히려 내가 더 다급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곳이라도 어디...”
지금의 정력이 너무 절륜해진 부작용인지 몰라도. 한번 성욕이 끓어오르면 쉽게 멈출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루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내 손을 꼬옥 잡은 루시아가 먼저 발걸음을 내딛으며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여기라면... 괜찮을지도 몰라요.”
두 사람은 마침내 밀회를 즐길 장소를 찾아냈다.
***
아틀리에와는 조금 떨어진. 헤소스관의 한 복도의 구석.
루시아와 나는 열고 들어온 문을 닫았다. 두 사람이 들어온 곳은 비상구. 그리고 그 안의 비상계단이었다.
“네 말대로 여기라면 괜찮을지도 모르지.”
헤소스관은 아틀리에 때문에 늘 들리던 곳. 그래서 건물의 구조를 잘 알고 있다.
이곳은 생도들의 출입이 드문 곳이다. 생도들보다는 주로 헤소스관의 청소나 시설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출입하는 비상계단이니까.
지금은 저녁이라, 그 직원들도 때마침 모두 퇴근한 시간이다. 두 사람은 앞으로의 일에 방해가 되는 검을 서둘러 풀어, 계단에 걸쳐두었다.
“율리안님...”
그리고 장소를 찾느라 잠깐 내 흥분이 식었을 새라. 루시아가 내게 바로 안겨왔다.
루시아의 몸이 뜨겁다. 그리고 그녀의 분홍 눈동자에도 흥분이 가득했다. 두 사람은 다시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츄릇... 쯋... 쮸릇...”
혀를 허공에 내민 채로. 서로의 맛을 진득하게 탐했다. 루시아의 몸을 벽으로 더욱 붙였다.
조금 전 복도에서의 키스와 얼핏 비슷한 상황이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하아... 가득... 율리안님이 원하시는 대로... 전부 만지셔도 돼요...”
이렇게, 그녀의 가슴을 마구 만져대도 상관없다는 뜻. 아직 상의를 벗지 않아 옷 너머로 가슴이 느껴질 뿐이지만.
손바닥을 가득 메우는 부드러운 감촉은, 나를 금방 흥분시켰다.
‘루시아. 살이 참 부드러워.’
나도 상당히 흥분해서, 그 가슴을 주무르는 손에 무심코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루시아는 아파하지 않고 오히려, 느껴버린 것 같다.
“흐읏... 하아... 좋아요... 율리안님이 만져주면... 하아... 저도... 저도 흥분 돼서...”
그 말에 더는 참을 수 없게 됐다. 손을 루시아의 등 뒤로 뻗어, 전투 예복 뒤의 단추를 모두 풀었다.
그 상의를 앞으로 조금 내리자, 루시아가 먼저 팔을 뺐다. 브래지어도 서둘러 풀어버려 금방 맨 젖가슴이 드러났다.
루시아의 머리색과 같은, 분홍빛의 귀여운 유두다. 그 유두 주변을 물들인 분홍의 유륜도.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절묘한 사이즈.
이렇게 야한 젖가슴을 보면, 남자로서는 다른 생각은 할 수 없게 된다.
“응흣... 하아... 흐읏... 읏...”
잠시 몸을 아래로 내려, 그 유두를 바로 입에 물었다. 그녀의 가슴을 처음 맛본 날이 생각난다. 카르멘의 비밀 살롱.
그 곳에서 연금술사의 비약을 마신 루시아가, 모유를 뿜어냈던 그 날. 물론 지금 이 젖가슴에서 모유가 나올 일은 없다.
‘그래서 더 좋아.’
오히려 그 살결의 맛이. 이곳으로 오느라 흥분한 루시아가 조금 흘린 땀의 향과 뒤섞여 더 야릇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미칠 듯이 루시아의 가슴을 빨아댔다. 민감한 부위를 애무 당하자, 루시아도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지, 내 얼굴을 그녀의 팔로 꽉 감쌌다.
“흐읏... 햐앙!! 율리안님... 하아... 좋아요... 좋아해요...!!”
루시아의 반응이 너무 정직했다. 젖가슴을 마구 빨며, 루시아의 허벅지 사이로 손을 넣었다.
부드럽지만, 탄력있는 허벅지. 그리고 그 위로 전해져오는 온기. 이대로 루시아의 팬티까지 손을 넣고 싶었다.
“응흣... 앙대... 부... 부끄러워요!!”
루시아가 잠시 나를 밀어냈다. 그리고 내가 놀랄 틈새도 없이. 이번엔 그녀가 나를 벽으로 붙였다.
“아까부터 단단해지셨는 데... 너무 오래 참으셨으니... 제가 얼른 율리안님을...”
그리고 그대로 내 아랫도리 앞에서 앉았다. 완전히 바닥에 앉진 않았지만. 그녀의 얼굴과 내 아랫도리가 마주보는 자세.
이내 그녀가 내 바지와 팬티를 벗겨왔다. 역시나 상상 이상으로 발기한 폭군이. 그대로 수직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하아... 진해요... 율리안님의 향...”
그리 말하더니, 루시아가 황홀한 눈빛으로 내 자지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