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56
재빠르게 마수의 목을 베었다.
느껴지는 마혼력으로 보아 2형 마수. 멧돼지 얼굴을 하고 있던 세 마리 마수의 목이 단번에 달아났다.
‘뭐야. 시시하잖아.’
판테온, 그 곳에서의 예비 소대 평가를 기억한다. 분명 그 때는 로제트와 클로에와 함께 있음에도 2형 마수를 겨우 순찰하는 데 그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녀석들을 처리하는 일도 몹시 간단해졌다. 그때로부터 불과 3달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만큼 내가 급격히 성장한 게 느껴졌다.
‘하지만 놀랄 건 없어. 내가 앞으로 상대해야 할 마수나 마혼인들은 적어도 1형 이상이야.’
그러니 상위 마수라해도, 최상위도 아닌 녀석들에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허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내 생각과는 다른 것 같았다.
“셋 모두 외형이나 풍기는 위압감으로 볼 때 못해도 2형 마수. 그런데도 저렇게 깔끔하게 처리하다니...”
타일러라는 기사의 말이 들렸다. 다른 기사들도, 조금 전 나의 움직임에 사뭇 놀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주변을 다시 살폈다.
“지하 하수도는 신성 오벨리스크의 마혼력 정화 필드가 닿지 않는 곳이라 하셨죠. 그렇지 않습니까?”
내 말에 라일스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황도에서는 볼 수 없는 상위 등급의 마수가 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그가 조금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내 말했다.
“그래도 여러 마리의 2형 마수가 이렇게 동시에 출몰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황도에 출현하는 마수들... 그 괴물들의 마혼력의 근원은 구황도의 케이아틱 게이트죠.”
“구황도와 황도는 거리가 있으니. 상위 마수의 돌발 게이트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 이 말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라일스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나는 분명 기억했다. 판테온의 개학식. 그 때 콜로세움에 돌발 게이트를 열고 등장한 마수의 등급이 2형이었다는 걸.
‘이미 황도의 복판도 안전지대는 아니야. 하물며 신성 오벨리스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이 지하라면...’
그리고 지금의 2형 마수는 왠지 시작에 불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로자리오가 공명했다.
“이 반응은...?”
라일스가 연록색으로 빛나고 있는 로자리오를 보았다. 그리고 시에르티아도 반응했다.
“아무래도 이 지하도가 하나의 던전이 되어버린 것 같군요. 마혼력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내 말에 하이 나이트들의 표정이 굳었다. 라일스가 말했다.
“진퇴양난이군요. 저희들은 반드시 이곳을 통해 황궁으로 진입해야 할 텐데... 이 지하도의 깊은 곳에 무언가 있다면...”
용맹한 하이 나이트들이니, 두려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다만 이 지하 하수도는 조금 전 라일스의 말처럼 황궁으로 통하는 통로일 뿐이었다.
그 곳에서는 틀림없이 격전이 벌어질 테니. 그 전에 체력과 마나를 소모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상위등급의 마수가 등장하면 일행의 작전이 성공할 확률이 낮아진다.
‘마혼력이 지나치게 강해. 이미 지하가 던전화 되어버린 모양이군. 곤란할지도.’
지금의 파티 구성 대로면, 일행에게는 사제도 없다.
마혼력은 체력과 마나를 평상시보다 훨씬 저하시킨다. 하이 나이트들은 목숨을 내게 바친 만큼, 그들의 목숨을 가치 있게 사용하고 싶을 거다.
적어도, 이렇게 냄새나고 시체조차 찾기 힘들 지하 하수도를 누구도 무덤으로 생각하진 않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겠죠. 사람이 아닌 마수라면 오히려 문제없습니다.”
나는 시에르티아를 기사들 앞에서 들어 보였다. 이내 시에르티아로부터, 로자리오보다 밝은 연록색의 신성력이 번지기 시작했다.
마치 신성이 발현되는 듯한 막대한 양의 신성력. 그 신성력이 지하 하수도에 번지고 있는 마혼력을 지워냈다.
하이 나이트들이 일제히 시에르티아를 향해, 제딘의 성호를 그었다.
***
일행은 다시 이동했다.
예상한대로, 황궁과 가까워질수록 지하 하수도의 상태가 몹시 나빠졌다. 그 곳은 이미 던전의 내부나 다름없었다.
키야야아아아악-
거대한 뱀, 바실리스크까지 지하에 등장했다. 바실리스크는 이스랜드에 존재하는 몬스터 중에서도 몹시 위험한 거대 뱀 계열의 몬스터.
그 비늘 하나하나가 몹시 단단해 오러로도 그 걸 베어내기 쉽지 않다. 그리고 마치 용으로 착각할 만큼 육중한 덩치를 보유하고 있다.
폭우가 쏟아져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너른 지하 하수도였지만. 바실리스크의 몸이 그 하수도를 가득 메웠다.
‘그 덩치만큼이나 힘도 더럽게 세지.’
거기에 뱀답게 지독한 독까지 뿜어내니. 아마도 이 지하 하수도의 보스나 마찬가지일거다.
‘아무래도 이상해. 아무리 돌발게이트가 황도에도 생길 수 있다지만. 구황도에서 떨어진 이곳에 어떻게 이 정도의 마수가...’
그리우스의 본거지. 그 곳에 있을 크리스는 마혼인. 그러니 크노이아의 계약자이자 하수인이다.
그렇다면, 그가 황궁 내부에 마수와 관련된 무언가를 해놓았을지도 모르니.
‘이 곳 지하 하수도도 그 영향으로 상위 마수들이 등장한 걸지도 몰라.’
황궁과 이제 머지않았으니. 어쩌면 황궁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지하 하수도는 마수를 키워내는 부화장일 수도 있었다.
그 사이, 녀석과 조우한 하이 나이트들도 서둘러 대형을 갖추었다.
“저 바실리스크는 몬스터가 아니다! 틀림없는 마수! 원래의 바실리스크보다 강한 녀석이니 모두 각오해!”
라일스가 외쳤다.
마수 바실리스크는 2형 마수. 다만, 부하 마수를 거느리지 않고 단독으로 움직이는 특성 때문에 평가가 절하 되어있다.
단독 개체로서는 충분히 1형 마수로 평가 받을 수 있는 위험한 마수. 하이 나이트들은 저항군의 정예니 녀석을 잡아낼 수 있겠지만.
바실리스크는 까다로운 마수다. 시간을 끌수록 하이 나이트들의 체력이 소모될 건 분명했다.
“내가 녀석의 시선을 끌 테니 서둘러 녀석의 약점을 공략하도록!”
그리고 바실리스크의 정면으로 라일스가 나섰다. 바실리스크의 목에는 아가미처럼 벌어지는 비늘이 있다.
그 틈으로 내 뱉는 숨결이, 먹이감을 마비시킨다. 라일스가 그 마비 브레스를 직접 막아낼 생각인 듯했다.
“마비에 걸리면 그 저주를 풀어줄 사제가 없다! 그러니 더욱 조심해야...”
하지만 나는 손을 들어 라일스를 저지 시켰다.
“율리안 백작님? 이 마수는 저희에게...”
“아니요. 여러분들은 소중한 전력입니다. 그러니 힘을 아껴두셔야 합니다.”
당황한 표정을 짓는 라일스를 내버려 두고 내가 바실리스크의 앞으로 나섰다. 녀석의 성난 눈동자가, 그 노란색의 뱀눈이 나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키야아아아아아악-
생명이라면. 본능적으로 맹수 앞에선 공포로 몸이 굳어버릴 정도의 괴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디서 되다만 파충류가 나에게...’
바실리스크는 그 거대한 몸집 때문에 드래곤이라는 이명으로 불린다. 하지만 마룡인 나에게는 그저, 어설프게 드래곤을 흉내 내는 역겨운 파충류일 뿐이다.
“네까짓 게 감히 나를 노려보는가.”
그리고 나의 시선이 그 바실리스크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녀석은 처음처럼 포효했지만. 이내 내 눈빛을 확인하고는 갑자기 돌변했다.
“백작님! 위험합니다... 아, 아니?”
그대로 일행을 압사시켜버릴 정도로 날뛰던 바실리스크였지만. 그 녀석의 몸이 이내로 굳어버렸다.
이이이이익-
마치, 호랑이 앞에선 토끼처럼. 나와 눈이 마주치자 녀석의 몸이 도리어 마비 되어버렸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한 신음성을 내뱉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바실리스크가 갑자기 멈춰서다니... 아니 몸이 굳어버리다니...?”
“지금입니다! 일단 저 녀석을 처치하죠!”
나는 일행들에게 외쳤다. 바실리스크가 보인 뜻밖의 반응에 순간 놀란 듯했지만. 역시 하이 나이트들은 하이 나이트였다.
그들의 검이 일제히 오러로 빛났다.
샤아아아악-
바실리스크는 금방 토막나버렸다. 나는 결과에 만족했다.
‘역시 아룡 계열 몬스터는 나에게 꼼짝할 수 없군.’
모든 아룡 계열 생물의 정점에 있는 존재가 드래곤. 생물로서 가지는 압도적인 서열 차이 앞에서는, 저 상위 마수라 해도 어찌할 수 없다.
‘상성 상 바실리스크는 나에게 대들 수 없지.’
지금은 마룡으로서 각성을 마친 상태. 그러니 바실리스크로서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는 게 당연했다.
그로인해, 일이 수월해졌다.
이 지하 하수도는 여러모로 바실리스크에게 최적화 되어 있는 공간. 제대로 환기가 되지 않는 공간이기에, 녀석의 숨결이 이곳을 메우면 마비 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다.
화력 위주의 로제트도, 아군이 휩싸일 위험 때문에 마법을 쓰기 곤란한 곳이니. 이렇게 전혀 체력 낭비 없이 하수도의 보수를 쉽게 처리한 건 큰 이득이었다.
‘게다가 이 정도의 마수라면. 아마도 크리스의 손길이 분명 닿았겠지.’
이 마수도 크리스가 인형으로 사용하기 위해 공들인 마수라면. 아주 손쉽게 녀석에게 한방 먹인 셈이다.
‘그리고 이것도 뜻밖의 소득인데.’
바실리스크의 시체로부터 쓸 만한 보상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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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스크의 심장」
* 등급 : 유니크
* 상세 : 바실리스크의 정기가 집약된 심장입니다. 거대한 마나의 집약체로 오래도록 마나 각성자들의 영단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개체의 크기에 따라 영단의 효과가 더욱 증가합니다. 하지만 매우 독성이 강한 심장이므로 오랜 시간을 들인 연금술을 통한 특수한 처리가 필요합니다.
* 효과 : 즉시 섭취 시 영구 마나 증가 + 30MP / 연금술 처리 시 + 20MP로 효과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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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스노우 와이번처럼, 바실리스크는 심장에 그 정기를 저장했다.
특히 지금처럼 하수도의 공간을 가득 메울 정도의 큰 녀석이면 일반적인 마정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나의 집약체였다.
나는 그 심장을 몰래 챙겼다.
‘매우 독성이 강해 연금술 처리가 필요하다고?’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았다. 나는 만독불침. 이런 하찮은 파충류의 독은 마룡인 나에게 조금의 효과도 없다.
연금술 처리는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이렇게 거대한 바실리스크라면 해독과 정제에 걸리는 시간도 몹시 오래 걸릴 테다.
‘거기에 연금술로 처리하면 마나 증가 효과까지 줄어드는 군.’
싱싱한 음식이 맛있는 건 당연한 일이니. 즉시 섭취하는 쪽이 효과도 좋은 모양이다. 나는 서둘러 그 심장을 내 몸으로 흡수했다.
그러자 즉시, 마나 하트에 가득 활력이 차올랐다.
‘잘 됐어. 이곳은 원시림이 아니니. 브레스를 사용하기에는 마나와 마기가 부족했지. 때마침 필요할 때 좋은 영약을 얻었군.’
원시림에서 각성한 브레스. 하지만 황도로 돌아오니 그 곳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기에 분포된 마나가 희미했다.
허나 바실리스크의 심장으로, 마나의 용량을 증가시켰으니. 브레스를 사용하는 일도 한층 수월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백작님과 마주한 순간 저 바실리스크가 꼼작도 못하다니...”
“아무래도 사악한 마수인만큼 성검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 같군요. 제 검의 신성력이 일시적으로 바실리스크를 무력화시킨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기사들이 웅성웅성거렸다. 신성 라미르 제국. 비록 중앙 종단의 우두머리인 그리우스는 부패 사제이지만, 보통의 신민들은 신앙심이 깊었다.
시에르티아가 내뿜는 신성력을 이미 확인했던 저들이니. 누구도 내 말을 의심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성호를 그었다.
“그러면 나머지 처리를 부탁드립니다.”
내 말에 라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하수도를 막고 있는 바실리스크의 시체를 하이 나이트들이 해체했다.
“후우. 작업을 마쳤습니다. 그러면 이 통로만 지나면 황궁의 뒤뜰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나는 시에르티아를 들어, 그들에게 신성 주문을 사용했다. 연록색의 따뜻한 빛이 일행을 전부 휘감았다.
***
이윽고 일행들은 지하 하수도의 끝에 거의 다다랐다.
원래 세워둔 진입로, 계획 보다 마지막에 길을 상당히 우회했다. 바실리스크가 있던 통로 너머로 바로 진입하면 황궁의 뒤뜰이었지만.
율리안 백작의 제안으로 마지막에 진입로를 수정했다.
“계속 복잡한 길 안내를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원래의 길로 급습을 한다면 일행이 위험할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백작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라일스는 새삼 놀랐다. 지독한 냄새와 마혼력으로 가득한 지하 하수도다. 백작처럼 고귀한 신분의 귀족이라면 잠시도 있고 싶지 않은 곳.
그래서 마침내 뒤뜰로 향하는 통로에 닿았을 때.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자고 말할 수 있지만. 심지어 자신과 하이 나이트들의 심정도 그랬지만.
백작은 이곳의 누구보다도 차분하고도, 신중했다.
그의 말처럼. 이미 반란군의 누군가가 이 지하 하수도를 사용하고 있었다면. 마수를 키우는 부화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면.
그 바실리스크가 등장했던 곳과 이어지는 통로. 그 밖에는 반란군이 이미 진을 치고 있을 수 있다.
‘다급한 마음에 우리도 그 사실을 생각 못했어. 하지만 백작은 이미 그 모든 수도 염두에 두고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하이 나이트들은 우회로 역시 잘 알고 있었으니. 백작의 선택이 지금 상황에서는 확실한 선택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우회하느라 조금의 시간이 소모된 사이. 백작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들에게 신성 주문을 걸어주었다.
기사들의 넋을 잃게 만들었던 아름다운 검. 그 검은 놀랍게도 성검이었다. 그 것도 이스랜드의 검사라면 모를 수 없는 그 위대한 검후.
아틀린 폰 라인하르트의 성검. 시에르티아였다.
생각에 잠긴 라일스에게, 하이 나이트 타일러가 말을 걸어왔다.
“라일스경. 시에르티아는 분명 스스로 주인을 선택하는 성검이라고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라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